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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하우스] 패션 디자이너 루비나의 청담동 주택 집을 사랑하는 것은 인생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
지난달 말, 서울컬렉션을 성공리에 마치고 잠깐의 달콤한 휴식을 즐기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 루비나. 1년 3개월 동안 진행된 긴 시간의 집 공사를 마치고 새 시즌을 준비하는 촘촘하고도 행복한 그의 일상에 초대받았다. 꽃 같은 봄날 이루어진 패션 디자이너 루비나의 첫 집들이.
작년 이맘때쯤 패션 디자이너 루비나의 사무실을 찾았다가 책상 위에 있는 자그마한 건축 모형을 발견했다. 높은 대나무가 솟아 있고 조각조각 분할된 지붕면이 인상적이던 모형의 주인공은 바로 청담동에 짓고 있는 그의 집. 연말에 공사를 마치면 놀러 오라는 말에, 지난 몇 달간 안부 전화를 핑계 삼아 “언제 놀러 갈까요?”라며 취재 요청을 했다. 눈이 많이 와 공사가 늦어져서, 아직 가구가 들어오지 않아서, 서울컬렉션만 지나면… 차일피일 미뤄지는 일정에 더 이상 궁금증을 참을 수 없을 무렵 드디어 초대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우리 집은 별로 볼 게 없는데요”라는 쑥스러운 인사말과 함께.

컬렉션에 대한 또 다른 열정, ‘집’에 담아내다 패션 디자이너 루비나. 돌과 나무, 콘크리트가 잘 어우러진 선릉의 사옥이 언론 매체에 왕왕 소개되면서 인테리어 감각도 남다르다는 사실이 알려진 그는 골동품 컬렉터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살고 있는 집은 좀처럼 보여주지 않았던 터라 과연 그의 집은 어떤 느낌일까 내내 궁금했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꽃과 나무가 잘되는 집으로 유명했어요.” 이곳 청담동으로 터를 옮기고 새로 집을 짓기까지, 지난 12년 동안 살았던 집을 회상하는 말이다. “조용한 주택가였는데 몇 년 전부터 상업 공간들이 들어서면서 시끌벅적해졌어요. 어느 날 퇴근길에 보니, 우리 집만 낮은 이층집에 불이 깜깜하게 꺼져 있는 거예요. 문득 동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골목 안까지 속속들이 건물이 들어서는 청담동 부티크 거리에서 과연 옛집을 고수하는 게 옳은 일일까 오랜 시간 고민한 그는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충치’라고 말하곤 했던 정든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왼쪽) 4층에 위치한 루비나 대표의 공간.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 늘어뜨린 아프리카 발 장식이 인상적이다. 
(오른쪽) 다이닝 룸을 빛내주는 티크 원목 소재의 테이블은 E&S 갤러리에서 구입한 것.


