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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백가기행]통영 고은재顧恩齋 미륵산 자락에 음악회 열린 날
통영 미륵도에 자리 잡은 고은재는 김병헌・김은하 씨 부부가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기 위해 지은 효심 가득한 집입니다. 통영 시 내의 알 만한 사람들이 이틀이 멀다하고 찾는 마을 살롱과 같은 곳이지요. 아내는 맛있는 음식으로, 남편은 감미로운 기타 선율로 사람을 불러 모읍니다. 한여름 태풍도 무더운 바닷바람도 빗겨간 8월의 어느 토요일 저녁, 미륵산 자락 너머로 추억의 기타 연주와 가야금 선율이 울려 퍼집니다.


경남 통영시 산양읍 남평리, 조그만 화산이 폭발하여 생긴 분지에 터를 잡은 마을. 그 초입에 자리한 고은재는 마치 마을이 폭 감싸고 있는 형태다. 지난 8월, 김병헌・김은하 부부는 음악회를 마련했다. 통영 사람뿐 아니라 전국에서 모인 1백 여 명의 손님이 맛깔난 음식에, 구수한 가락에, 솔솔 불어오는 해풍에 흠뻑 취했다.


옛사람들이 말하는 오복五福 가운데 하나가 고종명考終命이다. 고종명은 웰 다잉well dying으로, 죽을 때 잘 죽는 복을 가리킨다. 잘 죽는다는 것은 이승에 대한 애착이나, 섭섭함이나, 미련이나, 원한 없이 가는 것을 뜻한다. 천상병 시인의 말마따나 “소풍 와서 잘 놀다 간다”고 하며 죽어야 고종명이다. 원한을 품고 죽으면 잘 못죽는 것이다. 갑자기 사고로 죽으면 미처 감정을 정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도는 수가 있다. 죽을 때 잘 못 죽으면 그 한恨이 살아 있는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후손들 하는 일에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 죽은 조상과 살아 있는 자손은 영계靈界를 통해 거미줄 같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본인이 죽었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게 아니라, 그 후유증이 이승에 살고 있는 관련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므로 고종명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일본에서는 혼자 죽는 고독사孤獨死가 급증하고 있다. 옆에 아무도 없이 혼자 쓸쓸히 삶을 마감하는 것도 잘 못 죽는 죽음에 해당한다. 이건 고종명이 아니다. 눈감을 때 옆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 죽어가는 사람을 안심시켜주고 위로해주어야 죽는 사람도 쉽게 먼 길을 떠날 수 있다. 현대인은 ‘고종명’이 아닌 ‘고독사’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것인가? 핵가족의 비극이고, 혼자 사는 1인 가정의 비극인 것인가. 그러다 보니 잊혀가는 대가족 제도가 그리워진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가 같이 사는 대가족 제도에서는 최소한 고독사는 없을 것 아닌가. 서로 지지고 볶더라도 어울려 같이 사는 삶이 나은 거 아닌가? 그렇다면 요즘 어디에 대가족이 있는가? 통영의 고은재顧恩齋는 ‘부모님의 은혜를 되돌아본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시어머니뿐만 아니라 혼자 되신 친정어머니까지 함께 살려고 지은 집이 고은재이다. 애초부터 양가 어머니를 같이 모시고 살려고 지은 집이라 더 의미가 있다.


윗마을에서 내려다본 집의 뒷모습. 사돈지간인 두 어머니가 지내실 독립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거실을 중심으로 양 날개 공간을 강조했다.

인생 희락喜樂을 위한 소박한 무대
양가 어머니를 위한 독립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이 집은 아래층 거실을 중심으로 양 날개 쪽 공간을 강조했다. 양쪽 날개에 방을 들이고 욕실과 화장실 그리고 드레스룸을 각각 만들었다. 좌청룡 날개 방에는 시어머니가 머무르고, 우백호 날개 방에는 친정어머니가 거처한다. 본인들 부부는 2층에서 생활한다. 세 군데 구역이 모두 독립되어 있는 셈이다. 양가 어머니가 거처하는 양쪽 날개방에는 각각 낮은 매입식 욕조와 샤워실을 갖춘 화장실을 설치했다.

나이 들면 사람이 그립다. 사람이 오고 가야 좋은 집이다. 고은재는 통영 시내의 알 만한 사람들이 자주 놀러 오고 들락거리는 살롱 역할을 한다. 현관문 옆에 목조로 된 덱을 장착해 임시 무대로 활용하기도 한다. 인근의 지인들을 초대해 간단한 음악회도 여는 공간이다. 마침 필자가 두 번째 방문한 날에 음악회가 열렸다. 기타리스트와 가객歌客이 무대에 나와 음악과 노래를 부른다. 사람 냄새가 난다. 살면서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겪지만 요즘 한국 사람의 삶은 노怒와 애哀만 있고, 희喜와 낙樂이 없다. 분노와 슬픔만 있고 기쁨과 즐거움은 없다. 이게 사는 것인가! 노와 애는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온다. 제발 오지 말라고 해도 온다. 그러나 희와 낙은 노력해서 오도록 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희락은 오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오도록 노력해야 한다. 삶에 이 희락喜樂이 있어야만 노애怒哀를 상쇄할 수 있다. 상쇄하지 못하면 병들기 마련이다. 희락은 먹고 노는 것으로 노는 것도 내공이 있어야 논다.

