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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일 년을 매듭짓는 가을 단풍
전국의 산야가 불붙은 듯 울긋불긋한 10월, 꿈꾸는 정원사 이동협 씨에게서 반가운 편지가 왔다. <행복> 독자들에게 그가 보내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아무리 삶이 바빠도 올가을 단풍은 꼭 빼먹지 말고 즐기라는 것. 이동협 씨가 전하는, 알고 떠나면 좋은 늦가을 단풍 여행 정보를 소개한다.

올해 단풍 구경은 다녀오셨나요? 저는 해발 6700m의 고지에 단풍이 한창이던 10월 중순께 백두대간의 종주 코스인 대관령 언저리에서 올해 단풍을 잠깐 보고 왔습니다. 올해는 여름내 태풍이나 집중호우가 크게 없었던 터라 대체적으로 단풍이 고울 거라고 예측했지만, 남쪽 지리산에서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북상해온 지인의 말을 빌리면, 여름 날씨가 너무 좋아 중부 이남에는 단풍잎이 말라 오그라들었고, 강원도 정선 이북부터 제대로 단풍이 들었다 하더군요. 그나마 그 좋던 단풍도 10월 말이면 불붙듯이 타올라 산을 내려오고 있을 시점입니다. 매년 오가는 가을과 단풍의 계절이지만, 우리가 겪는 일상과 세월의 깊이에 따라 단풍을 보는 느낌과 감동은 해마다 조금씩 다를 것입니다. 나무에 단풍이 드는 현상은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일 년을 매듭짓는 일입니다. 겨울이 되면 이파리가 큰 활엽수는 얼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지상의 몸속에 있는 수액을 땅속의 뿌리로 내려 생명을 유지하는 에너지를 최소화합니다. 따라서 단풍 현상은 몸집을 줄이고 비우는 겨울 채비의 마지막 과정입니다. 사람들이 농사를 지어 가을걷이를 하고 한 해를 정리하듯이 나무도 한 해를 매듭짓고 봄을 기약합니다. 이 숙연하고 엄전한 자연현상이 시각적으로도 사람에게 즐거움을 제공하지만, 우리가 단풍 현상의 진정한 의미를 알면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예전과는 같지 않을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보다는 내면의 의미를 읽으면 잔잔한 감동을 느끼겠지요. 아직 단풍 여행길에 오르지 못한 <행복> 독자들을 위해 늦가을에도 즐길 수 있는 단풍 정보를 전합니다. 올해는 그저 멀리서 붉게 물든 자태만 볼 것이 아니라, 나무를 공부해 하나하나 그 이름을 불러보며 감상하면 어떨까요. 가을의 정취가 한층 더해질 겁니다.

(위) 이명호, ‘Tree 8’, 2007


일산 호수공원 내의 중국단풍 숲. 붉은색의 여러 계조를 보여주는 이 나무는 일산 백석동에서 킨텍스에 이르는 호수공원로의 대표 가로수 길로 가을의 정취에 흠뻑 젖게 해준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캐나다나 로키 산맥의 단풍과 우리나라 산과 숲의 단풍, 우리가 사는 도시의 공원이나 가로수 길의단풍이 차이가 있을까요? 아마 산의 지형과 크기, 식물종의 다양성과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캐나다, 북미 대륙은 광활한 평원과 거대한 산이 있기에 하나의 큰 불덩이 같은 붉은색 계열의 단풍을 볼 수 있겠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산세와 지형, 토질의 다양함에서 오는 일조량의 차이와 식물종의 다양성으로 노랗고 붉은 복합적인 색과 크기의 단풍을 보여줍니다. 도심의 공원과 가로수 길의 단풍은 산과 들의 일부 수종을 단독으로 혹은 무리 지어 계획적으로 단순하고 절제된 조형성의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오라가 깊은 단일 명품과 오묘하고 절묘하게 조합된 종합 선물 세트 정도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치우칠 것 없이 자연과 인간인 만든 가을의 선물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아직 단풍이 남아 있는 속리산, 주왕산, 내장산, 지리산 등 단풍 명산으로 구경을 떠나도 좋고, 이도 어려우면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던 주변의 공원이나 길가의 가로수에도 어느덧 단풍이 물들고 있을 테니 이 가을이 가기 전 꼭 단풍 감상을 해보길 바랍니다. 도심에서 제대로 된 단풍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곳을 귀띔해드리겠습니다. 일산 호수공원 옆길(일명 호수공원로)은 10월 말부터 새빨간 단풍 길로 옷을 갈아입을 겁니다. 얼마나 새빨갰으면 이름도 중국단풍이라고 지었을까요. 시간 여유는 있지만 산에 오르는 게 부담스럽다면 청남대(‘남쪽에 있는 청와대’라는 의미의 충청북도 청원군 대청댐 부근 약 55만 평 규모로 대통령 전용 별장) 길도 좋습니다. 튤립처럼 생긴 백합나무가 노랗게 물든, 흔치 않은 풍경을 만끽할 수 있을 겁니다. TV 광고에도 종종 등장하는 전남 담양의 국도, 황금색의 메타세쿼이아 단풍 길도 기억해두세요.
참! 단풍 감상하는 방법도 알고 떠나세요. 다음 세 가지만 기억하면 됩니다. 첫째, 이왕이면 햇살이 비치는 날 나서는 게 좋습니다. 빛을 받아들이는 잎의 모양과 색을 보세요. 순광도 좋고 역광도 좋습니다. 빛의 방향과 나무의 방향에 따라 색의 농도와 변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둘째, 웬만한 활엽수는 단풍이 듭니다. 색이 고와서 아름다운 것도 있고, 상처받고 투명해서 아름다운 것도 있습니다. 노랗게, 연녹색으로, 붉게, 갈색으로 또는 엷게 물드는 다양한 단풍의 색을 감상해보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단풍은 아침, 한낮, 해 질 녘의 색과 느낌이 제각기 다르고, 바람 불 때도 다릅니다. 떨어진 단풍도 아름답습니다. 낙엽 쌓인 가로수 길이나 숲길을 걸으며 바쁜 일상을 정리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단, 물기에 젖은 낙엽은 미끄러우니 조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름을 알고, 불러주면 더욱 고운 빛을 발산하는 단풍!

