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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지은 집]건축가 김택수 씨가 설계한 판교 단독주택 따뜻한 가족애로 단단하게 지은 집, 방연당
주택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는 30~40대 실수요자의 관심을 모은 판교 단독주택지에 하나둘 집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아직은 썰렁한 서판교의 운중동 주택 단지에 지은 김준우 씨의 이층집. 특이하게 예쁜 구석은 없지만 묵직한 느낌이 드는 방연당 芳 堂은 그 이름과 같이 ‘꽃처럼 아름다운 가족애’로 단단하게 채워졌다.

태어나서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아버지가 지은 기와집에서 살았다는 건축주 김준우 씨. 자신이 20년 동안 산 집을 아버지가 손수 지은 것처럼, 세 살배기 쌍둥이 형제에게도 집에 대한 추억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부인 박수진 씨가 생각하는 ‘집’의 의미 역시 특별하다. 영어의 홈 home과 하우스 house, 패밀리 family의 의미를 다 합해도 집이 뜻하는 바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 이 부부가 상상한 집은 쌍둥이 형제가 자연과 더불어 뛰어놀고 부부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행복해하는 ‘가족애’가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각자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리는 네모 박스의 집이 아닌, TV 보기 싫은 아이들이 마당에 나가 뛰어놀고, 빛과 바람이 집 안으로 통해 자연의 풍광을 만들어주는 집, 그런 집을 짓기로 했다. 사실 김준우 씨 부부는 집을 짓겠다는 목표를 실현에 옮기기까지 상당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적당한 부지를 알아보다 마침 판교 주택 단지 중 가장 입지가 좋다는 서판교 5블록의 코너 땅을 만났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남향과 동향의 혜택을 모두 누릴 수 있으리라 여겨 선택한 땅이었다. 더불어 땅의 두 면이 길에 닿아 있으니 시각적인 개방감도 있을 거라는 기대도 했다. 하지만 판교 단독주택지의 코너 땅은 지구계획 법규상 수많은 제약을 안고 있었다. 우선 ‘건축 지정선’이 정해져 있는데, 건축물의 남쪽과 동쪽 면이 이면 도로에 맞닿아야 한다는 것. 따라서 남쪽으로 마당을 둘 수 없을 뿐 아니라, 건물을 지어도 길에서 집 안이 훤히 들여다보일 수 있기 때문에 창도 마음껏 낼 수 없었다. 땅에 제약이 많은 만큼 이를 최대한 극복해줄 수 있는 건축가를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서판교에도 공동 건축 동호회가 있어요. ‘공동 구매’와 같은 개념으로 여러 가구가 함께 설계와 시공을 맡기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지요. 처음에는 동호회에서 추천해준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겼는데 우리 가족이 그리는 이상적인 공간을 모두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죠.” 결국 건축가를 다시 소개받아 지은 집이 ㄷ자형 구조의 방연당이다. 설계는 ‘베르텍스 디자인’의 김택수 소장이 맡았다. “주택 디자인이란 삶의 문화를 건축가가 대신 그려주는 것과 같지요. 건축주를 위한 디자인의 시작은 관심사와 취미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건축주와 1차 미팅을 하고 에세이를 과제로 낸다는 김택수 씨. 에세이를 통해 김준우 씨가 막연하게 표현한 행복한 풍경은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 저 멀리 불 켜진 거실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집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그는 어릴 적 담벼락 사이 골목길에서 느꼈던 소통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했다. “건축은 분할과 소통을 유기적으로 연출하는 작업이죠. 거실과 부엌, 방에서 각자 활동하는 사람들이 다른 가족 구성원의 기척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좋은 집이라 생각합니다.” 김준우 씨 부부가 생각하는 집의 이상형 모델과 딱 맞아떨어지는 대목이었다.

1 외관 마감재로 사용한 블랙 스테인리스 스틸은 표면을 어두운 빛깔로 부식시키고 브러싱 작업으로 광택을 더한 것. 빛에 따라 다양한 느낌이 연출된다.
2 ㄷ자 구조인 방연당의 초기 설계 도면.