노는 데는 역시 음악이다. 중년을 달래주는 악기는 필자가 보기에 첫째 색소폰이고, 둘째 기타, 셋째 대금이다. 색소폰 소리를 듣다 보면 가슴 깊은 곳에 뚫려 있는 구멍이 메워지는 느낌이다. ‘해놓은 것 아무것도 없는데 인생 가버렸구나’ 하는 한탄을 위로해주는 데는 색소폰 소리가 좋다. 그다음 기타 소리는 경쾌함을 준다. 어차피 흘러간 인생을 지금와서 돌이킬 수도 없다. 현재를 즐기자. 기타 소리는 명랑과 긍정을 주며, 대금 소리는 평화를 준다. 이 세 가지 악기 소리를 자주 들어야만 건강을 지킬 수 있다. 고은재는 이 악기 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도록 애당초 마당에다 공연 무대용 덱을 만들어놓았다. 주인 부부의 탁월한 선택이다.

치과 의사인 남편(김병헌)은 기타로 사람을 부르고, 아내(김은하)는 요리로 사람을 부른다. 부창부수夫唱婦隨는 이럴 때 하는 말이다. 집 안에 사람을 불러들이는 데는 남편보다 아내의 역할이 더 크다. 이 집 안주인인 김은하 씨의 사주팔자를 보니 자子, 오午, 묘卯, 유酉가 모두 들어 있다. 이게 들어 있으면 ‘왕비 팔자’라고 본다. 사람을 불러들이는 매력이 있다. 즉, 포용력이 있다는 말이다. 그 포용력은 요리 솜씨로 나타난다. 궁중 요리도 배우고 떡도 배우고 여기저기 요리 잘한다는 명인이 있으면 달려가서 그 맛을 배우는 데도 열심이다. 요리 잘하는 사람의 공통점이 바로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음식을 먹이고 싶어 하는 기질이다. “소금 먹은 사람이 물을 켜기 마련이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먹을 것이 있어야 그 집을 찾는 법이다. 먹이는거 좋아하는 집안이 망했다는 소릴 들어본 적은 없다.


1 1층 거실 한켠에 마련한 다실.
2 가족 사진을 찍기 위해 다섯 식구가 연꽃밭에 모두 모였다.

3 부모님 방에는 건강을 위해 습도 조절을 하는 친환경 아트월을 시공했다.
4 지붕 사이 공간을 노천탕으로 활용한다.
(아래) 온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찜질방.


중정, 다실, 온돌방, 덱까지
고은재는 대지 1천5백 평이고, 건평은 1층이 68평, 2층이 24평이다. 시골이라 땅값이 싸서 넓게 터를 잡았다. 1층에 방이 네 개고 2층에도 방이 네 개다. 10인 가족 이상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고은재는 필자가 좋아하는 다실茶室과 온돌방(찜질방)이 갖춰져 있다. 거실 한쪽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다구 세트가 놓여 있다. 뒤쪽으로는 장작을 때 온돌을 가열하는 찜질방이다. 황토로 벽을 둘렀다. 노인들을 모신다고 생각해서 지은 방이지만, 이 집을 찾는 손님들에게도 더없이 휴식을 주는 특별한 공간이다. 한국 사람은 뜨거운 온돌로 등을 지져야 쉬는 맛이 난다.

고은재는 위치도 특별하다. 주변이 조그만 분지로 구성된 지형이다. 집 입구에는 연꽃이 활짝 피었다. 온통 연꽃밭이다. 그 자연이 주는 아늑함은 뭐라 설명하기 힘든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작고 아담한 분지라 이 일대 자체가 자연 정원 같다. 이곳을 ‘야소골’이라고 부르는데, 옛날에 숯을 굽던 곳이라고도 하고, 쇠를 단련하던 대장간이 있던 곳이라고도 전해진다. 그만큼 외부와 격리된 느낌을 주는 공간이다. 이 야소골은 ‘미륵도’ 라는 섬에 있다. 미륵도는 섬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섬이 아니라 육지가 되었다. 통영시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섬으로 있었던 지형이라 육지와는 왠지 다른 섬 특유의 한가함이 묻어난다. 이 야소골을 둘러싼 분지형 산세는 미륵산彌勒山의 품 안에 해당한다. 집 뒤의 뒷산이 미륵산인 것이다. 고은재 뒤를 보면 미륵산의 바위 봉우리 세 군데가 포진하고 있다. 봉우리 끝이 바위로 드러난 암봉岩峰은 기가 나온다고 봐야 한다. 이 암봉이 지나치게 크면 살기殺氣로, 적당하면 좋은 에너지로 작용한다. 세 군데의 암봉은 적당히 노출되어 있다. 여기에서 적당한 에너지가 방사되어 고은재로 집중되는 것 같다. 이 미륵산은 통영에서 볼 때 정면에 보이는 안산案山에 해당한다. 200m가 채 못 되는 여황산艅山이 통영의 주산이다. 그런데 주산인 여황산은 객산(안산)인 미륵산보다 낮다. 그래서 풍수가 사이에서 통영에는 원래 토박이보다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이 더 잘된다는 말이 회자하고 있다.

