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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서울 리빙 디자인 페어 -자연이 가득한 집 첼시 플라워 쇼와 햄프턴 코트 팰리스 플라워 쇼
세계에서 정원과 원예 문화가 가장 발달한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영국이다. 매해 봄부터 가을까지 영국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플라워 쇼가 수시로 열리고, 사람들은 그 쇼를 보며 열광한다. 얼마 전 성황리에 막을 내린 첼시 플라워 쇼와 햄프턴 쇼를 지상 중계한다.


자갈 정원을 콘셉트로 구성한 데일리 텔레그래프 후원의 쇼 가든 출품작은 올해 경쟁작 중 최고의 쇼 가든으로 선정됐다.

대체 ‘플라워 쇼’가 뭐기에 그간 볼 수 없던 영국 사람들을 죄다 플라워 쇼에서 보는 듯하다. 5월부터 10월 사이, 영국 곳곳의 크고 작은 도시에서 플라워 쇼가 수도 없이 개최된다. 그 많은 플라워 쇼에 사람들이 얼마나 참석할까 싶지만, 실제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 붐비는 것은 우리 눈에는 진기한 풍경일 따름이다. 영국인은 왜 그토록 플라워 쇼에, 또 정원에 빠져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을 찾으려면 직접 플라워 쇼 현장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빠른 법. 해마다 5월의 마지막 주에 5일 동안 ‘첼시 플라워 쇼 Chelsea Flower Show’가 열리고, 7월 두 번째 주 5일 동안 ‘햄프턴 코트 팰리스 플라워 쇼 Hampton Court Palace Flower Show’가 개최된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이 두 플라워 쇼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관람객이 가득했다.
플라워 쇼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보기 전에 우선 영국의 왕립원예학회(Royal Horticultural Society)를 알아야 할 듯하다. 이니셜로 RHS라 하는 이 단체가 없었다면 아마 영국의 정원 문화는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으로 남달리 정원과 원예에 관심이 많던 앨버트 공 Albert Prince은 1804년에 자신을 따르는 귀족을 모아 왕립원예학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원예와 정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단체? 조금은 의외의 영역인 이 분야가 왜 이렇게 귀족을 중심으로 고급스러운 취미로 또 학문으로 발전했는지, 고대 그리스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1 첼시 플라워 쇼를 촬영 중인 BBC.


2 원예 부문에서 골드 메달을 수상한 채소 전시.

플라톤의 제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와 동시대에 산 철학자 테오파라스투스 Theophrastus(기원전 371~287)는 흔히 ‘식물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친 스승 중 한 명이기도 했는데, 식물학 연구에 빠져 있던 스승을 위해 알렉산더는 나라를 정복할 때마다 그 나라의 식물을 채집해 본국으로 보내곤 했다. 테오파라스투스는 이렇게 수집한 식물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함으로써 식물학의 전통을 만들어갔다. 이런 전통은 훗날 르네상스 시대, 식물원의 원형으로 여겨지는 세계 최초의 식물원인 이탈리아 파두아 Padua와 피사 Pisa의 탄생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19세기 영국의 왕립원예학회로까지 발전한 셈이다.
RHS는 지금도 영국의 정원 문화와 원예 문화를 선도하는 가장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정원과 원예를 영국 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분야로 자리 잡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플라워 쇼의 개최를 빼놓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첼시 플라워 쇼와 햄프턴 코트 플라워 쇼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한 꽃 박람회나 원예 쇼가 아니라 가든 디자인 쇼 garden design show’라는 점이다. 가든 디자인 쇼는 말 그대로 가든, 즉 정원의 디자인을 전문 디자이너가 구성하고 심사를 통해 선정한 다음, 직접 시공한 뒤 순위를 매겨 관람객에게 선보이는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분야지만 영국에는 정원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이 많다. 이 가든 디자이너들은 소설가나 시인을 지망하는 신예 작가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신문이나 문예 잡지의 ‘신춘문예’에 작품을 공모하는 것처럼 플라워 쇼를 통해 디자이너로 등단한다. 물론 경쟁이 치열하다. 응모하는 디자이너가 많아서 경쟁자가 보통은 3배수에서 5배수에 달한다. 일단 디자인 응모에 당선된 디자이너들은 플라워 쇼 기간에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받는다. 이때 받은 공간에 디자이너는 시공자의 도움을 얻어 직접 정원을 꾸민다. 이 정원은 모조품이나 세트를 만드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 바닥과 벽을 쌓고, 식물을 심는 진짜 정원 만들기이므로 많게는 10억 원 이상, 적게는 5천만 원 정도의 공사비가 든다고. 이 공사비를 충당하기 위해 디자이너는 스폰서의 후원을 받아 그 스폰서의 이름으로 출품하기도 한다. 

