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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공간 시간의 켜가 있는 커피집,왈츠와 닥터만
경기도 남양주시 북한강 변에 마치 유럽의 고성固城처럼 우뚝 서 있는 왈츠와 닥터만은 예사 레스토랑이 아니다. 1백30년 대한민국 커피 역사의 나이테가 선명하게 새겨진 문화예술 공간이다.

1 왈츠와 닥터만은 박물관, 레스토랑, 커피 공장으로 이루어졌는데, 붉은빛의 건물 색부터 그윽한 커피를 연상시킨다. 넝쿨이 싱그러운 왈츠와 닥터만 박물관 입구.

2, 4 커피의 일생과 문화를 전시해놓은 코너에서는 단계별로 로스팅한 커피는 물론, 세계 커피의 원두를 종류별로 볼 수 있다.
3 커피의 역사 코너에서는 동서양의 커피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5 커피 박사 박종만 관장은 문화 예술에도 조예가 깊다. 박물관 내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금요 음악회는 그의 자랑이기도 하다.
6 원두를 직접 골라 드립 방식으로 커피를 맛 볼 수 있는 체험 공간.
7 왈츠와 닥터만의 더치커피는 원두 선별부터 추출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커피 전문가의 손을 거쳐 소량씩 생산한다. 로스팅 후 15일 이내의 커피만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가히 카페 춘추전국시대라 해도 무방할 만큼 골목마다 커피 전문점이 넘쳐난다. 식후 커피 한잔은 온 국민의 습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데 우리나라의 카페에서는 시간의 켜가 느껴지지 않는다. 국내에 커피가 들어온 지도 어언 1백30년인데, 그간의 기억과 생활을 고스란히 담은 유서 깊은 커피집이 아쉽게도 없다. 그저 세련되고 개성 넘치는 곳 일색이다. 저마다의 콘셉트와 문화, 독창성이 접목되어 카페의 기능은 점점 진화하고, 수적으로도 상당히 늘어났건만 커피와 커피를 둘러싼 문화는 물론, 시간속에서 기억을 만들어내고 흔적을 쌓아가는 커피집을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여느 카페처럼 인테리어 트렌드를 엿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도시에 있는 것도 아니건만 ‘왈츠와 닥터만’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곳은 언제 오더라도 늘 변함없다. 1년만에 찾은 이에게도, 10년 만에 찾은 이에게도 이곳은 멈춰버린 시계 같은 공간이다. 북한강 변에서 자연을 벗 삼아 즐기는 커피와 음식 맛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게다가 이곳에는 커피 역사의 이모저모를 엿볼 수 있는 한국 최초의 커피 박물관이 있고, 금요일에는 작은 음악회도 열린다. 단순히 커피 맛과 분위기만 좋은 곳이 아니라, 커피를 바탕으로 감성과 지성을 두루 갖춘 문화 예술 공간인 것. 시간의 켜를 잘 쌓아서 좀 더 나은 내일의 삶을 기대할 수 있는 쉼터가 될 만한 공간, 왈츠와 닥터만이 특별한 이유다.

