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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거실은 어떤 풍경이었을까? 아르데코vs. 바우하우스
20세기 초 유럽에는 부자들이 애용하는 명품 가구와 대중을 위한 모던 가구가 공존했다. 국제갤러리 신관에서 열린 <아르데코>전과 PKM 트리니티 갤러리의 <바우하우스&모던 클래식>전은 20세기를 주름잡던 유럽 가구 디자인의 상반된 두 스타일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클래식과 모던 사이, 아르데코 Art Deco
상어 가죽을 씌운 책상에 앉아 차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중년의 남성들. 그 너머로 우아하게 화장을 한 여인이 곡선이 아름다운 벨벳 카우치에 비스듬히 누워 책을 읽고 있다. 상아로 만든 조명등, 결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마카사 나무 장식장, 그리고 마티스의 그림 한 점. 이는 1930년대 한 프랑스 귀족의 거실 풍경이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면서 기계 문명과 더불어 예술이 꽃피우기 시작했다. 당시 부자들은 가구, 소파, 그림 등 장식 미술 컬렉션을 통해 자신의 부를 과시했는데, 그 중심에 아르데코가 있다.

1 <아르데코 마스트터피스>전을 기획한 앤티크 딜러 정재웅 씨. 지난 2년간 프랑스와 미국을 오가며 진귀한 작품을 모았다. 사진은 에밀 자크 룰만의 희귀작들을 디스플레이한 공간이다.

아르데코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부터 2차 세계대전 발발 전인 1939년까지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미국에서 유행한 장식 미술 사조를 말한다. 부르주아를 위한 ‘주문 제작 예술’로 화려한 장식미를 선보인 아르누보 Art Nouveau와 달리 피카소로 대표되는 입체파의 영향을 받은 아르데코는 디자인이 심플한 가구와 미술 작품이 주를 이뤘다.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아르데코 마스터피스 Art Deco Masterpieces>전은 장 미셸 프랑크 Jean Michel Frank를 비롯해 에밀 자크 룰만 Emile-Jacques Ruhlmann, 유진 프린츠 Eugene Printz, 도미니크 Dominique, 폴 뒤프레 라퐁 Paul Dupre-Lafon, 마르크 뒤 플랑티에 Marc Du Plantier에 이르기까지 아르데코 디자인의 정수를 보여주는 전시다. “보통의 현대미술 수집가들은 대량 생산을 추구한 바우하우스 가구를 수집한다면, 아르데코 수집가들은 인상주의·입체파 등 정통 회화 작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폰타나, 피카소, 마티스, 자코메티 등의 예술 작품을 공간에 함께 연출했습니다.” 전시를 기획한 앤티크 가구 딜러 빈티지20의 정재웅 대표는 이번 전시를 통해 당대 유럽 상류층의 라이프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2 아르데코 시대의 가구와 어울리는 미술 작품을 함께 배치해 실제 공간처럼 꾸몄다.


기능과 디자인은 하나, 바우하우스 Bauhaus
상판과 다리가 분리되는 테이블, 선반의 위치를 자유자재로 변경해 책상을 겸할 수 있는 시스템 장, 스피커 위치를 원하는 모양으로 바꾸고 바퀴를 달아 이동 가능한 오디오….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지금 우리네 거실 풍경과 다를 게 없다. 현대 가구 디자인의 중요한 모티프로 사용되는 이 모든 게 사실 약 1백 년쯤 전, 1920년대에 시작된 것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1 바우하우스 디자인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특별전 <바우하우스&모던 클래식-사보 컬렉션>전. 사보 임상봉 씨가 독일 유학 시절부터 지난 20년간 컬렉션한 2백여 점의 가구를 선보였다.

우리는 이를 바우하우스 디자인이라 부른다. 바우하우스 디자인은 20세기 전반 독일의 미술 학교 바우하우스를 중심으로 건축, 미술, 가구, 공예 등 예술과 산업 전반에 걸쳐 일어난 디자인 혁신 운동이다. 기능과 경제성을 갖춘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은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며 오늘날까지 대중의 라이프스타일을 지배하고 있다(신문의 레이아웃 역시 바우하우스 디자인의 산물이다). 겨우 14년간, 2백 명이 채 되지 않는 학생으로 운영된 이 작은 미술 학교의 힘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지난 6월 25일부터 7월 20일까지 청담동 PMK 트리니티 갤러리에서 열린 <바우하우스&모던 클래식-사보 컬렉션>전이 그 해답을 알려준다. 독일 바우하우스 운동의 영향을 받은 1950~60년대 유럽과 미국의 의자, 테이블, 소파, 생활용품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로, 더욱 놀라운 것은 모든 제품이 일러스트 작가 사보 임상봉 씨의 컬렉션이라는 점이다. PKM 트리니티 갤러리 박경미 관장은 생활 예술 전시를 기획하던 중 평소 눈여겨본 사보 임상봉 씨에게 조언을 구했고, 공동 기획으로 바우하우스 전시를 마련한 것. 임상봉 씨는 “한지에 점 하나를 찍는 것보다 수채화를 그리는 게 오히려 더 쉬울 수 있다”고 말한다. 단순한 것이 더 어렵다는 말. 이것이 바로 그가 바우하우스 디자인을 높이 사는 이유다.

