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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에 담긴 우리 생활의 변천사 대한민국의 가구, 그때를 아십니까?
학창 시절 사용하던 책상과 의자, 부모님이 집을 비울 때면 서랍을 꺼내놓고 계단 삼아 장난치던 서랍, 잔칫날이면 할머니, 어머니와 둘러앉아 만두를 빚던 식탁. 우리의 추억 속에는 ‘그때 그 가구’가 하나쯤 있다. 나의 성장과 함께 변해온 그 가구들은 주거 생활의 변천사를 말해준다. 우리나라의 주거가 변화해온 길을 따라가며 우리 가구의 역사를 살펴본다.
가구의 역사란 사람과 집을 통해 완성된다. 1960년대 아파트가 도입되기 이전, 사람들은 아궁이에 불을 때며 안방과 마루을 중심으로 한 온돌 생활을 했다. 장과 농, 문갑을 빼면 별다른 가구도 없었다. 하지만 아파트와 함께 서구 생활 양식이 도입되면서 거실과 안방, 부엌과 식당이 분리되었고 각각의 공간에 맞는 가구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1960년대는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10%에 달하며 급속한 성장을 이뤘다. 경제적인 여유를 찾은 사람들은 생활 양식의 변화를 꿈꿨다. 동시에 인구 전문가들조차 예측하지 못했을 정도로 인구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이에 정부는 주택 정책을 바꾸어 표준화된 국민주택과 아파트 양식을 적극 도입했다. 1957년 종암아파트가 들어섰고, 1962년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시행되면서 아파트 건설에 활기를 띠게 되었다. 주거의 양적인 충족과 질적인 충족을 동시에 가져다줄 것을 기대했다. 그리하여 1962년부터 1964년까지 6층 높이의 마포아파트 총 7개 동이 지어졌다. 이때 국내 최초로 개별 연탄 보일러를 이용한 난방시설과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서구식 주거 양식을 선보였다. 1968년을 전후해 지은 힐탑아파트는 외국 자본의 유입과 교류가 본격화되면서 장기 체류 외국인을 위한 것이었다. 한남동 꼭대기에 가장 진보적인 아파트의 틀을 마련해주었다. 중앙 난방 시스템, 냉각기, 전화기, 엘리베이터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이 시기에 ‘한국가구’가 등장했다. 서양 수출을 목표로 영국의 앤티크 가구 스타일을 재해석했고, 국내에서는 거주 외국인과 상류층이 주요 고객이었다.

(위) 김선희, ‘목애당’,2007

1970~1980년대, 가구 도입기 1970년대 말 정부는 ‘남서울 개발계획안’을 발표해 강북 지역에 밀집된 인구를 강남 지역으로 분산시키며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시류에 따라 1971년 보루네오가 문을 열었다. 1966년부터 보루네오 섬의 목재를 수입했던 이 회사가 가구 회사로 전환한 것이었다. 또한 1970년대 초반에는 한샘과 오리표씽크(에넥스)가 아파트 건설의 붐을 타고 입식 부엌 가구 시장을 공략했다. 1976년 8월 잠실, 반포, 여의도, 압구정동 등 강남 일대에 대형 평수의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더불어 강남에 중산층 및 부유층을 위한 고급 단독주택지를 조성하여 강북의 중산층에게 강남에 단독주택을 지어 이주하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영동(논현동과 역삼동) 일대가 고급 단독주택지로 부상했다. 그리고 1979년 리바트는 본격적으로 가구 판매를 시작했다.
한국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과 같은 국제적 행사를 치르면서 선진국 진입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고, 생활의 질도 향상되어 집은 ‘먹고살기 위한 거처’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집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는 살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서구 생활 양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증폭되면서 가구 산업도 성장세를 보였다.
1990년대, 급속한 성장을 경험하다 1990년대 중반에 개발하기 시작한 분당, 일산 등의 신도시에서 아파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 무렵 보루네오는 이탈리아 모던 디자인의 영향을 받아 하이글로시 마감의 거실 및 침실 가구 ‘다이아몬드’ 시리즈를 출시했다. ‘보석처럼 빛나는 맑고 투명한 광택’이 난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었다. 또 시스템 학생용 가구라는 방식이 도입되어 ‘신세대’의 기호에 맞춘 개성 있는 가구들이 나왔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는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책상 면적이 넓어지거나 이를 수용할 만한 별도의 책상이 필요해졌다. 또 컴퓨터 이용에 따라 서랍이나 의자 등 다른 요소들의 이동이 불가피해졌다. 이때 보루네오, 리바트, 한샘 등은 학생 방을 겨냥한 가구 개발에 매진했다. 그리고 1998년 일룸이 등장하면서 학생용 시스템 가구가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대,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 2000년의 시작과 함께 우리나라에는 주상복합아파트 건설이 본격화되었고 ‘브랜드 아파트’의 시대가 도래했다. 브랜드 아파트들이 외관을 정비하는 동안 가구 브랜드들은 차별화된 공간을 제안하기 위해 토털 컨설팅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가구를 단순히 하나의 품목으로 간주하지 않고 그것이 어우러져 놓일 공간 전체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패키지로 판매하는 방식을 취했다. IMF 외환위기를 기회 삼아 도약하는 데 성공한 한샘과 까사미아는 컨설팅 개념을 좀 더 적극적으로 도입해 토털 인테리어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2년을 전후하여 우리나라 가구 시장에 수입 가구가 물밀듯이 들어오며 난항을 겪기 시작했다. 봇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수입 가구와 견주어 가격과 품질, 디자인 면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국내 브랜드들은 디자인 연구소를 중심으로 새로운 주거 문화를 제안하고, 우리 주거 양식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연구에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가구 역사를 살펴보면 그 안에 우리 가족의 역사가 있고, 내가 성장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공존하고 있다. 그 안에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읽는 단서가 들어 있다. 여기 그 단서가 되어줄 6개의 우리나라 가구 브랜드, 한국가구, 보루네오, 리바트, 까사미아,한샘, 일룸의 브랜드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1, 2 클래식 가구를 만드는 한국가구의 2009년 신제품 ‘아르테’ 침실 가구 세트. 한국가구에서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한 가구는 애틀랜타 코카콜라 본사, 컬럼비아 영화사 등 해외 기업의 사무실과 호텔 등에 놓였다.


