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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으로 지은 집]권남혁ㆍ이명순 씨 부부의 귀틀집 아내는 밥을 짓고 남편은 집을 짓고 아이들은 자란다
내 손으로 지은 집은 ‘함께 지은 집’입니다. 제아무리 손재주가 뛰어나고 남부럽지 않은 체력을 자랑해도, 혼자서는 결코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더불어 사는 이웃과 너그럽게 품어주는 자연이 없다면 말입니다. 강원도 전통 가옥 ‘귀틀집’과 친환경 주택 ‘흙부대 집’을 찾았습니다. 가족과 이웃, 그리고자연과 함께 지은 집에서 살아가는 두 가족을 만나 봅니다.

권남혁・이명순 씨 부부의 평창 귀틀집
아내는 밥을 짓고 남편은 집을 짓고 아이들은 자란다

“집 짓는 게 밥 짓는 거라는 옛말이 있어요. 집 짓는 동안 부지런히 일꾼들 밥을 해대야 하니 밥 짓는 일도 집 짓는 일 못지않게 힘들다는 뜻이지요.” 하루 세끼에 중간 중간 참까지 더하면 하루 여섯 번씩 많을 때는 10인분의 끼니를 혼자서 해결했다는 이명순 씨. 둘째 아이를 업고 온종일 부엌을 떠날 수 없었던 ‘밥으로 집을 짓던’ 이야기를 시작한다.
권남혁・이명순 씨 부부가 강원도 평창으로 내려온 것은 2001년, 30대 초반의 어느 봄이었다. 귀농을 하기에는 조금 이르다 싶은 나이다. “3년 정도 둘이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아이들 아빠는 한동안 퇴근 후 귀농 학교에 다녔고요.” 남편 권남혁 씨는 오래전부터 자연으로 돌아와 온전한 자신만의 삶터를 가꾸고 싶어 했고, 아내 이명순 씨는 커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귀농을 결심했다. “누구는 교육을 위해 도시로 나간다지만, 저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시골로 왔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거예요.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자연 속에서 스스로 깨치는 것 이상 큰 스승은 없다는 생각에 귀농을 결심했어요”
지금은 길도 포장되고 전기도 들어오지만, 8년 전 이곳은 말 그대로 ‘자연 그대로’였다. “물만 있으면 되는 줄 알고 땅을 샀어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죠.” 농촌 경험이 전무한 젊은 부부의 귀농 일기는 그야말로 좌충우돌이다. 평지보다 땅값이 싸기도 했지만,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전망에 반해 일주일 만에 땅을 사고, 한 달 만에 서울 생활을 정리했다. 읍내에 셋집을 구하고 이사 3일 만에 ‘남편의 집 짓기와 아내의 밥 짓기’가 시작되었다.

(위) 강원도 평창에 손수 귀틀집을 짓고 8년째 살고 있는 권남혁·이명순 씨 가족. 초등학생이던 아들 무열이는 이제 중학생이 되었고 간난쟁이 딸 현빈이는 열 살이 되었다.


1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그림 같은 풍경을 품고 있는 거실 전경. 귀틀집은 나무와 흙으로 지은, 자연으로 지은 집이다. 겉보기에 세련되지 않지만 편안함이 있다.
2 2층 다락으로 오르는 계단. 아이들에게 이 계단은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수많은 추억을 만들어 줄 것이다.


