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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맞는 집 하우스 레시피 지우네 가족의 서판교 글라스 하우스
단독주택이라고 해서 아파트에서 느끼는 편리함을 무조건 포기할 필요가 있을까? 정은정 씨는 노드플랜 이형진 소장과의 첫 회의 때 아파트의 편의성을 최대한 담아달라고 요청했다. 살림이 즐거워지는 편리한 동선과 세심한 디테일은 살리면서도 천창, 너른 앞마당, 취미를 위한 지하 공간까지 주택이기에 가능한 다채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도심형 주택 짓기.

(왼쪽) 2층 계단 옆 자투리 공간에 마련한 가족실은 건축주가 가장 만족스럽게 여기는 공간이다. 여섯 살 난 지우는 이곳에서 책을 읽고, 남편은 이곳에서 노트북으로 업무를 본다. 지금은 아이 책이 꽂혀 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책 종류가 바뀌고, 빈칸 또한 차곡차곡 채워질 것이다.

집 짓기에서 전제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아파트와 바꾼 집>(동녁)의 저자 박철수 교수의 말처럼 “아파트는 나쁜 집이고 마당이 딸린 단독주택이야말로 이상적인 집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를 피해야 한다”는 것. 아파트는 분명 우리나라에서 가장 발달한 주거 건축 양식이다. ‘획일적’이라는 아쉬움은 똑같은 설계 때문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에서의 생활이 단조롭고 무료한 것에서 기인하다. 문제는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주거 공간 선택의 폭이 너무 좁다는 것이다. 작품 주택과 집 장수의 집으로만 나뉘어 소비되는 집 짓기의 양극화 현실에서 결국 바뀌어야 할 것은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 사용하는 데 불편함과 관리하는 데 어려움은 극복하되 아파트 생활의 편리함은 곳곳에 갖춘 집. 소비자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주거 형태를 비교,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집 짓기가 늘어나야 한다. 정은정 씨 가족의 단독주택은 아파트의 편리한 동선은 살리고 아파트에서 누릴 수 없는 주택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는 집 짓기의 좋은 사례이다.

아파트의 편리한 동선과 주택 설계의 다채로움을 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집을 옮기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아이 공부방을 마련하기 위해 좀 더 넓은 곳으로 옮기는 경우도 있고 한창 자라는 아이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마당 딸린 집을 선택하기도 한다. 어떤 이에게는 학군도 중요한 요인이다. 평촌 대단지 아파트에 살던 정은정 씨 역시 예비 학부모가 되던 2010년 봄, 향후 10년을 내다보고 이사를 결심했다. “서판교의 타운하우스를 구경 갔다 분양가가 너무 높아 포기하려는데, 마침 바로 아래 LH 공사에서 단독주택 필지를 분양 중이었어요. 평당 1천만 원을 호가하는 땅값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집을 크게 짓지만 않는다면 타운하우스보다 적은 예산으로 집을 지을 수 있겠다 싶었지요.”

정은정 씨는 평생 한 번쯤 집을 짓고 살아봐야 한다면 지금이 적기다 싶었다. 젊을 때는 땅을 밟고, 나이 들어 도심 한가운데 살라는 말에 200% 공감하기 때문이다. 서판교는 녹지에 가까운 경계부나 경사지에는 아파트 또는 타운하우스가 배치되고 단독주택 용지는 넓은 도로 사이 평지에 밀집 배치해 주거 환경이 썩 좋지 않다는 평이었지만 정은정 씨는 오히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프라이버시만 생각한다면 도로와 떨어질수록 좋지만 아이가 있으니 교육과 치안은 물론 교통, 쇼핑 환경까지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서판교는 주택 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한 형태의 집을 짓고 있었는데 그중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 건축주에게 물어 노드플랜 이형진 소장을 소개받았다.

1층은 벽난로를 가운데 두고 거실과 다이닝룸이 펼쳐진다.


건축노트
위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종동 LH공사 단독주택 필지
대지 면적 230.7㎡(70 평)
건축 면적 254㎡(77 평)
건축 구조 지하 1층, 지상 2층 철근 콘크리트 구조
외부 마감 노출 콘크리트, 유리
실내 마감 바닥- 온돌 마루, 벽-페인트, 안티 스터코, 계단- 목재
난방 형태 도시 가스
설계 고려 사항 옥상 대신 지하층 마련, 넓은 주방 보조 공간과 세탁실 확보, 게스트 욕실은 세면대와 변기 분리
실내 평면 구성 침실, 가족실, 자녀 침실 1개, 게스트 룸, 화장실 3개(방문자용 1개)
마당 및 외부 공간 구성 2층에 덱 구성. 남쪽 대로변 쪽 조망보다는 서북 방향의 틀어진 조망 확보
공사 기간 2010년 8월 착공~ 2011년 3월 준공
시공 다빈치 벤치
총비용 대지 구입비 3.3㎡에 1천만 원, 시공비 3.3㎡당 6백50만 원)



1 노츨 콘크리트와 유리로 마감한 서판교 글라스 하우스. 4차선 도로가 인접해 있지만 앞에 두 집이 더 들어설 예정이고 놀이터를 경계로 옆집과 멀리 떨어져 있어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염려가 없다.
2 고무 대야에 돌을 쌓아 만든 연못.

3
 드레스룸, 욕실, 화장대를 지나 가장 안쪽에 침실을 배치했다. 
4 계단 위로 낸 천창을 통해 온종일 햇빛이 집 안에 든다.

