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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지은 집]홍성용 씨가 설계한 서교동 주택 도심 속 작은 땅, 보통 사람의 집 짓기
서교동 골목길에 있는 일본의 콤팩트 하우스를 닮은 매끈한 하얀 집이 눈길을 끈다. 이곳은 부부 컨설턴트 이강락·김현미 씨 가족이 일과 생활을 함께 영위해나가는 곳. 건축가 홍성용 씨는 123㎡(44평)의 작은 땅에 건축주가 원하는 기능을 모두 담아낸 것은 물론 여유와 스타일까지 더했다. 내 집 짓고 살고 싶은 ‘보통 사람들’에게 소형 주택 짓기의 표본을 보여주는 서교동 주택을 지금부터 꼼꼼히 들여다본다.

예로부터 집은 터가 중요했다. 한번 집 짓고 살면 좀처럼 이사를 다니지 않았다. 나무가 뿌리내리듯 집도 그 터에 뿌리를 내린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요즘은 사정이 좀 다르다. 아파트와 주상복합이 주거 환경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크게 다를 것 없는 구조에 평수를 조금 넓혀 가는 정도일 테니 집을 옮기는 것이 번거로울 것도 없다. 집에 대한 애착이 부족해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 게다가 도시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흙 밟고 살 수 있는 마당 딸린 집을 찾는 일은 점점 어려워진다. 땅값도 비싼 데다가 설계와 시공, 인테리어까지 하려니 답이 없다. 직장과 아이들 학교, 도시 편의 시설의 접근성, 미래 자산 가치 등 이것저것 따져보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도시에서의 삶이 불가피한 보통 사람들이 아파트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파트 한 채 값으로 집과 사무실을 마련하다 이강락·김현미 씨 부부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결혼 후 아이들이 장성할때까지 서울 시내 아파트에 살았고, 생활에 큰 불만은 없었지만 막연하게 가족이 뿌리내리고 살 수 있는 집다운 집을 꿈꿔왔다. 이들의 막연한 꿈을 실현해준 이는 건축가 홍성용 씨다.

“오랫동안 경영 컨설턴트로 일해온 부부가 목동의 40평대 아파트를 팔고 재산을 정리해 마련한 돈으로 사무실과 살림집을 함께 짓고 싶다고 했어요. 한 분야에서 20여 년을 같은 이상을 향해 달려온 부부가 단란한 행복을 만들어갈 집. 그 형체를 가만히 머릿속에 그려보니 이것은 단순히 ‘집’이 아니라, 이 시대를 열심히 살아온 모든 중년의 ‘꿈’이구나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디자인보다는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 가족에게는 수려하게 잘빠진 외모로 눈을 현혹하는 집이 필요한 게 아니니까요.”

(왼쪽) 일본의 콤팩트 하우스를 떠올리게 하는 미니멀한 디자인이 눈길을 끄는 외관. 불규칙하게 배열된 네모 반듯한 창문들이 재미있다.


