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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백가기행] 문필가의 글방 休休山房
전남 장성군 서삼면 추암리 백련동 축령산 자락에 자리한 ‘휴휴산방’은 이 칼럼의 필자인 조용헌 씨의 글방이다. 글을 쓰기 전에 편백나무 숲을 산책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돌아와서는 뜨거운 구들장에 누워 긴장을 푼다. 주변의 산세와 조화를 이루는 15평짜리 소담한 황토 집, 그가 20년 넘게 찾아다니다 구한 ‘조용헌을 위한 명당’이다.


황토로 짓고 양철 지붕을 얹은 휴휴산방에 조용헌 씨가 앉아 있다. 그가 선몽을 꾸고 구한 이 집은 너무 드러나지도 지나치게 남루하지도 않는 그가 생각하는 ‘글방’의 조건에 부합하는 집이다.

생각이 공간을 지배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공간이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전자는 당나라의 시인 유우석 劉禹錫의 ‘누실명 陋室銘’에 잘 나타나 있다. 자신의 비좁고 누추한 거처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비록 초라할망정 거기에 빛나는 인물이 살고 있으면 이때는 누실 陋室이 누실이 아니다는 말이다. ‘산부재고 유선즉명 山不在高 有仙則名’(산이 높다고 전부가 아니다. 그 산에 신선이 살아야 명산이고), ‘수부재심 유용즉령 水不在深 有龍則靈’(물이 깊다고 전부가 아니다. 거기에 용이 살아야 신령한 곳이다)이 그 뜻이다. 여기에서 신선과 용은 그 공간을 빛내주는 주체다. 인물이 살아야 그 공간이 빛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자도 ‘군자거지 하루지유 君子居之 何陋之有’라며 그 소감을 피력한 바 있다. ‘군자가 거처하는 데 어찌 누추함이 있겠는가?’ 군자가 살기 시작하면 아무리 누추한 곳이라고 그 누추함이 밝음으로 변한다. 그러나 군자가 흔한 것은 아니다. 신선이 아니고, 용이 아닌 일반 보통 사람의 경우는 또 어떤가? 공간이 거기에 사는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인생에 달관한 사람은 어떤 장소에 살든 상관 없지만, 달통하지 못한 범부는 어느 공간에 사느냐에 따라 그 생각이 좌우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숲이 우거진 산속에 살다 보면 따듯하고 밝은 마음이 생기고, 물이 있는 호수 옆에 살면 마음이 차분해져서 지혜가 솟아날 수 있다. 그러니 서울의 성북동과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한남동의 집값이 비싼 것 아니겠는가! 인간이 어느 장소를 택해 깃들일 것인가는 대단한 문제다. 이 문제를 끝까지 천착한 문파가 바로 풍수가 風水家다. 풍수는 인간과 자연의 궁극적 窮極的 조화 調和를 추구한 사상 체계다. 동양 사상의 모든 것이 이 풍수에 녹아 있다. 위로는 천문 天文에서, 아래로는 지리 地利, 그리고 인간에 대한 문제인 인사 人事가 모두 풍수에 들어 있다. 30년 가까이 동양 사상을 연구하다 보니 풍수를 모르면 동양 사상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동양 사상에서 풍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풍수를 모르면 자연도 모르고, 자연을 모르면 궁극적 평화에 도달하기도 어렵다. 풍수를 알아야 자연을 보는 법을 알 수 있다.


1 풍경이 달린 양철 지붕, 황토 벽, 돌을 쌓아올린 굴뚝. 소박한 글방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2 한번 장작을 지펴 불을 때면 온기가 사흘간 유지되는 황토방. 20cm 넘는 두꺼운 돌 위에 소금과 솔잎을 깔고 구들장을 만들었다.
3 여름용 글방의 바닥재는 향기로운 편백나무.
4 앞마당 소나무 아래 마련한 물확.


