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정원이 나를 치유한다]보타닉 하우스 이현주 씨 정원,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


1 정원의 소소한 즐거움은 바로 다양한 취미 생활을 가능케 한 것. 천연 염색한 리넨 원단은 햇볕 좋은 창가에 걸어 발로 연출한다.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굽이굽이 골짜기가 절경을 이루는 작은 마을에 담쟁이덩굴로 가득 덮인 아담한 주택이 있다. 꽃이 좋아 맘껏 키워보고 싶어 지은 이름 ‘보타닉 하우스’. 자연이 주는 위안을 찾아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가 집을 짓고 사는 이현주 씨의 소박한 들꽃 정원이다. 이현주 씨가 가드닝에 빠진 것은 흙과 꽃을 만지면서 마음의 위로와 충만함을 얻었기 때문.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던 시절, 아이들의 작은 실수를 참지 못하고 짜증을 냈어요. 문득문득 가슴이 먹먹해지거나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엔 무작정 시골길을 달렸죠. 그러다 발견한 그림 같은 집, 자연과 하나 된 집을 볼 때마다 멈춰 서서 울타리를 기웃거리면서 나도 그들처럼 땅을 밟으며 살고 싶어 병이 날 정도였지요. 어느새 베란다를 가득 채운 소중한 화분들도 조금이나마 숨통을 틔워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베란다에서 작은 화분을 키우며 정원에 대한 꿈을 달래다 10년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와 남편을 설득해 시골행을 감행했다. 어느 마당인들 집주인의 손길이 곳곳에 미치지 않겠냐마는 이곳은 특별히 구석구석 집주인의 온기가 깊이 스며들어 있다. 처음 땅을 물색하는 일부터 시작해 마당의 전체 모양새를 구상한 뒤 꽃의 색상과 성질에 따라 영역을 나눠 파종하고, 돌 한 장 한 장을 직접 깔며 완성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그의 손으로 직접 이루었기 때문이다. 힘들었을 법도 한데 베란다 정원과 마당 정원을 비교했을 때 오히려 마당 정원이 가꾸기 수월하단다. 마당에서는 땅과 바람이 알아서 식물을 키워주기 때문이란다. 처음 시골 생활을 할 때는 곧 마당에 대단한 마법이 펼쳐질 거라 생각하지만 3~4년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봄이 되면 온갖 꽃들이 피어날 것이라 믿고 씨를 뿌렸지만 꽃이 피지 않아 실망하기를 여러 번. 자연은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 천천히 기다려야 하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정원은 우리에게 아주 많은 기쁨을 주지만 그만큼 책임감이 필요하죠. 

2 사과 박스로 만든 장식품. 소라껍질 속 다육식물이 앙증맞다.


3 스스로 정원의 ‘마력’에 빠졌다고 말하는 이현주 씨.
4 고장 난 물뿌리개, 옹기그릇, 모두 화분으로 활용한다.



5 씨앗 말린 것을 벽에 걸어 장식하는 것도 아이디어.
6 담쟁이덩굴로 덮인 보태닉 하우스 외관.



1 돌절구, 항아리, 기왓장 등등 깨진 그릇을 화분으로 재활용한다.
2 수선화, 튤립, 무스카리, 백합, 알리움, 히아신스 등 가을에 심는 구근 식물은 춥고 어두운 곳에서 60일 이상을 보내야만 꽃을 피우므로 10월부터 11월 중순 사이에 심는다.


