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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내셔널트러스트 김홍남 대표의 묵향 은은한 한옥에서 인생4악장
한옥에서는 향기가 발산된다. 켜켜이 쌓인 선조의 지혜가 세월을 두고 그 고아 古雅한 내음을 천천히 뿜어낸다. 집을 지은 지 채 서른 날도 안 되었건만 잰 마음에 당호가 무엇인지 물었다. “천천히요. 집을 좀 숙성시켜야죠”라는 집주인의 현답이 돌아온다.


(왼쪽) 열린 창호로 하늘을 향해 살짝 올라간 지붕 선과 인왕산 자락이 겹겹이 걸쳐있다. 삼청동 일대와 청와대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사계절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오른쪽) 창호 문을 열어놓으면 바람결에 서걱대며 들려오는 대나무 잎사귀 소리는 한옥과 자연이 주는 합작 선물이다.


한적하기만 할 줄 알았던 주말 오전, 인왕산과 마주하고 있는 북촌은 골목마다 한옥 탐사를 나온 연인과 가족으로 북적거려 인사동 골목길 못지않았다. 반전과 놀라움의 연속이랄까. 한국 내셔널트러스트의 대표이자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김홍남 교수의 새로 지은 한옥을 찾은 날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육중한 나무 대문이 열리자 김홍남 교수의 한옥이 속살을 드러냈다. 놀라운 것은 겉으로 봐서는 짐작하기 어려운 전통미와 현대적인 실용성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종로구 삼청동 2필지에 지은 이 한옥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2001년에 사들여 문인들의 작업실 용도로 사용하는 스튜디오처럼 쓰다가 너무 낡아 헐고 새로 지었다. 한옥 건축가 이문호 씨와 이미 북촌에만 여러 채의 한옥을 지은 경험이 있는 조주립 씨가 짝을 이뤄 지었다. 1960년대에 지은 한옥이라 기와만 재활용했는데 설계는 2005년에 시작했고, 종로구의 건축 허가가 난 것이 2008년 봄이었으며 그해 10월에 상량식(집을 지을 때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은 다음 마룻대를 올리는 의식)을 했다.

골동품을 사던 소녀, 병산서원을 꿈꾸다 집이 ‘이제 다 되었다’라는 느낌은 언제 들었는지 물었다. “정원의 마지막 손질을 마치니 그제야 좀 완성된 기분이 들었어요. 대나무를 심고, 어느덧 돌과 이끼가 자리를 잡았지요. 소나무를 심고 나서 여간 걱정이 많지 않았는데 저렇게 정말 잘 자라주어 얼마나 감사한지요”라고 답한다. 김홍남 교수가 한옥에 애착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로 ‘한옥 아낌이 모임’에서 만난 한국 가구 박물관의 정미숙 관장을 소개한다. 수년 전 한옥 붐을 일으킨 주인공이라 소개하며 최순우 옛집의 후원 기금 모임에서 함께 일한 것을 계기로 지금껏 한옥에 관심을 갖게 해준 이라고 한다. 김홍남 교수의 한옥 바라기는 민속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지금의 내셔널트러스트 대표 활동에서만 발로한 것은 아니다. 어릴 적 일화를 얘기하며, 인생의 대사건이라고 회고한다. “6학년 때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어요. 불국사에 들어가기 전 친구들은 저 앞으로 막 내달리는데 저 혼자 골동품 가게에 들어갔어요. 그때 돈을 주고 다리가 길고 뚜껑이 달린 고배 高杯(삼국시대 토기)를 샀어요.”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산 선물을 지금껏 보관하고 있다 한다. 그의 어머니는 평생 동안 정원 가꾸기를 즐기신 분으로, 안방에는 늘 그림 작품을 진열해 작은 미술관 같았다고 회상한다. 유년의 이러한 환경과 산지식이 조금씩 움터 지금의 김홍남 교수를 빚은 것이 아닐까. 어릴 적부터 골동품이나 옛 물건 모으기를 좋아한 덕에 초로의 나이에 그 물건들을 제주의 박여숙 화랑에 풀었다는 박여숙 대표의 일화도 비슷한 맥락이리라. ‘체화 體化’란 모르는 사이어느 순간 나를 만들고, 나를 닮은 집을 짓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른쪽) 아래 디자이너가 한 점, 김홍남 대표가 나머지 한 점을 소장하고 있다는 프랭크 O.게리의 의자. 김홍남 교수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이다.


1 누마루 공간과 김홍남 관장의 침실 공간.
2 하얗다 못해 투명하기까지 한 바닥에 한옥의 처마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전통과 현대가 한 공간에서 어우러지는 절묘한 광경이다.



3 미니멀한 소파로 꾸민 현대적 공간의 응접실.