1백 년 가는 커피 왕국을 꿈꾸다 1989년 홍대 근처 커피 전문점 ‘왈츠’로 시작해 정통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원두커피 붐을 일으키는 데 적잖은 역할을 한 왈츠와 닥터만이 고급 커피를 선보이는 레스토랑으로 경기도 남양주시에 터를 잡은 것은 1996년. ‘1백 년 가는 커피집’을 만들려는 왈츠와 닥터만 박물관 박종만 관장의 포부 때문이다.
“커피에 미쳐 있다 보니 커피를 둘러싼 문화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가더군요. 틈만 나면 커피 원두나 유명 카페를 찾아서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녔어요. 그러다가 프랑스의 유명한 카페 ‘레 듀 마고Les deux magots’에 갔는데, 1875년에 문을 연 유서 깊은 곳으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늦은 밤까지 원고를 쓰고 담론을 나누던 자리가 온종일 예약되어 있더군요. 제겐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게다가 남아 있는 것들을 통해서는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었지요. 인류와 사회의 역사는 면면이 하나의 모습으로 이어져오는 법일진대, 카페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일종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 부러웠습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출신인 만큼 기술을 살려 직접 ‘1백 년 가는 커피집’을 꼬박 1년간 지었다. 지금의 레스토랑과 커피 공장으로 당시만 해도 단층 건물이었는데, 3층으로 증축해 커피 박물관을 선보인 것이 2006년이다. “한국 커피의 역사를 정확한 기록으로 찾아 이론으로 정립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박물관을 만들었지요.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해방과 전쟁 그리고 산업화를 거치면서 커피는 그 시대를 담아내는 사회 현상이요, 문화 현상으로 늘 우리와 함께했는데, 정작 우리는 커피를 언제부터 마시기 시작했는지도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으니까요. 제대로 된 기록이 없으니, 구전으로 부풀린 이야기가 정설 행세를 하는 사이에 정작 우리 커피 문화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왈츠와 닥터만 커피 박물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바로 잘못 알려진 커피에 대한 상식과 정보를 바로잡는 것. 매일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옛날 신문을 찾아보는 게 그의 일상이었다. 2007년부터는 커피 역사 탐험대를 꾸려 한국과 세계 커피의 기원, 전파 과정을 찾아가는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큰일을 쳤다. 대표 사건은 속설이 난무하던 한국 커피사의 첫 문장을 쓴 것.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1896년 아관파천 당시 고종 황제가 러시아 공관에서 처음 커피를 마신 것”에 앞서 12년 전에 조선에는 이미 커피가 들어와 있었다는 기록을 찾았다. 그는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의 저서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궁중에 초대되어 조선의 귀한 수입품인 커피를 대접받았다”는 한 줄의 문장을 찾고 뛸 듯이 기뻐했다고.
“나는 변화와 전통을 지킬 줄 아는 커피 왕국을 만들고 싶습니다. 커피는 남의 문화가 아니라 1백30년을 함께한 우리의 귀한 문화니까요. 그래서 문화 예술이 설 수 있는 공간인 콘서트홀도 박물관 안에 만들고, 금요일마다 작은 음악회도 열지요. 내게 커피가 오랜 친구이듯,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 곁을 지켜줄 좋은 친구를 여럿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1 매주 금요일 오후 8시부터 한 시간 반가량 열리는 닥터만 금요 음악회로, 커피와 음악을 좋아하는 이라면 꼭 가볼 것. 359회(6월 7일)는 바이올리니스트 김경아 씨, 피아니스트 김준차 씨, 첼리스트 김철호 씨가 함께 하는 서울챔버앙상블이 초대되었다.

2
박물관으로 오르는 계단.
3 레스토랑 문을 열고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2백년 된 미니 파이프오르간.


이곳의 진수는 커피 박물관과 금요 음악회 왈츠와 닥터만 커피 박물관에는 그야말로 커피에 관한 모든 것이 총망라되어 있다. 커피의 역사, 커피의 일생, 커피의 문화, 커피 재배 온실, 미디어 자료실 등 다섯 가지 테마로 구성한 박물관에는 커피가 인생의 전부인 박종만 관장이 국내외를 누비며 20년 넘게 수집해온 커피 도구와 생두, 원두, 나무는 물론 사진과 유물 등 커피 관련 소장품 2천1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박물관 관람은 ‘커피의 역사’ 코너에서 시작하는데, 이곳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유물은 바로 손잡이에 이화 문양이 새겨진 은제 스푼이다. 커피를 즐기던 고종 황제가 직접 쓰던 것으로, 증손자인 혜원 선생이 기증한 것. 우리나라 커피 역사에서 유물이 워낙 귀해 보물이나 다름없다. 한국 커피사의 첫 문장을 정립한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의 저서<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와 그 구절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일제시대 일본과 한국의 다방 홍보물과 1960~1970년대 다방 풍경도 사진과 신문 기사 등의 자료로 볼 수 있는데, 일제시대에도 커피집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라는 내용과 국산차 마시기 운동을 하자는 내용 등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과거의 신문 기사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커피의 일생과 문화를 전시한 코너에서는 원두의 파종부터 음용까지의 전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아라비카, 로부스타, 리베리카 등 대표 원두를 선택해 직접 갈아 드립 방식으로 내리는 체험도 할 수 있다. 매시 정각과 30분에 바리스타의 도움을 받아 진행하며, 자신이 직접 원두를 선택하고 취향껏 맛과 향을 조절할 수 있어 인기다. 직접 내린 커피는 미디어 자료실에서 커피 관련 역사를 관람하며 마실 수 있는데, 1960~1970년대 다방식으로 꾸며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박물관 위층에 마련한 커피 재배 온실에서는 국내 노지 재배를 실현하기 위한 연구 목적으로 커피나무도 키운다. 온실 맞은편에서는 더치커피를 시음할 수 있다. 커피의 눈물이라고도 불리는 더치커피는 찬물로 12시간동안 우려내 추출하는데, 진하면서도 맛이 산뜻하고 깔끔한 것이 특징으로, 구입도 가능하다.
매주 금요일 오후 8시에는 왈츠와 닥터만의 자랑인 ‘닥터만 금요 음악회’가 열린다. 박물관 안에 감쪽같이 숨어 있는 콘서트홀에서 열리는데, 정통 클래식 음악을 향긋한 커피를 마시며 아늑한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이 묘미다. 벌써 3백60회를 넘긴 보기 드문 음악회로, 해설을 곁들여 쉽고 재미있는 데다 국내 정상급 음악가들의 연주를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 마니아도 제법 있을 정도로 인기다. 비록 음악회 규모는 작지만 감동은 반비례하니 커피와 클래식으로 한여름 밤의 낭만을 즐기고 싶다면 서둘러 예약할 것.


