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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 옛집 순하디순한 어른의 집
재단법인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은 시민과 함께 우리 문화유산과 전통마을을 지키고 가꾸는 일에 앞장서는 재단입니다. 역사와 문화 인물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공간에 <행복>이 먼저 찾아가 가만히 지켜보고, 귀 기울여 보았습니다.

‘‘세상에 하고많은 색깔 중에 어째서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쌀쌀스럽지도 훗훗하지도 않은 다정한 흰빛을 그리도 좋아했는지….” 조선백자에 이렇게도 사랑스러운 표현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언어를 그대로 닮은 최순우 선생의 성북동 한옥에는 그의 순한 마음 같은 노란 장판과 창호와 알전구가 기분 좋은 미풍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평생 애정을 가지고 모은 조선의 목기 중 고르고 고른 서안과 사방탁자가 무심한 듯 놓인 그의 글 쓰는 방은 아직도 그때처럼 노란 알전구가 매달려 있고, 그를 닮은 서안 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활판 인쇄로 새겨진 편지지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뒤뜰로 향한 다섯 개의 문이 닫히면 수평의 벽과 문 위로 나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춘분에 이 집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눈이 내렸다. 마지막 눈과 첫 봄바람이 만나서 성북동 한옥의 ㅁ자 뜰 안에는 가는 겨울과 오는 봄이 사이좋게 스치며 만들어내는 환한 빛이 한옥 지붕 아래위로 따듯하게 흘러갔다. 성북동의 작은 골목에 조용하게 자리 잡은 최순우 옛집은 다정한 흰빛이 스며드는 집이다. 반짝반짝 화려하게 빛나는 집이 아니라 조용하고도 환하게 빛이 나는 그런 집. 아마도 이 집의 주인 이름이 그 시작이 아닐까 한다. 1916년 개성에서 태어난 혜곡 최순우의 본명은 최희순崔熙淳이다(순우는 그를 유난히 아끼던 간송 전형필이 본인의 자식처럼 여겨 집안의 돌림자를 따라 지어준 이름이다). 밝을 희熙에 두터울 순淳, 혹은 지극히 정성스러울 순淳. 밝음이 두터우면, 또 밝음이 지극하면 그 이름을 지닌 이의 삶과 머물던 집이 그렇게 되나 보다. 개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개성 시청의 서기로 일하던 최순우 선생은 우현 고유섭에게 미술사를 배워 개성시립박물관에서 일하기 시작해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설립된 국립박물관에서 고졸 출신 만년 과장에서 관장이 되기까지 평생 ‘박물관사람’이라는 보통명사로 통하던 사람이다. 이곳 성북동 한옥에서 숨을 거두는 1984년까지 그는 한국 미술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안목과 애정의 흔적을 글로 남기기도 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책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이고, 우리 미술에 깃들어 있는 이런 속 깊은 아름다움을 담담하면서도 살가운 언어를 통해 남긴 어른이다.

성북동 한옥은 서울에서 그의 세 번째 집이다. 처음에 살던 경복궁 관사, 그리고 사모님이 갖은 노력으로 마련한 궁정동 한옥을 거쳐 궁정동 집이 헐리면서 1976년 이곳 성북동 한옥으로 오게 되었다. 이 집은 1930년대 지은 근대 한옥으로 경기도 양식의 ‘튼 미음’ 자 형태다. 터가 1백20평이라고 해도 ㄱ자와 ㄴ자를 사이좋게 이어놓은 한옥채가 단정하고 소담해 그리 넓어 보이지는 않는다. 작은 우물과 정원이 자리 잡은 안뜰과 평화로운 수평의 사랑채 뒤로 보이는 뒤뜰은 양쪽 문이 열리면 하나의 큰 정원처럼 느껴지고, 문이 닫히면 각기 다른 두 개의 작은 낙원이 된다. 궁정동 한옥에서 이곳으로 이사 온 최순우 선생은 허름하고 스러져가던 한옥에 특유의 안목으로 선비 기운인 문기와 선하고 순한 온기를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평소 식물을 아끼던 마음으로 고른 소나무와 매화, 대나무와 산수유를 심고 한옥의 모든 기둥과 서까래에 칠해진 칠을 다 벗겨내고 콩댐까지 먹여 윤기를 내기까지 많은 시간과 손길이 필요했다고 한다. 하얀 벽에 기둥 나무까지 다 깎아서 오는 손님들이 ‘백골白骨집’으로 불렀다던 이 집은 나뉘어 있던 방을 트고 평소 아끼고 모아온 목가구와 백자기를 조심스러우면서도 정갈하게 놓으니 옛 선비의 담담한 품위와 정갈함이 그대로 실현된 집이 되었다.

