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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지은 집]건축가 유진상 씨의 창원 자하루 빛, 바람, 몬드리안을 닮은 집
내 집을 내 손으로 설계하고 싶은 것이 많은 건축가의 꿈이다. 첫 작품으로 직접 살 집을 지어 꿈을 이룬 건축가 유진상 씨. 창원대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그가 3년 전 지은 경남 창원의 ‘자하루’는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아직도 진화를 계속하고 있는 미완성 작품이다.


1 어린 시절 미술을 공부한 건축가 유진상 씨와 서양화를 전공하고 미술 교사로 재직 중인 부인 배은령 씨의 색채 감각이 돋보이는 집 ‘자하루’.


2 거실이었던 공간에 가변 벽을 설치해 침실로 활용.

자연 속에서 자신을 낮추며 살아가는 집이라는 의미가 담긴 자하루自下樓. 이름처럼 담백한 외관과는 사뭇 다른, ‘몬드리안 하우스’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곳은 건축가 유진상 씨가 설계하고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집이다. 화가 몬드리안과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를 좋아하는 유진상 씨는 자신의 취향을 반영해 기능적이면서도 빛과 그림, 색으로 가득 찬 집을 완성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한 폭의 추상화 같은 모습. 비음산을 마주한 주택 용지의 코너를 분양받은 후 주변에서 가장 먼저 집을 짓기 시작한 유진상 씨는 옆집과 앞집이 지어진 이후 채광이 잘되지 않을 것에 대비해 건물의 컬러를 가장 밝은 하얀색으로 선택하고 창을 사방에 최대한 많이 확보했다. 온통 새하얀 색의 박스 하우스가 답답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곳곳에 색면 분할 장치를 사용했기 때문. “아무리 하얀색이라도 하나의 덩어리로 보인다면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덩어리를 분해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테두리 없는 색면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건물 외관의 테라스 난간은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으로 칠했는데 마치 몬드리안 작품을 보는 듯하다. 현관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주방과 거실 공간은 바닥에 하얀색 타일을 깔고 천장에는 검은색 페인트를 칠했다. “로마 판테온에 가면 입구에 육중한 기둥이 있어 묵직한 느낌을 줍니다. 대웅전에 들어가기 전에 누하를 통해야 하는 것처럼, 검은색은 더욱 드라마틱한 클라이맥스를 이루기 위해 묵직하게 눌러주는 하나의 장치지요.” 이게 바로 그가 강조하는 공간 시나리오의 중요한 부분이다. 건축도 한 편의 영화처럼 스토리보드가 있어야 한다는 것. 검은색 천장은 2층에 올라서면 만나는 빨간색 벽면을 더욱 극적으로 느끼게 하는 장치로, 스스로 낮춰 들어온다는 뜻의 자하루 이름처럼 낮춰 들어와 뭔가 확 터지기 직전의 기대 심리를 자극하는 하나의 요소로 사용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계단을 올라섰을 때 천창을 통해 쏟아지는 빛, 3층 다락방으로 올라서면 창원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절경은 속 시원한 개방감을 느끼게 한다. 마당 역시 높낮이가 있다. 비음산 기슭에 주거 단지를 만들면서 도로에서 걷어낸 토사를 주택 용지에 쌓았기 때문인데, 비스듬한 지형을 그대로 살려 건물과 연못, 작은 마당을 계단식으로 배열했다. 낮은 계단 3개를 오르면 마주하게 되는 연못 그리고 벚나무 한 그루와 멀리 빨갛게 타오르는 노을 풍경. 이것이 바로 공간 시나리오의 클라이맥스다.


3 계단 옆 매입 조명과 천창 덕분에 하루 종일 빛이 충만하다.
4, 5 2006년 9월 설계에 들어가 2007년 5월 완공한 자하루의 외관과 도면. 연면적은 120.87m².




서향, 사계절의 매력을 즐기기 충분하다 자하루는 계절마다 햇볕을 즐기고 바람을 즐기는 방법이 다르다. 여름 별장, 겨울 별장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다양한 계절의 장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것. 여름에는 연못이 지열을 흡수하고 관목들은 햇빛을 차단한다. 겨울에는 통창을 통해 태양열을 듬뿍 흡수해 낮에는 난방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따뜻하다. 또 북쪽으로 비음산을, 남쪽으로는 창원시를 내려다보는 바람골에 자리한 이곳은 창의 위치를 대각선 방향에 두어 개폐 정도를 잘 조절하면 여름에도 냉방이 전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시원하다. 처음에는 국도 변이라 소음 걱정이 있었지만, 오히려 맞은편에 다른 건물이 들어서지 않고,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는단다. 언뜻 생각하기엔 무궁무진한 자유 속에서 창조하는 작업이 이상적일 것 같지만, 현실이 주는 규제가 오히려 독특한 아이디어를 일깨우는 청량제 구실을 하는 것. “아내는 항상 저에게 자신의 헬스 트레이너라고 하며 웃습니다. 1층에 거실과 부엌이 있기 때문에 운동량이 많다는 소리지요. 하지만 2층에 펼쳐진 아름다운 주변 경관과 철저한 프라이버시 확보가 이를 보상해줍니다.” 사적인 주거 공간을 2층으로 들어 올려 주변 도로와 떼어놓고, 옆집과 향후 들어설 북쪽 주택과도 거리를 두기 위해 매스를 그 반대 방향으로 약간씩 이동한 것. 집 안 곳곳에는 동양화 족자처럼 멋있는 쪽창이 나 있는데, 1층에서는 마당 연못의 벚꽃나무를 볼 수 있고, 2층에선 비음산 풍경이 보인다. 또 2층 복도 옆벽에는 발목 높이의 긴 창을 설치했다. 복도에서 뒹굴며 놀던 아이들이 틈새 유리창을 통해 다른 곳을 볼 수 있도록 한 아이디어다. 그러고 보니 집은 서향이고, 정작 거실과 침실 등 주거 공간에서는 모두 마당을 볼 수 없는 구조다. 아무리 예쁜 마당이라도, 내 거실에서 편안히, 매일 볼 수 있다면 쉽게 싫증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야트막한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어 길에서 더 잘 들여다보이는 앞마당. 철따라 연이어 꽃을 피워대는 앞마당이 집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눈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집주인의 넉넉한 마음씨가 그대로 느껴진다.


