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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와 자연이 만나는 징검다리 베란다 & 테라스
단순히 실내 공간을 넓게 쓰겠다고 베란다를 확장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닙니다. 베란다와 테라스는 콘크리트 빌딩 속에 살면서 햇살과 바람 같은 외기를 접하고 손쉽게 자연을 들일 수 있는 공간이니까요. 한두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지만 실내와 외부가 만나는 이 징검다리 같은 공간을 고집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연의 외기를 품은 베란다와 테라스 공간의 다양한 활용 사례와 초보자를 위한 실내 정원, 텃밭 가꾸기 노하우를 소개합니다.
테라스, 한옥 대청마루의 명맥을 잇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집에 마루와 온돌이라는 지혜를 발휘했다. 마루는 여름이라는 절기 특징을 건축에 반영한 것이고, 구들은 겨울의 매서움을 이겨낸 지혜다. 처마 아래 마루가 넓은 집은 집 안까지 비추는 직사광선을 막아주고, 구들이 넓은 집은 겨울을 나기에 움츠러듦이 없다. 마루는 명실공히 여름 공간이다. 바깥과 안으로 나뉘는 공간, 그 사이에 외부이며 내부, 내부이자 외부 공간이 되는 마루가 어엿하게 자리 잡고 있다. 마루의 이러한 유전자는 현대 주거 공간에서 발코니와 베란다, 테라스로 그 명맥을 이어간다.
발코니는 보통 건축물 외벽에 돌출되어 공중에 뜬 형태로 있는 공간을 말한다. 이곳에 화분을 두면 건물을 바라보는 이에게 신선함과 청량감을 줄 수 있다. 테라스는 지붕은 없지만 담쟁이나 나무로 그늘을 만들어 여름철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게 만든 곳을 일컫는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베란다는 아래층과 위층의 면적 차이 때문에 생기는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1층 면적이 넓고 2층 면적이 좁을 경우 1층 지붕 면적이 남게 되는데, 이를 베란다라고 하는 것. 최근 유행하는 계단식 테라스 하우스는 엄밀히 말하면 ‘베란다 하우스’라 해야 옳다.

공동 주택에서 베란다는 실내 공간과 외부 공간의 완충 역할을 해주는 곳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베란다를 확장한 집이 대부분이다. “좁은 집일 경우 베란다를 확장하면 넓어 보이는 효과가 있지만 넓은 집에서는 그조차도 무의미하지요. 공간을 좀 더 재미있게 연출하고 싶다면 베란다를 그대로 두는 것도 방법입니다.”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이길연 씨는 50평대 아파트라면 굳이 베란다 개조를 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베란다는 마당이 없는 아파트에서 마당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개조 시 열 손실이 많다는 점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지 넓어 보이게 하고 싶다면 리모델링을 하지 말고 남다른 아이디어로 멋을 살리는 게 좋다. 베란다 덕분에 남들에게는 없는 실내 정원이, 다실이, 걷는 휴식 공간이 덤으로 생기고, 획일화된 아파트 공간에 개성을 불어넣을 수 있으니 말이다. 올여름, 베란다를 그 옛날 마루로 부활시켜보자. 집에 숨통을 틔워주면 자연이, 바람이, 여름이 들어온다.


