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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집] 공간 디자이너 김종호씨가 레노베이션한 양평 전원주택 노란 문을 열고 삼각형 안으로 들어가니
세컨드 하우스 역시 편리한 생활이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공간 디자이너 김종호 씨. 경기도 양평 서종리, 그가 설계한 전원주택 ‘파이브 인 스리Five in Three’는 도시 생활의 편리함과 전원의 낭만, 여유를 두루 갖춘 집이다. 이름처럼 삼각형 안에 오각형이 들어 있는 독특한 집의 ‘노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전원주택 ‘파이브 인 스리’. 오각형 소파 테이블과 로낭&에르완 부홀렉 형제의 벽면 설치 오브제 등 삼각형, 오각형을 상징하는 기하학적 오브제로 꾸몄다.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을 지나….” 몇 년 전의 유행가 가사다. 도심 빌딩 숲에 서 있으면 직각 외에 다른 형태를 볼 가능성은 무척 적다. 우리가 사는 도시가 온통 ‘네모’가 된 이유는 그것이 경제적으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같은 평수에 연면적이 가장 넓은 건물을 짓는 방법이 바로 성냥갑 형태인 것. 하지만 이제 이러한 획일적 건축 형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있다. 빌딩들이 직선에서 벗어나 기하학 형태로 진화하고, 거대한 유선형 건물부터 돔형 주택까지 선보이고 있다. 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종호 대표가 설계한 양평 전원주택의 이름은 파이브 인 스리 Five in Three. 말 그대로 삼각형 피라미드 파사드에 오각형 모양의 공간이 들어 있는 독특한 구조의 집이다.

자연과 상상력의 복합체
경기도 양평 서종리. 김종호 씨는 오랫동안 비어 있던 낡은 양옥집을 보자마자 시간을 초월한 가치를 발견해냈다. 이 오각형 집은 추억의 저장소다. “건축주는 이 집에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어린 시절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어 했죠. 옛집을 철거하고 새로 건물을 올리는 대신 레노베이션으로 설계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보통 어린 시절 살던 집을 떠올리면 햇볕이 잘 드는 창가, 뛰놀던 계단 등이 어렴풋이 떠오를 뿐 디테일이나 형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디자이너는 ‘추억’이라는 모티프를 단순한 형태의 박공지붕으로 표현했다. 천연 슬레이트를 잘게 켜서 사용한 지붕은 마치 오래된 나무 지붕 같다. 강가를 향한 면은 모두 유리로 마감해 내부 공간이 그대로 들여다보인다. 이 모든 것은 신축 건물이 주변의 시골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하기 위함이다. 반면 실내 인테리어는 무척 도시적이다. 더 이상 풀밭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이 아닌, 도시 생활에 익숙한 50대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것.

“레노베이션이 신축하는 것보다 어려운 점이 많아요. 기존의 틀에 맞춰 다시 콘셉트를 잡아야 하니까요. 제약이 많다 보니 디자이너에게는 도전이 됩니다.” 또한 세컨드 하우스가 일반 주거 공간에 비해 고려해야 할 점이 더 많다고 말하는 김종호 씨. 주거 공간은 그 공간에 머무는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이 주가 되지만, 세컨드 하우스는 일반 주거 공간보다 훨씬 다양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주말 주택만의 기능이 있어야 하고, 어떤 구성원이 머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1, 2 집의 형태를 그대로 즐길 수 있도록 공간은 최대한 간결하게 연출했다. 옐로 컬러로 포인트.


3 앉은뱅이 소파와 조명등으로 아늑함을 강조한 2층 침실.
4 추억과 같이 자라는 이 집의 콘셉트는 오래된 나무들이 그 역할을 한다. 30년 넘게 자란 나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집을 레노베이션했다.


디자이너가 생각한 집의 가장 큰 스토리는 ‘서프라이즈’다. 우선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이 잠시나마 일상의 짐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도록 색다른 재미를 주고 싶었다. 가장 큰 특징은 유리와 아크릴 등 투명 소재와 레몬, 옐로 등 우리나라 주거 공간에서 흔히 쓰지 않는 색채를 사용한 것이다. “조용한 시골길을 따라 만나는 피라미드 형태의 삼각형 집. 노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모던한 공간이 펼쳐지지요. 침실과 욕실이 개방되어 있고, 거실 붙박이장 문을 열면 주방이 나오고… 모든 것이 다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밖에서 보면 그냥 평범한 집인데 들어와서 보니 ‘어라?’ 할 수 있는 의외의 즐거움을 주고 싶었어요. 건축주가 저를 믿고 맡긴 덕분에 재미난 공간이 탄생할 수 있었지요. 물론 공간 구분이 없는 것은 조금 걱정했지만요.”

이 집은 1층과 2층이 열린 구조다. 공간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자한 것. 유일하게 벽으로 공간을 구분한 1층 거실 안쪽의 침실 역시 개방형 욕조가 특징이다. 개인 사우나 시설을 더해 마치 리조트에 온 듯 ‘휴식’ 기능을 강조했다. 어린 시절 다락방을 떠올리게 하는 2층 침실은 벽면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쪽창 덕분에 아늑한 느낌. “잠을 자는 침실에 벽이 없으면 불안해요.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고요. 작은 창을 내면 틈으로 보는 풍경의 매력도 즐길 수 있죠.”