풍수학이 내린 결론은 간단하다. 바로 명당 明堂이다. 명당을 찾아서 거기에 집 짓고 살면 된다. 그렇다면 어떤 곳이 명당인가? 무릇 명당이란 일단 거기에 살면 사람이 건강해져야 한다. 그다음에는 영성 靈性이 밝아져야 한다. 명당은 건강과 영성이다. 영성은 뭔가? 자유다. 영성이 밝아질수록 자유가 확대된다. 영성과 자유는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식으로 이야기하면 명당에 살면 구원에 가까워진다.
문제는 이러한 명당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필자도 20년 동안 명당을 찾아 돌아다녀봤지만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터가 있으면 주인이 팔지를 않고, 마침 내놓더라도 너무 비싼 가격을 불러서 살 수가 없고, 이 터는 이 점이 장점인데, 저 점이 단점이라는 게 눈에 들어오고….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온전한 게 없다. 그래서 명당을 자기 손에 넣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불교의 스님들도 자기 토굴 터를 찾아 수십 년을 헤맨다. 대개 20~30년을 헤매야 자기에게 맞는 토굴 터 하나를 마련할 수 있다고 한다. 어떤 스님 말씀으로는 자기에게 맞는 토굴 터를 확보하면 그때부터 공부의 반절은 된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한다. 그만큼 터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자기에게 맞는 집터는 어떻게 구하는가? 어떻게 그 장소가 명당인지를 확인한단 말인가? 이 같은 의문에 대한 필자 나름의 해답은 두 가지다. 우선 그 장소에서 잠을 잘 수 있으면 한번 자봐야 한다는 것이다. ‘백 커피가 불여 일숙 不如 一宿’이다. 남녀 간에 백 번 커피를 마셔봐야 한 번 자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잠을 자고 나서는 숙면을 취했는가가 관건이다. 깊이 잠들고, 자고 난 후 몸이 개운하면 그곳은 나에게 맞는 터 또는 명당이라 볼 수 있다. 반대로 몸이 개운하지 않고, 꿈자리가 사납다면 나와 인연이 있는 터가 아니다. 몸의 피로는 밤에 잠을 자면서 푸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따라서 숙면이야말로 건강의 첩경인 것이다.

아파트가 왜 문제인고 하니 밤에 숙면을 취하기 어렵고, 자고 나도 몸이 찌뿌드드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년 이후에는 고층 아파트가 몸에 안 좋은 것이다. 명당 고르는 또 하나의 방법은 꿈이다. 자기에게 인연이 있는 부동산 또는 집터, 건물은 대개 사전에 선몽 先夢이 있다. 그 집터를 보기 전이나 보고 난 후에 특별한 꿈을 꾼다. 돌아가신 조상이 나타나서 어떤 물건을 준다거나, 똥이 보인다거나, 때로는 커다란 구렁이가 나타난다거나 하는 꿈이다. 사람에 따라 이런 꿈은 천태만상이다. 반대로 불길한 꿈도 있다. 어떤 집이 나왔다고 해서 보고 왔는데, 그날 밤 꾼 꿈에 좋지 않은 상징이 나타나면 그 집은 포기하는 게 좋다. 물론 좋은 꿈을 꾸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사는 것이 좋다. 그 꿈이 좋은 것인지, 나쁜 꿈인지를 판별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꿈을 꾸고 나서 기분이 좋고 마음이 밝으면 좋은 꿈이고, 어둡고 찜찜하면 나쁜 꿈이다. 명당 고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잠을 자보고 그 느낌을 보는 것이고, 꿈에 어떤 메시지가 있는가를 따져보는 것이 그것이다. 통상 이런 예지몽은 남자보다는 여자가 꿀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남자보다 여자가 술 담배를 적게 하기 때문에, 화면발이 잘 받는다. 그래서 큰 사업을 하는 오너의 부인들은 대개 영몽 靈夢을 잘 꾼다. 중요한 입찰이나 부동산을 매입하기 전에 부인들이 꿈을 꾸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았다. 회사의 기획실장이 제아무리 기획서를 꼼꼼하게 올리더라도, 부인의 꿈이 좋지 않으면 그 건은 불발로 끝난다. 하물며 명당은 땅속에 영기 靈氣가 뭉쳐 있기 때문에 그 터가 거기에 맞는 사람을 부른다. 사람이 터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터가 사람을 고른다고나 할까. 하지만 너무 센 터에 보통 사람이 들어가면 손해 보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물각유주 物各有主’(물건에는 각기 주인이 따로 있다)다.

5 당호는 쉬고 또 쉰다는 뜻의 ‘휴휴산방’. <벽암록>의 글귀에서 따왔다.