(왼쪽) 마당 같은 테라스를 실현하다
전통 가옥 짓는 법을 설명하는 용어 중 ‘차경 借景’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경치를 빌려온다는 뜻이다.
내 집 앞 온 산이 바로 내 집의 정원이면 좋겠다는 바람, 조망권은 집의 중요한 요건이다. ‘조망이 빼어나다면,
그 조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적극적으로 만들라’는 개념을 실현한 주거 형태가 바로 요즘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테라스 하우스다. 테라스 하우스는 경사진 부지에 계단식으로 지어 각 층마다 마당처럼 넓은 테라스를 갖는
새로운 개념의 공동 주택. 보통 10평 내외로 넓이가 제법 넓어 마치 마당처럼 꽃을 심는 화단이나 연못으로,
장독대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용인 죽전 힐스테이트 테라스 하우스에 거주하는 정경애 씨는 이곳으로 이사한 후 집 안보다 집 밖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한다. 테라스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낮 시간에는 텃밭과 화단을 가꾸는 데 여념이 없다. 친구들이 놀러 와 이야기꽃을 피우는 곳 역시 거실이 아닌 이곳 테라스다. 그뿐이랴. 라면을 끓여도 기어코 밖에서 먹겠다는 식구들 등쌀에 테라스는 언제나 만원이다.
“한편에 스티로폼과 벽돌을 쌓아 자그마한 텃밭을 만들었어요. 채소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햇볕과 물이 필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통풍이거든요. 아파트에서 식물을 기를 때 베란다 문을 꼭꼭 닫아놓으면 제아무리 햇볕이 잘 드는 곳이라도 잘 자라지 않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렇게 하늘이 열려 있는 테라스는 여름철 채소 키우기에 제격입니다. 빛과 바람,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어 쑥쑥 자라지요.”

(오른쪽) 자연에, 사람에게 열린 집
지난겨울부터 꽃 피는 봄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이길연 씨. 언니 이희승 씨의 집 야외 테라스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기 위해서였다. 테라스 카페가 즐비한 분당 정자동의 한 주상 복합 아파트. “30평대의 작은 평수에 비해 서비스로 제공되는 테라스 면적이 꽤 넓은 편이에요. 1층 상가와의 면적 차이로 생긴 테라스는 소음 등 낮은 2층의 단점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하지요.” 좀 더 쓰임새를 더하기 위해 덱을 깔고 조경을 설치하는 등 레노베이션을 한 후 한 해 지나 여름이 되니 비로소 그 진가가 톡톡히 발휘된다.
무엇보다 테라스의 가장 큰 수혜자는 그 자신이다. “바람이 기분 좋게 부는 야외에 앉아 시원한 공기와 차를 마시며 노을 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스트레스가 저절로 풀려요.”
밥은 꼭 집에서 먹는 남편 때문에 요리가 취미가 된 그는 평소 손님 초대가 잦은 편이다. 이러한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을 충족시켜주는 공간도 바로 테라스다. “동생에게 레노베이션을 맡기며 신신당부한 것이 무미건조한 테라스를 바비큐를 즐길 수 있는 아웃도어 공간으로 바꿔달라는 것이었지요.” 먼저 시멘트 바닥이던 테라스의 단을 높여 흙을 채우고 덱을 깐 뒤 화단을 만들었다. 나무와 꽃을 심고, 아웃도어 테이블을 두었더니 별다른 데커레이션 없이 훌륭한 파티 공간이 완성됐다. 저녁 손님 초대가 잦은 것을 감안해 조명 시설에 특히 신경을 썼다고.
덕분에 야간에도 자연의 정취와 풍경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지난 5월 초, 촬영을 핑계 삼아 간단한 포틀럭 파티를 펼친 이희승, 이길연 씨 자매. 황혼 녘부터 늦은 밤까지 친구 윤지윤 씨, 김연정 씨와 딸 강유빈 양이 웃음꽃을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왼쪽) 아파트, 툇마루의 여유로움을 담다
아파트가 점점 자연 친화적인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자연을 가까이에서 접하고 싶은 욕구가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다. 작은 정원을 조성해 자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베란다를 잘 이용하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아파트지만 단지 바로 옆으로 작은 하천이 흐르고, 창을 열면 앞산의 능선이 내다보이는 등 자연을 항상 곁에 둘 수 있어 이 집을 선택했다는 박선희 씨. 시원하게 트인 전망을 더 쉽게, 많은 시간 동안 향유하고 싶어 베란다에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 레노베이션을 맡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경수 씨는 안방과 거실 베란다가 꽤 길게 하나로 연결된 것을 보고 나무 패널과 돌을 깔아 걷는 공간으로 연출했다. “베란다를 확장하고 추울까 봐 난방을 하고, 요즘 주거 형태는 여름 공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느낌입니다. 마치 겨울잠에 빠진 집처럼 말이지요. 아파트지만 한옥 대청마루가 주는 여유로움과 평화로움을 담고 싶었습니다.” 오크우드 워킹 존은 레일처럼 바닥에 판재를 설치하고 그 위에 오크우드 패널을 끼워 맞춘 것으로 분리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누구나 쉽게 시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안락의자나 서안을 두어 다실이나 독서 공간으로 활용해도 좋다. “방부목은 포름알데히드가 방출될 수 있어 실내에는 적합하지 않아요.
하지만 내구성이 좋은 오크우드는 물에 강해 화초를 키우기도 좋지요.” 내추럴하게 꾸민 베란다는 항아리처럼 오래된 물건을 두어도 멋스럽게 잘 어우러진다. 오랜 시간 자연과 함께한 박선희 씨는 화분 가꾸기에 관한 중요한 팁도 잊지 않는다. “지나치게 정원에만 집중하면 수종이 과다하게 들어와 복잡하고, 외부 경관을 가리거나 빛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어요. 식물은 키가 자라게 마련이므로 처음에는 작은 식물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아요.”