한옥 처마 선이 물결치는 이곳 나이 예순이 넘으면 생의 남은 기간은 늘 마음속에 품어둔 한옥에서 머물고 싶었다던 김홍남 교수는 애초에 2필지를 합쳐 한 채로 짓고 싶었으나 관의 허가가 나지 않아 두 채를 따로 지었다. 하지만 외관으로 보아서는 상상하기 힘든 김 교수의 아이디어는 바로 두 채의 한옥을 이어주는 지하 공간에 숨어 있다. 두 채가 지하로 연결되도록 설계해 일반 한옥 건축 구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공간과 공간이 계단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한 점이다. 집, 그중 한옥이 인간에게 주는 기쁨을 헤아리면 몇 가지나 될까. 김홍남 대표는 헤아릴 수 없다고 말한다. 단순히 집을 짓고 내 것이 된 소유의 기쁨만이 아니어서 듣는 이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다. “한옥은 자연주의 건축이죠. 시멘트 대신 원목을 쓰고, 기와는 선의 아름다움을 살려주죠. 개방된 외기와 내기가 늘 소통하기에 그 운치를 즐기면서 산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습니다”라며 마당 정원에서 누마루의 창호 문뒤로 액자처럼 걸쳐진 인왕산을 바라본다. 겹겹이 겹쳐진 창과 문을 열면 인왕산 자락이, 정원의 대나무가, 한옥 지붕의 아름다운 처마 선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김홍남 대표는 집에 들어오면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않는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바깥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집 안에 온전히 갖춰져 있으니 당연한 일인 듯싶다. 이어 그는 생활 한옥은 전혀 불편함이 없게 지을 수 있다며 “겨울철이면 옛날 한옥이 얼마나 추웠어요. 그래서 여자들이 살림하고 살기엔 고역인 집이 한옥이었죠.


4 천장의 서까래를 그대로 살린 부엌.
5 댓돌과 풀, 꽃을 심은 정원이 전통미를 더해준다.
6 지하 서재 창으로 인왕산 능선이 보인다.


또 화장실 쓰기는 얼마나 불편했게요. 요새는 전혀 그런 문제가 없어요. 한옥의 외관과 내관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현대적 시설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에요”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부엌 공간은 현대식 주방 설비를 들였는데도 서까래의 원형은 최대한 살렸다. 또 욕실 공간에서는 바깥 공간이 내다보이고 빛이 들어오게 창을 내 고급 리조트 못지않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설계를 담당한 이문호 소장은 “청와대와 국립민속박물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입지가 훌륭한 곳”이라며 한옥의 전통미와 위생, 냉난방, 주방의 현대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공간으로 꾸몄다고 설명한다. 자연과 벗할 수 있는 한옥의 환상 뒤에 숨은 의구심이 풀어지는 순간이다. 생활형 한옥으로서 주거 환경 개선은 충분히 가능하고, 그 노력은 아이디어와 발상의 전환에서 오는 것이었다. 며칠 전 이곳을 찾아 김홍남 대표와 즐거운 대화를 많이 나눴다던 영화감독 이재용씨는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도심 한가운데에 한옥의 전통미와 현대적 공간이 조화롭게 잘 어우러진 점”을 꼽으며, 어느 공간 하나 손길이 안 간 곳 없이 집 전체가 마치 하나의 작품 같다고 평했다.


미니 병산서원을 꿈꾸어온 김홍남 교수의 한옥은 주거 공간으로 지었지만 대신 지하 서재 공간은 그 학문정진을 향한 이상향을 오롯이 담고 있다. 혼자만의 집무공간이 아닌 젊은이들과 함께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광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 작은 규모의 도서관을 꾸릴 수 있는 장서들은 훗날 이웃과 일반인에게 공개하하고 싶다며 사립 도서관으로 운용하고 싶은 꿈을 조심스레 내비쳤다.


나의 마지막 보루, 수도원 같은 공간 목수의 작업실, 아니면 건축학도의 실습 공간이라도 되는 걸까? 사랑채 역할을 하는 공간과 복도처럼 이어지는 쪽마루를 지나면 의외의 공간이 나온다. 크기가 제각각인 나뭇조각과 보기만 해도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보쉬의 연장통, 게다가 공구 전문 브랜드 블랙앤데커의 작업대까지 갖추고 있다. 계단 벽면에는 마치 전리품처럼 전문가용 연장이 빼곡히 걸려 있어 보는 이를 놀라게 하는데, 아마추어의 호기에 찬 취미 수준이 아님을 짐작하게 한다. 집을 지으며 버려지는 나뭇조각들이 아까워 모으기 시작했다는 김홍남 교수는 자투리 나뭇조각을 직접 재단하고 잘라 새 용도의 물건으로 만든다고 한다. 그것들은 김홍남 교수의 손길을 거쳐 방문을 고정해주는 도어스토퍼로, 벽걸이 조명의 지지대로, 높이가 맞지 않아 못 쓰게 된 창호 문은 바퀴를 달아 파티션으로 만들어 가림막으로 거듭난다. 평생을 학자로 지내면서 종이 위 까만 글줄에서 정신의 흔적만 좇은 듯한 그. 희미한 종이 냄새와 함께 육체노동이 주는 땀과 기름때의 숭고함이 중첩되는 이질의 조화, 김홍남 교수를 여실히 설명해주는 공간이다.