단순하면서도 심플한 미감을 표현한 다이닝 룸.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하고 실용성과 경제성을 제일 먼저 고려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단 한사람을 위한 럭셔리 디자인 Art Deco
거실에 멋진 피카소 그림이 걸려 있다. 하지만 빈 공간이라면 그것은 단순히 갤러리일 뿐이다. 정재웅 대표는 유럽의 정통 수집가들은 보통 가구를 먼저 모은 다음, 이에 어울리는 미술품을 수집했다고 설명한다. 결국 아르데코는 가구부터 조명, 그림까지 토털 맞춤 예술인 셈이다. 그 때문에 전쟁과 전쟁 사이라는 무척 짧은 기간인데도 불구하고 건축부터 순수 미술, 영화, 패션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전반적인 영역에 영향을 끼쳤다(패션계에서는 코코 샤넬을 예로 들 수 있다!). 아르데코의 가장 대표 인물은 룰만. 룰만은 한 사람만을 위한 최고의 가구 컬렉션을 보여준다.

1 마르크 뒤 플랑티에가 디자인한 콘솔. 오크 원목 소재를 얇은 가죽으로 커버링한 제품으로 마치 나무에 페인트를 칠하고 유약을 바른 것처럼 정교하고 매끈하다.


2 장-미셸 프랑크의 공간. 알베르토 아디에고 자코메티 형제와 협업해 생활 가구와 조각품 등을 선보인다.
3 상아로 만든 조명등. 이국적이고 값비싼 재료로 만든 장식품은 아르데코가 상류층의 문화양식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4 룰만이 디자인한 콘솔 겸 책상. 윗부분의 잠금장치를 풀면 상판이 내려와 책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여인의 몸을 형상화한 듯한 아름다운 곡선이 돋보이는 카우치 소파와 테이블은 그의 디자인 세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아이템이다. 당시 룰만의 가구는 고급 승용차 4대 값을 훌쩍 넘을 정도로 고가였다고 한다. 워낙 유명세를 탄 덕에 인도의 왕자가 공주를 위해 가구 컬렉션을 만들어달라고 했을 정도. 20세기 초현실주의 조각가로 유명한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품과 동생 디에고 자코메티의 생활 가구 또한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옻칠 공예로 유명한 존 두넌의 화병도 전시해 우리나라의 옻칠 공예 작품과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할 듯. 아르데코 스타일은 현대 모더니즘의 선구적인 위치에 있다. 장식은 정제되고 소재는 더욱 고급스러워 하나만으로도 공간에 은은한 기품을 더해주는 아이템이다. 때문에 모던 럭셔리를 대표하는 아르데코 작품은 트렌드와 상관없이 컬렉터 사이에서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몇몇 컬렉터가 소장한 희소성 높은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전시는 8월 15일까지 진행된다. 문의 02-733-8449


생활이 곧 예술, 대중을 위한 디자인 Bauhaus
이번 전시는 20세기 바우하우스 운동 이후 유럽인의 생활상이 그대로 묻어나는 공간을 연출한 것이 특징이다. 그 속에서 마르셀 브로이어, 미하일 토넷, 한스 웨그너, 조지 넬슨 등 바우하우스 디자인을 대표하는 유명 디자이너들의 생활 속 작품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표준화된 것을 만드는 기계는 사람을 육체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훌륭한 수단이며, 대량 생산한 것은 손으로 만든 것보다 값도 싸고 품질도 좋다.” 바우하우스의 디자이너이던 발터 그로피우스의 말이다. 대중을 위한 합리적인 가격, 당시에는 혁신적이던 단순하고 장식성을 배제한 가구들은 지금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견고하기까지 하다. 전시장에서는 여전히 작동되는 아킬레 가스트그리오니의 레코드플레이어를 만날 수 있었다.

1 임상봉 씨는 ‘작동하지 않는 제품’은 바우하우스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아킬레 가스트그리오니의 레코드플레이어는 지금도 사용할 수 있는 제품. 양옆에 달린 스피커를 턴테이블 위로 올려 연출할 수 있는 디자인이 그의 일러스트처럼 유쾌하다.
2 유행에 상관없이, 어떤 인테리어에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은 바로 ‘선반’이다. 공간에 따라 선반의 갯수와 디자인을 조절할 수 있다.



3 비코 마지스트레티의 컬러 아이템으로 연출한 유니크한 키즈룸.
4 토넷 암체어는 1940년대 작품.


오디오, 라디오, 조명등, 선풍기 등 생활 가전제품은 모두 그가 유학 시절에 실제 사용하던 것들이다. 그는 스타일에 상관없이 어떤 가정에서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선반’을 추천한다. 덴마크 가구 디자이너 폴 케도비우스의 선반은 티크목으로 제작한 선반 지지대로 책장의 다양한 조합이 가능해 기능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손색이 없다고. 선반의 다양한 조합으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일반 책장 선반에 폭이 넓은 선반을 배치하면 책상처럼 연출할 수 있다고 설명을 덧붙인다. “독일 사람들은 물건을 이해하면서 공간을 꾸밉니다. 주방에는 식탁 옆에 사이드보드를 두어 장식장 겸 그릇장으로 활용하죠. 그 옆에는 공간을 덜 차지하는 다리가 날렵한 스탠드 조명등을 세우고요.” 평소 ‘눈으로만 보는 전시는 NO’라고 말하는 임상봉 씨. 가장 중요한 것은 앉아보고, 느껴보고, 실제 경험하는 것이다. 스틸 프레임이 견고한 에곤 아이어만 체어는 실제 앉아보니 무척 편안하다. 1백 년이 지나도 거뜬한 디자인,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에코 프로덕트가 아닐까 싶다. 문의 02-515-9496


이지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