(오른쪽) 나만의 밀실, 한 평 다실&정원
“자연을 모방한 자연은 오히려 없느니만 못하지요.” 베란다에 그저 덩그러니 화분 몇 개 놓아두고 그린 코너로 꾸미는 것은 인공적이라 말하는 이진태 씨. 그에게 집은 노부모를 비롯해 온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여유로운 휴식 공간이다. 삼 대가 모여 살아도 불편하지 않도록 독립적인 동시에 열려 있는, 특별한 공간 구성이 필요했다. 우선 부모의 침실에 들어가면 방을 통해 다실이 연결되고, 다실 옆 정원으로 사용하는 베란다를 만날 수 있다. 오랫동안 외국에서 주택 생활을 하다 귀국한 부모가 정서적으로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공간에 자연을 들이는 일 또한 중요했다. 다실과 실내 정원은 그 때문에 탄생한 공간이다. 노부부를 위한 다실의 벽은 한지 벽지로 마감하고 고재로 만든 테이블을 두어 입식으로 꾸몄다. 베란다는 주택 느낌을 주기 위해 파벽돌로 마감하고 야외 정원처럼 가로등 스타일의 조명등을 놓았다. 어머니 유수현 씨는 다실에서 차 한잔 마시노라면 마치 어린 시절 툇마루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창문 밖으로 아스라한 초록이 보이는 이 조그만 다실은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공간입니다.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창밖 그림도 달라지지요. 사계가 푸른 식물과 함께 한 폭의 작품이 되니 따로 무슨 장식이 필요하겠습니까.” 촬영 협조 한성아이디

녹색 식물이 주는 여유, 베란다 정원
선물로 받은 식물을 가꾸고 모으다 보니 어느새 베란다가 작은 정원이 되었다는 박혜영 씨 집. 올봄 이사하면서 베란다에 식물을 들이고, 베란다와 거실 사이는 유럽 스타일의 중문으로 구분해 카페 같은 분위기의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보통 새시 창호로 마감하는 여느 아파트의 베란다 문과 달리 짙은 컬러와 창살 디자인이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박혜영 씨 집의 베란다는 미적인 부분과 실용적인 기능을 두루 갖췄다. 화분 식물로 꾸민 베란다 정원을 중심으로 왼쪽 문에는 세탁실이 자리하고, 오른쪽 문에는 칸막이를 설치해 다용도로 수납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다이닝 테이블에 앉아 베란다 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평안해져요. 마치 카페에 앉아 여유를 부리는 기분이 들거든요. 처음엔 집에 식물을 들이는 것이 실내 환경에 좋다고만 생각했어요. 로스쿨에서 공부하느라 바쁜 딸의 부재가 쓸쓸하기도 했는데, 변화하는 식물을 보살피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있지요.”


이지현・박은영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