주말 오전, 초대받아 도착한 그의 집은 외관부터 남달랐다. 루비나 대표가 거주하는 3, 4층은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피라미드 형태고, 상업 공간인 1층과 2층을 잇는 노출 계단 역시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로 건물의 구조적인 재미를 더했다. 총 4층 건물로 지하에는 갤러리가, 1층은 플라워 숍, 2층은 주얼리 매장이 들어올 예정. “옥상에는 자그마한 소나무를 심었어요. 날씨가 좀 더 따뜻해지면 능소화랑 철쭉까지 화사하게 피어날 거예요. 몇 년 후에는 건물 외벽이 온통 초록색으로 뒤덮이도록 담쟁이덩굴도 심었습니다.”
역동적인 외관, 활기찬 거리와는 대조적으로 집에 돌아오면 놀라울 정도로 고요한 적막이 흐른다. 실내는 전체적으로 노출 콘크리트와 대리석, 연한 잿빛 도장을 기조로 해 모던하면서도 세련된 스타일. 집 안에 들어서면 거실과 다이닝 룸을 마주하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실 정면을 가득 채운 유화 그림. 독실한 크리스천인 루비나 대표가 성경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틈틈이 그린 것이다. 참고로 그는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 아무렴, 디자인은 물론 패턴이나 드로잉도 배우지 않았지만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가 아닌가.
루비나 대표의 집에 놀러 오는 지인들은 하나같이 ‘집이 주인을 닮았다’고 말한다. 아마도 명품 백보다 손때 묻은 빈티지 백에 눈길이 가고, 브랜드와 상관없이 따뜻하면서 인간미가 느껴지는 핸드메이드 제품을 더 선호하는 그의 취향과 닮았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그는 젓가락 하나도 작품이 아닌 게 없을 정도로 예술적 조예가 깊다. 수저 보관함으로 쓰기 위해 구입한 이헌정 작가의 도자기를 소파 테이블 위에 두고 메모지를 넣거나 화분 받침으로 사용한다. 앉을 수도 누울 수도, 테이블로도 쓸 수 있는 이재효 작가의 나무 벤치는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보고 주문 제작한 것. 사람이 많을 때는 소파로, 홈 파티를 할 때는 뷔페 테이블로도 쓸 수 있다. 작품을 고를 때는 작가의 유명도보다는 작품의 진정성을 먼저 본다. 거실 한쪽에 무심한 듯 놓인 박효정 작가의 나무 스툴 역시 이미 수년 전에 구입한 그녀의 초기작이다. “젊은 시절에는 마음에 드는 물건을 무조건 샀어요. 하지만 이제 그 기능과 용도까지 최대한 고민하고 디자인이 좋은 제품을 고르지요. 경제를 위해서는 소비를 해야겠지만, 신중하게 구입한 좋은 물건을 오래 쓰는 것이 소비의 진정한 미덕이니까요.”

채워봐야 비울 수 있다 장안동 골동품 가게부터 외국 앤티크 숍까지 마음에 드는 오래된 물건이 있으면 무조건 구입해야 직성이 풀리던 그는 새로 집을 지으면서 이를 대부분 정리하고 철저히 비워냈다.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물으니 바로 싱그러운 나무가 옥상까지 뻗은 2층의 작은 거실이란다. 군더더기 없이 딱 필요한 가구만 배치한 거실은 크지 않고 아담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고. 브라운 가죽 소파 정면 벽에 설치한 이헌정 작가의 세라믹 작품은 도자 판을 하나씩 끼울 수 있도록 제작한 것으로, 작업실에 가서 일러스트 도자 하나하나를 고르고 맞춘 특별한 작품이다. 작품과 분위기를 맞춘 콘크리트 테이블 역시 잔디를 심을 수 있도록 상판을 조각조각 끼워 넣는 방식. 작은 거실을 지나 침실로 들어서면 커다란 고재 헤드보드의 침대를 만난다. 고재 장식은 한옥 부엌에 있는 나무를 떼어다 설치한 것으로 마치 벽과 침대가 일치한 듯한 느낌. “가구를 많이 두는 것이 싫어서 벽면에 고재나무를 붙이고 매트리스 사이즈에 맞춰 양쪽에 선반을 달았어요. 이 방에는 이 물건 밖에 없는데, 나무 소재가 주는 풍성함 때문인지 꽉 찬 느낌이 들어요. 오래된 것 자체가 주는 멋은 인위적으로 멋을 낸 현대의 것이 아무리 따라가려 해도 따라갈 수 없지요.”

