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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하우스]한경훈, 이케다 에리카 씨 부부의 일본 집 익숙한 것과 결별하라, 그것이 곧 행복의 통로니
탁 트인 거실도 없고, 사람이 나란히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복도가 좁은, 그야말로 사람 살기 불편해 보이는 집에 한경훈・이케다 에리카 씨 부부가 둥지를 틀었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불편한 집 때문에 삶이 한층 유쾌해졌다고 말한다. 노출 콘크리트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일본의 유명 건축가 무로호시 지로 씨가 젊은 시절 지은 일본 세타가야 구에 위치한 집.
건축가의 젊은 시절 모험을 담은 공간 갑작스러운 일본 출장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취재차 일본에 가면 내 아들이 특이한 집에 살고 있으니 한번 들러보라”는 서양화가 유영희 씨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도쿄 중심에서 서남쪽에 위치한 세타가야 구. 여장을 푼 신주쿠에서 차를 타고 30분을 더 가야 마주할 수 있는, 40여 평(135m2) 대지에 올린 약 32평 규모의 한경훈 씨 집.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이는 한적한 동네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생활에 꼭 필요한 만큼의 규모로 지은 집이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두 명도 채 함께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좁은 복도. 집주인의 안내가 없다면 이 크지 않은 집에서 잠시 방황할 법한 미로 같은 구조다. 언뜻 답답해 보이는 통로와 달리 집 안 한가운데에는 널찍한 중정이 자리해 있다. 으레 좁은 공간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넓게 쓰고, 넓어 보이게 하고 싶은 법인데 이 집은 좁은 공간을 더욱 좁게 나눠 쓰도록 설계한 격이다. 중정이니 테라스니 하는 부수적 공간을 넉넉하게 마련해놓고 꼭 필요한 방, 주방, 복도 등은 오히려 작게 디자인한 집. 주객이 전도된 것 같은 집을 한참 동안 생경하게 둘러보다가 문득 이 집에 살게 된 집주인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일본에 25년째 거주하고 있는 한경훈 씨와 아내 이케다 에리카 씨. 몇 년 전 부부는 집을 짓기 위해 터를 보러 다니다 우연찮게 이 집을 발견했다. “이 집을 처음 봤을 때 디자인이 독특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처음으로 내 집을 직접 지으려고 터를 알아보러 다니던 중이었는데, 이 집을 보는 순간 생각이 달라졌어요. 하지만 막상 살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아내 입장은 저와 달랐죠. 이 집을 지은 건축가도 만나보고, 앞으로 20~30년은 거뜬하게 버틸 수 있다는 안전 검사도 받아보며 3개월 동안 아내를 설득했어요.” 일본 건축가 무로호시 지로(www.studio-artec.net)가 젊은 시절에 지은 실험적인 집. 현재 무로호시 지로는 일본에 유명 건축가로 그가 지은 건축물을 돌아보는 건축 기행 프로그램까지 운영할 정도다. 이 집은 그가 젊은 시절 모험한 대표작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1983년에 이 집을 지은 건축주는 약 30년 동안 살았는데, 갑자기 사정이 생겨 집을 팔아야 했다. 훗날 들은 이야기지만 이 집을 탐내는 사람이 많았단다. 하지만 집은 운명처럼, 인연처럼 건축가의 건축 의도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제짝 한경훈 씨 부부를 만났다.

(위) 가족실에는 철근 콘크리트의 다소 어두운 분위기를 상쇄해주는 유영희 작가의 따뜻한 색감의 그림이 걸려있다. 부부가 입주할 때 작가인 어머니에게 받은 선물이다 .


1 거실 대용으로 꾸며놓은 가족실.
2 미로를 연상케 하는 좁은 복도. 처음 이사 왔을 때 부부는 숨바꼭질하는 것 같은 재미를 느꼈단다.


건축가의 배려로 미완성된 집 그 흔한 거실도 하나 없고, 아이를 키우기에는 다소 불편한 이층집에 부부는 15개월된 어린 딸과 함께 거주하면서 이 집의 묘미를 매일 조금씩 맛보고 있다. 가족실, 주방, 중정 등 특이하게도 집 안의 모든 공간은 방의 개념으로 디자인되었다. 들어가고 나오는 출입문이 있고, 어떤 곳은 출입문처럼 생긴 작은 입구를 통해 꼭 한 명씩 차례로 들어갈 수 있게 돼 있다. 이 집에 탁 트인 거실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통상의 주택 구조를 철저하게 거부하는 건축가는 이 집을 설계하면서 과감하게 거실을 없앴다. 부부는 거실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 이유로 거실 대용으로 만들어놓은 가족실과 중정을 꼽는다. 사실 중정을 따로 두기에는 넓지 않은 평수지만, 이 집은 큰 거실 하나를 낼 수 있는 공간에 중정을 마련했다. 또 특이하게도 중정 바닥에 홈을 파서 타일을 깔았다. 덕분에 가족은 여름이면 무릎이 닿는 데까지 물을 채워 발을 담그고 얼음과자 하나씩 입에 물고 시간을 보낸다. 겨울이면 테이블 하나 가져다 놓고 나란히 앉아서 중정 위 유리 천장에 눈송이가 차분하게 떨어지는 광경을 감상한다. 아, 유리 천장에 사연이 있다. 본래 건축가는 중정 위를 뻥 뚫어놓았다. 그 때문에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중정에는 빗물이 고이고 눈송이가 쌓였다. 하지만 한경훈 씨 부부는 중정을 거실처럼 생각하며 사시사철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했다. 며칠 만에 가족 회의를 통해 천장에 개폐가 가능한 유리창을 달아보자는 결론을 얻었다. “집을 사기 전 무로호시 씨와 만났는데 그가 말하더군요. 애초에 집을 지을 때 가변적 공간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했다고. 집주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얼마든지 공간의 변주가 가능하기에 이 집의 수명은 30세가 아닌 50~60세라고요.” 한경훈 씨는 건축가에게 아이가 커서 자기 방이 필요한 나이가 되면 중정이나 테라스 쪽에 컨테이너를 올려 다락방같이 아늑한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팁도 얻었다. 아이가 크면 허공 위에 떠 있는 구름 같은 방을 만들어주어야겠다는 생각에 부부는 틈틈이 건축 전시를 보고, 여행을 가서도 사진기에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공간을 담아 온다. 아이의 첫 번째 방만큼은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며 직접 디자인할 생각이다. 전체적으로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해 벽면을 마감했지만 어느 부분은 벽돌로 돼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 역시 ‘가변성’을 고려한 건축가의 의도란다. 덕분에 부부는 얼마 전 침실 한쪽 벽면에 자그마한 창을, 현관 쪽 벽면에는 통창을 낼 수 있었다.

