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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을 부르는 장식, 민화
민화는 예술적 감상보다 장식을 위해 그린 그림입니다. 병풍, 다락문, 가구 등 생활용품을 장식하며 우리 조상의 일상을 가꾸어주었지요. 민화에는 무병장수, 다산과 풍요, 부귀영화 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믿음으로, 삶에 대한 애착과 동경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오복을 부르는 그림, 민화 한 점에 새해 소망을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현대 공간에서 빛을 발하는 민화의 다양한 모습을 만나봅니다.

(왼쪽) 소망을 담은 탐스러운 그림, 소과도 蔬果圖
열매와 씨앗은 자손의 번창과 부를 상징한다. 농경 문화권에서 자손이 많은 것은 곧 부를 늘리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과일은 덩굴이나 가지에 매달린 것으로 그리는데, 이는 자손이 덩굴처럼 이어져 영원히 번성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많은 자손을 표현하기 위해 과피가 벌어지거나 칼로 자른 과일을 그려 씨앗이 들여다보이는 모습을 표현하기도 했다. 붉은 씨앗으로 가득 차 보석을 간직한 복주머니 같은 석류는 부귀다남을, 젖먹이 엄마의 유방을 연상시키는 분홍빛 복숭아는 모성과 함께 불로장생을 의미한다.
민화 액자는 강은명 씨 작품으로 오색채담에서 판매. 새 오브제는 이딸라, 진사 화병은 이경한 씨 작품으로 한국공예관, 아래의 분청 과반은 정재효 씨 작품으로 정소영의 식기장에서 판매.

(오른쪽) 사랑방에서 찾은 구경거리, 책거리 병풍
주로 사랑방을 장식하던 책거리는 고매한 학식을 쌓고자 한 조선 시대 선비들의 소망을 담고 있다.
책가도, 문방도 등으로도 불리는 책거리에 그려진 책 무더기는 높은 학식에 대한 열망이었다.
따라서 과거 시험을 앞둔 아들의 공부방, 때로는 자식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에 갓 태어난 아기 방에 걸어놓기도 했다. 책거리에는 문방사우뿐 아니라 술병, 주전자, 부채, 시계, 꽃병, 분재 등 사랑방의 갖가지 생활용품을
함께 그렸는데, 이를 통해 조선 시대 사랑방 풍경을 가늠해볼 수 있다. 여자의 치마, 꽃신, 꽃과 과일 등도
함께 그렸는데 이는 수복이나 자손 번성 같은 인간의 기본 욕망을 담아낸 것이다.
책거리는 산수화나 화조도와 달리 입체적인 그림이다. 책이 뒤쪽으로 갈수록 점점 넓어지는 역원근법을 사용하기도, 한 그림 안에 여러 개의 시점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는 책거리만의 특징이다. 책거리 병풍은 민화 작가 정성옥 씨 작품. 소파와 테이블, 플로어 스탠드 조명등과 촛대는 아르마니 까사, 도자기 컵은 정소영의 식기장 제품.


악귀를 물리치고 복을 들이는 까치 호랑이
우리 조상은 용과 호랑이 등 무서운 형상을 그려 집 안팎에 붙이는 풍습이 있었다. 영물로 여기는 동물 그림이 악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힘을 갖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매년 정초가 되면 해태, 닭, 개, 호랑이 등을 새로 그려 붙였는데, 이는 입춘방처럼 축귀와 구복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문배 그림으로 사랑받은 까치 호랑이 그림은 새해의 기쁨을 알리는 길상적 의미를 갖고 있다.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길조로 여기는 까치는 인간의 길흉화복을 좌우하는 서낭신의 사자로, 호랑이는 서낭신의 신지를 받드는 심부름꾼이라 여겼다.
까치 호랑이는 민화 작가 서공임 씨 작품으로 커피의 농도를 조절해 그린 것이다. 서공임 작가의 <백마리 호랑이>전이 에비뉴엘 롯데아트갤러리에서 열린다. 1월 28일까지. 문의 02-727-4428. 왼쪽 벽에 자리한 그림은 서양화가 구자현 씨 작품. 화이트를 주제로 하는 그의 또 다른 작품들을 이엔에스 E&S에서 만날 수 있다. 12월 28일까지. 문의 02-541-8484. 테이블 위 이바지 과반은 우일요, 책은 심지서적에서 판매.


규방에서 색실로 그린 그림, 자수
종이에만 민화를 그린 것이 아니다. 신부가 타고 가는 꽃가마를 비롯해 도자기, 가구, 문방구, 돗자리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활용품을 장식했다. 소망과 염원을 담은 민화는 조각이나 문양으로, 알록달록 색실로 곱게 수놓아 자수로도 표현했다. 십장생도나 화조도를 자수로 표현한 병풍뿐 아니라 소소한 규방 소품을 장식 한 자수도 모두 실로 수놓은 민화라 할 수 있다. 규방 장식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꽃은 부귀와 번영, 축복, 다산과 강녕 등을 소망하는 마음을 담는다.

