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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하우스] 주얼리 디자이너 왕기원 씨의 뉴욕 라이프
주얼리 디자이너 왕기원 씨. 그는 어머니의 보석함을 보며 꿈을 키웠다. 그리고 이제는 한국 문화의 전파자 역할도 하고 있다. 그의 영감이 탄생하는 곳, 뉴욕 그리고 그의 집과 가족 이야기를 들어본다.


1 왕기원 씨의 뉴욕 아파트. 강아지 파샤 주니어가 베르너 판톤의 빨간색 하트 콘 체어에 앉았다. 그 뒤로는 설치미술가 클래스 올덴버그 Claes Oldenburg의 어시스트였던 친구가 만든 작품이 걸려 있다.
2 거실로 이르는 복도에는 벤치가 놓여 있다. 그 앞에 머비스 매클루어 Marvis McClure의 ‘아멜리아 Amelia’ 청동 조각상이 서 있다. 뒤 벽면에는 버트 스턴의 ‘메릴린 먼로’ 사진 작품이 걸려 있다.


지난 6월, 뉴욕에서 활동하는 주얼리 디자이너 왕기원 씨가 15명의 현대 미술품 컬렉터를 이끌고 한국을 찾았다. 스미소니언 뮤지엄과 연계된 렌위크 뮤지엄 Renwick Museum의 컬렉터들로 왕기원 씨의 고객이기도 했다. 이들은 컬렉션 투어를 정기적으로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한국의 공예를 보기 위해 방한했다. 이들 중에는 왕기원 씨를 딸처럼 생각해 가깝게 지내며 그의 작품을 수집하는 고객도 있었다.
왕기원 씨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그가 착용한 목걸이가 유독 눈에 띄었는데 ‘패브릭 오브 라이프 Fabric of Life’를 주제로 만든 자신의 작품이었다. 패브릭으로 공 모양의 펜던트를 만들어 목에 건 것이다. “공도 덕담도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작품이에요. 여러 사람에게서 받은 덕담을 공에 붙여 의미를 부여했어요. 그렇게 하나의 메시지가 있는 작품이 완성된 것이죠.” 그에 맞춰 패션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 Rei Kawakubo의 미완성인 듯 거친 디테일이 살아 있는 옷을 입고 있었다. 1969년 혁신적인 디자인 패션 브랜드 ‘꼼 데 가르송 Comme des Garcons’을 만든 레이 가와쿠보는 그가 가장 존경하는 디자이너다. 또 일본의 전통 스타일에서 출발해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완성하고 이로써 파리, 뉴욕 등지에서 수많은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는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왕기원 씨는 서양에 살고 있는 동양인으로서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란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데, 레이 가와쿠보의 작업 방식이 좋은 본보기가 된다고 말한다.
뉴욕에 정착한 지 15년. 그가 뉴욕에 간 이유는 세상의 모든 문화와 예술이 모이는 심장 같은 곳이며, 예술가와 미식가의 천국이기 때문이었다. 항상 새로운 영감에 목마른 아티스트에게 이만한 곳이 있을까? 이곳에서 왕기원 씨는 한국 문화의 전파자 역할도 하고 있다.


3 거실 한쪽에는 그가 좋아하는 건축가의 의자를 수집해놓았다. 의자는 모두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했다.


왕기원 씨의 집 주방에서. 미식가인 아버지와 요리 솜씨가 탁월한 어머니 아래서 자란 왕기원 씨는 요리로 또 다른 창조적 작업에 도전하곤 한다.

어머니 보석함과 한옥에서 꿈을 키우다 그는 주얼리 디자이너다. 전통적인 주얼리의 우아함이나 화려함에서 벗어나 파격적인 소재와 형태로 현대적인 세련미를 빚어낸다. 그 안에 왕기원 씨의 인생이 담겨 있다.
“이화여대에서 학부를 마치고 교수가 되기 위해 곧장 미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RISD)에서 주얼리 디자인을 공부하며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기법을 배웠고, 나의 언어를 찾았죠. 그리고 뉴욕에서 활동을 시작했죠.”
왕기원 씨가 주얼리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된 배경에는 유년 시절의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주얼리에 관심이 많아 액세서리 연출에 뛰어난 감각을 지닌 분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안 계실 때면 보석함을 몰래 열어보곤 했다. 보석함 자체가 어린 왕기원 씨에겐 ‘판타지’였다. 가끔 보석함이 잠겨 있기라도 한 날엔 그것을 열어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의 모든 예술적 감성은 어린 시절 생활 속에서 단련된 것이었다. 그의 외조부는 도자기와 한국화의 컬렉터였다. 그리고 1910년대부터 암실에서 직접 사진을 인화할 정도로 예술에 조예가 깊었다. 한옥에서 자라며 매일 아침 한지를 바른 문과 하얀 벽을 보며 종이로 만든 집에 환상을 갖기도 했다.