1 사람주나무 단풍 우리나라 중부 이남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사람주나무 단풍. 문자 그대로 선홍색 단색의 단풍이라 할 만하다.


2 서양단풍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 않은가? 화투짝 10번 단풍. 그러나 거리나 숲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귀한 단풍이다. 노란색 계조로 물드는 천리포수목원의 서양단풍(Oliveranium)이다. 
3 느티나무 단풍 주변의 산이나 숲, 시골 마을의 당목, 도심의 공원이나 가로수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느티나무 단풍. 나무에 따라서 노랑색, 갈색, 붉은색으로 다양하게 물드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단풍이다.


4 화살나무 단풍 이파리 모양이 화살촉같이 생겼다 하여 이름 붙인 화살나무. 나뭇가지에도 얇은 비늘이 달려 있으며, 가을이면 계조가 별로 없는 붉은색으로 물들지만 잎이 얇아 햇살이 비치면 붉은색이 투명하게 비친다.
5 박태기나무 단풍 노란색으로 물들며 잎이 하트 모양이라 이채롭다.


6 팔마툼 단풍 우리가 흔히 단풍나무라고 부르는 대표적 단풍인 팔마툼 Palmatum. 잎의 모양이 비슷해도 다양한 품종이 있으며 노란색, 붉은색으로 물든다. 단풍 명산에서 가장 많이 보는 단풍이다.
7 산수유 단풍 남쪽에서 꽃 소식을 가장 빨리 알린다는 산수유는 만개한 노랑 꽃도 좋지만 자세히 보면 단풍도 알록달록한 게 예쁘다.


8 블루베리 단풍 대부분이 올려다봐야 하는 키 큰 활엽수지만 블루베리는 키 낮은 관목이며 열매 못지않게 단풍도 좋다. 수려하지는 않지만 상처받은 듯 얼룩진 단풍은 영양 좋은 열매를 키우기 위한 소리 없는 노고가 보이는 듯하다.
9 참빗살나무 단풍 연초록 또는 연노랑으로 물들어가는 참빗살나무 단풍. 완전히 단풍이 들어 떨어질 때면 황금색으로 산화한다.


10 자작나무 단풍 원래 높은 산에 있어야 할 이 품격 있는 나무는 수피와 잎, 수액 등의 쓰임새로 사람에게 인기가 좋아 도시 공원으로 내려왔다. 청정한 산이 아니라 그런지 노란 단풍이 안타까움으로 타는 듯하다.
11 마로니에 단풍 7080세대의 낭만이 연상되는 마로니에(칠엽수)는 대학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잘 살펴보면 주변의 공원에서도 쉽게 볼 수 있고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 세계 4대 가로수 중 하나이다. 도심에서는 공해와 오염으로 상태가 좋은 단풍을 잘 볼 수 없어 공원에서 노란 풍선 같은 고운 단풍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황여정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