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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하우스]BNP-Paribas 대표 레이닉스 필립과 이종희 씨 부부의 집 인테리어는 퍼포먼스와 같다
고즈넉한 언덕배기에 위치한 프랑스계 은행 BNP-Paribas 대표 레이닉스 필립과 이종희 씨 부부의 가회동 집. 소소한 것을 가지고도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지혜와 솜씨로 기성품 못지않은 완성도 있으면서 기품이 느껴지는 생활 소품을 만드는 이종희 씨에게 인테리어는 퍼포먼스와 같다. 그녀에게 ‘지혜롭게’ 집을 꾸미는 방법을 배워보자.


기다란 직사각형 거실을 두 개로 잘라 한쪽은 손님을 위한 응접실로, 다른 한쪽은 부부가 사용하는 공간으로 나눴다. 베이식한 화이트 소파에 아내 이종희 씨가 손수 만든 쿠션 커버로 모던하면서도 세련되게 꾸민 공간은 손님용 응접실이다.


1 다이닝 룸 역시 거실과 마찬가지로 널찍한 테이블이 있는 손님을 위한 공간과 부부가 사용하는 아담한 사이즈의 테이블 공간으로 분리해 꾸며놓았다.
2 이종희 씨는 한국적인 전통 소품을 꼭 그 용도가 아니더라도 공간에 맞게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하얀 의자 위에 걸쳐 놓은 조각보를 보면 그의 감각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3 중국, 일본, 한국에서 모은 다양한 부채들. 스타일은 각각 다르지만, 함께 꽂아놓으니 단아한 미가 물씬 풍긴다.
4 소반에 로얄 코펜하겐과 한국 전통 도자기를 믹스 매치해 차려낸 1인용 티 테이블.


한옥 몇 채가 붉게 핀 능소화와 보기 좋게 어우러진 종로구 가회동. 기왓장 위로 한 무리의 매지구름이 떠 있고, 서어나무 가지 아래로 금세라도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날, 가회동을 찾았다. 덩그러니 번지수만 적힌 쪽지 하나 들고 찾아간 굽이진 북촌 한옥마을 길. 고갯길 넘어갈 즈음, 반듯한 모양새의 주택 한 채를 발견했다. 발끝을 세워 대문 안을 흘낏 보니, 가을볕에도 청정한 소나무 한 그루에서 향기가 번진다. 프랑스계 은행 BNP-Paribas 대표 필립 레이닉스 Mr. Reynieix Philippe와 아내 이종희 씨의 가회동 집.
주인이 차를 준비하러 간 사이 응접실에 앉아 주위를 찬찬히 둘러봤다. 거실 테이블에 놓인 접시에는 바싹 마른 솔방울이 한 아름 담겨 있고, 벽난로에는 큼지막한 마른 나뭇잎 몇 장이 올려져 있다. 돌층계에 내려앉아 있던 한줄기의 가을바람이, 주인이 창문을 연 틈을 타 살며시 들어왔다.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담은 공간. 집 안에 가을빛이 완연하다. “삼청동 감사원 길에서 몇 장 주워 왔어요. 이맘때쯤 되면 단풍잎 줍는 재미에 살아요. 일주일에 한 번은 꽃 시장에 가서 제절 만난 꽃을 사다가 집에 꽂아놓곤 하는데, 가을에는 꽃 시장에 갈 필요가 없어요. 마당이나 집 주변에서 가지를 꺾거나 나뭇잎을 모으는 것만으로도 집을 얼마든지 꾸밀 수 있어요.”


1 모던한 그림과 고풍스러운 소품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2 같은 듯 서로 다른 모양새가 아름다운 꿀 항아리들. 뒤쪽에 놓인 그림은 이종희 씨가 그렸다.


