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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스 초이스] 박홍기 씨, 권은순 씨, 정석연 씨, 김영옥 씨
해마다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가장 기대되는 전시로 손꼽히는 디자이너스 초이스. 올해의 주제 ‘자연이 가득한 집’을 테마로 ‘반전이 있는 공간’을 선보일 네 명의 디자이너 박홍기, 권은순, 정석연, 김영옥 씨를 만났습니다. 기억과 추억, 그림자와 유리를 테마로 한 공간은 기발한 스토리와 아이디어가 가득했고, 그 배경에는 공통적으로 자연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겨 있습니다.

자연에게 ‘자연’을 양보한 큐빅 하우스
_ JAEGER & PARTNER 대표 박홍기 씨
서울리빙디자인페어를 찾는 일반인에게 설치미술 작품 같은 집 말고, 가까운 미래의 ‘진짜’ 집을 보여주고 싶다는 박홍기 대표. 그가 미리 보여준 3D 공간 사진을 보니 작은 큐빅 하우스란 느낌이 들었다. ‘자연이 가득한 집’이란 주제를 어떻게 풀어낸 공간인지 물었더니 “이 세상에 친환경 건축물은 없다”며 미리 못을 박는다. 자연 안에 건축물을 짓는 행위 자체가 자연을 훼손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에너지를 아끼고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공간만을 살려 집을 작게 지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집이 작으면 건축비도 적게 들고, 탄소 발생량도 줄일 수 있으며, 녹지 공간도 더 넓어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싱글족과 1~2인 구성의 소가구가 늘어나면서 앞으로 작고 실용적인 집이 트렌드가 될거라고 한다.

그래서 이번 리빙디자인페어에서는 6×9m 공간에 기능성을 강조한 작은 집을 보여줄 예정.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공간을 빌트인’하는 방법을 택했다. 중앙 통로 공간을 최대한 넓게 잡아 거실로 사용하고, 거기에 스파 시설과 AV 룸 기능을 넣었으며, 통로 양옆으로 부엌과 침실 등의 공간을 빌트인했다.
방문을 반사 유리로 만들어 닫았을 때는 벽처럼 느껴지지만, 불을 켜면 부엌이나 침실 등의 공간이 드러나는 반전이 숨어 있다. 또한 건물 외관도 반사 유리를 사용할 생각이다.
“곤충의 보호색을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건물 외관이 모두 반사 거울이면 숲 속에 집이 들어가 있어도 숲이 거울에 반사되어 멀리서 보면 집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죠.” 자연을 담고 또 자연을 닮은 집을 만들기 위해 약간의 ‘트릭’을 쓴 것이다.
부스 전체가 반사 유리로 되어 있어 그냥 거울인가보다 싶어 관람객이 지나쳐버릴 수도 있다며 웃는 그의 모습에서 이번 전시에 대한 기대가 묻어난다. 미리 말해두지만 그냥 거울이 아니라, 공간 속에 위장 잠입한 큐브 하우스이니 꼭 들어가서 마법 같은 작은 집을 구경하길 바란다.

(오른쪽)
침실, 부엌, 화장실 공간을 빌트인하기 위해 각 실별로 최소한의 공간을 계산해 넣었다.


박홍기 씨는 삼성중공업 크루즈 디자인팀 전임 디자이너이자 현재 JAEGER & PARTNER 대표다. 청담동 피엔폴루스, 방배동 빌라 부에나 비스타, 성북동 빌라 어승재, 부산 명지 지구 퀸덤 펜트하우스, 청평 타운하우스 레이크 플렉스, 삼성동 제이-파빌리온 등 고급 주거 공간을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맡아왔다.