3 1995~1999년에 판매했던 ‘로얄 시리즈’. 이 시기 한국가구의 제품은 주로 상류층 고객을 겨냥한 것으로 품위와 권위를 중요하게 여겼다.

한국의 기술로 재현한 서양 클래식 한국가구
1966년에 설립한 한국가구. 우리나라에서 가구를 만들어 해외에 수출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시작된 회사이다. 18~19세기 영국 앤티크의 전성기를 주도했던 조지언 Georgian(조지 왕조 풍의) 스타일의 가구를 리프러덕션 reproduction해 서양으로 수출하고 옻칠 가구를 일본에 수출한 우리 가구 시장의 개척자이다. 주한 대사관, 장기 체류 외국인, 국내 상류층을 고객으로 클래식 가구를 만들며 오늘날까지 한국가구란 이름으로 클래식 가구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2009년 프렌치 클래식으로 품위를 스타일링하다 한국가구의 2009년 신제품 ‘아르테 Arte’ 시리즈는 18세기 프랑스 가구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다. 아름다운 곡선과 식물 모티프의 조각이 특징인데 포인트 부분은 실버 오브제로 마무리했다. 가구 다리는 도금용 금박인 오몰루 ormolu를 사용해 완성도를 높였다. 아르테는 고객의 취향에 맞춰 프렌치 앤티크 래커로 도장한 래커 마감과 클래식 가구의 고유한 색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체리 마감 둘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현재 한국가구 내에는 서양 클래식 가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디자이너가 있다. 이들은 오는 10월 프렌치 클래식 스타일의 신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2010년에는 중고가의 프렌치 스타일과 세미 클래식 스타일의 가구를 선보일 계획이다.
서양 시장, 고급 호텔, 상류 주택을 위한 출발 한국가구가 설립되던 당시만 해도 안방이 곧 응접실이었고, 아파트의 보급으로 좌식에서 입식으로 주거 문화가 바뀌고 있었다. 이때 한국가구는 수출 시장에 주력하며 클래식 스타일의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국내 고객은 대사관과 대사관저, 고급 호텔 정도였다. 2002년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가구 매출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장롱, 화장대 등의 안방 가구였다. 하지만 붙박이장과 거실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점차 고객들이 찾는 가구 종류가 다양해졌다.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해지고, 가구 소비 지출이 증가하면서 한국가구는 1996년 폴트로나 프라우 Poltrona Frau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수입 가구 시장에 뛰어들어 모던한 디자인의 가구를 선보여오고 있다. 그렇게 시장을 이원화해 한국가구에서는 정통 클래식 스타일에 기반을 둔 디자인을, 한국가구 라이프스타일에서는 모던한 유럽풍 제품을 선보인다.