전남 장성군 서삼면 추암리 백련동 축령산 자락에 있는 휴휴산방은 필자가 구입하기 전에 선몽이 있었다. 꿈에 “여기가 네 집이다”라는 음성이 들렸고, 깨고 보니 기억에 선명하게 남았다. 영몽은 깨어 난 후에도 잊지 않는다. 그 꿈을 꾼 다음 날 아는 사람으로부터 조그만 흙집이 하나 나왔으니 보러 가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내심 꿈도 비상하던 참이라 무조건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가서 보니 꿈에 나타난 장면과 흡사했다. 네모진 방이 그랬고, 집 뒤로 난 산책길이 꿈에서 본 그대로였다. 그때가 2005년인데, 당시 필자는 여기저기에 원고를 너무 많이 써서 몸에 과부하가 걸린 상태인지라 절실하게 쉴 곳이 필요했다. 몸을 편안히 쉬기 위해서는 장작을 때는 구들장이어야 좋고, 집의 재료는 되도록이면 시멘트를 적게 사용한 황토로 지은 집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집 뒤로는 1~2시간 남짓 산책을 할 수 있는 산길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축령산 자락의 이 황토 집은 필자의 요구 조건에 정확하게 맞는 집이었다. 더군다나 지붕의 재료도 양철이었다. 양철 지붕은 소박한 느낌을 준다. 글을 쓰는 문필가의 글방은 간단하고 번다한 느낌이 없어야 한다. 집이 주변 터를 누르는 느낌을 주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그 집이 너무 초라하게 보여도 안 된다. 주변의 산세와 눈에 드러나지 않게 조화를 이루면서 지나치게 남루서해도 안 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글방’의 개념이었다.

집을 구입한 뒤에 이 집의 당호 堂號를 휴휴산방 休休山房으로 정했다. <벽암록 碧巖錄>의 ‘휴거헐거 철목개화 休去歇去 鐵木開花’(쉬고 또 쉬면 쇠로 된 나무에 꽃이 핀다)라는 글귀에서 따왔다. 쉬는 것이 남는 것이다. 집 뒤편짝이 축령산인데, 이 산은 편백나무 숲이 조림되어 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인공으로 편백을 조림하기 시작했으니 50년가량 된 숲이다. 집 문을 열고 나가 10분 정도 산길을 오르다 보면 쭉쭉 뻗은 편백 숲에 들어갈 수 있다. 우리나라에 흔치 않은 편백 숲은 이국적인 정취를 풍긴다. 우리나라 사람은 소나무를 좋아하지만, 이웃한 일본 사람은 이 편백나무를 가장 좋아한다. 향기가 좋은 데다 나무가 쭉쭉 뻗어서 건축 자재로 활용하기 좋기 때문이다. 1백 년 넘은 오래된 편백 한 그루는 일본에서 도요타 자동차 한 대 값과 맞먹는다. 일본 전통의 온천장 여관인 료칸 旅館, りょかん 욕실에 들어가면 나무로 된 욕조가 있는데, 이 욕조가 바로 편백나무로 만든 것이다. 일본에서는 편백을 ‘히노키’라고 부른다.
글을 쓰기 전에는 이 편백 숲길을 따라 산책을 시작한다. 날씨가 흐릿한 저기압일 때 편백나무에서 향기가 더욱 진하게 풍긴다. 흐린 날 이른 아침 편백 숲에 들어가면 그 나무에서 나온 향기가 세포 속까지 들어온다는 착각을 할 정도다. 편백나무가 피톤치드를 제일 방산 放散한다고 한다. 그래서 흐린 날에는 휴휴산방에 와서 부러 숲 속에 들어간다. 콧속이 상쾌하고, 그다음에는 머리가 상쾌하고, 살갗이 상쾌하고, 나중에는 뼛속까지 시원해진다.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숲 속에서 산책하려고 산다’고 말하고 싶다. 그만큼 축령산 산책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보름달이 뜨는 음력 14, 15, 16일 무렵에는 저녁을 먹은 후 밤 9시 무렵부터 친구 서너 명과 함께 이 숲길을 산책하는 것이 최고의 호사다. 친구와 어울려 2시간 남짓 인생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몸속에 편백 향이 가득 찬다. 방에 들어오면 서로 상대방의 몸에 밴 향기를 맡아보기도 한다. 산책 시간도 나름의 묘미가 있다. 대략 1시간이 지나면서부터 칼럼거리가 정리되기 시작한다. 줄거리가 간단한 칼럼은 1시간 산책이 지나면 뼈대에서 살까지 모두 정리되고, 줄거리가 복잡한 칼럼은 1시간 30분 정도 지나면서부터 살까지 정리된다. 앉아서 줄거리를 떠올리면 머리로 상기가 되지만, 산책을 하면 팔다리를 움직이게 돼 상기증이 안 생긴다. 이 때문에 생각은 걸으면서 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희랍 希臘의 소요학파 逍遙學派가 이래서 생겼구나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왼쪽) 집 뒤의 편백나무 숲길을 산책하는 것이 그에겐 최고의 호사다. 사진 박찬우 
(오른쪽) 조용헌의 취재 노트.


