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란 나라의 정체성을 확립한 시기는 유방이 세운 한漢나라 때다. 당시 사용하던 글이 한문漢文이고, 그때 읊었던 시가 한시漢詩다. 한나라의 전성기는 한무제漢武帝 시대였다. 그는 절대 권력을 쥔 황제이면서도 유명한 문장을 하나 남겼는데, 그게 바로 ‘추풍사秋風辭’다. 강에다 배를 띄워놓고 신하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며 흥에 겨워 지은 매우 낭만적인 글이다. 또 인생의 화려함과 무상함을 모두 겪어본 황제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는 시詩이자 노래다. 이 ‘추풍사’ 가운데 절창이 ‘환락극혜애정다歡樂極兮哀情多’라는 대목이다. “환락이 극에 달하고 나면 슬픈 정만 많이 남는다”는 뜻이다. 황제의 신분이었으니 환락의 극치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인생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 환락의 극치 다음에는 슬픔만이 남는다고 노래하였다. 환락 다음에는 슬픔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감정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 환락의 극치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도 남는다. 권력의 극치였을까? 남녀교합男女交合의 극치였을까? 환호의 극치였을까? 돈의 극치였을까?
(왼쪽) 보한재는 차를 좋아하는 광주의 지인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차를 마시는 공간이다. 다실을 마련하고 좋은 차를 대접했더니 좋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오로지 차茶를 위한 환락의 공간
필자는 평소 한무제 ‘추풍사’를 음미할 때마다 슬픈 정이 남지 않는 기쁨이란 어떤 것이 있을까를 생각해보곤 한다. 즉 후유증이 남지 않는 즐거움은 어떤 것일까 하고 말이다.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좋은 차茶를 마시는 일이다. 보한재補閑齋는 그 이름처럼 ‘한가함을 보강해주는 집’이다. 이곳 집주인은 사업을 하는 이병학(50세) 씨다. 돈이 있어도 이를 쓸 줄 몰라서 불행한 사람도 많은데, 그는 돈이 생기는 대로 차를 구입하며 인생을 즐기고 있다.
이곳 보한재는 차를 좋아하는 광주의 지인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차를 마시는 공간이다. 살림집은 별도로 있다. 순전히 차를 마시기 위한 다실茶室인 셈이다. 필자는 광주 사람은 아니지만 인연이 되어 몇 번 이 모임에 참석하여 좋은 차를 마셔보았다. 주로 마시는 것은 중국의 보이차普茶다. 30년 이상 된 노차老茶도 등장하는데, 이러한 노차는 근래에 가격이 수십 배로 급등하는 바람에 일반인은 좀처럼 다가서기 어려운 차가 되었다. 먹는 골동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비판도 많다. ‘과연 그렇게 비싼 차를 꼭 마셔야 하느냐!’이다. 다행히 이 집주인은 찻값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에 차를 구입한 것이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차 맛을 알려줄 여유가 있다. 그는 사업해서 번 돈을 이런 식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쓰고 있었다. 보이차 마니아가 되면 딜레마에 빠진다. 고가의 차를 사 먹자니 살림의 기둥뿌리가 흔들리고, 돈 아끼려고 안 사 먹자니 사는 맛이 없어진다. 딜레마에 빠지지 않으려면 아예 처음부터 이 맛을 몰라야 한다.
보이차 중독자에게 환락의 극치는 바로 40~50년 된 오래된 보이차를 한잔 우려내어 입안에 털어넣고 음미하는 데 있다. 짙은 갈색의 액체가 목젖을 지나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내려가면서 온갖 반응을 일으킨다. 겨드랑이가 더워지면서 땀이 나기도 하고, 명치 부위가 시원해지기도 하고, 그 향이 목젖에 붙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머리의 앞이마 부분, 즉 전두엽前頭葉이 맑아지고, 먹고 나면 온몸이 개운해진다. 이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그 차는 가짜다.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몸으로 하는 수밖에 없다. 몸이 그만큼 예민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차를 1만 잔은 마셔봐야 하는 경험의 축적이 필요하다.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면 차 소믈리에의 자질을 갖추는 셈이다.
얼마 전 보한재에서 1950년대 초반에 만든 홍인紅印, 송빙호, 문혁전차文革茶, 7542를 마셔보았다. 이 가운데 천량차千兩茶의 맛도 인상적이었다. 보통 32~33kg이 나가는 무게의 천량차는 중국 후난 성의 명차다. 보한재에 보관하고 있는 천량차는 1948년산이다. 이 차가 60년 세월을 지나면서 독특하게 발효가 되었다. 찻잎 속에 누런 금가루 같은 곰팡이가 보인다. 한잔 털어넣으니 목젖부터 화해지는 기운이 느껴진다. 60년의 세월이 만든 보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귀한 차를 마시다 보니 국내에서 이런 정도의 보이차 맛을 감별하고 즐길 만한 애호가들의 얼굴이 생각난다. 같이 마셔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기경팔맥奇經八脈이 뚫려서 차 맛을 발꿈치까지 느끼는 제주도의 다광茶狂 도인을 비롯해 남인철병藍印鐵餠을 좋아하는 부산의 마니주 선생, 여주의 암자에 사는 천휴天休 스님, 대구 쌍어각雙魚閣에 계시던 연암 선생, 김포의 허우린 선생이 그런 분들이다.
