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세기의 컬렉터]피에르 샤로가 남긴 메종 드 베르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집
건축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이라면 역사책에서 그 이름을 한 번쯤 접해보았을 거장 피에르 샤로. 그가 세상에 남긴 최초이자 유일한 걸작인 메종 드 베르를 <행복>에서 취재했다. 프랑스 현지 매체에서도 좀처럼 접근하기 쉽지 않은 비밀의 집, 1930년대의 살림집을 유리 블록과 스틸 구조로 지을 만큼 혁신적이던 이 집을 지금 공개한다.


유리 블록을 통해 빛이 전면으로 들어오는 거실. 건축 자재라기보다 장식 재료에 불과했던 유리 블록으로 벽을 만든 메종 드 베르는 당시로서는 파격에 가까운 건축물이었다. 곳곳에 노출된 철근 기둥, 나무와 금속을 사용한 붙박이 가구, 엘리베이터, 버튼 하나로 집 안 전체의 조명을 조정할 수 있는 완벽한 시스템까지. 요즘 유명 건축가들이 즐겨 쓰는 건축 언어를 1930년대 건축물인 메종 드 베르에서 발견한다는 것은 실로 경이로운 일이다.

디자인사를 공부하다 보면 전설처럼 전해지는 몇몇 건축물을 만나게 된다. 왜 전설인고 하니 마음대로 가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학교나 공공 건축물, 공동 주택이라면 외관이나 로비라도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 주택으로 지었고 아직도 개인 소유인 건축물은 주인이 문을 열어주기 전에는 구경할 방법이 없다. 책을 통해 상상만 할 뿐.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은 건축가의 기념비적 작품 중에서도 메종 드 베르 Maison de Verre는 단연 ‘전설의 고향’쯤 되는 집이다.
메종 드 베르는 현재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유명 ‘건축 컬렉터’의 파리 살림집으로 쓰고 있다. 개인 소유의 살림집이다 보니 당연히 일반에는 공개되지 않는다. 그림이나 조각이라면 모를까 세상에 건축 컬렉터가 있을까 의아할 수도 있겠다. 건축 컬렉터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다. 역사적, 미술사적으로 가치 있는 건축물은 어느 나라에서나 문화재로 분류하기 때문에 한 번의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 작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린다. 컬렉션의 대상이 건축물이다 보니 한 채를 수집할 때마다 어마어마한 돈이 드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또 오래된 건물들이 그러하듯 보수하고 관리하는 데도 많은 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건축 컬렉션에 드는 비용과 시간, 정성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극소수여서 이런 사람을 친구로 두지 않는 한 그 컬렉션을 직접 감상하기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전문가들도 메종 드 베르를 책에서나 보았지 파리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유럽 예술 전문 방송국인 아르테 ARTE에서 제작한 메종 드 베르의 다큐멘터리가 엄청난 히트를 거듭하고 있는 와중에도 말이다. 그 이름을 알면서도 외관조차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인 데는 또 다른 까닭이 있는데, 그것은 잠시 후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1 유리 블록에 빛이 들어 오면 그 빛은 고스란히 피아노 위에 창틀의 무늬를 아로새긴다. 메종 드 베르의 창틀은 유리 블록 크기에 맞춰 제작한 것으로 창틀이 이렇게 그래픽적일 수도 있구나 하는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기둥과 더불어 메종 드 베르의 현대성을 상징하는 노출 콘크리트는 모두 회색조로 마감했는데 이 역시도 표면에 검은색 띠를 넣어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메종 드 베르는 피에르 샤로 Pierre Chareau가 1927년에 지은 ‘작품’이다. 샤로는 르코르뷔지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등과 동시대에 활동한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로 그의 작품은 유명 디자인 박물관에서 ‘가끔’ 접할 수 있다. 디자인과 건축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역사책에서 그 이름을 접해보았을 거장이긴 하나, 르코르뷔지에처럼 그 이름이 일반 대명사로 취급될 정도로 유명하지는 않다. 건축가나 디자이너로서 그의 능력이 그만큼 못해서가 아니다. 샤로는 그가 한창 활동하던 시기에도 신비주의에 싸인 건축가라는 평을 들었을 만큼 자기 홍보에 능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아니 자기 홍보를 하기에는 여러모로 모자란 인물이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지금 봐도 핸섬하고 지적인 르코르뷔지에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 비해 샤로의 초상은 참으로 실망스럽다. 160cm라는 평균치보다 훨씬 작은 키, 루이 16세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만큼 퉁퉁한 얼굴(그나마 중년 이후부터는 대머리 아저씨가 되었다고 한다)은 유명 건축가라기보다는 옆집 아저씨에 어울리는 용모다. 자고로 건축가와 디자이너는 언변에 능해야 하거늘 그는 말주변도 변변찮았다. 자신의 아틀리에에 샤로의 가구를 들여놓았을 만큼 막역한 친구 말레 스티븐스, 샤로의 건축 현장에 자주 놀러 다니다 급기야 샤로의 아이디어를 자신의 건축물에 차용했다는 비난을 사기도 한 르코르뷔지에가 저서와 강연으로 자신의 이상을 세상에 널리 알린 데 반해 샤로는 평생 그 흔한 저서 한 권 남기지 않았다. 게다가 건물을 짓거나 가구를 디자인하기 위해 필요한 도면이나 설계도 한 장 남기지 않은(그의 친구들은 도면 수정 과정마저도 작품처럼 보관했다) 그는 전문가도 좀처럼 다가갈 수 없는 인물이다. 예나 지금이나 아무리 능력 있는 건축가라 해도 자신의 이상을 펼치기 위해서는 우선 수주를 받아야 한다. 디자이너와 건축가에게 자기 홍보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친구들에 비해 사교성이 한참 부족했던 샤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2 전면의 벽을 모두 유리 블록으로 마감한 진료실. 샤로는 1층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위치해 채광이 좋지 않은 진료실에 유리 블록을 사용함으로써 이 단점을 손쉽게 극복했다. 진료실에 놓인 가구들은 모두 샤로가 만든 오리지널 가구다.
3 원통을 돌리면 빗자루 등 자질구레한 살림을 수납할 수 있는 선반이 나온다. 샤로는 이 원통의 옆쪽으로 나무와 금속을 이용한 붙박이장을 설치해 살림살이를 수납할 수 있도록 했다. 검은색 스틸과 나무, 유리가 조화된 붙박이장은 요즘 주택에 놓아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현대적이다.