3 덱과 마당을 사이에 두고 아이 방과 침실, 가족실과 주방이 서로 통창으로 마주 보이는 구조다.

빛, 바람 그리고 사랑이 침투하는 공간 부부가 원하는 ‘소통’의 공간을 실현하기 위해 김택수 소장은 이 집의 메인 콘셉트를 사랑이 침투한다는 뜻의 ‘permeable love’로 잡았다. 그리고 70평 부지를 크게 세 구획으로 나누어 아이들 공간(이면 도로와 맞닿는 건물), 공용 공간(주방과 덱, 마당), 부부 공간(안쪽 주차장 옆 건물)으로 분류했다. 김택수 씨가 평소 좋아하는 외국의 한 소방서 건물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으로, 이 세 공간이 통창을 통해 개방된 것 같은 효과를 낸다. 거실 라인을 좀 더 길게 빼는 언밸런스 구조는 뒤쪽 건물에 위치한 거실의 채광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 1층 현관으로 들어가면 통창 너머로 덱과 대나무가 보인다. 왼쪽 복도를 따라 서너 개의 낮은 계단을 내려가면 가족실이 있고, 현관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주방이 있다. 2층까지 천장고를 올린 주방에서는 반대쪽의 가족실과 2층 복도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 복도 난간을 강화유리로 마감했는데,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집을 지으면서 건축주가 원한 것은 가족애를 키워나가는 것. 보통 단독주택을 지으면 지하 공간에 AV 룸을 두곤 하는데, 남자의 비밀스러운 공간이 생기는 것 같아 만들지 않았다. 대신 경사진 지형 구조를 그대로 살려 거실을 50cm 정도 단을 낮췄는데 아이들이 앉아 놀 수 있는 ‘층계 아지트’까지 확보한 셈. 아이들이 거실 창틀에, 또는 덱 계단에 앉아 가위바위보를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단다.

4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덱의 대나무 풍경은 자체로 이미지 월 역할을 한다.


1 옥상 덱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 천장을 유리로 마감했는데,1층 주방까지 빛이 쏟아져 내려온다.
2 부부에게 가장 소중한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상황을 모두 체크할 수 있도록 모든 공간이 한눈에 보이도록 오픈된 구조를 택했다.



3 가족실의 단을 낮추니 공간이 한결 입체적으로 보인다.

한계는 또 다른 창조를 만들어낸다 2009년 3월 설계를 시작해 2009년 12월 완공하기까지, 9개월 동안 집이 지닌 의미 역시 단단하게 다독여졌다. 가족애를 굳건하게 지켜주려는 듯 블랙 스테인리스 스틸과 노출 콘크리트 소재를 사용한 외관 역시 무척 늠름한 모습. 외장 마감재로 사용한 블랙 스테인리스 스틸은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한남동 삼성 리움미술관에 사용한 자재로, 집의 외관에 묵직한 느낌을 더해준다. 내구성 강한 재료로 블랙 티타늄보다 가격이 2.5배 정도 저렴해 대체 재료로 많이 사용한다. 사실 콘크리트나 철을 보고 따뜻하다거나 아늑하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용 방법이나 형태, 위치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김택수 씨의 생각. “어떤 것을 한 가지 포기하면 좀 더 창의적인 무언가를 얻게 되더라고요. 외장 마감을 모두 스테인리스 스틸로 하고 싶었지만 예산 부족으로 노출 콘크리트와 섞어 사용했어요. 위쪽에 스틸 프레임을 씌운 듯한 효과로 한층 묵직하고 입체적인 느낌이 듭니다. 남향의 혜택을 완벽히 누릴 수 없다는 것에서 부딪히는 한계, 집 안에 빛을 최대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또 다른 재미있는 요소들을 만들어냈지요.” 그는 채광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주방 위에 가느다란 천창을 냈다. 남향이지만 이면 도로 쪽 건물에 가려져 채광이 문제였던 거실은 양쪽 건물이 끝나는 라인에 차이를 둠으로써 문제점을 해결했다. 오후 2~3시까지는 거실 창, 그 이후에는 주방 통창을 통해 햇볕이 가득 들어온다. 프라이버시 문제도 고려해야 했다. 이면 도로와 맞닿은 아이 방은 남쪽 창문을 작게 내는 대신, 거실과 맞닿은 창을 통창으로 만들어 프라이버시는 지키면서 채광과 소통이 원활하게 했다. “친환경이라는 것은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과 친밀하게 소통하는 것, 빛과 바람의 움직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는지가 더 중요하지요.” 구조가 복잡하지도 않고 꼭 필요한 공간만 있는 이 집이 따뜻하고 풍요로워 보이는 이유는 서로의 풍경을 배경 삼은 통창과 곳곳에 숨은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 덕분일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기본 기능에 충실한 독일 리모컨 같은 집을 짓고자 한 김택수 소장. 실험적인 시도는 없었지만, 기본에 충실한 이번 작업을 통해 오히려 건축주에게 배운 점도 많았다고 말한다.