(오른쪽) 다실 베란다 너머로 숲이 바로 펼쳐져 마치 대청마루에 앉아 있는 듯하다.
은은한 편백 향 맡으며 차를 마시는 호사
보한재의 차를 마시는 방은 내부 벽 둘레를 목재로 감쌌는데, 편백나무 판재를 사용하였다. 콘크리트 아파트는 딱딱하고 건조한 느낌을 준다. 이 약점을 보완할 자재가 바로 목재로, 이 중에서도 편백은 그 향이 진한 재료다. 편백은 ‘히노키’라고 해서 일본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국민수國民樹에 가깝다. 일본 료칸에 가보면 목욕탕에 있는 목간통 재료는 대부분 편백일 정도로 그 향이 독특하고 강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장성의 축령산에도 50년 된 편백 숲이 조성되어 있어 한국에서도 편백을 구할 수 있다. 편백은 향이 강한 편이라 침실에 깔아놓기에는 부담이 되지만, 거실이나 차를 마시는 차실이라면 그런대로 어울린다. 아파트 벽면이나 바닥을 편백으로 깔아놓으면 건조한 공간을 보완하는 데는 꽤 좋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소나무를 써도 좋을 듯싶다. 한국의 자생 소나무 향도 깊은 향일뿐더러, 숲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돈이 좀 들더라도 아파트에서 편백이나 소나무 판재를 사용하면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 조선시대 만석꾼들은 하인을 시켜 소나무 송진을 채취하여 방바닥에다가 두껍게 깔아놓았다. 송진 한 번 깔고, 그 위에다 솔잎 깔고, 다시 송진 깔고 하는 식으로 반복하였다. 이렇게 해놓으면 항상 방 안에 솔 향이 배어 있다. 여름에 모기도 달려들지 않고 방에 들어오면 정신이 쇄락해진다. 하지만 이런 호사는 이제 불가능해졌다.
대신 보한재 다실 바닥은 대리석을 깔아놓았다. 더운 여름에는 돌 바닥이 아주 시원한 느낌을 준다. 온난화가 되면서 겨울의 추위보다도 여름의 더위가 더 고통이다. 이때 방바닥의 돌은 청량제에 가깝다. 특히 돌은 기운을 머금고 있다. 가장 좋은 돌은 옥이고 그다음이 맥반석인데, 옥이나 맥반석은 가격이 비싸다. 가정용으로는 건축 자재로 가공되어 나온 이탈리아산 대리석이 일반적이다. 아파트는 3층 이상으로 올라가면 땅에서 올라오는 지기地氣를 아무래도 적게 받을 수밖에 없다. 중년 이전까지는 몸이 건강하므로 높은 고층에 살아도 무방하지만, 중년이 넘어서면서부터는 아무래도 몸의 기운이 약해지므로 땅의 기운을 받는 저층에 사는 것이 좋다. 저층이라고 하면 3층까지다. 부득이하게 고층에 살 경우에는 방 하나는 바닥에 돌을 깔아놓으면 그런대로 보완이 될 듯하다. 차선책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돌이다. 돌은 지자기地磁氣를 전달하거나 머금고 있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보일러가 돌아가므로 겨울에도 난방에는 지장이 없다.
1 보한재 곳곳에는 집주인 이병학 씨가 십수년간 모아온 차가 보관되어 있다. 차는 보이차에 조예가 깊은 통도사의 스님이 소개해 믿을 만하다.
2 60여 년의 세월 동안 발효를 거쳐 만든 천량차. 잘 숙성되어 마치 찻잎에 금가루가 뿌려진 듯 곰팡이가 피었다.
3 베란다의 단을 돋우고 한쪽에 목가구를 짜 넣어 아늑한 다실을 완성했다. 혼자 차를 마시기 좋은 공간.
4 다실은 방 전체를 편백나무로 감싸 마치 숲 속에 앉아 있는 듯한 평온한 느낌을 준다.