얼마만큼 정성을 들이느냐에 따라서 딱 그만큼의 기쁨을 줘요.” 이후 야생화 하나하나 이름과 날짜를 적어놓고 매일 성장 상태를 살피며 정성을 다한 결과 전문가 아닌 전문가가 되었다. 어른들은 이른 나이에 전원생활을 선택한 부부를 두고 고생 모르고 살아 너무 쉽게 생각한다고 말씀하곤 하셨다. 초반에는 꽃을 가꾸다 너무 무리해 병을 얻었을 정도. 또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다가 인적 드문 곳으로 들어오니 하루는 유배를 온 것 같고, 하루는 천국에 온 것 같은 우울함과 즐거움도 번갈아 느꼈다고. 하지만 의외의 수확도 있었다. 아이들 교육 문제에서 좀 더 자유로워졌다는 것. 도시에 있었으면 지금껏 학원 다니느라 지쳤을 고등학생, 중학생 남매는 지금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흙으로 밥을 짓곤 하던 둘째는 도자기 학교에서 또래와는 다른 세상을 배운다. 느리게 자연을 배웠지만 참으로 느렸기 때문에 자연에서의 생활이 하나하나 몸에 밸 수 있었다고 말하는 이현주 씨. 남편과 저녁 먹고 산책을 나가 손잡고 걸을 수 있는 요즘이 너무 행복하단다. 또 정원은 잘할 수 있는 걸 더 잘할 수 있게,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게 해주는 고마운 공간이다. “손이 심심한 걸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니, 일거리가 넘쳐나는 이곳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봄날 들길을 거닐면 지천으로 핀 망초며 쑥을 뜯고, 가을날엔 밤송이며 도토리를 주워 와 천을 곱게 물들여 바느질하고, 들꽃 한 송이 마음에 두었다가 무명에 곱게 수놓을 수 있어 더없이 고맙죠. 이제 곧 쌀쌀해질 테니 온실도 점검하고요. 가을에는 온실에 앉아 차 한잔 마시며 바느질하는 시간이 너무 평온합니다.”
정원을 가꾸는 시간이 한두 해 지나니 여유가 생긴다. 예전 같으면 다섯 포기 심을 자리에 욕심껏 열 포기도 심어놓고 빨리 자라기를 기다렸지만, 나이를 먹어서인지 아니면 자연에서 배운 느긋함 때문인지 이젠 빈자리를 보아도 풍성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마음이 여유롭다.

3 방울꽃을 모티브로 한 손자수.
4 씨앗은 가지째 장식 오브제로 활용하기도 한다.


베란다를 온실로 활용하라
꽃 시장에 나가보면 마당에서 키울 수 있는 꽃보다는 오히려 베란다에서 키울 수 있는 꽃들이 넘쳐난다. 그중 다육식물이 제격.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잘 자라기 때문에 초보자가 키우기에도 어렵지 않은 식물이다. 크기도 종류도 다양해 정원 곳곳을 꾸밀 수 있다.
화분용 퇴비 만들기
자투리 야채, 생선 내장이나 달걀 껍데기 등을 활용한다. 이것이 번거롭다면 화원에서 파는 퇴비를 그대로 쓰지 말고 일 년 정도 묵혔다가 사용한다.병균과 해충을 미리 예방하는 것도 중요.
건강한 흙 만들기
흙을 파 엎어놓고 뒤적거리며 햇빛에 충분히 노출시켜 일광 소독한다. 화분에 심을 경우 전에 식물이 죽어 비워둔 것이라면 깨끗하게 닦아내고, 배양토나 퇴비는 일 년 정도 묵힌 것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우유, 쌀뜨물을 뿌리면 살충 효과가 있다.

가을 정원의 또다른 묘미
1 씨앗을 보는 즐거움
꽃이 진 자리에는 어김없이 씨앗이 여문다. 마당은 언제나 피고 지고 씨앗을 남기는 일의 연속. 씨앗도 꽃과 마찬가지로 어느 하나 똑 같은 것 없이 다른 모양, 다른 색깔이다. 보통 육안으로 보았을 때 열매의 외피가 변색되었으면 어느 정도 건조된 것. 완전 건조되면 껍질이 갈라져 씨앗이 떨어져 나가기(자연 번식) 때문에 이보다 조금 일찍, 80% 정도 건조되었을 때 채취하는 것이 좋다.
2 자연으로 물들인 천연 염색 가을에는 메리골드나 도토리로 천연 염색을 할 수 있다. 자연에서 얻은 염료를 이용하는 천연 염색은 가장 자연스러운 색감을 얻을 수 있어 정서적인 안정감을 준다. 자연스러운 색감으로 물들여 조각 커튼이나 테이블보로 활용하면 좋다.

(위) 식물성 염료는 먹을 수 있거나 약효를 지닌 것이 많다. 광목에 도토리를 갈아 염색해 깔개나 방석, 다포를 만들어 사용한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