뭐니 뭐니 해도 휴휴산방의 명품은 구들장이다. 한번 장작을 지펴 불을 때면 사흘은 너끈히 그 온기가 유지된다. 내가 경험해보니 현대인의 직업은 대부분 머리를 쓰는 직업이다. 머리를 쓰면 긴장한다. 긴장하면 등짝이 굳는다. 척추 뒤쪽의 기혈이 흐르는 경락이 굳는 데, 이 경락이 굳으면 만병이 깃든다. 그러므로 긴장된 등 쪽의 경락을 푸는 것이 관건이다. 어떻게 푸느냐? 뜨거운 구들장에 등짝을 대고 지져야 한다. 이게 최고다. 마사지보다 한 수 위다. 우리 조상들은 뜨끈한 구들장에 등을 대고 자면 몸이 풀렸다. 조상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최고의 건강 비법이 바로 뜨거운 구들장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땅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이 구들장이 사라져갔다. 산방의 구들장은 20cm가 족히 넘는 두꺼운 돌을 사용했다. 돌 위에다 소금과 솔잎도 깔았다. 돌이 두꺼워서 가열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보통 아궁이에 불을 때기 시작해 미지근하게 달궈지는 데만 8시간이 걸린다. 뜨거워지려면 10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 대신 한번 달궈지면 사나흘씩 간다. 2시간 정도 산책을 하고 나서 뜨겁게 달궈진 구들장에 등을 대고 누워 있으면 온몸이 노곤하니 긴장이 풀리면서 세상사 부러운 게 없어진다. 밀려오는 생각은 ‘이만하면 상팔자가 분명하다’이다. 산방은 대지 3백50평에 집채가 들어선 건평이 15평 남짓이다. 혼자 거처하기에 딱 적당한 건평이 15평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청소하기에 편한 넓이로, 너무 넓으면 관리에 불편이 따른다. 방 두 개, 부엌, 샤워실이 있으니 이로써 족하다. 구들장 깔린 방 하나는 겨울용이고, 다른 방 하나는 바닥에 편백나무를 깐 마루방으로 여름용이다. 바닥재를 편백으로 깔아놓으니 방에 들어서면 시원한 편백 향이 반긴다. 편백나무 밑에도 역시 소금과 숯을 깔아놓았다. 벌레가 쉬 달려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방 안 가득 편백 향이 나니 여름철엔 모기도 적다. 그 냄새 때문에 모기가 잘 꼬이지 않는다.
마당 주위로는 녹차나무를 심었다. 사철 푸르러 좋고, 봄에는 찻잎을 따서 먹는다. 찻잎을 따서 삼겹살을 싸서 먹으면 담백하면서도 독특한 맛이 난다. 3백 년 된 매화나무도 있다. 여기에서 매실을 따면 한 소쿠리가 넘는다. 매실을 따서 설탕에 재운 다음 그 농축액을 일 년 내내 먹는다. 두릅도 별미인데, 봄이면 두릅 순을 따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입안에 향기가 그득해진다. 요즘은 뜰 앞에 해당화가 한창이다. 4월 말부터 피기 시작해 한 달 넘게 계속 꽃이 피고 진다. 지고 나면 또 핀다는 데에 해당화의 매력이 있다. 작약은 이미 한철 피었다가 졌고, 야생화인 매발톱꽃은 엊그제야 졌다. 이제는 보라색의 창포가 피고 있다. 나는 녹색으로 둘러싸인 휴휴산방에 살면서 존재의 보람을 느낀다. 공간이 사람을 치유한다.

청운 靑雲 조용헌 趙龍憲 선생 동양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조용헌 선생은 ‘백가기행’을 통해 가내구원 家內救援을 이야기합니다. 위로와 휴식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집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1년간 <행복>과 함께 각양각색의 집을 돌아보며 그가 찾아낸 가내구원의 공간은 다실, 구들장, 중정이라 합니다. 그중에서도 현대인이 꼭 갖추어야 할 공간으로 다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5백 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의 고수 기행> <그림과 함께 보는 조용헌의 담화> 그리고 지난해 가을 출간한 <조용헌의 명문가> 등이 있습니다.

*<행복>에서는 동양학자 조용헌 선생과 함께 우리나라 집이 품고 있는 각양각색의 기운을 풀어보는 백가기행을 연재합니다.


조용헌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