다기茶器는 어떤 것을 쓰는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남의 집에 가서 스피커를 보고, 카메라를 좋아하는 사람은 카메라 기종이 몇 년도 산인지를 본다. 다인은 차호茶壺와 찻잔을 본다. 보이차는 중국의 이싱에서 나오는 붉은 돌로 만든 자사호紫砂壺를 쓰지만, 이곳 집주인은 국내 도공이 만든 기물을 쓰고 있다. 양산 통도사 앞의 현공도예원에서 만든 작품들이다. 40대 후반의 도공인 현공은 천목天目다완을 주로 만든다. 천목은 백자가 아니다. 밤하늘의 은하수를 뿌려놓은 듯 화려한 무늬의 다완이다. 원래 중국 송대에 천목산天目山 근처에서 생산하던 물건이었지만, 중국 본토에서는 발전하지 못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사무라이 귀족 계층이 애호했다. ‘천목다완’이라고 하면 중국에는 없고 일본에서 발전한 다완을 일컫는다. 일본의 차회라고 하면 보통 천목다완을 사용해왔다. 화려한 찻잔의 대명사가 천목인 것이다. 천목 다음에 조선의 ‘이도다완’이 그 소박함과 질박함으로 일본의 귀족 계층을 사로잡았다. 화려함의 대표가 천목이라면 소박함의 대표가 이도다완이라고 할까. 음과 양을 대표한다. 찻잔도 양쪽 계통을 모두 써보면 중도의 균형을 잡는다. 화려함도 수용하고 질박함도 좋아해야만 사람이 편벽되지 않는다.
차를 오랫동안 잘 숙성시키려면 일정 습도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 집주인 이병학 씨는 다용도실 뿐 아니라 복도 한켠, 방문 앞, 서재 등에도 차를 빼곡히 쌓아두고 평소에도 꼼꼼하게 관리한다. 서재 책장 양옆에 일렬로 차를 쌓아두니 그 자체로 장식 효과가 있다.
인생 희로애락이 모두 인연이다
사람 사는 것이 알고 보니 모두 인연因緣이다. 복도 사람에게서 오고 재앙도 사람에게서 온다. 보증 잘못 서면 망신당하는 것과 같이 좋은 물건이나 돈 그리고 기쁨도 사람에게서 온다. 이 집주인은 보한재와 같은 다실을 마련해놓았더니 좋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더란다. 향기 나는 차를 마시는데 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오겠는가. 귀한 차를 마시러 안목 있는 사람이 멀리서도 찾아온다. 안목 있는 사람이 오면 대화가 풍성해지고 지혜가 샘솟는다. 지혜 있고 복 있는 사람이 드나들면 또한 복혜福慧가 구족具足한 사람이 연달아 연결되기 마련이다. 집주인의 차茶 선생이 한 분 있었으니, 그 선생은 통도사의 스님이었다. 통도사는 보이차에 조예가 깊은 스님이 여러분 계시는 절이다. 한국 보이차의 메카인 부산과 인접해 있어, 부산에 좋은 차가 들어오면 통도사 스님들에게도 연결되기 마련이다. 스님들이야 처자식이 없는 몸이니 차에 관심을 가질 여건이 충분하다. 그런 고로 통도사는 차에 정통한 스님이 많다.
조선시대에는 초의선사를 배출한 전남의 대흥사大興寺나 다산茶山이 유배 생활을 한 백련사白蓮寺가 차의 중심 사찰이었다고 하면, 21세기에는 영남의 통도사나 범어사가 차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한재 주인은 안목 높은 통도사 스님의 인연으로 좋은 차를 장사꾼에게 속지 않고 구입할 수 있었다. 보이차는 하도 가짜가 많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보니 정확한 감식력을 가진 전문가의 안내가 필요한데, 이 감식력을 가진 사람과 만나는 것도 인연 복에 해당한다.
(오른쪽) 보한재에서는 경남 양산 현공도예원에서 만든 다완을 사용한다. 마치 밤하늘에 은하수를 뿌려놓은 듯 화려한 문양이 특징이다.
돈이 많으면 뭐 하나. 바쁘고 헐떡거리면서 살 뿐이다. 한국에서 자산이 3백억 원 이상 있으면 그 돈은 자기 돈이 아니다. ‘사이버 머니’나 다름없다. 장부상 숫자로만 있는 돈이지 자기가 마음대로 인심 쓰면서 쓸 수 없다. 오히려 돈으로 인한 온갖 골치 아픈 문제만 몇 보따리 둘러메고 살아야 할 뿐이다. 1천억 원 이상 있으면 상황은 어떤가. 한국에서 1천억 이상을 벌어서 유지하려면 보통 골치 아픈 일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도 상처를 많이 받고, 자신도 모르게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이 상처는 누적된다. 에너지가 있을 때는 이 상처를 감당할 수 있지만, 50세가 넘어 배터리가 약해지다 보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린다. 그러다 보니 1천억 이상 가진 사람 중의 50%는 밤에 수면제를 먹는다고 한다. 밤에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보한재 주인은 복도 있고 결과적으로 지혜도 있다. 귀한 보이차를 손에 넣는 것도 인연이고, 그 차를 주변 사람들과 나눠 먹는 것도 복을 쌓는 일이다. 힌두교에서는 사람이 50세가 되면 임서기林棲期에 들어간다고 한다. 집을 떠나 동네 뒷산에다 허름한 집을 하나 지어놓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무등산 자락의 보한재는 21세기형 ‘임서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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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