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건축가가 지은 집] 유쾌한 상상, 건축이 되다
2001년 문훈발전소를 오픈한 이래, 유쾌한 상상을 에너지 삼아 재기발랄한 건축을 선보여온 문훈 씨가 이번에는 강원도 정선에 뿔을 세우고, 꼬리가 달린 펜션을 완성했다. 한국 건축계의 과도한 묵직함을 털어내고 유쾌함을 더한 건축물. 문훈 씨는 그 앞에 서서 당당하게 공표한다. “어떤가, 통 通하니 이렇듯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스페인 여행 중에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펜션. 주위의 소나무, 낙엽송 숲과 어우러져 ‘자연 속의 놀이터’를 연상케 한다.

“저거다!” 멀리서 봐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거라는 건축주의 설명이 맞았다. 굽이진 언덕바지를 두 바퀴 정도 크게 돌자, 병풍처럼 펼쳐진 너른 산 안에 포근하게 싸여있는 대지. 아직도 내비게이션은 목적지까지 500m 남았다고는 하나, 우리는 그 대지 위에 올려져 있는 그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건축가 문훈 씨가 지은 강원도 정선의 ‘락 樂있수다’ 펜션. 흡사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불도저, 세단, 쿠페가 정육면체 로봇으로 변신하고는 출동 전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안착해 있는 듯한 모습. 건축가 문훈다웠다. 아니, 문훈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 전체적인 공간 콘셉트는 스페인의 투우사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2 통창 대신 보는 각도에 따라 느낌이 다르도록 반사되는 유리와 일반 유리를 분할해 사용했다.
3 개성 있는 건축물을 선보여온 건축가 문훈 씨.


건축가를 똑 닮은 건축물 올 초 <행복> 편집부에 건축가 문훈 씨는 강원도 펜션 작업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건축가 문훈, 그가 어떤 이인가. 예상을 뒤엎는 상상력과 돌발 행동으로 건축계의 ‘이단아’이자 ‘청개구리’로 불리는 그. 검은색 망사 스타킹을 씌운 다세대주택에다, 지붕 끝에 긴 속눈썹을 붙여 올린 펜션, 우주선 조종실 형태의 기도실을 설치한 양평주택 등 그의 건축은 판타지 영화나 공상 과학 만화를 연상시킨다. 그는 언젠가 자신의 작업 의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건축은 건축주의 욕망과 건축가의 욕망을 함께 해소하는 작업이다. 자신을 과시하고 싶거나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을 3차원적 공간에 적절히 버무려내는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그 욕망을 해소하는 일에 중점을 둔다. 혹 다른 건물과 어우러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할 시간에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최대한 녹여내는 방법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할 것이다.” 한동안 그는 본인이 자처한 대로 건축계의 아웃사이더였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뭐든 순리대로 되기 마련인지 일본의 건축 잡지 <10+1>에서 세계 건축가 40인에, 그것도 5위에 당당하게 그의 이름을 올렸다. 또 2005년에는 홍대 앞 상상사진관 작업으로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 그이기에 이번 작업도 자연히 기대될 수밖에 없었던 터. 당장이라도 정선 펜션을 향해 총알처럼 튀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취재진에게 그는 “벌써 오시게요? 아직 뿔을 안 달았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하다가, 또 어느 날에는 특유의 너털거리는 웃음을 던지며 “뿔은 달았는데… 아직 꼬리를 못 달았어요”라고 말하곤 했다. 아니, 펜션이 무슨 장난감도 아니고 뿔은 뭐고 꼬리는 무엇인고. 10여 개월 만에 드디어 마주한 그의 작업물 앞에서 취재진은 한껏 웃었다. 으레 건축물을 보면 그것을 지은 건축가의 성격이나 취향을 가늠할 수 있는 게 사실이지만, 건축가 문훈과 건축물은 닮았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1 건물 뒤편에는 부드러운 천 소재의 꼬리가 달려 있다.


2 1층과 2층을 오갈 때 계단 대신 콘크리트 슬라이드를 이용하게끔 디자인한 가족실. 펜션 주인 김재일 씨의 감각을 엿보고 싶다면 잠시 들여다볼 것. 한 달 동안의 스페인 여행길에서 찍어 온 8천 장의 사진 중 백미만 골라 전시해놓았다.