온아하고 간소한 공간이지만 문의 열고 닫음, 밀고 당김에 따라 찬란한 낙원이 되기도 하고 온몸을 숨기고 글에 몰입하는 오지가 되기도 하는 이곳에서 선비처럼 살던 그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을 것이다.


작은 우물과 정원이 자리 잡은 안뜰과 평화로운 수평의 사랑채 뒤로 보이는 뒤뜰은 양쪽 문이 열리면 하나의 큰 정원처럼 느껴지고,문이 닫히면 각기 다른 두 개의 작은 낙원이 된다.

최순우 옛집은 ㄱ자와 ㄴ자를 사이좋게 이어놓은 단정한 ㅁ자 한옥으로 집주인의 담담한 품위와 정갈함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이렇게 평범한 한옥이 문기 가득한 공간으로 바뀐 것은 최순우 선생 사모님의 숨은 공도 커서 어둡고 반들한 툇마루부터 댓돌까지 걸레질하는 바지런함으로 이 옛집은 점점 빛을 더해갔다. 박물관에 있을 때부터 당시 관장실보다 더 많은 손님으로 분주하던 과장실의 주인답게 최순우 선생의 한옥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는데, 설이 되면 사흘 동안 세배 손님이 왔다고 하니 이 집의 반질한 마루와 장판에는 그 드나듦의 몫도 컸을 것이다. 그리고 사모님은 손님이 오면 개성 김치 한 보시기와 술잔을 소반에 차려 한 사람 앞에 상 하나씩을 내놓으셨다니, 안팎 모두 따뜻이 환대하는 마음이 건조하던 이 한옥을 더 윤기 있는 빛으로 가득 채웠을 것이다. 한옥의 맛 중 현판을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한데, 아마도 그 집에 사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작은 나무판에 새겨진 글씨체와 그 뜻으로 고스란히 읽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집에 들어서면 선생이 투박하게 직접 쓴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이라는 현판과 마주하게 된다. ‘문을 닫으면 이곳이 깊은 산중’이라는 뜻이다. 딱 보기에도 풋풋하고 어눌해서 전문가가 아닌 집주인의 글씨라는 게 느껴져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아이의 글씨처럼 한 자 한 자 소리 내어 읽게 된다.

평생을 박물관사람으로 살면서 많은 물건과 유물과 사람을 만난 선생이 어떻게 그리 다정하면서도 속 깊은 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풀리는 글자들이다. 평생 애정을 가지고 모은 조선의 목기 중 고르고 고른 서안과 사방탁자가 무심한 듯 놓인 그의 글 쓰는 방은 아직도 그때처럼 노란 알전구가 매달려 있고, 그를 닮은 서안 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글자가 활판 인쇄로 새겨진 편지지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방 세 개를 모두 터서 만든 긴 공간이라 햇빛이 하루종일 환하게 들어오는 방이었지만, 아마도 문을 닫으면 깊은 산중 글의 오지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닫힌 문밖으로는 또 고요한 기운이 그득했을 것이다. 지금도 뒤뜰에서 문 다섯 개가 닫혀 있는 이 집의 기나긴 수평의 선을 바라보면 한없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그 벽과 문 위로 나무 그림자가 어른거리면 보는 사람 마음도 기분 좋게 일렁이면서 방 안에서 선생이 조용히 글 쓰는 모습이 배어 나오는 듯하다. 아름다움이 몸에 배어 있던 최순우 선생은 손님을 맞을 때도 미닫이문을 반쯤 열고 닫으며 문틈을 내서 안뜰과 뒤뜰, 그리고 방과 방 사이에 공간의 여운을 남겼다고 한다. 온아하고 간소한 공간이지만 문의 열고 닫음, 밀고 당김에 따라 찬란한 낙원이 되기도 하고 온몸을 숨기고 글에 몰입하는 오지가 되기도 하는 이곳에서 선비처럼 살던 그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을 것이다. 최순우 선생은 한국 미술의 마음씨가 한국 풍경을 닮았다고 늘 말해왔다. ‘험하지도 연약하지도 않은 산, 메마르지도 기름지지도 못한 들, 슬플 것도 복될 것도 없는 덤덤한 살림살이’처럼 한국 미술은 언제나 담담하고 수다스럽지 않은 맛이 있다고 했는데, 그 맛을 그대로 품은 곳이 이 집이다. 절대로 장대함을 꿈꾸지 않고, 오직 풍경과 사는 사람의 마음이 순한 흰빛에 스며드는 집,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너그러운 가르침이 순순히 배어 나오는 이 옛집은 진정한 어른의 집이다.

주소 서울 성북구 성북로15길 9
문의 재단법인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02-3675-3401, www.ntculture.or.kr


글 김은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