하나를 해도 대강 하는 법이 없다는 왕기원 씨는 목욕을 할 때도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준비를 해놓는다. 그에겐 이런 일상의 사소한 경험이 곧 영감의 원천이 된다.

왕기원 씨의 취미는 요리다. 이 역시도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다. 어머니의 요리 솜씨가 훌륭한 덕에 집에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일 날이 없었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전 세계 요리와 한국 궁중 요리로 메뉴를 짜곤 했다. 아버지는 굉장한 미식가였다. 온 가족을 데리고 새로 생긴 레스토랑부터 기사 식당까지 찾아다니며 맛을 탐닉했다. 이런 경험이 왕기원 씨에게 창조를 위한 새로운 도전이 되어주었다. 요리는 왕기원 씨 자신이 크리에이티브를 실험해보는 수단이기도 하다. 또 날것을 조리해 하나의 완성된 음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주얼리를 디자인하는 것과 닮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뉴욕에서도 요리를 하며 보내는 시간을 즐겼다. 친구들을 불러 한국 요리를 해주기도 한다.
그가 집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주방과 욕실이다. 주방은 요리를 좋아하기 때문이요, 욕실은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목욕을 할 때조차도 그냥 대충 하는 법이 없는 그는 초를 밝히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곤 한다. 또 집을 최대한 편안한 공간으로 생각하며, 자신이 수집하는 의자와 미술 작품을 제외하고는 불필요한 살림은 들이지 않으려 한다. 거실과 복도에 수집품을 놓기 위해 사족이 될 만한 것들을 들여놓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백남준 씨의 그림과 카펠리니 소파,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의자들이 어우러진 거실, 버트 스턴 Bert Stern의 메릴린 먼로 사진이 걸린 복도 풍경이 만들어졌다.


1 거실 소파는 카펠리니 제품. 그 뒤로는 왕기원 씨가 디자인한 주얼리 작품 사진과 백남준 선생의 그림이 놓여 있다.


2 그의 작업실 벽면에는 스케치와 모티프가 된 것들의 이미지를 걸어놓았다.

주얼리는 곧 펜과 잉크다 왕기원 씨는 주얼리로 자신의 크리에이티브를 표현하고,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그는 종이를 즐겨 사용한다. 특히 신문, 그중에서도 <뉴욕 타임스>를 많이 사용한다. 자신의 작업이 일상을 기록하는 매체라면, 신문은 그 배경에 있는 하루 하루의 이슈를 기록하는 매체라는 생각에서다.
“제 작업은 곧 제가 경험한 바를 즉각적으로 반영해나가는 과정이에요. 서양에 살고 있는 동양인으로서 경험하고 느낀 바를 담으며 인생을 기록하죠. 제 작업의 가장 중요한 영감은 바로 저의 일상에서 비롯되죠. 책을 읽고 음악 감상을 하면서 영감을 얻듯이 말이에요. 바꾸어 말하면 저의 주얼리 디자인 콘셉트가 그대로 인생 철학이 되어 일상생활 속에 드러나죠.” 그는 옷 한 벌을 선택할 때도, 가구 하나를 살 때도 그것을 디자인한 사람의 의도를 먼저 이해하기 위해 애쓴다. 디자이너가 어떤 생각으로 이런 옷과 가구를 만들었는지 안 다음에야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새로 생긴 레스토랑에 갈 때도 먼저 그곳의 셰프에 대해 공부한다.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왕기원 씨는 이런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인해 항상 책을 가까이하는 습관이 있다.


3, 4 ‘몸을 위한 가구(Furniture for the Body)’ 시리즈. 주얼리는 사람이 그것을 착용했을 때에야 비로소 완성된 디자인이 나온다는 전제로 시작한 작업이다.