넓지 않은 공간을 다각도로 활용했다. 2층 작은 거실의 TV장은 노출 콘크리트 벽면과 일체형으로 제작. 거실과 다이닝 룸을 분리한 가벽 아이디어도 재미있다. TV를 두는 곳이 한정될 수밖에 없는 사각형 구조의 거실에 가벽을 세워 한쪽은 TV를 설치하고 다른 한쪽은 다이닝 룸으로 사용하는 것. 한국적인 것과 모던한 디자인이 어우러지게 매치하고 어떻게 활용하는지도 눈여겨보아야 할 점이다. 모던한 블랙 가죽 소파와 아프리카에서 공수한 침상을 ㄱ자로 배치하고, 홍콩에서 사 온 금속으로 엮은 에스닉한 스툴에 금속 지지대를 달아 유리판을 올리니 근사한 티 테이블이 완성되었다. 거실 한쪽 테라스를 장독대 삼은 항아리도 인상적이다. 거친 질감의 항아리, 민화 액자, 그리고 색이 바랜 대나무가 어우러진 모습이 마치 한 점의 그림 같다. 이처럼 모든 생활에 디자인을 들여놓는, 값비싼 고집이 아니라 몸에 밴 그의 습성은 이 아담한 집을 쉬고 볼 수 없게 만든다. “집이 피라미드 형태여서 그런지 기운이 좋아요. 몸이 편찮으셨던 어머니도 이 집에 오시고 나서 점점 기운을 차리시는 걸 보면요. 얼른 몸을 추스려서 따뜻한 햇살 아래 맛있는 된장, 고추장을 담가야 한다며 벌써부터 계획을 말씀하세요.” 참, 그는 정원을 꾸미는 일에도 조예가 깊다. 겨울에도 나무를 보고 싶어서 소나무, 대나무를 심었다며 계절별로 자라는 식물이나 테라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인다.

(오른쪽) 도자기와 꽃을 좋아하는 루비나 대표.



1 1층 거실과 다이닝 룸. 가구들이 처음부터 계획한 것처럼 자리하고 있는 것은 그만의 감각 덕분이다. 
2 토요일 오후면 근처에 사는 동생들과 조카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인다. 왼쪽부터 사촌 언니 홍복실 씨, 루비나 대표를 가장 많이 닮았다는 조카 박은미 씨, 루비나 씨, 여동생 박미연 씨. 
3 침실 옆 드레스 룸. 박공 구조의 묘미가 살아있는 창가에 어린 시절의 추억을 느낄 수 있는 액자를 조르르 장식했다.


집, 추억 위에 꿈을 짓다 디자이너 루비나씨는 모델, 가수, 배우까지 감각만큼이나 커리어가 화려하다. 친구 따라 양장점에 옷 맞추러 갔다가 요즘 말로 ‘픽업’이 된 그는 1970년대 초반 패션모델로 왕성한 활동을 펼친다. 통기타를 배운다는 소문이 방송국까지 나서 가수로 데뷔하고, 이후 신상옥 감독의 영화 <속 이별>에 출연하며 영화배우의 타이틀까지 얻는다. 이 대목이 재미있다. 그가 갑자기 영화에 출연한 것은 순전히 잘 꾸민 집 덕분이라는 것. 서울에서 모델 활동을 하며 여동생과 함께 살던 보광동의 25평 아파트는 당시 예쁜 집으로 소문났다고 한다. “바닥에는 세련된 그레이 컬러의 루프 파일 카펫이 깔려 있고 널찍한 그레이 패브릭 소파가 가운데 있었지요. 오렌지색 윙체어로 포인트를 주고, 벽에는 블랙&화이트의 그림을 걸었어요. 요즘 아일랜드 조리대처럼 식탁이 바처럼 높고 격자창이 달린 그릇장에는 일본에서 수입한 그릇이 가득 채워져 있었지요. 그때 사용하던 노리타케 접시는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언니는 그때부터 ‘조그만 그릇에 음식을 예쁘게 담아야 한다’고 말하곤 했지요.” 동생 박미연 씨의 말이다. 당시 루비나 대표의 방에는 오렌지색 카펫이 깔려 있었으며, 브라운 베이스에 오렌지색 문양이 들어간 커튼을 사용했단다. 침대는 매트리스만 두고, 주방에는 올리브 그린 컬러의 타일을 붙였다고 하니 이것이 바로 지금 유행하는 스칸디나비안 빈티지 스타일이 아닐까. 1970년대에 바형 테이블에 흑경 거울, 노출 천장, 컬러 페인팅 마감이라니. 실제 사는 집에서 영화를 찍었다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옛날에는 모델 활동을 하려면 다방면에 재주가 많아야 했어요. 헤어, 메이크업은 물론 스타일리스트까지 1인 4역을 해야 하니까요. 해외 화보 촬영도 잦아 외국에 많이 나갔는데 그 때 보고 느낀 것이 많아서인지, 집을 남들과 다르게 꾸민 것 같아요.”


