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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is power] 건축가 시게루 반의 가치 있는 도전 종이집, 세계를 누비다
종이 기둥을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 만든 이 기묘한 건축물은 ‘종이 건축가’로 유명한 시게루 반의 작품이다. 지난 4월, 밀라노 디자인 위크 때 그가 에르메스 전시를 위해 세운 파빌리온은 현재 밀라노를 넘어 세계 곳곳을 여행 중이다.


전시장이 지닌 권위를 빼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편안함을 채워 넣은 ‘에르메스 메종 파빌리온’.


오늘날 건축물은 ‘영속성’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1백 년 전 유럽에 세운 공장들이 50년 전부터 일본, 한국, 중국 등으로 옮겨갔고 다시 베트남, 라오스 등으로 이동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미래의 건축은 좀 더 유연하고 일시적일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건축 또한 이동 가능한 오브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건축가 시게루 반Shigeru Ban이다. 그가 지난 2006년 디자인 하우스 30주년을 기념하여 올림픽공원에 세운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은 조합 후 해체되었고, 알바 알토의 가구 브랜드 아르텍Artek 파빌리온은 소더비 경매를 통해 판매되었는데, 이는 건물이 이동 가능할 뿐 아니라 예술품처럼 소유할 수 있는 오브제라는 사실을 증명한 예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선보인 에르메스 메종 파빌리온 역시 움직이는 건축물로 현재 세계 곳곳을 순회 전시 중이다.

트렌드를 따르지 않는 모더니스트, 시게루 반

‘에르메스 메종 파빌리온’은 에르메스가 2011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첫선을 보이는 가구와 카펫, 벽지 등을 전시하기 위해 꾸민 쇼룸으로 엔조 마리, 안토니오 치테리오가 실내디자인에 참여했다.


시게루 반은 유행을 따르지 않는 건축가로 유명하다.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하기 위한 재료와 공법을 고집하는데, 특히 종이와 나무 그리고 재활용에 관한 철학이 남다르다. 밀라노 팔레르모 거리에 세운 에르메스 메종 파빌리온 역시 종이가 주재료다. 촘촘히 연결된 종이 기둥과 한지처럼 반투명한 하얀 천은 씨실과 날실처럼 직조되어 벽과 지붕을 이루는데, 이는 일본의 대나무 주택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 속이 빈 대나무를 둥근 종이 기둥으로 대체한 셈이다. 그는 파빌리온을 짓기 위해 무려 6천2백80여 개의 나무쐐기와 1782m의 종이 기둥을 밀라노로 운반해왔다.

“전시 기간이 끝나면 에르메스 메종 파빌리온은 그 목적성이 없어지죠. 이처럼 건축물의 일회성을 고려할 때 해체가 가능한 것이어야 하고 운반하기 쉬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가볍고 90% 이상 재생이 가능한 종이를 사용했지요. 밀라노 전시가 끝나고 지금은 파리를 비롯해 런던, 뉴욕 등 세계 곳곳을 유람하고 있습니다.”

시게루 반이 사용하는 종이 기둥은 40여 일간 수백 개의 종이를 붙여 내구성을 높이고 방수 처리 공정을 거쳐 만든 것이다. 그는 다양한 지름의 원통을 사용해 더욱 리듬감 있는 건축물을 완성한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운송비도 절감할 수 있었다. 큰 원통 안에 작은 원통을 넣어 운반했기 때문. 종이 기둥과 하얀 천을 성글게 엮은 파빌리온은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지는데, 이는 공간이 편안하게 다가오는 요건이 된다. 누구나 쇼케이스에 쉽게 접근하고 마음의 장벽 없이 쇼룸을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열린 공간으로 완성한 것.

에르메스의 상징으로 채운 파빌리온
이 열린 종이 집의 백미는 공간 안에 진짜 가구를 배치했다는 점이다. 파빌리온 오른쪽의 작은 문으로 들어서면 에르메스를 상징하는 말 그림 아래로 티 테이블과 소파 세트가 나오는데, 고전적인 장 미셸 프랑크 가구와 종이 기둥의 직선미가 조화를 이룬다. 미로처럼 이어진 복도를 따라 이동하면 안토니오 치테리오의 리빙룸을 지나 엔조 마리의 가구를 만날 수 있다. 특히 부드러운 송아지 가죽으로 다리를 감싼 엔조마리의 대리석 테이블은 특히 시게루 반이 좋아하는 제품이다.

참신한 소재와 새로운 건축 구조 개발에 중점을 둔 시게루 반. 그는 미국에서 학위를 받았지만 미국이 아닌 도쿄에서 일을 시작한것이 값진 배움의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에는 막연히 멋진 건축물을 동경했지만, 자연재해에 맥없이 무너지는 건축물을본 뒤 재해 지역에 교회, 임시 주택을 설계하기 시작한 것(1995년에는 일본 고베 지진 발생 후에 교회를 지었고, 1999년에는 르완다 난민 캠프를 마련했다).

(오른쪽) 종이로 집을 지어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축가 시게루 반.


1 공간 디자인은 전체적 비율과 선의 대비에 중점을 두었다. 
2 시게루 반이 특히 좋아한다는 엔조 마리의 체어.


제주 나인브릿지 완공 후 두바이 모래집 프로젝트까지 도쿄와 파리, 뉴욕 사무실을 오가며 비행기나 기차 안, 잠자리에서조차 작업을 하는 그이지만 평소 후배들에게 ‘여행’을 많이 다니라고 조언한다. 게다가 세계 곳곳을 유람하는 ‘에르메스 메종 파빌리온’ 설계 후 실내까지 디자인하고 싶다는 욕심을 내비쳤으니 이제 인테리어 디자이너들도 긴장해야 할 듯싶다.

자료 협조 에르메스 코리아(02-3015-3246)

글 이지현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