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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 만난 한∙중∙일 다실
지난 12월 14일부터 5일 동안 열린 ‘2011서울디자인페스티벌’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특별전 <한·중·일 다실> 전시를 위해 세 명의 작가가 모였다. 한국의 설치미술가 홍동희와 중국의 칠현금 연주가이자 공간 디자이너 왕펑 그리고 일본의 건축가 나카무라 류지가 철학적이고도 예술적인 다실을 제안한다.

[韓]홍동희, 자연을 닮은 다실

‘똑…똑…’ 대나무 통 안에 고인 물줄기가 2초에 한 방울씩 바위를 두드린다. 작지만 울림 있는 소리가 고요한 공간을 깨우고 시선을 모은다. 한국의 홍동희 작가와 중국의 왕펑 작가 그리고 일본의 건축가 나카무라 류지가 설계한 세 개의 다실이 만나는 곳에 이 바위가 놓여 있다. “이번 전시의 테마는 낙수落水입니다. 물방울이 떨어져 바위를 파고 우물을 만드는 자연의 시간을 표현했죠.” <한·중·일 다실> 전시의 전체 아트 디렉팅과 한국의 다실을 맡은 홍동희 작가는 전시 테마와 소재를 모두 자연에서 찾았다. 그의 다실은 한옥 정원의 풍경과도 유사하다. 배흘림기둥이 근사한 정자 뒤로 마른 나뭇가지가 켜켜이 쌓여 있다. “배흘림기둥과 자잘한 나뭇가지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그 안에는 강한 심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차 한 모금에도 많은 것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작업실을 찾는 사람들과 차를 나눈다는 그는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물 한잔 건네던 우리네 정이 한국의 차 문화라 이야기한다. “다실은 차 한 모금을 통해 만남과 교감이 이뤄지는 곳이죠. 공간의 근본적 의미를 보여주면서 차 한잔이 주는 여유를 환기시켜주고 싶어요.”

홍동희 H 디자인 대표이자 설치미술가. 스테이트타워 남산의 로비에 검은 흙으로 지층을 표현한 ‘시간의 결’이라는 월 아트를 비롯해 소재에 집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中]왕펑, 고금 문화가 깃든 다실

고금古琴 예술가 왕펑.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칠현금 제작과 연주를 맡아 화제를 모은 그는 고금 문화에 조예가 깊은 칠현금 제작 무형문화재이자 공간 디자이너다. 그는 중국의 다실을 설계했는데, 칠현금을 올려둔 나무 탁자가 눈길을 끈다. “고금은 옛 선비나 문인이 다루던 현악기입니다. 악기는 단순히 소리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유가 사상을 담고 있죠. ‘정음正音’이라 하는 고금의 소리는 마음을 다스립니다. 즉, 마음을 다잡는 도구인 셈이죠. 마음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차 문화와 고금 문화가 어우러진 다실을 꾸몄습니다.” 칠현금이 놓인 탁자 옆에는 붓이 놓인 또 다른 탁자가 있다. “중국 전통문화와 예술 문화를 접목해 당대 미학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연출했습니다.” 그는 한 발짝 더 나아가 ‘4대 기예’라 불리는 고금, 바둑, 서예, 그림을 다실 공간에 들였다. “고금 문화를 더욱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싶어 전통문화인 4대 기예를 곁들였죠. 차 문화에는 동방 문화가 함께 녹아 있습니다. 다실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다실에는 3천 년을 거슬러온 중국의 뿌리 깊은 문화가 숨 쉬고 있다.

왕펑 삼양 음악학원에서 악기 공예와 고금 제작을 전공한 왕펑은 칠현금 제작자이자 연주가다. 칠현금 제작 무형문화재인 그는 현재 공간디자인과 가구디자인까지 영역을 넓혀 활동 중이다.


[日]나카무라 류지, 밖으로 나온 다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겹겹이 교차된 가느다란 알루미늄 기둥. 바로 그 위, 네 개의 기둥을 얹은 얇고 하얀 그물망 소재 천이 전시장의 조명을 그대로 투영한다. 건축가 나카무라 류지가 꾸민 일본의 다실은 앉아서 차를 마실 테이블도 의자도 없다. 실내가 아닌 실외 공간을 위한 곳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다실을 제안받고 먼저 떠오른 것은 일본 다도의 시조인 센노 리큐(千利休)였습니다. 그는 마당을 깨끗이 쓸고 다시 낙엽을 조금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연출한 듯, 연출하지 않은 듯’ 한 것이 그의 방식이었지요. 저도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주목했습니다.” 그의 다실에 들어서니 숲 속, 나무 사이에 있는 듯하다. “이 공간에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앉아도 되고 서도 되고, 누워도 되죠. 열린 공간에서 자연을 느끼며 차를 즐기면 됩니다.” 기둥과 천만으로 설치한 것도 다실 안에 자연을 담기 위해서다. 그의 다실은 빛과 바람이 모두 통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자연이 그대로 담긴 쉼터다. “다실은 차 한잔을 마시며 휴식과 이야기를 나누는 곳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장소인 만큼 공간 스스로도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카무라 류지 아오키 준의 건축 설계 사무소를 거쳐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건축 설계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2009 JDC 디자인 어워드에서 대상을 받는 등 주목받는 건축가다.