평범한 주부의 눈높이에 맞춰
현관으로 들어서면 보조 주방을 통해 주방·거실로 이어지는 동선, 드레스룸과 욕실이 딸린 안방, 별도의 손빨 래가 가능한 세탁실 등 여자가 생활하기 편한 세심한 디테일이 돋보인다. 특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자리한 세탁실은 세탁기와 건조대, 다림판이 함께 있어 세탁과 관련한 모든 과정이 이 공간에서 원스톱으로 이 루어진다. 현관과 주방 사이의 보조 주방도 요긴한 공간이다. 모든 식재료를 손질하고 저장하는 일을 보조 주방 에서 진행하니 주방을 어지를 이유가 없다. 2층 안방 침실은 드레스룸, 욕실, 화장대를 순차적으로 배치한 후 가 장 안쪽에 침대를 두어 침실에서는 안온히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이처럼 아파트의 편리한 동선을 주택 곳곳에 적용한 건축가는 한발 더 나아가 과연 아파트에서는 할 수 없는 것 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집 바로 앞 주차, 주말 바비큐 파티, 텃밭 가꾸기 등 주택에서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땅과 하늘을 갖고 사는 것 아닐까. “아파트는 집이 층과 층 사이에 끼어 있으니 하늘 을 쳐다보는 게 쉽지 않지만, 주택은 천창을 통해 하늘과 햇빛을 집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지요. 계단 위로 천창 을 내니 공간이 더욱 풍부해졌어요.” 이 집의 전망은 서북향이 백미다. 가족실에서 창 너머로 보이는 서북향 전 망을 살리기 위해 큐브 형태의 글라스로 마감했는데, 블랙 반사 유리로 바깥에서는 안쪽이 잘 들여다보이지 않 는다. 반면 반사 유리를 통해 산세와 나무가 비치니 집이 자연 풍경까지 담는 셈.


1 1층과 2층 사이에 마련한 세탁실은 친구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공간. 
2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도 이 집에서는 예외일 듯싶다. 침대와 화장대, 소파와 식탁, 책장, 아이 방 가구는 그대로 사용하고 문짝과 책장은 자작나무 합판을 이용해 현장에서 제작했다. 화장대와 서랍장 크기에 맞춰 벽면을 매입해 수납공간을 마련한 점이 돋보인다. 
3 시스템 가구로 수납공간을 충분히 마련한 주방. 뒤편으로 보조 주방, 현관으로 연결한 동선이 편리하다.


단순하되, 기본에 충실할 것
거실이나 주방의 천장을 2층까지 뚫는 공간감 연출은 단독주택을 지을 때 누구나 가지는 로망이지만 가급적 절제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이형진 씨. 그는 주택을 설계할 때 꼭 계단 앞을 막는다. 1층 거실 앞에도 슬라이딩 도어가 있는데, 겨울철에는 벽난로를 지피고 문을 닫으면 열이 새나가지 않아 난방 효과가 확실하다. 이 집은 지열이나 태양열 난방 시공을 하지 않았는데도 겨울철 도시 가스비가 30만 원이 채 나오지 않는단다. 생각보다 활용도가 낮은 옥상 대신 아이 방과 연결해 덱을 설치한 것도 특징. 대신 남편의 취미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하 공간을 마련했다. 지하 공간의 베란다는 선큰으로 계획해 식물을 키울 수 있으며, 장마철 물 피해를 입지 않을 뿐 아니라 방 역시 결로나 습기가 생기지 않는다. 결로와 습기는 평소 환기를 많이 하면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고. “조경은 처음부터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았어요. 생활하면서 계속 가꿔나갈 수 있으니까요.” 아파트에서 내내 살다 보니 꼭 흙을 밟아보고 싶었다는 정은정 씨는 마당 한쪽에 마련한 텃밭에 거름 주고 토마토, 배추, 상추 등을 심어 이웃과 나눠 먹는다. 아직도 주택에 산다고 하면 ‘전원주택’이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단독주택이란 그저 낭만적으로 마음속에 품고 있는 ‘꿈’일 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더 이상 동경하지만 말고 현실로 옮겨보라. 아파트 관리비보다 적은 비용으로 훨씬 넓은 집과 마당을 만끽하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살 수 있다면? 같은 돈으로 얻는 것은 많은데 잃는 것은 없으니 남는 장사 아닌가.

건축가에게 묻다
좋은 주택을 짓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택은 살 부대끼며 사는 공간이다 보니 보기 좋고 멋있다는 이유로 고집하던 디자인이 때론 단점으로 돌아온다. 통창, 2층까지 오픈한 보이드 설계 등이 그 예다. 또 방향보다 중요한 것이 환기. 문을 제외하고 각각 다른 면에 두 개 이상의 창문을 두는 것이 환기의 기본 조건. 이때 창문 크기보다는 개수가 중요하다.
지하실, 꼭 필요할까?
지하실은 옥상과 달리 단열, 난방이 모두 필요해 건축비가 상당 부분 추가된다. 따라서 목적 없이 만드는 것은 반대. 서재, 운동실, A/V룸, 밴드 연습실 등 취미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 분명하다면 추천한다. 쾌적한 지하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면 채광과 통풍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 이 집은 선큰 가든으로 채광과 환기, 배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했다.

건축가 이형진 씨는…
중앙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범 건축, M.A.R.U.에서 실무를 익혔다. 고양 국제 전시 컨벤션센터 ‘턴기’의 디자인 총괄, 서귀포 칼 호텔 리모델링, 아모레퍼시픽 대전·부산 사옥 신축 설계를 맡았다. 2007년 건축사무소 노드플랜NODE PLAN을 설립, 동백 지구와 판교 단독주택 신축 설계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디자인 김홍숙 기자 작품 이미지 제공 민성식,

구성과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