이들이 지은 집은 귀틀집이다. 귀틀집은 큰 통나무를 우물 정자 모양으로 층층이 맞추어 얹고 그 틈을 흙으로 메워 짓는 집이다. 처음부터 거실, 부엌, 방 등의 구획을 나눈 뒤 나무를 층층이 쌓아 올리는 방식이다. 단칸집이 아니고서야 귀틀집은 ‘함께 짓는 집’이다. 육중한 나무 기둥을 쌓아 올리는 일은 제아무리 힘이 장사라 해도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권남혁 씨는 귀농 학교와 횡성 흙집연구소에서 만난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집을 지었다. “평창으로 내려오기 전, 남편이 한 달간 집 짓기를 배울 때예요. 처음으로 다른 사람이 손수 지은 집을 보았는데 그 감흥을 잊을 수가 없어요. ‘아, 정말 아름다운 집은 구석구석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는 집이구나’ 하는 것을 그때 깨달았죠.” 기술자가 규격의 건축 자재로 집을 지으면 무엇이든 한 번에 끝낼 수 있다. 그러나 공장에서 나온 자재와 달리 직선이 없는 자연 재료로 집을 지으려면 굴곡을 따라서 구석구석 손길이 한 번씩은 모두 닿아야 한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니 상량에는 ‘자연과 더불어 숨 쉬는 흙집 길이길이 이어져라’는 문구와 함께 집 짓기를 도와준 이들의 이름이 빼곡하다. 집 짓기는 2년 동안 계속되었다. 15평 규모의 사랑채를 먼저 지어 이사를 하고 35평 규모의 본채를 짓기 시작했다. 현재 본채는 가족의 살림집으로, 사랑채는 손님이 묵어가는 집(blog.daum.net/bangrimjae)으로 사용하고 있다.
집을 짓고도 처음 2년 동안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자가발전을 해야 했고, 한동안은 500W 소용량의 태양광 발전기로 전력을 공급받았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집 밖의 생태 화장실을 이용했을 정도로 이곳은 오지 아닌 오지였다. 이제야 집 앞까지 포장도로가 나고 전기도 들어오고 인터넷도 되지만 말이다. 이들이 터를 잡을 때만 해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이 비탈진 산등성이에 문명의 이기가 찾아들자 하나둘 집이 늘어가고 있다.
난생처음 집을 짓는 이들이 함께 지은 집이라 실수도 많았고 결함도 많았다. 사는 내내 끊임없이 보수 해야 하지만 그래도 사람 살기에 이만한 집도 없다며 부부는 집 자랑을 한다. “우리 집은 자연으로 지은 집이에요. 도시의 집은 겉보기 반듯반듯하고 예뻐 보이지만 새집에 들어가면 냄새가 나고 머리가 아프잖아요. 시스템은 현대식 주택에 비해 떨어지겠지만, 흙과 나무로 지은 자연의 집은 사람이 살기에 최적의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1 8년 전 처음 평창으로 올 때만해도 엄마 등에 엎히기를 좋아하던 둘째 현빈이가 초등학생이 되었다. 엄마의 바람대로 자연 속에서 스스로 터득하며 자연을 친구 삼고 스승 삼아 예쁘게 자라주었다.
2 부부는 15평 규모의 아담한 사랑채를 먼저 짓고 연이어 본채를 지었다. 본채를 짓는 동안 살림집으로 사용했던 사랑채를 요즘은 손님이 묵어 가는 곳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랑채 툇마루 풍경.



3 위채인 사랑채에서 바라보는 풍경. 창밖으로 본 본채의 지붕은 원래 굴피였다. 남편 권남혁 씨는 3일 동안 기름 솥에 굴피를 튀겨 지붕을 올렸지만, 시공을 잘못했던 탓인지 비가 새 결국 기와를 다시 올리게 되었다.

내 손으로 집을 짓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란다. 집 장사도 남의 집을 짓는 것과 자신이 살 집을 지을 때 들이는 공력이 다를 터인데, 제 손으로 제 식구가 살 집을 지을 때 들이는 시간과 정성을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손수 집을 지은 주인공이면서도 집에 관해 말을 아끼던 남편 권남혁 씨가 말문을 연다. “집을 짓는 것은 자신의 기운을 온전히 쏟아 붓는 겁니다.” 옆에 있던 아내가 이야기를 거든다. “이웃에 부인의 건강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이곳으로 온 분이 있어요. 그 육십 초반의 어른이 혼자서 3평짜리 흙집을 지었어요. 집을 지을 때는 그렇게 재미있어하시더니 다 짓고 나서 쓰러지셨어요. 집 짓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에요.” 집 한 번 지으면 5년은 먼저 늙는다, 집 두 번 지으면 사람 쓰러진다, 집은 50세 이전에 지어야 한다…. 집 짓기의 고됨을 알려주는 말들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말들이 회자되던 시절, 우리는 누구나 제 손으로 집을 짓고 살았다. “집 지을 때 도와주신 분 중 처음에는 못도 하나 못 박던 분이 있어요. 그런데 집 짓는 걸 돕다가 재미를 붙여서 귀농한 분이죠. 그분은 이제 거의 전문 건축가 수준이 되었죠.” 너무 고되고 힘든 이야기만 들려주었다 싶었는지 이명순 씨는 화제를 돌린다. 평창으로 내려온 지 어느덧 8년, 초등학생이던 큰아이는 중학생이 되었고 품 안의 아기이던 둘째는 열 살이 되었다. 올가을 부부는 외벽에 흙을 한 번 덧바를 생각이다. 집의 단열 효과를 높여 겨울을 더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서다. “한옥도 관리만 잘하면 5백 년을 간다고 하잖아요. 요즘 나오는 신소재 건축 자재들은 보기 좋은데 10년만 지나면 벌써 부식되는 게 보이기도 하고…. 흙과 나무로 지은 집이니 이 집은 오래가겠죠. 5백 년 갈지 1천 년 갈지 모르죠. 살아봐야죠.”


4 중학교 3학년인 아들 무열이 방이다.
5 물만 있으면 사람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 비탈진 오지 아닌 오지에 터를 마련하게 했던 바로 그 샘물이다.



김성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