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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작업실]디자이너 이우진 씨의 아틀리에 생각이 자유롭게 노니는 그곳
2002년 독립해 올해로 8년 된 젊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우진 씨. 그동안 클라이언트의 취향과 요구 사항을 반영해 ‘타인의 공간’을 디자인하던 그가 드디어 자신의 작업실을 새롭게 마련했다.장자의 ‘소요’ 사상이 담긴 이곳에서 이우진 씨는 ‘느리게 디자인하기’를 모토로 삼고, 충분한 사유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은 종종 푸념 섞인 하소연을 한다. 디자인은 곧 창작인데,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디자이너에게 창작을 위한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는다고. 창작과 충분한 사유의 시간, 이 둘의 필요 충족 관계를 절대적으로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우진어소시에이트 소장 이우진 씨가 바로 그이다.

이우진의 느리게 디자인하기 이우진 씨는 공간 디자인은 결코 단순한 데커레이션에 그쳐서는 안 되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느리게 디자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2002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디자인 회사 이우진어소시에이트를 설립한 그는 젊은 디자이너답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과감하고 강렬한 레드 컬러에 섹슈얼리즘을 담은 ‘에로바 코리아’ 전시 공간, 산속 산장처럼 안온함이 감도는 방배동 레스토랑 ‘작은 마을’ 등이 그의 손길을 거쳐 완성된 공간이다. 늘 타인의 공간만 디자인해온 그가 드디어 자신의 취향과 철학대로 사옥과 작업실을 공들여 만들었다. 오롯이 1년 동안 공들여 만든 작업실은 장자의 ‘소요 逍遙’ 사상을 디자인 콘셉트로 삼았다. “사람들이 종종 이런 작업실에서 일하면 일이 더 잘되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 작업실이 새로 생긴 후 늘어난 것은 정확하게 말해 일보다는 사색의 시간입니다. 사색은 디자인의 깊이를 더해주는 통로입니다.” 이우진 씨가 사색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 작업실. 생각해보면 그 공간이 생긴 다음부터 일이 더 잘되긴 했다.

(위)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은 책장에 모빌 같은 조명등으로 공간에 활력을 더한 이우진 씨.


1 외국의 로프트 하우스를 연상케 하는 디자이너 이우진 씨의 작업실. 그가 하루에 반 이상을 보내는 곳으로 일하다가도 잠시 볕을 쬐며 쉴 수 있도록 테라스를 만들었다.
2 계단 쪽 천장에 아피통 나무를 사선으로 덧대 공간을 변주했다.


화려한 수사로 클라이언트를 설득해야 했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작업실 자체가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니까. 이우진 씨는 작업실을 계획하며 오직 한 가지, ‘무엇을 더할까가 아닌 무엇을 뺄까’라는 점에 몰두했다. 그렇게 해서 장자의 소요 사상을 옮겨놓은 작업실은 ‘자유롭게 거닐다’라는 본뜻에 약간의 의미를 더해 ‘생각이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공간’으로 완성된 것이다. 소요의 공간을 위해 그는 ‘여백’으로 공간을 채워 넣었다. 10여 년 동안 디자인 작업을 해오며 본 것도, 사들인 것도 많지만 절제미를 살려야 장자의 소요 사상이 공간에 깃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5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나 제법 너른 테라스 등 무언가 놓여 있을 법한 자리에는 여백만이 차분하게 자리하고 있다. 벽난로를 중심으로 한 공간에는 일본의 다다미방처럼 바닥보다 한 단 정도 낮은 곳에 키 작은 테이블과 소파를 마련해놓고, ‘객’이 올 때야 진정으로 완성되는 좌식형 공간을 연출했다. 그 공간에서 이우진 씨는 지인들과 와인 파티를 열기도 하고, 클라이언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신발을 벗고 앉아 서로를 마주하다 보면 타인에 대한 낯섦이 사라지고, 상대방 이야기에 더욱 귀 기울일 수 있다.

3 이우진 씨는 옛 물건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옛것에는 제각기 나름의 사연이 담겨 있어 보고만 있어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나무, 돌확이 어우러진 공간 밖에서 건물을 바라보면 직사각형이 아닌 위가 좁은 사다리꼴의 외형이 인상적인데, 이에 대해 이우진 씨는 이렇게 말한다. “사다리꼴 외형은 사실 주변의 일조권 보장을 위한 배려에서 디자인한 것입니다. 이곳이 주택가인 만큼 주위 환경과의 어우러짐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평수를 꼭 채워 쓰기 위해 억지로 두 면의 선을 맞추다 보면 미학적 매력 없이 어색한 모습의 공간이 설계되곤 한다. 하지만 이우진 씨는 건물을 짓기 전에 마음을 비웠다. 억지스럽게 공간을 넓히려는 마음을 버리니, 테라스의 너른 통창으로 하늘이 그림처럼 다가왔다. 이우진 씨는 이렇듯 아이디어만 있다면 건축 규제가 언제나 숨 막히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또 공간에 부유하는 고요함이 지루하지 않도록 자재를 사선으로 배치해 역동성을 더하기도 했다. 건물 외관에 마감재로 사용한 아피통 apiton 이라는 나무를 일직선이 아닌 사선으로 켜켜이 쌓은 것도 그 이유에서다. 블랙과 화이트를 기본으로 하되 작업실로 오르는 계단 옆 작은 대나무, 여느 여염집에서 사용했을 법한 문짝으로 만든 탁자 등 편안한 느낌의 낡은 원목으로 공간에 휴식을 주었다. 아피통은 흔히 철도에 까는 괴목 중 하나인데 계절에 따라 늘었다가 줄어드는 등 수축 팽창을 하는 ‘숨 쉬는 나무’다.테라스 연못에는 평소 자태가 아름다워 하나둘 모아놓은 돌확을 가져다놓았다. 지인들 사이에 ‘도심 속 오아시스’로 불리는 작업실. 유독 시간도 천천히 흐르는 것 같은 곳에서 디자이너 이우진 씨는 부단히도 자신을 점검한다. 오늘도 너무 빨리 디자인하지는 않았는지에 대해….

1 사다리꼴 건물의 이우진어소시에이트(02-544-2016) 사옥. 청담동 주택가 사이에 자리한 이 건물 4, 5층에 디자이너 이우진 씨의 작업실이 있다.


2 화가 유의랑 씨가 이우진 씨의 작업실 오픈을 기념해 선물한 그림. ‘휴식’을 주제로 한 그림이 작업실에 잘 어울린다.


3 하늘이 투영되는 테라스에는 의자가 되기도 하고, 오브제가 되기도 하는 라탄 소재의 아웃도어 가구를 가져다놓았다.
4 테라스 한쪽에 만들어놓은 작은 연못. 돌확에 낀 이끼가 자연의 멋스러움을 더해준다.


황여정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