<행복>이 고른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속 보물
올해로 10회를 맞은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은 말 그대로 ‘디자인 잔치’였다. 스페인 그래픽 디자이너 하비에르 마리스칼부터 기발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신인 디자이너들의 작품까지 수백 명의 디자이너와 아티스트, 수천 개의 참여 작품 중 <행복>의 시선으로 찾아낸 보물을 소개한다.

1 아트 오브제가 된 책
하나의 주제로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디자이너스 랩Designer’s LAB>. 올해는 ‘책’을 주제로 아티스트 35인의 작품이 전시됐다. 캘리그래퍼 강병인 작가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시인 류시화의 시구를 종이와 활자가 아닌 금속 소재에 담아 시가 지닌 감정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설치미술 ‘책과 노닐다’를 선보인 안윤모 작가는 부엉이 나라로 여행을 떠난 듯 상상의 나래를 담아냈다. 책이 만들어준 그늘 아래에서 부엉이와 노닐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은 동화책처럼 순수한 동심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디자인하우스의 아트 디렉터 7인이 작업한 ‘책 베개(Book Pillow)’는 베개에 그들의 책 ‘잡지’에 쓴 텍스트를 자장가처럼 담았다

2 브랜드, 디자이너와 만나다
디자이너와 브랜드의 협업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트렌드 나우Trend Now>. 각 브랜드가 제안하고 싶은 이야기를 디자이너들과 함께 풀어냈다. 네이버와 20인의 그래픽 아티스트는 ‘환경’을 주제로 한 그래픽 작품으로 환경 캠페인 메시지를 전했다. 미디어 에이전시 펜타 브리드와 함께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 존을 설치한 신한카드는 웹캠으로 전송된 관객의 이미지를 미세한 입자인 파티클로 구현했다. 여성용품 브랜드 예지미인은 ‘여성은 자유다’라는 주제로 패션 디자이너 장광효 씨, 공간 디자이너 박재우 씨와 함께 작품을 선보였다. 디스트릭트는 디자이너들과 기술에 아트를 더해 상상력을 자극하는 4D 라이브 파크를 소개해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3 스페인 디자인의 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스코트 ‘코비’를 디자인한 하비에르 마리스칼Javier Mariscal이 현재 스페인 디자인을 이끄는 대표 디자이너들과 함께 내한했다. <스페인 디자인 특별전>으로 기획된 글로벌 디자이너 부스에서는 그래픽, 가구 디자인, 조소 등 영역을 넘나들며 활약하는 하비에르 마리스칼의 조명등과 의자는 물론 아이디어 스케치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스물한 명의 가구ㆍ제품 디자이너로 이뤄진 스페인 디자인 그룹 브라보스Bravos와 그래픽디자인을 선보이는 바사바 스튜디오Vasava Studio, 세 명의 그래픽 아티스트 그룹 바다붐Badabum 등 실험 정신을 즐기는 스페인 디자이너들의 기발한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4 신예 디자이너들의 아이디어 각축장
신예 디자이너와 영 디자이너 부스가 마련된 2011서울디자인페스티벌은 신인 디자이너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작품이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종이 원료가 되는 나무 질감의 노트를 선보인 테일Tale, 돌을 세공해서 연필꽂이를 만든 돌씨, 시계에 민들레 홀씨를 더해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 경일대학교 디자인학과의 작품 등 유독 자연 소재의 특징을 살린 작품이 눈에 띄었다.
신인 디자이너와 브랜드를 만날 수 있는 <디자인 솔루션Design Solution>에서도 기발한 제품이 가득했다. 송승용 작가는 조명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협탁과 사다리나 책 선반으로도 사용이 가능한 의자 등 기존 가구의 기능을 재조합해 새로운 가구를 만들어냈다. 조명기구 브랜드 필룩스Feelux와 섬유 소재의 인테리어 작품을 만드는 패브리커Fabrikr는 서로의 특징을 살려 제품을 만들었다. 겹겹이 쌓인 패브릭에 에폭시로 마감한 테이블과 조명 기구를 더했다. 패브릭 질감 사이로 새어나오는 은은한 빛이 전시장을 채웠다.

5 그림일까 사진일까
앤 컴퍼니의 대표이자 사진작가인 김용호 씨는 ‘피안彼岸’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선보였다. 불교에서 해탈을 의미하는 ‘피안’은 깨달음의 세계, 정서적으로 편안한 곳을 말한다. 김용호 작가는 진흙 속에서도 깨끗한 꽃을 피워내 ‘군자의 꽃’이라 불리는 연꽃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 피안을 표현했다. 성글게 핀 연잎이 한 폭의 수묵 담채화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글 강윤미 기자 사진 김동오, 이명수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