메종 드 베르와 샤로의 인연은 작은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젊은 시절 샤로는 영국계 디자인 사무실에서 일했는데, 월급이 변변찮은 탓에 부인 돌리 Dollie(영국 태생)가 영어 과외를 하며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다. 1905년 돌리는 아나 베른하임 Anna Berheim이라는 학생을 가르치게 된다. 열여섯 살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성격과 취향이 비슷했던 아나와 돌리는 곧 친자매 같은 사이가 되었다. 유명 상인의 딸인 아나는 1918년 산부인과 의사이던 장 달사스 Jean Dalsace와 결혼했는데 결혼 후에도 아나와 돌리의 친분은 이어졌다. 게다가 같은 공연을 몇 번씩이나 볼 만큼 음악과 공연을 좋아하던 샤로와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인 장 달사스는 죽이 잘 맞았다. 전시와 공연을 같이 관람하고 바캉스까지 함께 떠났으며, 가족들까지 친하게 지낼 정도로 두 부부는 사이가 좋았다. 바로 이 달사스 부부가 샤로에게 메종 드 베르를 의뢰한 이 집의 원래 주인이다. 장인에게 물려받은 생길리움 거리 Rue Saint-Guillaume 건물을 고쳐 1층은 병원으로, 2・3층은 살림집으로 만들고자 한 달사스 부부는 사무실을 낸 지 얼마 안 된 샤로에게 과감히 설계와 공사를 맡겼다. 생길리움 거리의 건물은 담으로 둘러싸인 현관을 지나고 중정을 거쳐야 본 건물이 보이는 전형적인 18세기 건축물이다. 그래서 지금도 메종 드 베르를 보기 위해서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바로 이 때문에 지금껏 그 외관조차도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1927년에 공사를 시작해 1931년에 완공한 메종 드 베르는 사실 그 시대에 지은 건물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현대적이다. 1927년이라면 서울이 ‘경성’이던 때로, 동아일보 사옥(현 일민미술관)을 비롯해 정동과 명동에 몇몇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던 시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창 서양 문물이 들어오던 그 시대에 어떻게 이런 건물을 지었을까 싶다. 콘크리트로 지은 벽체, 시원스럽게 집을 가로지르는 강철 기둥, 빛을 은은하게 투과하는 반투명 유리 블록. 샤로는 당시 건축가들 사이에서 막 소개되기 시작한 신소재를 과감히 집 안에 들였다. 더욱 놀라운 점은 메종 드 베르가 외관만 현대적인 집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집 안 어디에서건 불을 켜고 끌 수 있는 자동 버튼, 엘리베이터, 중앙 집중식 난방, 공기 여과 시스템, 금속과 나무를 이용한 수납장과 붙박이 가구, 유리 벽을 이용한 공간 분할 등 지금 보아도 미래적이고 기능적인 구상이 집 안 곳곳에 녹아 있다.