1 천장까지 쪽창을 냈는데, 아파트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재미. 2층 복도에서는 비음산이 내다보인다.
2 서재와 침실 사이에는 드레스 룸과 욕실을 마련했다. 바닥재로 사용한 타일은 여름에는 차갑고 겨울에는 난방열을 오래 머금어 따뜻하다.


집은 가족과 함께 자라난다 “집을 처음 설계할 때는 딸 리지가 태어나기 전이었기 때문에 방도 하나뿐이었고 계단에 난간도 없었지요.” 자하루는 2층 한 개의 방에서 3년이 지난 지금 두 개의 방과 하나의 놀이방으로 진화했다. 가느다란 철제 빔만 붙여놓았던 계단 난간에는 아이의 안전을 고려해 투명 아크릴 칸막이도 설치했다. 또 애초부터 증축을 염두에 두었다. 대지 75평에 건폐율은 25% 남짓. “건축비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라리 세월이 지나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채워나가기로 했지요. 2층 복도 한쪽에 마련한 큐브 형태의 아이 놀이 공간이 바로 증축 시 기존 건물과 주차 마당에 지을 신축 건물을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됩니다.” 별채가 신축되면 연못은 ㄱ 자형 건물의 안마당이 된다. 수심 7cm의 연못은 아래에 자갈을 깔아 물을 빼면 마당으로 사용할 수 있다. 자하루는 건축가가 직접 살아가며 고쳐가는 건축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배려가 담긴 공간이기도 하다. 이렇듯 공간이 융통성 있게 변화하는 실험적인 건축은 좋은 학습물이 되는 것. 석사과정을 마치고 잠시 건축사 사무소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그는 프랑스로 건너가 미술사를 공부했는데 건축 대신 공부한 근대 미술사는 첫 작품 자하루를 짓는 데 많은 양분이 되었단다. “프랑스 건축은 흔히 합리주의 건축을 대변한다고들 합니다. 건축에서 불필요한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공간, 구조, 기능 등이 돋보이는 건축을 지향하지요. 이는 ‘건축은 삶을 담는 배경’이라는 제 건축관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사실 건축가가 자신이 살 집을 짓는다는 것은 한계가 많은 작업이다. 유진상 씨는 집을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실제 생활하는 공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제로 이 집에서 오랜 시간과 세월을 함께 보낼 가족을 먼저 생각했다는 그는 집의 기능적인 부분도 간과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하루는 여전히 미완성이고 계속 진화 중이다. 오후가 되면 나무가 시간에 따라 다른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석양 풍경이 또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곳. 하지만 집은 역시 가족이 있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한 편의 시나리오이다.


1 계단 아래 세모 공간은 드레스 룸으로 활용한다. 집 안의 모든 가구는 직접 제작한 것.
2 거실에서 바라본 블랙 주방 가구와 빛판으로 보이는 천장의 매입 조명등이 포인트. 주방 가구는 블랙 강화유리로 마감했다.


건축가 유진상 씨는 전남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미술사를 수학한 뒤 서울대학교 건축학사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금성종합건축사 사무소, A.rum에서 실무를 쌓았으며 그린건축포럼 회장 역임, 창원시와 통영시 도시 경관을 계획했고, 단독 주택 자하루로 경남 건축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국립 창원대학교 건축설계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유진상 씨가 전하는 저비용 주택 설계 팁
●벽 단열은 외단열(단열재를 바깥에서 시공)로 시공하고 압축 단열재를 내벽과 천장 부분에 보강하면 단열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난방선을 깔기 전 바닥에는 강자갈 또는 자연석을 깬 자갈을 사용하고 두께를 10cm 정도 더 확보하는 것이 좋다. 창은 남쪽, 거실에 집중 배치해 거실이 온실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
● 집을 특별하게 짓으면 공사비가 올라갈 것이라는 두려움을 버릴 것. 최대한 많이 공부하되 집 짓는 순간에 직면하면 믿을 수 있는 건축가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라고 조언한다. 건축가는 유사 재료를 좀 더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구입하고 시공하는 방법을 알기 때문.
● 건축은 형태건 재료건 단순해야 한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은 살아가면서 생기는 살림으로 공간을 채운다. 불필요한 장식에 미리 돈을 낭비하지 말고 최대한 심플하게 지을 것.


이지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