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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프랑스대사관 리디 베르트랑 공보관의 한남동 집
경박한 유행과 타협하지 않고 수십 년간 정성껏 모아온 앤티크. 그 옆에 전기스탠드를 세워 앤티크의 섬세한 조각과 장식을 은은하게 비춘다. 한남동에 위치한 주한 프랑스대사관 리디 베르트랑 공보관의 프렌치 하우스에서 실생활에서 앤티크를 제대로 감상하고, 적절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응접실 양쪽에 놓인 거실장은 중국 앤티크로 , 리디 베르트랑은 와인 잔, 플레이트 등의 각종 주방용품을 깔끔하게 보관하는 데 사용한다.


1 베트남의 수공 기술이 묻어나는 화이트 매트를 깔고 프랑스 명품 바카라 글라스, 베르나르도 플레이트를
올려놓았다.
2 전기스탠드와 촛불 등의 간접조명으로 집 안에 표정을 더했다.



3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구입한 리디 베르트랑의 앤티크 1호. 그 위에 놓인 여러 오브제들은 그녀가 30년 동안 애지중지 모은 것들이다. 
4 세세한 인테리어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고려해 집을 꾸미는 리디 베르트랑.


10월 말, 한 지인을 통해 이태원 리움 근처에 ‘프랑스 사람이 어떻게 공간을 꾸며놓고 사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집’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복층의 60평도 넘는 넓은 공간을 간접조명으로 밝혀놓은,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집. 그런데 그다음 말에 귀가 더 솔깃해졌다. 집주인은 30년 동안 역사가 깃든 고가구는 물론 각 나라의 고귀한 전통품을 모으는 컬렉터인데, 얼마 전에는 한국에서 보낸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순백의 달항아리를 샀다고(그녀는 곧 다른 나라로 부임할 예정이다). 그쯤 되니 집도 집이지만, 집에 사는 사람이 더 궁금해졌다. 달항아리가 무엇인가. 한 점의 문양도 없는 순백의 조선백자로 갓난아이의 살결처럼 유연한 곡선의 미를 풍기는 우리 전통 도자기가 아닌가. 디자인 강국이라 알려진 프랑스에서 온 이가 우리의 달항아리의 매력을 알아봤다니 그 안목에 놀랐다. 주한 프랑스대사관의 베트남계 프랑스인 리디 베르트랑 Lydie Bertrand 공보관. 그녀의 집에 대한 탐색은 이렇게 시작됐다.


1 미얀마 수도승 조각품. 온화한 미소가 부드럽게만 보이지만, 신체 앞부분이 파여 있는 것은 곧 삶의 고통을 의미한다고.


2 동서양의 앤티크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다이닝 룸.

전형적인 프랑스풍의 집 리디 베르트랑의 집은 아늑하고 친근하다. 그 이유를 그녀가 안내하는 대로 집 안을 한 바퀴 휘휘 둘러보고 나서 알았다. 집 안에 감도는 따스한 온기. 초콜릿을 먹으면 날이 섰던 마음도 둥글둥글해지듯 은은한 조명은 객의 낯설음도 이렇듯 순식간에 풀어주었다. 드넓은 공간도 이렇듯 아취를 자아낼 수 있다니, 그저 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리디 베르트랑은 “천장에서 내리쬐는 강한 빛은 나를 억누르는 듯해요. 실험실에 갇힌 동물에게 빛을 쏘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제가 손 좀 봤어요”라고 말한다.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천장 조명에 전구가 달려 있지 않다. 형광등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저 탁자 여기저기에 세워놓은 전기스탠드 몇 개, 그리고 군데군데 밝혀놓은 촛불이 이 집 조명의 전부라면 전부다. “불편할 거 없어요. 책은 스탠드 아래에서 읽으면 되니까요. 간접조명은 사람의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만들어주죠. 약간 어둑한 공간에서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삶의 위안을 얻어요. 완전히 100% 재충전이 되죠.” 작은 알전구에서 퍼져 나오는 빛의 향연,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촛불에서 번지는 따스함. 이야기하는 내내 탁자에 놓인 촛불이 그녀의 한쪽 볼을 비췄다. 음양이 드리워진 부드러운 얼굴빛, 그녀가 진심으로 자신의 집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조명을 손볼 때 그녀만의 원칙이 있다. 천장에 두 개의 할로겐 전구가 달렸다고 하자. 그 아래 그림이나 조각품과 같은 미술품이 놓여 있을 때는 조명 두 개 중 한 개만 켜놓는다. 조명을 둘 다 끄거나 켰을 때는 플랫한 느낌이지만, 한 개만 켜두었을 때는 더욱 드라마틱한 느낌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3 악사들이 새겨져 있는 침대 헤드.
4 주한 프랑스대사관 공보관 리디 베르트랑.