이 집의 숨은 재미가 더 궁금하다면 따뜻한 감성이 빚어낸 김홍남 교수의 리사이클링 아이디어
1
높이가 맞지 않게 제작된 문을 그냥 버리기 아까워 아래에 바퀴를 달고 문짝마다 경첩을 달아 파티션으로 만들었다.
2 대나무 한 마디도 그냥 버리기 아까워 모아뒀다가 지저분해 보이는수도 배관을 덮는 용도로 쓴다.
3 바퀴가 달린 나무 좌탁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일 듯. 이동하기 쉽도록 바퀴를 달아 찻상으로도, 책상으로도 사용한다.



4 벽 귀퉁이에 단 독서 등은 나뭇조각에 부착해 연결했다.
5 댓돌 위에 어질러질 손님 신발을 위해 바퀴를 달아 신발 트레이를 만들었다. 마루 안에 쏙 넣으면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
6 집 짓고 남은 나뭇조각을 모아 도어스토퍼를 만들었는데, 이를 본 지인들의 주문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니 눈부신 하얀 공간이 펼쳐진다. 고졸한 나무 향 대신 모던한 현대적 공간이 반전처럼 숨어있다. 마치 이탈리아 디자이너의 작업실 스튜디오를 연상시키는 이 공간은 김홍남 대표가 직접 “내 마지막 보루 같은 공간”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프랭크 O. 게리 Frank O. Gehry의 골판지 의자와 까만색 그랜드 피아노가 무대위의 주인공처럼 자리하고 있다. 뒤로 보이는 서가의 흑백사진이 눈에 띈다. 한복을 입은 어머니의 사진과 몰티즈와 시추 두 마리의 개 사진이다. 액자 곁에는 <한국의 야생화> <우리풀 백과사전> <개가 있는 따뜻한 골목> 등의 책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살아 있는 것들과의 소통이 김홍남 교수에겐 가장 중요한 화두가 아닐는지 짐작해본다.


7 김홍남 교수의 의외의 면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 계단을 내려가기 전 벽면 가득 공구와 리사이클링 연장들이 진열되어 있다. 거칠고 힘든 작업을 통해 생활과 살림의 소소한 재미를 더할 수 있는 아이디어 가득한 곳이다.

나를 내려놓는 시간, 침잠 沈潛의 공간이 되다 한옥을 짓고 나자 집의 어느 한 공간도 빠짐없이 애착이 간다는 김홍남 교수는 “보이기 위한 집이 아니라 내 삶과 직결돼 있다. 그래서 생활의 필요에 의해 만들고, 가꿨다”라고 말한다. 동시에 인터뷰 끝 무렵에 “그동안 바삐 살며 넘친 열정, 일에 대한 욕심을 좀 내려놓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건넨다. 단어 사이사이 얕은 숨을 내쉬며 조심스럽게 표현을 고르는 그에게서 행간의 숨은 뜻을 읽기란 어렵지 않았다. 지하의 서재 겸 집무실 공간은 김홍남 교수에게는 이 집의 축소판이다. 애초에는 집 전체를 병산서원처럼 짓기를 꿈꿨지만 허가 문제 등으로 주거 생활 공간에 맞춰 설계하게 되었다. 대신 지하 공간을 서재로 만들었다. 일본에는 전문화한 개인 소유의 작은 도서관이 많아 인상적이었다면서 창조적 젊은이들과 함께 대화를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그동안 수집한 많은 장서를 일반인이 편하게 열람할 수 있는 도서관으로 개방할 거라는 계획도 조심스레 내비쳤다. ‘전나무가 이듬해 자신이 죽을 것을 감지하면 그해에 유난히 화려하고 풍성하게 꽃을 피운다는 현상을 가리킨다’는 의미의 ‘앙스트블뤼테 angstblÜte’라는 임학 전문 용어가 있다. angst(불안, 不安), blÜte(개화, 開花)로 인생의 막바지, 생애 최고의 절정을 만들어내는 역발상과 찬란한 창조 행위를 은유할 때 쓰는 말일 것이다. “두려움으로 인한 만개이며 완전한 소멸을 눈앞에 두었을 때만 나타날 수 있는 살아 있음의 알람 alarm이면서, 생명을 가진 어떤 존재가 가장 살아 있고자 원하는 순간을 지칭한다.” 김홍남 교수가 누마루에 앉아 읽던 마르틴 발저의 책 <불안의꽃>에 나온 한 구절이다.

글 이지혜 기자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