그가 주얼리 디자인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주제는 ‘만남’이다. 동양과 서양의 만남, 인체와 주얼리의 만남 같은 것이다. 특히 주얼리란 사람이 착용했을 때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디자인이며, 그 사람을 드러내 보이는 하나의 수단이기에 이와 같은 접촉의 상관관계를 고민한다. 그래서 스미소니언 뮤지엄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작품 설명을 위해 벽면에 주얼리 소재부터 제작 과정을 함께 연출해놓고 관람객이 주얼리를 직접 만져볼 수 있게 한 적도 있다.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작품 밖으로 나와, 만남이란 화두는 그의 생활에서도 아주 중요한 것인데, 이를 위해 작업을 마친 저녁 시간이면 항상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과 기회를 갖는다. 그러는 동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친구도 알게 되었고, 그를 통해 자신을 친딸처럼 여길 만큼 돈독하게 지내는 부부도 만났다. “친구 하나가 레스토랑을 오픈하며 제 주얼리로 레스토랑 벽면을 연출하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레스토랑의 직원들이 직접 주얼리를 착용하게 하고 흑백 톤의 사진을 찍었어요. 다양한 포즈의 남자들이 목걸이와 핀을 매치한 의외의 표현이었죠. 이것을 어느 날 렌위크 뮤지엄의 컬렉터와 후원자로 구성된 렌위크 얼라이언스 Renwick Alliance라는 모임의 한 부부가 보게 되었어요. 주얼리 속 작품의 디자이너가 누구인지 몹시 궁금해했다고 해요. 그러던 중 같은 해 스미소니언 뮤지엄이 후원하는 쇼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이 부부가 제 작품을 하나 샀어요. 그러면서 저에게 말하길 그 레스토랑에서 사진을 보았고 그 디자이너를 꼭 만나고 싶었는데, 당신이 그 사람인 것 같다며 말을 걸어오더군요. 이후로 두 부부는 제 작품의 고정 컬렉터가 되었어요. 게다가 자식이 없는 그들은 저를 친딸처럼 여기고 저의 열성 고객이자 팬이 될 정도로 가까워졌어요.”
왕기원 씨는 만남을 조화와 소통을 위한 시작이라고 한다. 주얼리가 사람의 몸과 접촉해 온전한 가치를 지니듯이 사람도 사람과 접촉을 통해 온전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뉴욕에 정착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세계 각지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과 연을 맺고 때론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생활할 수 있다는 것. 바로 그런 뉴욕에 살고 있기에, 그는 중년의 여성이 된 지금도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계속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아닌지 묻고 있다. 그의 도전과 만남의 결실은 다시 다양한주얼리를 탄생시킬 것이며, 또다시 사람의 몸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게 될 것이다.

(위) 왕기원 씨의 스튜디오 책상은 뉴욕에 처음 와서 구입한 것이다. 한번 자리에 앉으면 목표한 만큼의 작업을 끝내기 전에는 끼니를 거르기 일쑤다.


디자이너 왕기원 씨가 추천하는 뉴욕의 맛집・멋집
패션 브랜드
꼼 데 가르송 Comme des Garcons
첼시에 있는 매장은 인테리어도 흥미롭지만 매장 밖에는 특별한 간판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주소 520 W 22nd St., New York, NY 10011-1108, 전화 +1 212-604-9200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Maison Martin Margiela
앤트워프 출신의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숍으로 그의 독특한 디테일이 살아 있는 옷을 만날 수 있다. 재활용 소재를 이용해 연출한 인테리어도 인상적이다. 주소 803 Greenwich St., New York, NY 10014-1842, 전화 +1 212-989-7612
릭 오웬스 Rick Owens
블랙의 카리스마를 표출하며 수많은 마니아를 거느린 패션 디자이너 릭 오웬스의 매장. 이곳에서 릭 오웬스가 디자인한 가구를 만날 수 있는데 직원들은 독특한 문신을 한 채 손님을 맞이한다. 주소 250 Hudson St., New York, NY 10013-1413, 전화 +1 212-627-7222
키르나 자베테 Kirna Zabete
소호에 있는 패션 편집 숍으로 디자이너들의 다양한 패션과 액세서리를 만날 수 있다. 매장의 인테리어는 미국의 팝 아티스트 짐 다인 Jim Dine의 아들 닉 다인 Nick Dine이 맡았다. 주소 96 Greene St., New York, NY 10012, 전화 +1 212-941-9656

레스토랑
텔레판 Telepan
레스토랑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빌 텔레판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뉴욕 그린 마켓의 전도사라 할 만큼 유기농 식재료, 지역 특산 재료 사용에 공을 들이고 있으며, 우리나라 제철 음식처럼 시즌에 맞게 매번 메뉴를 바꾼다. 이 집의 대표 메뉴는 버거. www.telepan-ny.com
팔라이 Falai
카페 팔라이와 레스토랑 팔라이가 있다. 두 군데 모두 맛이 좋기로 유명한데 35~40명이 바와 테이블이 있는 작은 공간에서 음식을 즐길 수 있게 해놓았다. 뉴욕 상류층이 즐겨 찾는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은 이탈리아 출신의 셰프가 운영하는 곳으로, 전면에 큰 창을 내어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볼거리를 만들어준다. www.falainyc.com
DBGB
다니엘 불러드 Daniel Bulud가 운영하는 아메리칸 프렌치 스타일의 브래서리로 14가지 종류의 홈메이드 소시지와 이를 재료로 만든 햄버거 등을 즐길 수 있다. 유명 셰프에게서 기증받은 냄비와 팬으로 인테리어를 했다. www.danielnyc.com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