통영은 윤이상, 박경리, 유치환, 김춘수 등 많은 예술가를 배출한 예향이다. 왜 이렇게 인물이 많이 나왔는가 살펴보니 한산도 쪽에 삼각형 모양의 문필봉이 세 개쯤 보인다. 통영 시내에서 보면 한산도 봉우리들이 문필봉으로 보이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요인도 물론 있겠지만, 아마도 이 문필봉의 기운을 받아 통영에 인물이 많이 나온 듯싶다.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는 풍수 사상에 세뇌된 필자 같은 사람만이 고집하는 인물관이다.


1 주변에는 소나무를 비롯한 각종 나무들이 우거진 청산이다. 정원에 심은 꽃나무와 채소만 관리하는 일도 아침 한나절이 소요되어 적당한 운동이 된다고.
2 기타 연주와 함께 노래 솜씨를 뽐내는 김병헌 씨.


바다가 보이지 않아야 명당 아내 입장에서는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정맹희 여사), 남편 입장에서는 어머니(박종업 여사)와 장모님이 같이 살면 불편한 점이 많을 것인가, 좋은 점이 많을 것인가. 결론은 득이 많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상대방의 부모님께 잘할 수밖에 없다. 한쪽이 못하면 다른 쪽도 못한다. 양쪽 사돈도 서로 의지한다. 한쪽 노인이 몸이 불편하면 사돈이 같이 부축도 해주고 병원도 같이 가고 말동무도 해준다. 더군다나 이 집은 주변이 온통 소나무와 나무들이 우거진 청산인데다 집의 정원도 넓다. 양가 사돈은 같이 꽃나무를 돌본다. 소나무, 배롱나무, 주목, 목련, 자귀나무, 산수유, 명자나무, 카나리아단풍, 수양벚꽃, 작약, 목단, 장미가 있다. 봄에는 패랭이꽃이 피고 그다음에는 붓꽃이 피고, 그다음에는 주홍색의 애기범부채가 피는 식이다. 수국도 피고, 함박꽃도 피고, 황사매 (히페리쿰)도 피고, 삼색버드나무, 꽃무릇도 핀다. 한여름에는 연못에 연꽃도 핀다.

필자가 생각하는 집의 이상적 요건으로 중정, 다실, 온돌방을 꼽은 적이 있는데, 이 집에는 굳이 중정이 필요 없다. 중정은 콘크리트가 밀집한 도시에서 필요한 정원이지, 이처럼 온통 푸른 자연 속에 파묻혀 있는 집에서는 필요 없다. 집 주위가 모두 꽃으로 둘러싸인 정원 아닌가. 게다가 무대용 덱까지 장착되어 있는 집이다. 번뇌를 잊으려면 동네 음악회용 무대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고은재에서 보고 배웠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서는 어떤 곳이 명당인가 하고 묻는다면, “바다가 안보이는 곳이 명당이다”라고 대답하겠다. 야소골이 바로 바다가 안 보이는 명당이다. 섬은 바닷속에 있다. 그러므로 바닷물은 귀한 것이 아니다. 물이 너무 많으니까 바닷물이 없는 곳이 상대적으로 귀하다. 분지인 야소골은 바닷바람이 직접적으로 내리치는 곳이 아니다. 분지가 해풍을 어느 정도 걸러준다. 한 번 산으로 걸러진 해풍을 코로 맡는다는 것은 즐거움이다. 해풍을 들이마시는 쾌감이 있다. 야소골에 살고 있는 집들이 대략 마흔 가구 가까이 되는데, 집에서 나와 해풍을 들이켜고 나서 이 동네 집들을 한 바퀴 둘러보면 사는 재미가 무럭무럭 솟아난다. 행복은 이런 것이다. 어른들 모시고 살면서 동네 한 바퀴 도는 데 삶의 행복이 있다. 최소한 일본의 고독사는 면해야 하지 않겠는가!

동양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청운 靑雲 조용헌 趙龍憲 선생은 ‘백가기행’을 통해 가내구원 家內救援을 이야기합니다. 위로와 휴식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집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행복>과 함께 각양각색의 집을 돌아보며 그가 찾아낸 가내구원의 공간은 다실, 구들장, 중정이라 합니다. 그중에서도 현대인이 꼭 갖추어야 할 공간으로 다실을 주목합니다. 저서로는 <5백 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의 고수 기행> <그림과 함께 보는 조용헌의 담화> 그리고 <행복>에 연재되었던 백가기행 칼럼을 엮어 출간한 <조용헌의 백가기행 白家紀行> 등이 있습니다.
글 조용헌 사진 김동오 기자 담당 이지현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