각 도시의 박물관에서 쌓아온 안목 “이 집에 이사 오니 모든 게 마음에 들었어요. 한남동이라는 동네. 밖에 나가면 5분 거리에 쇼핑할 수 있는 숍이 즐비하지만, 이 주택단지 안으로 들어오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죠.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마저 들리는 조용한 골목, 그리고 문화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뮤지엄 ‘리움’. 이 동네가 참 마음에 들어요.” 어느 나라에 부임하든 그녀는 제일 먼저 박물관, 미술관 그리고 앤티크 숍을 찾아간다. 주말에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유일한 도락이란다. ‘리움’ 뮤지엄은 한국의 전통품을 두루 감상할 수 있어서 더욱 즐겨 찾는 곳. 이렇듯 박물관에 다니며 쌓아온 안목 때문일까. 리디 베르트랑은 각 나라의 옛 물건을 보면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단다. 예전에 장한평 앤티크 숍에서 구입한 반닫이가 그 예다. “반쪽만 여닫을 수 있을 수 있어서 이름을 반닫이라고 지었나 보죠? 가게 주인 말이 옛날에는 옷감을 정리하는 도구로 사용했다는데, 실제로 제가 사용해보니 한국의 고가구는 굉장히 기능성이 뛰어나요. 저는 주방 옆에 두고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주방 도구를 넣어놓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에는 침실 옆에 두고 베개나 이불을 정리하는 도구로 활용할 겁니다.” 30여 년간 여러 나라의 전통 소품을 꾸준히 모아온 그녀에게 앤티크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언젠가 은퇴해 젊은 시절 두루 다녔던 나라를 추억하고 싶을 때 하나 둘 꺼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공보관 초기 시절,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당시 뉴질랜드 달러로 2천5백 달러 하는 견고한 장롱을 구입했다. 이것이 그녀가 기억하는 자신의 첫 번째 앤티크 가구다. “수중에 있는 돈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큰 금액이었죠. 결국 가게 주인에게 사정을 해서 두 달로 분할해 물건값을 지불했습니다. 지금까지 그 물품 대금 청구서를 보관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다음 근무지인 미국 뉴올리언스에서는 곰팡이 냄새까지 나는 18세기 장롱과 19세기 의자를 구입했다. 파리 플리마켓에서는 19세기 프랑스 루이 필리프 시대의 화려한 금박을 입힌 거울을 발견했다. 하루 종일 헤매다가 마침내 찾아낸 진품이었다. 오랜 세월 함께하면서 때론 거실에, 또 때론 침실에 그것을 두고 가족처럼 정을 붙였다. 그녀는 집 안에 거울이 여럿 있지만, 특히 그 거울이 가장 자신을 멋져 보이게 한다며 웃었다. 가장 아끼는 앤티크가 뭐냐는 질문에 난색을 표하며 “All of them!” 이라고 말하는 리디 베르트랑. 그녀에게 앤티크는 한평생 함께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가족이다.

2평 남짓한 작고 아담한 주방 직사각형의 거실은 외국 스타일 그대로 손님용 응접실과 다이닝 룸,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눠놓았다. 여느 유명 레스토랑 못지않게 근사하지만 좀 더 가깝게 지내고 싶은 손님이 왔을 때는 으레 2평 남짓한 주방으로 인도한다. 자그마한 2인용 테이블이 놓인 주방. 리디 베르트랑이 가장 좋아하는 이 공간은 집의 규모에 비해 매우 작고 소박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작은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주방에서 아이들과 쿠키랑 빵을 구웠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해요. 마음이 아주 따뜻해지죠.” 인터뷰가 거의 끝날 즈음 그녀는 지하에서 신중하게 프랑스 보르도 와인 한 병을 골라 왔다. 2인용 테이블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네 명이 어깨를 맞대어 둘러앉았다. 감미로운 재즈가 흐르자 촛불이 마치 음악 소리에 맞춰 춤을 추듯 흔들리던 그날 저녁, 작고 아담한 주방에서 와인 한잔을 마셨다. 거긴 분명 프렌치 하우스였다.

5 작고 소박한 주방에는 19세기 루이 필리프 시대의 테이블과 1930년대 바에서 사용했던 의자가 놓여 있다.

리디 베르트랑에게 배우는 앤티크 스타일
1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앤티크 한 점을 구입하라. 구입한 앤티크는 실생활에서 최대한 적절하게 사용하라. 원래 그 물건의 용도는 잊어도 좋다. 자신이 사용하고 싶은 대로 생활에 활용하라. 어떻게든 두루두루 사용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앤티크다.
2 앤티크 소품 옆에는 조명등을 두는 것이 좋다. 옛 장인의 솜씨가 깃든 함, 같은 함이라도 나라마다 문양을 새겨 넣은 방법 등이 다르다. 조명으로 가만히 그것을 비춰보면 앤티크는 그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황여정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