완연한 가을을 담은 집 싱가포르, 아프리카, 프랑스…. 평생 이 나라 저 나라를 옮겨 다닌 부부에게 집은 더욱 애틋하다. 멋들어진 집도 좋고, 넓은 집도 좋지만 자고로 집이라면 편안하고 따뜻해야 한다는 게 부부의 생각이다. “이전에 살던 가회동 꼭대기 통유리창 집은 전망이 좋고 지금보다 공간도 훨씬 넓었지만, 인테리어를 이렇게 저렇게 해봐도 여전히 차가운 느낌이 남아 있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거실에 천 소파를 두고, 대문 옆에 따스한 느낌의 연둣빛 항아리를 두어도 소용이 없었죠. 이 집에 와서야 비로소 제가 가지고 있던 가구와 소품들이 제자리를 찾은 듯한 느낌입니다.”
부부가 집을 꾸밀 때 주로 이용하는 소품은 골동품. 손때 묻은 것이야말로 모던한 공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소품이자, 공간을 따스하게 만드는 일등 공신이다. “친구가 새로 집을 꾸몄다며 초대한 적이 있어요. 고급 이탈리아산 가구로 공간을 채워놓았는데, 머무는 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지요. 나중에 그 집을 방문한 친구들 모두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군요. 집은 많은 돈을 들여야만 이상적인 공간이 되는 건 아니에요. 아이디어만 있으면 큰돈 들이지 않고도 가족이 편안하게 느끼는 집을 꾸밀 수 있습니다.인테리어는 퍼포먼스와 같습니다.”


1 부부가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좌식으로 꾸민 2층 거실. 팔레트에 짜놓은 물감처럼 색의 조화를 잘 이룬 쿠션들이 감각적으로 놓여 있다. 이종희 씨가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었다.


2 건식 스타일의 부부 욕실. 창문 밖으로 멋스럽게 물든 참나무 잎이 보이고, 알싸한 소나무 향기가 코끝으로 번진다.
3 붉은 중국장과 그에 대비되는 푸른 계열의 카펫으로 꾸민 2층 부부 침실. 강한 색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조각보는 모던한 현대미술을 닮았다 이종희 씨에게 집은 한국을 알리는 일종의 대사관과 같다. 집 안 곳곳에 한국 전통 가구나 소품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적절하게 활용하며, 외국에서 만난 지인들에게 우리의 문화를 알려왔다. 그중에서도 반닫이는 누구든 가장 손쉽게 사용하기 좋은 아이템 중 하나. 특히 와인을 즐기는 외국인에게 좋은 가구다. 유리 선반을 끼워 넣으면 깨지기 쉬운 유리잔, 자잘한 와인 소품 등을 보관하기 좋은 현대적인 수납장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전통품은 집 안을 꾸미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소품이에요. 한번은 외국 친구에게 우리나라 실패를 보여준 적이 있는데, 다음번에 가보니까 현관 문고리에 실패를 달아놓았더라고요. 저보다 그들이 우리 전통 소품을 더 유용하고 멋스럽게 사용할 줄 알더군요.” 부부가 주로 시간을 보내는 2층은 좌식으로 꾸몄다. 나지막한 공간 옆으로 알록달록 고운 자수를 놓은 퇴침이 높다랗게 쌓여 있다. 쌓아놓는 것만으로도 아름답지만, 때로는 밋밋한 유리 테이블의 하단을 장식하는 소품으로도 제격이다.
주방에는 손님 접대용 테이블과 부부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소박한 2인용 테이블이 나란히 놓였다. 화이트 컬러의 테이블보를 깔아놓고, 한쪽에 언밸런스하게 조각보를 걸쳐놓았다. 이종희 씨에게 조각보는 현대미술 작품과 같다. 그녀는 조각보를 그림처럼 프레임에 넣어 벽에 걸어놓는다. 아이들이 한참 어릴 때는 조각보를 미술 교육 도구로 사용하곤 했다. 색감의 대비를 잘 보여주는 아이템으로 그것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채광이 좋은 이 집은 하얀 캔버스를 연상케 한다. 거실 소파 위의 붉은색, 푸른색 쿠션은 잘 짜놓은 팔레트의 물감처럼 단아하면서도 깔끔하다. 창문마다 두꺼운 커튼 대신 얇은 광목 느낌의 롤 블라인드를 달아 따스한 햇살이 거실까지 들어온다. 집을 꾸밀 때 전체적인 색감을 크림색으로 잡고, 포인트 색감으로 파스텔 톤을 골랐다. 크림색 소파 위 진청의 인도산 실크가 그렇고, 나무 색감의 아트월에 매달아놓은 녹색 액자가 그렇다.