익숙한 풍경, ‘편안함’이 곧 자연이다
_ 공간 프로젝트 디렉터 권은순 씨
그간 인테리어 관련 책을 펴내면서 언제나 ‘자연’과 ‘여행’을 스승으로 삼았다고 말하는 권은순 씨. 제한된 부스에서 자연이 가득한 이미지를 보여줄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기본명제에 충실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연이라고 하면 흔히 식물을 먼저 떠올리게 마련.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궁극적으로는 식물, 즉 자연이 주는 ‘편안한’ 이미지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반전이 시작 된다. 우리가 가장 편하게 머물고 싶어 하는 거실이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갤러리가 되고, 또 거실에 있어야 할 나무나 꽃이 실체가 아닌 흑백 사진으로 벽에 걸린다면? 하지만 그가 선보일 ‘홈 갤러리’는 결코 서먹하거나 딱딱하지 않은, 늘 익숙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남편과 여행하며 찍은 풍경 사진이 벽에 걸리고, 그 사진이 실사 프린팅되어 우리에게 익숙한 의자와 소파에 입혀지기 때문이다. 물론 손으로 만지고 향기로 느끼는 자연도 좋지만, 시각적으로 ‘보는 자연’ 또한 중요하다고 조언하는 권은순 씨.
이때 ‘빈 벽’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 한다. “거실 한쪽에 잔뜩 힘준 인조 가죽 이미지 월을 볼 때면 안타까워요. 차라리 아무 장식도 하지 말고 여백을 두고, 묵혀둔 추억의 사진을 꺼내 가족만의 아름다운 갤러리를 만들어보세요.”
앞서 말했듯 그가 생각하는 ‘자연이 가득한 집’의 테마는 궁극적인 편안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장을 채워 넣을 아이디어 역시 결코 추상적이거나 어렵지 않고 누구나 쉽게 응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얼마 후 교외의 전원주택으로 이사할 예정인 그는 사진 찍기 좋아하는 남편의 취미 생활을 격려하기 위해 집 안에 암실을 만들고,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것처럼 갤러리 월로 연출할 예정이다. 집은 가족이 함께 사는 곳이다. 가족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배려해 모두가 가장 머물고 싶은 공간이 과연 어떤 모습일지 상상 해보자. 그곳이 바로 ‘자연이 가득한 집’이다.

(오른쪽)
memory_my daddys photo를 콘셉트로 한 홈 갤러리.


권은순 씨는 홈 인테리어 브랜드 ‘전망 좋은 방’을 론칭한 라이프 스타일리스트.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친 폭넓은 기획과 강의로 주목받은 ‘까사 스쿨’의 원장으로 활약했다. 현재 디자인 컨설팅 회사 D&S Project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 <이야기가 있는 인테리어 집>과 <프로방스의 집>은 홈 인테리어 분야의 베스트셀러로 잘 알려져 있다.


서재로 들어온 낯선 흔적, 그림자놀이
_ MINOR COMPLEX 대표 정석연 씨
정석연 씨는 ‘자연이 가득한 집’ 테마를 고민하면서 우선 머릿속에서 나무나 잔디 같은 자연물을 지웠다. 집 안에 나무를 심고 그린 컬러로 공간을 채우는 것이 억지스럽다는 생각에서다. 자연 그대로의 본질과 그 순환과정을 집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공간을 꾸미는 요소로 ‘그림자’를 선택했다.

집 안으로 들어온 빛은 가공하지 않은 자연의 본질 그 자체이고, 빛이 피사체를 만나 그림자를 만드는 과정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순환과정이란 생각이 이번 작업의 기본 영감이 되었다. 2008년 ‘공공디자인엑스포’에서 캔, 페트병 등을 쌓고 조명을 쏘아 N서울타워(옛 남산타워) 모양의 그림자를 선보인 그가 이번에는 서재 공간에서 다양한 소품을 이용해 서재 안에서 볼 수 있는 갖가지 요소의 그림자를 만들 예정이다. 익숙한 그림자가 문득 낯설어 보이면서 낯설음이 주는 색다른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는 재밌는 작업이 될 듯. 연필, 책 등을 쌓아 만든 피사체가 빛을 받아 고양이 모양의 그림자로 만들어지는 식의 위트 있는 ‘반전’을 공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고양이 그림자가 진짜인지, 아니면 연필과 책 등을 쌓아 만든 피사체가 진짜인지 혼동스러워진다. 그가 만든 공간에서 우리는 진짜와 가짜, 본질과 허상 사이에서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 고민을 조금 확장해보면 눈에 보이는 자연과 손에 잡히지 않는 자연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자연이 가득한 집은 집 안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풀잎 하나 없는 집이지만 큰 창으로 햇살이 가득 쏟아지는 집이라면 자연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자연이 가득한 집’이란 이야기다. 그가 선보이는 공간은 트랜스폼 transform이란 트렌드에 맞춘 멋스러운 서재다. 금속 프레임을 쭉 짜 넣고 프레임에 서랍을 마음대로 끼웠다 뺐다 하면서 책장과 책상을 만들 수 있는 트렌디한 서재. 그리고 곳곳에 재미난 그림자가 있다. 기발하다 생각하고 단순히 웃다 가도 좋다. 하지만 왜 하필 그림자인지, 왜 형태를 다 갖추지 않은 프레임이 짜인 트랜스폼 콘셉트의 서재인지 그 이유를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른쪽)
선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트랜스폼 서재를 선보일 계획.