1 거실 뒤쪽으로 곧장 연결된 미니멀한 부엌. 주방 가구 맞은 편으로 빌트인 수납장을 짜 넣어 살림살이를 깔끔하게 수납했다.
2 주차장과 회의실, 옥외 휴게 공간으로 이루어진 1층 평면도.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맞춤형 설계, 도시 편의 시설의 접근성, 탁 트인 조망과 일조권, 자연을 벗할 수 있는 녹지 공간, 향후 자산 가치까지···. 아파트만큼 합리적이면서도 주택에서 사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보통 사람이 접근 가능한 집을 지어야 했다. 건축주는 땅 구입부터 설계, 시공, 디자인 등 모든 것을 건축가에게 일임했다. 마음껏 그려보라며 하얀 도화지를 선뜻 건네는 건축주가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한 가족의 꿈을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내 집을 짓는 것보다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홍성용 씨는 건축주의 부탁대로 이강락·김현미 씨 가족이 오래도록 뿌리내리고 살아갈 집이 자리할 땅을 직접 찾아 나섰다. 하지만 한정된 비용으로 서울 시내에서 집 지을 땅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쾌적한 주거 환경과 컨설팅 회사의 입지 요건, 이 두 가지의 교집합을 만족하는 땅을 고르는 데만 2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러던 올 1월, 소규모 오피스와 단독주택이 나지막하게 늘어서 있는 서교동의 123㎡(44평) 땅을 최종 낙점하게 되었다. 출판사, 디자인&예술 분야의 회사가 밀집해 있는 서교동은 컨설팅이라는 업종이 가진 이미지와도 맞아떨어졌고, 소규모 건축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예산에 맞는 작은 땅을 찾기에도 적합한 지역이었다. 집을 짓는 비용과 각종 세금까지 땅을 사고 남은 비용은 단 5억 원. 현행 건축법에 따라 123㎡(44평) 땅에서 지을 수 있는 집은 20평 남짓이니 사무실, 집, 주차장을 우겨 넣는다 해도 최소 3층을 올려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예산을 분배하고 공간을 설계하는 데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지하를 파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1층에 차 두 대가 들어갈 콤팩트한 주차장, 외부 손님을 맞을 세미나실과 옥외 휴게 공간을 함께 설계하기로 했다. 2층은 열 명 정도의 직원을 수용하는 컨설팅 사무실, 3~ 4층은 살림집, 엘리베이터와 계단, 베란다와 옥상 정원까지 촘촘하고 알차게 공간을 구획했다.

“한정된 공간과 비용 때문에 기능과 효율성에 집중한 집이지만, 단독주택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빠짐없이 담고 싶었어요. 예산을 쪼개 옥상정원을 만든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엘리베이터는 향 후 이 집의 용도를 변경할 경우를 대비한다면 매우 중요한 운송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부부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게스트하우스나 사무실 임대 등으로 용도를 변경할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3천 5백만 원의 공사비를 들여 시공을 감행했습니다.”


1 이 집의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3층 평면도.
2 미송 합판과 전통 한지 창으로 한국적 정서를 더한 부부 침실.

3 2층에 있는 이강락・김현미 씨 부부가 운영하는 컨설팅 사무실 내부. 곳곳에 커다란 창을 내 밝고 쾌적한 일터가 되었다.
4 3층 거실 풍경. 소파를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 아래로 옮기고 대신 3m에 이르는 식탁을 놓았다.


모든 요소를 안으로 숨긴 단정한 집 기능과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집인 만큼 인테리어는 최대한 단순화했다. 꼭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을 안으로 넣어 최대한의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집이 더욱 넓어 보이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3층 현관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서면 한 층이 66㎡(20평)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시원한 개방감이 느껴진다. 이러한 개방감은 건축 구조를 최대한 단순화하고 생략하는 과정을 통해 얻어낸 결과다.

가장 먼저 내부에 기둥과 보를 최소한으로 하고, 지붕 자체가 건축 구조를 만드는 플랫 슬래브 방식의 설계를 채택했다. 플랫 슬래브 방식은 보를 설치하기 위한 공간(30~40cm)을 별도로 확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층고의 높이를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다. 또 앞으로 공간의 용도를 변경하는 데 용이해 공간을 가변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 벽이나 기둥의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슬래브를 더욱 단단하게 보강하기로 했으며, 조명 역시 단순화한 건축 구조의 일부가 되도록 계획했다. 천장과 벽 사이에 간접조명을 설치하거나 벽면에서 도드라지지 않는 얇은 LED 조명등을 매입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플로어 스탠드나 펜던트 조명등으로 포인트를 주는 거실과 부엌조차 모든 조명을 생략했다.

살림집인데도 이동식 가구 역시 거의 놓지 않았다. 거실만해도 계단 아래 배치한 벤치형 소파와 3m에 이르는 거대한 식탁이 전부다. 실내를 자세히 살펴보면 거실, 침실, 주방, 계단, 복도할 것 없이 거의 모든 벽면에 수납공간이 숨어 있다. 그래서 마치 모델하우스처럼 살림살이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이 집은 건축 본래의 조형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따스한 나뭇결이 드러나는 미송 합판과 묵직한 노출 콘크리트 역시 전체의 조형성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간은 침착하고 고요하다. 네모반듯한 창문에 걸린 도시 풍경이 무색무취의 하얀 벽면을 장식하고 있을 뿐이다.