1 2층으로 올라가는 복도에 아프리카에서 구입한 독특한 그림을 걸어 밋밋한 벽면을 재미난 갤러리로 변화시켰다.
2 전통 소품 실패, 패턴만으로도 그저 아름답다.


“외국에서는 젊은 부부들이 어린아이 때문에 관리가 비교적 용이한 가죽 소파를 선택하죠. 노부부일수록 정감 있고 따뜻한 느낌의 천 소파를 좋아하고요. 저희 부부도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천 소파를 하나 구입했어요. 때때로 기존의 인테리어가 지겨울 때는 커버링만 다시 해 사용해 왔습니다. 햇수로 벌써 15년이 넘었네요.” 다른 나라로 이사 다닐 때마다 가구를 새로 바꾸기보다 적절한 소품으로 기존의 가구를 활용했다.


1 가족사진, 타국의 전통 소품 등 책장 선반 위에는 부부가 그동안 지나온 길이 고스란히 놓여 있다.
2 손수 지어 만든 옷을 걸친 이종희 씨.


아내는 집 안의 생활예술가다 남편의 직업상 손님 출입이 잦은데 이종희 씨의 감각은 누군가가 집을 방문했을 때 십분 발휘된다. 거실에 놓인 커다란 테이블보다는, 작은 1인용 소반에 손수 만든 테이블보를 깔고 개인용 티세트를 준비한다. 이종희 씨의 생활 감각은 모두 어머니에게 물려받았다. 여름에는 갑사, 겨울에는 양단으로 쿠션 커버를 만들고 자식들 옷 하나도 손수 지어 입히셨다. 첫 손자를 보신 날, 수십 년간 고이고이 간직해놓은 당신이 입던 배냇저고리며 천 기저귀에 아이의 이니셜을 손수 새겨 멋스러운 바구니에 한가득 담아 오셨다고 회상한다. 이종희 씨에게 꽃꽂이나 바느질을 따로 배웠느냐고 하면 그녀는 스승으로 어머니를 이야기한다. 한번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지만 어머니의 어깨너머로 더 많은 것을, 더 정확하게 배운 셈이다. “어릴 적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여자가 감각만 있으면, 집 안에 뭐 하나 버릴 게 없다고요. 못 입는 옷은 잘라놓으면 조각을 이어서 쿠션 커버를 만들어도 되고, 또 그 쿠션 커버가 지루해 쓰기 싫으면 가방 만들 때 써도 된다고 하셨지요.”
그 딸은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2층에 별도의 바느질 방을 마련했다. 볕이 좋은 날이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 좀 쐬라고 애지중지 여기던 천들을 침대 위에 가지런히 꺼내놓는다. 주위 사람들이 “이이가 진짜 주인인 것 같다”며 가져다주각각종 천이며, 여행길에 구입해온 수입 원단을 만져보며,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대로 스케치를 해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바느질해 이것저것 만든다. 색감 있는 쿠션 커버는 물론, 부부 모임이 있을 때나 집에 손님을 초대했을 때 일하는 데 불편하지 않으면서도 품위 있는 옷도 손수 만든다. 그 모양새가 하나같이 유명 디자이너의 것 못지않게 기품이 느껴진다.
손쉽게 새것을 사는 데 급급하지 않고 필요한 게 있으면 직접 만들고, 있는 것을 활용하는 것이 그녀가 추구하는 살림법이다. 그건 가족을 위한, 손님에 대한 마음 씀씀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어깨 너머로 배워온 감각으로 손끝으로 재주를 부려 자신의 공간에 꼭 맞는 아이템을 만드는 이종희 씨. 물질보다 마음으로 꾸몄기에 그가 꾸민 집은 더욱 아름답다.

이종희 씨에게 배우는 손님맞이 인테리어 팁
1 티세트를 차릴 때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도자기를 섞어 사용해보자. 가령 찻잔을 서구적인 스타일의 것으로 놓았다면, 과일 접시 하나는 질그릇 같이 묵직한 도자기를 함께 세팅하면 한결 그 조화가 아름답다.
2 손님이 사용할 화장실에 세심하게 배려한 흔적을 남기자. 차곡차곡 개어놓은 손수건 위에 말린 라벤더 꽃잎을 흩뿌리고, 손님은 사용하지 않는 물컵도 작은 꽃들을 꽂아놓아 화병처럼 활용할 수 있다.

황여정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