3 무로호시 지로 씨가 지은 건축물을 소개한 책들.


1 부엌과 다이닝 룸이 한데 결합된 주방.
2 천장에 낸 창은 지하 공간을 환하게 해주는것은 물론 1층 중정 바닥에 물을 채워놓으면 어물거리는 물결을 감상할 수 있게 해준다.



3 주방, 가족실과 달리 침실은 따뜻한 느낌이 들도록 화이트 컬러로 꾸몄다.


4 1983년 건축주가 집 완공을 기념해 구입한 키스히링의 1983년 작품. 건축주가 한경훈 씨에게 선물로 남겼다.
5 훗날 집을 지을 때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부부는 시칠리아 여행길에 발견한 인상적인 공간을 사진에 담았다.


살면 살수록 새록새록하다 “어느 날 아내가 말하더군요. 문득 청소를 하다가 발견했는데 창문이 참 특이하다고요. 이쪽에서 보면 저쪽 반대편 창문이 4분할인데, 저쪽에서 보면 반대편 창문이 8분할이고….” 그 말을 듣고 보니 사면이 유리로 된 중정만 봐도 창 분할이 각각 다르다. 철근 콘크리트 집에 모자이크 같은 창은 보고만 있어도 경쾌하다. 창을 통해 가족은 어디에서든 서로를 볼 수 있다. 부엌에서 밥 짓는 엄마는 가족실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볼 수 있고, 아이는 중정에서 책 읽는 아빠를 볼 수 있다. 탁 트인 공간 대신 터를 분할해 각각의 기능을 살려 좁은 집에 효율성을 더한 것이다. 지하에는 가족만의 비밀 공간이 있다. 작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면 꽤 널찍한 지하에 방이 있는데, 한경훈 씨 가족은 이 공간을 서재로 만들어놓았다. 여름이면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시원해 한번 내려가면 좀처럼 올라올 줄 모르게 하는 공간.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꾸준히 기록으로 남겨 훗날 가족사진을 전시해놓는 공간으로도 활용할 예정이다. 그런데 문득 지하 방 천장에 뚫어놓은 작은 창이 눈에 띈다. 때로 노란 알전구를 켜놓으면, 1층 중정 바닥을 채운 물의 어른거리는 흐름을 감상할 수 있다. 건축가의 위트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창에는 알루미늄을 사용하기 마련인데, 이 집은 모두 아연을 사용했어요. 아연은 알루미늄보다 창을 낼 때 훨씬 얇게 시공할 수 있어 한결 깔끔하죠. 또 시선을 가리지 않아서 참 좋아요. 제가 건축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건축가가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저희는 매일 이곳에 살면서 훌륭한 건축물의 묘미를 하나씩 알아가고 있어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우리네 인생, 이들 부부는 불편한 이 집 덕분에 일상이 한층 다이내믹해졌다고 말한다. 같은 돈을 주고 시내에 아파트를 샀더라면, 결코 누릴 수 없는 기쁨이다. 시내로 나가려면 인근 역까지 10분가량 걸어야 하고, 서로의 어깨를 비껴 가며 복도를 걸어야 하지만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이렇듯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다. 그런 점에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곧 자유다. 틀에 박힌 생각, 공간 그리고 생활과 결별할 때 삶은 한층 유쾌해진다. 행복하고 싶다면 일상의 그것과 안녕을 고하라.


6 건축가가 건축주에게 선물한 추상화. 이 집에 어울리는 작품이라며, 건축주는 부부에게 키스히링의 작품과 함께 선물로 남겼다.
7 테라스쪽 벽면에 커다란 문을 내 울창한 나무가 자연스럽게 벽면을 타고 흘러들어오게 했다.



1 4분할, 12분할, 그리고 36분할 모자이크 같은 창은 공간에 위트를 더해준다.
2 언뜻보면 평범해보이는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예상하지 못한 공간이 펼쳐진다.



구입할 때 체크해야 할 세 가지
1
먼저 멀쩡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내부 곳곳이 병들지는 않았는지, 전문가에게 안전성 검사를 받아라.
2 집을 지은 건축가에게 공간 디자인에 대한 의도를 들어보라. 건축가가 거주자를 위해 배려한 디자인을 직접 체험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3 이전 거주자에게 단열, 난방 등에 관해 물어보라. 입주 전 미리 손봐놓으면 새 집 못지않게 편리함을 누리며 생활할 수 있다.

황여정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