문훈의 에너지의 근원은 차고 넘치는 행복 이 건축물을 지을 때 젊은 건축주의 요구 사항은 단 하나였다. 펜션 하면 으레 떠오르는 기존의 이미지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 10년이 넘게 직장 생활을 해온 젊은 건축주는 지금까지의 지극히 소모적이고 경쟁적인 삶을 뒤로하고 이 건축물을 계기로 새로운 인생의 2막을 열겠다는 마음이었다. 훈훈한, 따뜻하고 여유로운, 무엇보다 재미있는 펜션 만들기에 건축주와 건축가가 머리를 맞댔다. 앞으로는 건천, 뒤로는 산이 든든하게 받쳐주는, 자연을 이웃으로 삼은 대지에 커플을 위한 2개 동, 가족을 위한 4개 동, 카페 1동에 관리를 위한 1동 규모로 설계가 시작됐다. 사면에 네모반듯한 곳이 하나도 없는 공간은 놀이 공간 그 자체다. 딱딱한 건축을 부드럽게 해줄 요소로 천을 선택하기도 했다. 기존 펜션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해먹을 새롭게 해석한 형태로 건물 뒤편에 길게 천을 늘어뜨려 꼬리를 만들었다. 꼬리는 건축에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더한 것으로, 아이는 물론 어른도 얼마든지 걸어 다닐 수 있고, 잠시 기대어 쉴 수 있는 이 펜션의 포인트다. 으레 건축물 하나를 완성하고 나면 단편 영화나 콜라주 등을 제작하는 문훈 씨는 이번에도 한 편의 동영상을 제작했다.


3 부엉이 눈에서 모티프를 얻어 디자인한 유리창.

안 그래도 바쁜 삶에 번잡함을 더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첫째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두 번째는 건축주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그리고 세 번째는 훗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샘물이 넘쳐야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줄 수 있듯이, 내가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워야 남도 그렇게 느끼게 해주는 거 아닌가요? 건축에 대해 쉽지 않게 생각하는 일반인과의 소통을 위한 것은 사실 명분이고, 저 행복하자고 하는 일이에요”라며 웃는다. “유럽에는 재미난 공공건물이 많아요. 그에 반해 우리는 건축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한테도 공공건물 하나 지어보라고 맡겨만 줘보세요. 진짜 재미있게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보라고요? 극우파 단체를 위한 건물을 짓는다고 가정해보죠. 가장 먼저 골조를 우측으로 45도 기울어지게 할 거예요.(웃음) 사람들이 그 안에서 우측으로 기울어져 걷다 보면 언젠가 깨닫겠죠. 아, 내가 너무 편협한 삶을 살고 있구나.” 생각해보면 그렇다. 예술이란 결국 단조로운 삶에 추임새를 주기 위함이 아닌가. 뭐 그렇게 어려울 게 있는가. 통하니 이렇게 즐거운걸! 취재진은 그의 극우파 건물 이야기에 또 한 번 웃었다. 그도 덩달아 웃었다.

4 같은 듯 서로 다른 디자인의 커플 룸 현관. ‘락있수다’ 펜션에는 같은 디자인의 방이 하나도 없다.


5 뿔 달린 건물과 빨갛고 노란 건물(왼쪽)은 가족실, 부엉이 모양의 건물은 커플실. 1층은 단체 손님(최대 8명 수용)을 위한 공간이다.

펜션 정보 건축가 문훈 씨의 말에 의하면 ‘락있수다’ 대표 김재일 씨는 지금까지 만났던 의뢰인과는 뭔가 좀 다른 사람이란다. 자신의 의견이나 요구 사항을 조목조목 적어 오는 것은 기본이고, 각종 이미지와 도식화된 표를 파워포인트로 작업해 왔다는 것. 상당히 넓은 분야에 관심과 식견이 있는 그는 락있수다 펜션이 놀이터로 불리길 원한다. 콘서트는 물론 영화, 게임 등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문의 033-562-9387, http://rockitsuda.com


점집 같은 빨간 사무실 ‘문훈발전소’ 대표 문훈 씨는 어릴 적 지질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호주에서 10대를 보냈다. 당시 ‘파라다이스’ 같은 호주에서 풍경과 건물을 그리다가 건축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 것. 인하대 건축과, MIT 건축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묵동 다세대주택, 전주동물원, 현대고등학교, 상상사진관, 양평주택 등을 작업했다.


황여정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