1 살림집으로 설계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도르래가 달려 있어 손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가변적이고 편리하지만 어딘가 동화 속의 계단을 연상시킬 만큼 서정적이기도 하다. 거대한 대리석 계단이 당연시되던 당시에 이 나무 계단은 현대적 주거에 대한 샤로의 생각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2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보조 계단은 다른 장식 하나 없이 노출 콘크리트와 철망만으로 처리했다. 그런데도 아래쪽부터 휘어지는 계단 모양이나 그 계단 모양을 강조해주는 격자 모양의 철망에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장식을 위한 장식을 반대한 샤로에게 집의 아름다움이란 아주 본질적인 건축 구조의 아름다움이었다.



3 환자 대기실과 진료실을 잇는 복도에는 심란한 환자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샤로만의 처방을 곁들였다. 성인 어른의 눈높이에 맞춰 가로로 긴 창을 낸 것. 이 창들은 복도를 따라 이어지면서 긴 그림띠를 만들어내는데, 창 너머로 보이는 정원의 초록빛 때문에 눈이 시원하다. 이 그림띠가 빛을 따라 움직인다는 신기한 느낌이 들도록 유리 블록과 기하학적 창틀, 그리고 경쾌하게 이어지는 철근 기둥을 연이어 배치했다.

여러 디자인 전시를 통해 이미 촉망받는 디자이너로 손꼽히던 샤로가 생길리움 거리에서 문을 닫아 걸고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는 소문은 당시 건축가들과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화젯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메종 드 베르가 어떤 집이 될 것인지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건축가 스스로 콘셉트가 어떻고 기능이 어떤지 마구 떠벌리는 스타일도 아닌 데다, 혁명적이라 할 만큼 새로운 집이었기 때문이다. 르코르뷔지에와 말레 스티븐스를 따라 여러 차례 공사장을 방문한 건축 전문 잡지의 편집장은 당시 몇몇 공장에서나 쓰던 유리 블록이 집 벽면 전체를 둘러싸는 모습을 보고 아연실색했다고 한다. 재미난 사실은 유리와 강철, 금속 같은 차가운 소재를 쓴 데다 당시로서는 최첨단을 달리는 기능을 잔뜩 집어넣은 이 집이 살갑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초현대식이라고 부르는 공간에 인간성을 불어넣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당장 우리 주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지 않은가. 인텔리전트 빌딩이라는 기묘한 이름을 단 건물에 들어가보면 괜히 움츠러든다. 편안하고 안락한 정서적 즐거움이 거기에는 없다. 샤로는 비록 사교성은 부족했지만 얼마 안 되는 친구와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공사를 맡긴 아나는 낮에는 진료에 매달려야 하는 남편을 대신해 매일 샤로의 공사장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여기는 이렇게, 저기는 저렇게 그야말로 건축주가 건축가와 머리를 맞대고 지은 집인 것이다. 그릇을 수납하기에 좋은 기능성 붙박이장, 빨래 건조대가 숨어 있는 벽체, 빗자루와 청소 도구를 보관하는 둥근 금속 수납장, 문을 닫으면 감쪽같이 숨어버리는 이동식 벽체를 단 사무실 등 아나와 샤로는 사는 사람을 위한 편의 시설이 가득한 집을 지었다.


4 집에 필요하지 않은 일체의 자잘한 장식이 없음에도 이 집은 견고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샤로는 모든 가구가 건축물의 일부가 되는 집을 꿈꾸었다. 이 때문에 집 안의 작은 가구 하나까지 모두 설계도에 그려 넣었을 만큼 가구 제작과 배치에 신경을 썼다. 시스템 가구 형식으로 설치한 책장과 수납장은 모두 착상부터 제작까지 샤로의 손을 거친 것으로 필요할 때는 이동과 조합이 가능하도록 바퀴가 달려 있다.