“각 부실 역시 꼭 필요한 공간만 최소한으로 계획했어요. 주거 공간인 3층은 드레스룸과 화장실이 딸린 부부 침실, 4층은 두 아들의 방, 화장실, 다용도실이 전부죠. 덕분에 거실은 살림집인 3층과 4층을 한 공간으로 봤을 때 딱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면적을 차지하고 있어요. 좁은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상부를 오픈해 시원한 공간감을 만들었죠. 집 안 모든 동선의 중심이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집 밖 도시 풍경이 그림처럼 걸려 있는 드라마틱한 공간입니다.”


5 노출 콘크리트와 미송 합판 마감이 조화를 이룬다.
6 4층에서 바라본 복도. 벽 안으로 숨은 에어컨이 눈길을 끈다. 이 집은 모든 살림살이를 깔끔하게 안으로 숨길 수 있는 빌트인 수납장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아파트보다 합리적인 도심 속 생활 주택 내 가족의 살림살이에 딱 맞는 합리적인 집 짓기가 가능하다면 도심형 소형 주택은 대형 아파트 단지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강소 주택의 천국이라 불리는 일본의 경우, 1cm의 낭비도 없는 알뜰한 설계 기술이나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국가적으로 소형 주택을 장려하는 일본과는 사정이 좀 다르 지만, 우리나라에서 소형 주택이 주거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주택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소형 주택이 자리 잡기 위해서 건축가는 디자인을 살리면서도 건축주의 수익성을 높이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싼 재료를 써서 시공비를 낮추는 방식이 아니라, 구조를 바꾼다거나 지반공사, 기초공사 비용을 줄이면 튼튼하면서도 콘셉트 있는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 주택은 자산 가치가 하락하지 않고 추후 다른 용도로 얼마든지 변경해 사용할 수 있죠. 이런 사례가 꾸준히 나온다면 아파트에 사는 보통 사람의 합리적인 집 짓기는 더욱 수요가 늘어날 것입니다.”

(오른쪽) 주택에 사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옥상정원. 직접 기른 블루베리나무와 올리브나무에서 열매를 수확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1 1층 주차장 뒤편에는 가족과 직원이 쉴 수 있는 휴게 공간이 있다. 
2 관상용 식물과 식용식물을 양옆으로 배치한 옥상정원 평면도.


건축가 홍성용 씨는 서교동 집을 완성하며 더 많은 사람이 집 짓기에 동참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내 집을 짓고 사는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늘어나고, 각기 다른 생김새와 성격의 사람처럼 개성 넘치는 단독 주택이 점차 단지를 형성한다면 거리와 도시는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믿는다.

건축가 홍성용 씨의 실패 없는 집 짓기 체크리스트
최소 향후 10년의 용도를 예측하라 좋은 땅을 고르고, 튼튼한 집을 짓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집이 입지할 지역의 변화 가능성을 살펴 10년 후 용도를 보는 일. 자녀의 출가 또는 집을 팔거나 임대할 계획이 있다면 애초부터 용도 변경이 쉽도록 설계하는 것이 좋다.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려라 좁은 땅에 넓은 집을 지으려면 공간에 대한 생각에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각 실을 억지로 만드는 것보다 가족이 가장 요긴하게 쓸 공간에 집중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건축주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이 집은 각 실을 최소로 축소해 설계 한 덕분에 탁 트인 조망과 일조권을 확보한 거실을 만들 수 있었다.
익스테리어에 투자하라 주택이 매력적인 것은 안은 물론 바깥까지 집주인의 취향이 드러날 수 있는 점. 인테리어만큼 건축물의 외관 디자인, 마감재, 조경 등에 투자하는 것이 앞으로 주택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하지 말자.

건축가 홍성용 씨는 홍익대학교 건축공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수료하고, 모이 건축 (www.moi-n.com) 대표이자 계원조형예술대학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건축과 인테리어를 영화·문화·마케팅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영화 속 건축 이야기>, <건축가의 특별한 여행법>, <스페이스 마케팅> 등의 저서와 개인 건축 사진전 등이 그의 공간 철학에 대한 결과물이다.
글 성정아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