1 3 묘듈형으로 제작된 이헌정 작가의 벽면 작품과 이재효 작가의 나무 소파, 박효정 작가의 나무 조각이 공간에 자연적인 느낌을 불어넣는다.
2 에스닉한 패브릭과 고재나무로 연출한 침실. 침상 옆 성모상은 봉사 활동하러 가는 단체의 자폐아들이 나무로 깎아 만든 것. 침대는 현장에서 제작했다.
4 모던한 공간이지만 곳곳에서 그의 한국적인 취향이 묻어나는 소품을 발견할 수 있다.


언니와 함께 살던 집을 소소한 것까지 모두 기억하는 동생 박미연 씨는 그때의 영향 때문인지 전공과 상관없이 결혼 후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자매는 비록 열한 살의 나이 차이가 나지만 취향이 비슷해 함께 장안평 골동품 가게를 구경하거나, 화훼 시장에 가곤 한다. 며칠만 못 봐도 궁금해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하고, 그러다 통화가 길어지기 일쑤니 어느새 수화기를 내려놓고 결국 현관문을 두드린다. 도시에서 각자의 일을 하며 여간해서는 짬을 내기 어려운 가족과 친척들을 모이게 하는 장소가 바로 루비나 대표가 생각하는 집의 역할이다.
“옥상은 가족끼리 단란한 식사를 하는 공간입니다. 옥상에도 스피커를 설치해 음악을 들으며 함께 행복한 시간을 공유할 수 있어요.”그는 음식을 나르기 편리하도록 3층 주방과 옥상에 음식용 엘리베이터까지 설치했다. 이제 날씨가 좋은 주말이면, 주변에 살고 있는 동생들과 조카들이 으레 바비큐 파티를 하러 몰려올 것이다. 오늘도 청담동 주택에는 가족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래도 또 집들이를 해야 한다며 친구들 숫자를 헤아려본다. 이런 게 누구나 꿈꾸는 삶 아니겠느냐며,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는 그의 표정이 무척 행복해 보인다. 수십 년 동안 카리스마 넘치는 패션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의 꿈을 실현해온 루비나씨. 그가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왼쪽) 외관이 인상적인 청담동 주택. 아뜰리에 17의 권문성 소장이 설계하고, 도어즈 종합건설의 최용철 대표가 시공을 맡았다. 
(오른쪽) 디자이너 루비나. 모던하면서도 정감 넘치는 집은 그와 무척 닮았다.


루비나 대표에게 배우는 믹스&매치 데커레이션 팁
1 여행지에서 사 온 것들을 활용해 이국적인 데커레이션을 완성할 수 있다. 단, 외국에서 물건을 살 때는 항상 심사숙고해야 한다. 분위기에 휩쓸려 ‘이건 꼭 사야 해’라고 생각해 산 물건도 돌아온 후에 후회할 수 있다.
2 작가의 작품에 도전해볼 것. 가구면서 공간의 오브제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더해지기 때문.
3 마감재로 연한 그레이 컬러를 활용해보자. 블랙과 브라운은 물론 그린, 나무 소재와 어우러져 모던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할 수 있다.
4 나무와 돌, 패브릭 등 내추럴한 천연 소재는 스타일이 달라도 잘 어우러진다. 질박한 느낌의 도자기, 이국적인 나무 액자, 에스닉한 패브릭 등 서로 다른 느낌의 소품을 여러 개 두어 공간에 포인트를 준다.

이지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