3 가든 디자인은 건축물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쇼 가든 부문에서 골드 메달을 받은 작품.


4 호주의 정원을 선보인 작품.


5 각기 다른 종의 라벤더 출품작.

그럼 어떻게 가든 디자인에 공모하는 걸까? 우선 디자이너는 어떤 크기의 정원에 응모할지를 정해야 한다. 첼시 플라워 쇼와 햄프턴 코트 플라워 쇼는 가든 디자인 공모 분야의 형식은 매우 유사하지만 규모와 주어진 주제가 약간 다르다. 첼시 플라워 쇼의 경우 크게 세 가지 정원 타입의 가든 디자인을 공모한다. 주로 크기에 따라 분류하는데, 주제에 약간의 제한을 둔다.
쇼 가든 show garden 가장 큰 정원으로 가로 22m×세로 10m의 사각형 공간에 정원을 디자인한다. 가장 큰 규모로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기도 하지만, 특정 주제 없이 작가 정신을 그대로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자유로우면서도 힘든 정원으로 여겨진다. 어번 가든 urban garden 도심 속의 정원이라는 한정된 주제를 다룬다. 크기는 7m×5m로 도심 환경이라는 제약을 잘 이해하는 디자인이어야만 한다. 아티잔 가든 artinzan garden 4m×4m의 공간에서 예술성이 가득 담긴 정원 디자인을 보여줘야 한다. 따라서 규모는 작지만 가장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끼가 가득한 정원이다. 이 세 가지 정원 타입 카테고리에 각각 10개의 출품작이 선보여, 총 3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정원 디자인이 매해 첼시 플라워 쇼를 통해 소개된다.
햄프턴 코트 팰리스 플라워 쇼(이하 햄프턴 플라워 쇼)는 첼시 플라워 쇼가 세계적인 쇼로 자리 잡은 뒤, 너무 붐비는 첼시의 체증을 해소하기 위해 탄생한 일종의 자매 쇼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가든 디자인 쇼 분야와 출품 방식이 거의 첼시 플라워 쇼와 흡사하다. 하지만 첼시 플라워 쇼가 2백 년 이상 쌓아온 전통에 좀 더 중점을 둔다면 햄프턴 플라워 쇼는 좀 더 실험 정신이 강한 작품을 선호하고, 학생들의 작품을 올리는 등 파격적인 구성을 선보인다. 특히 매우 신선한 기획전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한데, 올해에는 ‘셰익스피어의 정원’이란 주제를 총 여섯 명의 디자이너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주제를 따온 정원을 독특한 형태로 선보였다. 이 기획전은 해마다 주제가 바뀌고, 공모와 심사를 통해 디자이너를 선발한다. 결론적으로 첼시와 햄프턴 모두 비슷한 정원 쇼이지만 햄프턴 플라워 쇼가 신예 작가 발굴에 초점을 맞춘 반면, 첼시 플라워 쇼는 기성 작가들이 좀 더 새롭고 참신한 자신의 정원 디자인 트렌드를 보여주는 자리인 셈이다. 이 가든 디자인 분야는 각 분야별로 출품작끼리 경쟁을 거쳐 금상, 실버길트 silver gilt, 은상 그리고 동상으로 순위를 가른다. 물론 입상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플라워 쇼의 백미가 가든 디자인에 있기는 하지만, 원예의 뿌리 깊은 전통 역시 압도적이다. 주로 대형 천막에서 원예 쇼가 열리는 데, 식물을 재배・생산하는 업체(nursery)는 해마다 자신들이 새롭게 개발한 품종을 이 플라워 쇼를 통해 출품한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영국의 첼시 플라워 쇼를 통해 소개되는 신품종 식물은 대략 2백여 종에 이른다고. 물론 이런 원예 재배자들은 전시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판매도 병행한다.