정석연 씨는 현재 마이너 컴플렉스 대표이자 경원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8, 2009 한국공간디자인문화제 초대 작가 겸 전시 총감독을 맡았고, 전주 onn 브랜드 초대 디자이너이며, 한국실내건축가협회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아시아평화박물관, 축구협회 홍보관, 종로5가 광장시장 개선 프로젝트, 성신여대 박물관 기획전시실, 후진타오 환영 만찬 공간 기획 등이 있다.


기억 속의 자연을 마주한 한낮의 침실
_
로담 A.I. 대표 김영옥 씨
그를 만난 곳은 처음 가 보는 서울 강남구 자곡동이었다. 벽돌집을 레노베이션했다는 자곡동 사무실은 특이한 다락방 구조로 그의 아날로그적 감성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는 2005년 디자이너스 초이스에서 ‘에코’라는 주제로 휴식처 ‘풀하우스 Poolhouse’를 선보였고, 소외된 사람들의 집을 고쳐주는 방송에서는 친환경 집을 지었다. 주거뿐 아니라 ‘더 다이닝 호수 레스토랑’ 같은 상업 공간에서도 자연은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그의 책 <숨 쉬는 집> 역시 친환경적 집 짓기에 관한 이야기.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에서 그가 보여줄 자연이 가득한 집은 조금 다르다. “콘셉트는 ‘데이 드림 하우스 day dream house’로 정했어요. 자연은 결국 ‘내 몸에 남아 있는 기억’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그에게 자연은 어린 시절 살던 집과 집으로 가는 길에 드리워진 버드나무, 개울가, 나지막한 담장에 대한 기억이다. 그리고 그 순간의 기억은 “한 발은 깨어 있고 한 발은 꿈속에서”라고 읊은 장 콕토 Jean Cocteau의 글처럼 영원히 몸에 남아 있다. 그렇다면 추상적인 이 테마가 전시 공간에 어떻게 구현되는 것일까? 켜켜이 쌓은 담의 바깥 면을 자연과 함께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그리고, 안쪽 면은 거울로 마감해 미로 같은 골목길로 표현할 생각이다. 높낮이가 다른 담 사이를 걸어가면 네모난 창이 난 자그마한 집과 마주하는데, 그 집 안에는 지극히 개인적 추억을 담아 그가 직접 만든 오브제와 은은한 조명이 있는 침실 공간을 구현할 예정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바로 담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재료다. “스케치도 할 수 있고 프린트도 할 수 있는 특별한 외장재인데, 이 전시가 끝난 후에 한 조각씩 떼어서 주변 분들께 드릴 생각이에요. 이걸로 테이블을 만들 수 있거든요. 전시가 끝나고 설치된 집이 바로 버려지면 ‘자연이 가득한 집’이라는 테마에도 어긋나니까요. 훗날, 그 테이블을 사용할 때마다 몸이 자연스럽게 이 집을 기억하겠지요.”

(오른쪽)
어린 시절의 기억을 켜켜이 쌓은 담에 그릴 계획이다.


김영옥 씨는 로담 에이아이 Rodemn A.I의 대표이자 건국대학교 건축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튜브, 펜, 체리 호텔 등의 상업 공간과 서원어린이집, 에버그린, 잠실환경디자인 등의 주거와 공공 공간 프로젝트가 있다. 이 밖에도 서울시 창작 공간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과 디자인, 도시로 관심을 넓혀가고 있으며, 현재 2012년 완공 예정인 호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촬영 협조 사피(02-517-5111), 디스퀘어 갤러리(02-2037-0001)

글 기원재 기자, 이지현 기자,김다해 객원 기자 사진 이경옥 기자, 김용일 기자, 김재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