빛이 쏟아져 내리는 살롱은 애당초 아마추어 연주가인 장 달사스를 위해 설계했다. 그 스스로도 음악을 좋아한 만큼 샤로의 배려심은 여느 건축가를 넘어선다. 친구에게 언제든 무대에서 연주하는 듯한 기분을 선사하기 위해 샤로는 집 바깥에 대형 스포트라이트를 달았다. 스포트라이트에 불이 들어오면 그 강렬한 빛이 유리 블록을 통과해 기나긴 그림자와 무대 조명처럼 은은하고 밝은 빛을 피아노 주변에 드리운다. 진료실과 환자 대기실 사이를 잇는 긴 복도는 또 어떤가.
샤로는 유리와 철근이라는(도저히 불가능하리라 생각되는) 재료로 옛 목조 건축물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정서적 아름다움을 창조해냈다. 유리 벽 한가운데에는 딱 사람의 눈높이에 맞는 창이 나 있다. 정원에 면한 창은 가로로 길게 이어져 대기실에서 진료실까지 가는 환자의 발걸음과 함께한다. 혹시 중한 병이 나지는 않았는지 조마조마한 환자의 마음은 부드러운 빛과 창밖의 초록으로 다독여진다. 책을 좋아하는 달사스 부부를 위해 설계한 붙박이 책장은 검은 칠을 한 철제지만 그 어떤 유명 도서관의 책장보다 우아해 보인다.


1 정원에서 바라본 메종 드 베르 외관. 메종 드 베르는 당시의 건축물이 그러하듯 집 뒤편에 정원이 있다. 유리 블록이 고스란히 노출된 외관은 지금 봐도 그 내부가 궁금할 만큼 혁신적이다. 하얀색과 검은색, 오렌지색의 조합은 그래픽적인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2 집 안 유리창은 모두 자동 버튼과 수동 도르래로 열고 닫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접히고 열리는 창과 창은 서로 겹쳐 보이면서 안을 들여다보는 공간적 재미를 주는데 여기에 검은색과 오렌지색을 더해 활기를 불어넣었다. 창 사이로 보이는 바깥 정원의 초록이 어딘지 모르게 일본식 주택을 연상시킨다.
3 현관에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메종 드 베르의 외관은 단연 압도적이다. 전면에 설치한 두 사다리는 집 안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를 위한 것으로 공장에서나 쓰던 철근 기둥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기능적 건축 구조를 외관에 모두 노출한 샤로의 아이디어는 요즘의 현대 건축물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샤로는 메종 드 베르가 완공된 후에도 ‘자신의 작품’을 살뜰히 보살폈다. 달사스 부부의 첫딸이 태어났을 때는 집 안에 놀이방과 가구를 만들어주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보다 사람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였다. 막상 들어가 살아보니 집이 좀 어두운 것 같다는 건축주의 불평을 듣고 당장 조명 전문가와 함께 건축주를 찾아왔을 만큼 사는 사람을 위한 건축, 사람을 위한 가구를 만들었다. 샤로와 함께 건물을 지어본 만큼 샤로의 진정성과 재능을 깊이 이해한 달사스 부부가 샤로의 후원자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샤로는 아나의 대고모인 헬렌 베른하임 Helene Bernheim, 사촌인 조르제트 레비 Georgette Levy, 삼촌, 오빠 등 달사스 집안의 주택 레노베이션과 가구 디자인을 도맡았다.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인연을 성의를 다해 가꾼 샤로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일화는 너무나 많다. 달사스 부부에게 소개받은 후 샤로의 작품을 도맡아 제작한 태피스트리 장인 장 루카 Jean Lucat,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동반자였던 달사스 부부, 그리고 어눌한 글 솜씨에도 불구하고 수십 통의 연애편지를 남긴 아내 돌리. 진정 위대한 건축물은 어떤 것일까? 역사적 평가, 혁신성, 창조성, 건축사적 가치…. 메종 드 베르에서 느낀 위대한 건축이란 결코 그런 수사가 아니었다. 사람을 배려하는 집, 사람을 위한 사람이 사는 집, 그리고 그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건축가의 마음이 담긴 집이 위대한 건축이 아닐까. 메종 드 베르가 우리에게 보여주듯이 말이다.

(오른쪽) 샤로의 후원자이자 메종 드 베르의 주인이기도 한 달사스 부부 사진. 이들은 혁신적인 집에서 평생을 보내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샤로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 남았다. 장 달사스는 당시 파리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산부인과 의사로 명성을 날렸다.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