(왼쪽) 모란도 자수 방석과 공단 방석은 모두 빈콜렉션 by 강금성, 방석 앞에 놓인 물컵은 김선심 씨 작품으로 정소영의 식기장, 흰색 물병과 커피 잔 세트는 이딸라 제품.
(오른쪽) 섬세한 꽃수가 놓인 바늘방석과 골무는 모두 김은경 씨 작품으로 은채, 앤티크 모반과 다듬잇방망이, 인두, 나무 자는 모두 은채 소장품.
왼쪽 구석의 석류 문양 펜 꽂이는 정소영의 식기장, 골무가 담겨 있는 진사 컵은 한국공예관에서 판매.


민화 이야기
민화를 흔히 낙관이 없는 그림, 제작 연대나 작가를 모르는 그림이라 한다.
사군자나 수묵화처럼 전통 회화의 격식을 차리지 않았기에 조선 시대에는 잡화, 별화, 속화라고 불리며 사대부 계층에는 천시되던 그림이다. 그러나 민중의 진솔한 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한 민화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일반 서민의 생활 속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잘난 척하지 않으며 가식이 없는 그림, 자유롭고 독특한 발상, 기발하고 천진스러운 표현이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라 하겠다. 문인화가 작가의 예술성과 세계관을 반영한 감상을 위한 그림이라면 민화는 장식적 필요에 의해 그려진 생활미술이다. 대표적인 예로 민화 병풍을 들 수 있다. 웃풍이 센 한옥에서 병풍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세간으로 일상적인 생활 공간과 혼례, 생일, 제사 등 집안 행사에서 언제나 사용했는데, 자손의 번영과 출세, 무병장수 같은 인간적 소망을 담은 상징적인 그림, 곧 민화로 장식했다. 또 옛사람들은 영적인 힘을 지닌 동물 그림을 집에 둠으로써 잡귀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이는 민화의 발생과 전파에 큰 역할을 했다.
생활에 필요한 장식이나 주술적 용도로 그린 만큼 민화에는 서민의 공통되는 세계관, 집단적인 미적 체험을
원초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민화는 눈에 보이는 사물의 묘사, 사물과 사물의 관계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현실에 없는 것이라도 상상을 동원해서 표현하기도 했다. 민화는 똑같은 그림이 많은데, 장식용인 만큼 일정한 본에 의해 반복적으로 그린 일종의 ‘뽄그림’이기 때문이다.

(왼쪽) 금실을 돋우는 화조도 병풍
화조도는 어느 공간이나 격식 없이 장식하던 대표적인 길상화다. 화조도는 매화, 동백, 진달래, 오동, 솔, 해당화 등에 봉황, 원앙, 공작, 제비 등을 물이나 바위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이다. 민화에 등장하는 새는 반드시 암수 한 쌍으로 의좋게 노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부부가 화합하고 금실이 좋다는 것에 비유된다. 화조도에는 백년가약을 맺은 부부가 일평생 사랑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 재산을 모으고 벼슬에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겹고 후덕한 경사만 생기며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지속하길 바라는 마음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화조도 병풍은 개인 소장품.

(오른쪽) 식탁 위에 만개한 꽃 무덤, 화훼도 접시
민화에서는 꽃 그림을 새와 함께 그리면 화조도, 곤충과 함께 그리면 초충도로 세분화한다. 반면 새와 곤충이 등장하더라도 꽃에 중점을 둔 그림은 화훼도로 부른다. 화훼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꽃으로 모란과 연꽃이 있다. 모란이 꽃 중의 왕이라면 연꽃은 꽃 중의 군자라 할 수 있다. 진흙 속에 살면서도 더러운 물 한 방울 몸에 묻히지 않는 기품 있는 꽃이다. 이러한 특성에 연꽃은 세파에 물들지 않는 청아함과 고결한 모습을 간직한 군자에 비유된다. 또 연꽃은 꽃과 열매가 동시에 생장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아들을 얻고 싶은 염원을 화병에 꽂힌 연꽃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연밥에 촘촘히 박힌 연실은 다남을 상징한다.
오색 연꽃을 그린 연화도 사각 접시는 우일요, 모란과 나비를 그린 모란도 접시는 손경희 씨 작품으로 정소영의 식기장에서 판매.
정재효 씨의 청화 백자 접시, 이은범 씨의 백자 합, 고희숙 씨의 물컵은 모두 정소영의 식기장에서 판매.
디너 플레이트 세트와 콘솔 위 화병, 가구는 모두 아르마니 까사 제품.


김성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