분홍 수도꼭지가 시선을 끈 햄프턴 플라워 쇼 출품작.


1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골드 메달을 수상한 태국 정원.


2 사막 기후의 정원 디자인.

원예뿐만 아니라 꽃꽂이 분야도 플라워 쇼의 명성에 걸맞은 화려한 쇼를 펼친다. 가든 디자인 공모를 통해 새로운 가든 디자이너가 탄생한다면, 플라워 어랜지먼트 flower arrangement는 신예 플로리스트의 등용문이다. 첼시 플라워 쇼에 비해 장소가 훨씬 더 넓은 햄프턴 플라워 쇼에서는 좀 더 다양한 플로리스트들의 작품이 선보였고, 특히 정원 디자인과 꽃꽂이를 결합한 듯한 형태의 식물 구성법이 선보여 큰 관심을 끌었다.
원예, 가든 디자인, 꽃꽂이 공모전 외에 두 플라워 쇼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붐비는 곳은 원예용품을 판매하는 부스다. 부스 안에는 남다른 정원 패션을 보여주는 예쁘고 화려한 정원용품이 가득하고, 좀 더 색다르고 남들이 갖고 있지 않는 정원용품을 구입하거나 아이디어를 얻고자 하는 이들로 늘 북적인다.
첼시나 햄프턴 플라워 쇼 모두 안타깝게도 가든 디자인, 원예, 꽃꽂이 분야를 통틀어 아직까지 한국인의 출품작이 없다. 출품작이 없으니 당연히 입상작도 없다. 더욱 약이 오르는 건 이미 일본은 10년 전부터 정원 디자인 분야에 입성했다는 것. 해마다 한두 작품씩, 그것도 골드를 거머쥐는 일본 가든 디자이너의 작품을 보는 일은 같은 동양인으로서 서양 정원 문화 속에 동양의 멋을 보여준다는 흐뭇함과 더불어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올해 첼시 플라워 쇼에서는 말레이시아 디자이너의 정원이 말레이시아 관광청의 후원을 받아 가장 큰 쇼 가든 경쟁에 참여해 당당히 골드 메달을 받았고, 햄프턴 플라워 쇼에서는 태국 디자이너의 정원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출품해 골드 메달을 받았다.
그 나라를 알리는 문화 콘텐츠 분야가 다양하고 많지만 세계적인 플라워 쇼를 통해 우리의 정원 문화를 알리는 것만큼 고급스럽고 예술적인 문화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나 역시 가든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한국 디자이너의 출품작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3 서스테이너블 가든 수상작.


4 콘셉슈얼 정원 부문 수상작으로 실험 정신이 돋보인다.


5 플라워 쇼는 정원과 원예 그리고 그 전반의 문화 쇼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쓴 오경아 씨는 현재 영국 유니버시티 엑식스 University of Essex의 리틀 칼리지 Writtle College에서 가든 디자인 박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식물원 중 하나인 영국 왕립식물원의 큐 가든에서 1년 동안 인턴 정원사로 지내기도 했지요. <소박한 정원>(디자인하우스)을 출간했고, 2009년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오경아의 키친 가든’을 선보였습니다.

구선숙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