거실은 레몬 옐로 컬러의 테이블이 눈에 띈다. 엘지하우시스 트렌드 발표회 때 제작해 전시한 테이블은 고급 욕실 도기 소재인 액상 아크릴에 컬러를 입힌 작품. 투명 아크릴 필름을 입힌 현관문과 1층 침실의 슬라이딩 도어와 함께 ‘옐로’로 색상을 맞춰 미니멀한 공간에 생동감을 더했다. 테이블 너머 붙박이장 문을 열면 개수대와 조리대가 있는 주방이 보이는데, 자주 청소할 수 없는 세컨드 하우스의 현실을 고려한 디자인이다. 의식주는 물론 ‘낙樂’의 기능까지 담았다. 바 테이블이 있어 조용히 담소를 나누기에도 좋은 지하층은 오디오를 두면 음악실 또는 AV 룸이 될 수 있고, 포켓볼도 칠 수 있는 엔터테이닝 공간이다.

“투명 비닐로 마감한 마당 창고는 밤에 불을 켜면 자체로 조명 박스가 돼요. 강 건너편에서 보면 물 위에 조명이 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창고 역시 재미있게, 집과 어우러지도록 짓고 싶었어요. 비가오면 비를 피해 바비큐 파티도 할 수 있는 그런 곳 말이에요.”


디자인 스튜디오의 워크숍이 펼쳐지던 어느 주말, 강남에서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이곳에 디자이너들이 모였다. 김종호 대표를 비롯, ‘파이브 인 스리’ 프로젝트에 참가한 유성열, 신광진, 백수흠 , 김혜진 씨가 지하 엔터테이닝 공간에 모여 잠시나마 주말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공간은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건축가나 디자이너를 만나면 반드시 물어보는 게 있다. “집 좋지요?” 의외로 많이 나오는 대답은 “평범해요” “그냥 아파트예요”이다. 공동주택이라는 대량생산적 속성을 마뜩찮아 하는 디자이너들의 속내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몰개성 속 공간에서 ‘단순히’ 사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가능성을 부여하고, 공동주택이라는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마음은 디자이너만의 로망만은 아닐 터.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세컨드 하우스’의 꿈을 품게 마련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자주 오겠어?’ 하는 회의적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곳 양평은 서울과의 근접성이 뛰어나다. 서울에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서울에, 금요일 오후부터는 편안하게 주말 주택에서 머물 수 있다. 별장 개념보다는 ‘멀티 해비테이션’을 실현하는 것이다. 집으로 들어오는 진입로는 시골과 다름없는 풍경이지만 5분만 나가면 아파트 단지가 있다. 가끔 5일장도 선다. 산책 삼아 천천히 걷다 장도 보고 근처 식당에서 간편하게 한 끼 때울 수도 있으니 ‘집 나가면 더 고생’인 여자에게고된 짐이 되지도 않는다.

“세컨드 하우스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면 먼저 신중하게 생각해보라고 해요. 공기 좋은 숲 속에 별장을 짓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도로파는 건축주가 많거든요. 친구들과 찾는 것도 한두 번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세컨드 하우스는 자신의 생활권과 근접하고 도시와 타운이 함께 형성된 곳을 추천하죠. 너무 외떨어진 곳은 자주 찾을 수 없어요. 관리하기도 힘들고요.”


1 오픈 구조로 된 거실과 침실은 천장이 5m가 넘어 공간에서 위압감을 느낄 수도 있다. 김종호 씨는 다양한 시뮬레이션으로 가장 편안한 삼각 지붕의 ‘각도’를 찾았다.
2 휴양지 풀 빌라처럼 개인 사우나와 개방형 욕조를 갖춘 1층 침실. 노란색 욕조는 새턴바스에서 제작.
3 거실 밖의 덱과 수영장은 건축주의 아이디어다. 미래의 손자들과 함께 발 담그고 놀 수 있는 곳.


겨울에 공사를 시작해 어려운 점도 많았다는 김종호 씨. 강가라 전망은 좋지만 기온 차가 심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법도 중요했다. 보통 천장고가 3m 정도 되면 바닥 난방만으로는 부족하다. 공기가 데워져야 하므로 보조 난방 기구를 활용했다. 2층 바닥에도 난방선을 깔고 천장에는 단열재를 보강했다. 특히 천장 단열재는 사계가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냉난방을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다. 2층을 오픈한 것 역시 기류의 흐름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다.

멋과 기능을 모두 갖춘, 보기도 좋지만 쓰기도 편한 집을 만들고 싶었다는 김종호 씨는 자신이 하는 작업이 작품으로 회자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자신은 작가가 아니라는 것. 디자인을 할 때 절대 그림을 그리지 말라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의미다.”건축과 디자인은 응용 예술입니다. 기초를 튼실히 해야 합니다. 기능을 무시하고 마치 페인팅하듯 디자인하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클라이언트와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리는 디자이너를 볼 때면 안타까워요. 주거 공간은 디자이너 개인의 작업이 아닙니다. 건축주 역시 머리를 맞대야 하는, 공동체의 합작품이라고 해야겠지요.”

건축의 완성은 궁극적으로 ‘사람’이다. 누가 살 것인지, 공간에서 어떤 행위가 이루어지는지, 또 주변 환경과는 어떤 관계를 이루고 있는지…. 결국 그 주인공은 사람이요, 이는 곧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상상의 유희요, 누구에게나 새로운 꿈의 출발이 된다. 이제 당신의 꿈의 집을 상상해보라.

디자인 스튜디오 김종호 대표는 미국 유타 주립대학교 환경설계학과와 미국 코넬 대학원 도시 및 환경설계학과 졸업. 1990년 뉴욕 주설계공모전 최우수상, 전미 설계공모전 특별상, 2006년 코시드KOSID 협회상을 수상했다. 부산 우동 현대아이파크 모델하우스, 2009년 완공한 베트남 호찌민 시의 금호아시아나 플라자 등 세계적 디자인 회사와 업무 제휴를 통한 다양한 글로벌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했다. 파크 하얏트 호텔 실내 디자인 컨설팅을 맡고 있으며, 현재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한다.
글 이지현 기자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