1 레스토랑에서는 왈츠와 닥터만이 선택한 최고급 커피를 드립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2 북한강을 마주하고 앉는 창가와 테라스는 이곳의 명당. 언제고 좋지만 특히 저물녘과 비 오는 날의 풍경이 일품이다.

3
 유정란, 꿀, 밀가루 등 모두 국내산 재료로 만든 치즈 베이스 케이크는 커피와 즐기면 더없이 좋은 디저트. 다섯 가지가 있다.
4 故 박완서 선생이 책을 읽거나 사색에 잠기던 자리. 식사 때면 늘 크림수프를 즐겼다고.


왈츠와 닥터만은 커피와 커피를 둘러싼 문화는 물론, 시간 속에서 기억을 만들어내고 흔적을 쌓아가는 커피집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커피, 음식, 자연이 어우러지는 레스토랑 왈츠와 닥터만 레스토랑에서는 시간의 켜가 보인다.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 속에서 흔적을 쌓아간 기억과 생활이 보이는 것이다. 이 공간의 공기는 1990년대에 멈춰 있고, 세심하게 꾸민 고풍스러운 유럽풍 실내 구석구석에는 박종만 관장이 세계 각국을 다니며 틈틈이 모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자리했다. 2백 년을 훌쩍 넘은 미니 파이프오르간, 영국 왕실에서 사용했다는 램프, 빅토리아 시대의 커피잔과 티포트 등은 모두 애정을 가지고 모은 것으로 귀한 유물이나 다름없다. 문화 예술 공간답게 故 박완서 선생과 故 피천득 선생 등 대가들의 발길도 잦았는데, 그들이 즐겨 앉던 자리는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커피 역사에 일대 획을 그은 이곳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커피 맛.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100% 등 26종의 프리미엄 커피는 리필이 가능한데, 메뉴는 바꿀 수 없지만 그때마다 잔을 바꿔준다. 커다란 창 너머로 보이는 삼 각산과 북한강 풍경을 바라보며 즐기는 코스 요리도 일품이다. 사람으로 붐비는 주말이 아니라, 평일 오후라면 책 한 권 들고 와서 읽기 더없이 좋다. 날씨가 좋다면 저물녘 테라스에 앉아볼 것. 파리나 베네치아의 카페 테라스가 부럽지 않을 것이다.

왈츠와 닥터만을 찾아가려면
왈츠와 닥터만 커피 박물관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월요일은 휴관. 관람료는 성인 5천 원, 아이 3천 원.
닥터만 금요 음악회 지정 좌석제로 커피와 쿠키, 콘서트 후 와인 파티 등이 포함된 입장권은 성인 2만 원. 미취학 아동은 무료 입장 가능하나 뒷자리로 안내한다. 디너 코스 패키지는 4만 9천 원과 6만 9천 원 두 가지.
왈츠와 닥터만 레스토랑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휴무일 없음.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북한강로 856-37 문의 031-576-0020
신민주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