베르텍스 디자인(www.ver-tex.net)의 김택수 소장은 오스트레일리아 더글라스마슨 공과대학과 RMIT 대학에서 데커레이션과 실내 건축을, 미국 Sci-ARC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톰코박스 스튜디오와 미셀사이 스튜디오에서 실무를 쌓았으며 2002년 귀국해 베르텍스 디자인을 설립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옥주현 요가 스튜디오 에버, 헤이리 주택, 성균관대학교 디지털 라이브러리, 인천 영어마을 등이 있다.


건축가 김택수 씨의 조언 집 짓기 초보자를 위한 팁
● 필지를 고를 때 먼저 지구 단위 계획을 살피고, 주차와 진입로 등을 고려해야 한다. 지역 건축법에 따라 용적률, 건축 지정선이 달라 막연히 위치가 좋아 보이거나 값이 싸다고 해 필지를 사면 건축할 때 그만한 비용을 치러야 할 수도 있다.
● 친환경 마감재, 태양열 시공을 하는 것보다 빛과 바람, 공기가 어떻게 순환되는지 그 움직임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아파트는 사각 공간을 빠듯하게 나눠서 시각적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다. 방 3~4개, 화장실 2~3개, 드레스 룸, 파우더 룸, 다용도실 등을 모두 채워 넣으려면 주택의 볼륨이 커지는 만큼 비용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주택에서 누릴 수 있는 가치는 다른 것. 조금 덜 채우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작아도 짜임새 있는 주택을 지을 수 있다.

기본에 충실한 실내 디자인 베이식 마감재를 활용하라
인테리어를 담당한 ‘디 아키즈’(02-511-8406)의 방은숙 실장은 전체적으로 갤러리 느낌으로 연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집은 도화지에 채색하는 것과 같아 살면서 개성대로 하나씩 채워나가도록 한 것. 살면서 클래식 오브제로 꾸미든 모던한 가구를 들이든 어떠한 것도 다 어울릴 수 있도록 기본 마감재로 꾸몄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백색 도장과 오크 소재. 가구도 딱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들이겠다는 건축주의 말에 책장과 붙박이장, 화장대 등 맞춤 가구를 최대한 활용했다. 침실은 드레스 룸 기능까지 해결. 한쪽 벽면은 시스템 붙박이장을 설치해 드레스 룸과 소품실로 사용하고, 맞은편에 화장대를 두었다. 화장대 아래 남는 공간에는 온수 분배기를 넣고, 욕실 문은 좁은 공간에서도 활용 가능한 슬라이딩 도어로 설치했다. 이처럼 소재를 하나로 통일하면 건축비도 절감되고, 유지와 보수도 한결 간편하다.


이지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