한국가구 라이프스타일 이은경 논현점장이 들려주는 한국가구 히스토리
해외 수출을 위해 클래식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1960년대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쪽에서 가구 브랜드가 성장하기 시작한 때였어요. 전후 복구와 경제 성장의 영향을 받은 것이죠.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에는 가구라는 개념조차 생소했어요. 그때 최기곤 창업주가 해외 수출을 목표로 대만의 회사와 기술 제휴를 맺어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 첫 매장을 공항 가는 길목에 열었고 영국의 가구 장인 폴 메이틀랜드 스미스 Paul Maitland-Smith의 디자인으로 한국가구에서 가구를 만들어 다시 유럽과 미국 시장에 판매했어요. 한국가구의 제품을 유심히 보면 같은 클래식 안에서도 시대별로 추구했던 양식이 조금씩 다른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처음에는 우리나라에 이탤리언클래식이 대유행이었죠. 그다음은 아메리칸 클래식이었고 한동안은 앤티크 가구 느낌이 나도록 마감한 가구가 널리 인기를 끌었어요. 그러다 요즘엔 밝고 다양한 컬러의 프렌치 클래식이 인기를 얻고 있죠.


1 2009년 신제품 ‘예인’.


2 2002년 출시되어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대표 제품 ‘노블 앤틱’.

우리 집의 역사이기도 한 43년의 기록 BIF보루네오
누구나 ‘BIF보루네오’ 가구와 얽힌 추억 하나쯤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BIF보루네오는 1970~1980년대 우리나라 가구 시장을 사로잡았다. 목재 수입상에서 시작한 회사답게 ‘좋은 나무로 튼튼하게 만든 가구’라는 인식 때문에 ‘보루네오 가구’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두터웠다. BIF보루네오는 장롱에서 시작해 책상, 식탁, 의자로 시대를 대표하는 디자인을 남기며 시대의 변화와 고락을 함께했다.

서예의 옷을 입은 가구 BIF보루네오는 2009년 신제품으로 서예가 무산 허회태 선생의 작품을 적용한 침실 가구 시리즈 ‘예인’을 선보였다. 1995년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 목간체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허회태 선생은 서예를 이용한 ‘이모그래피’(이모션과 그래피의 합성어) 분야의 개척자다. 예인은 한정 생산한 가구로 허회태 선생의 이모그래피를 자개와 심플한 하이글로시 마감의 제품에 적용했다. 이는 BIF보루네오가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을 내다보며 준비한 제품이기도 하다.
BIF보루네오의 빅 브라더스 2002년 출시한 ‘노블 앤틱’ 시리즈는 BIF보루네오의 대표 제품이다. 유럽풍 세미 앤티크 가구로 기존 BIF보루네오 가구보다 가격대가 높지만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노블 앤틱의 핵심 기술 중 하나는 문의 디테일로, 직사각형 패턴으로 볼륨감을 주면서 장식적 효과를 낸 것. 또 다른 대표 제품으로 ‘이오레 로제’ 시리즈가 있다. 이오레는 2000년 BIF보루네오가 출시한 신혼 가구 전문 브랜드다. 이오레 로제 표면에는 플라워 패턴을 넣고 펄의 음영으로 화사함을 표현했으며 업계 최초로 아크릴 하드 코팅으로 반짝이는 표면을 만들고 내구성을 높였다.


3 1990년대 중・후반에 출시된 학생용 가구.

보루네오 섬의 나무로 시작된 BIF보루네오 가구 1966년 보루네오 섬의 원목을 수입하는 회사로 시작한 BIF보루네오는 1971년 가구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 시기 대표 제품으로 혼례장 ‘부라지리아’가 있었다. 혼례장은 옷장, 이불장, 화장대, 찬장으로 구성된 일종의 패키지 가구. 1970년대에 출시한 ‘뽀빠이 책상’은 서랍 위치가 앞뒤로 변경이 가능하며 측면은 가방 및 모자 걸이로 사용할 수 있었다. 1980년에는 ‘BIF코리아’라는 브랜드로 해외 수출을 시작했다. 1980년대 초반에 만든 ‘오리지날 티크’ 시리즈는 튼튼한 BIF보루네오 가구의 상징으로 한옥, 양옥, 아파트 모두에 무난하게 어울리는 디자인이었다.‘보루네오 더 키친’이란 주방 가구 시리즈도 선보였다. 1990년대 중・후반 BIF보루네오는 ‘아르모니아’란 내추럴 모던 침실 가구로 다시 한 번 가구 시장을 뜨겁게 달궜다. 최대 히트 시리즈이기도 한 이 제품은 체리 컬러의 전성기를 열었고 ‘엔들리스 월 투 월 endless wall to wall’ 방식으로 장을 설계하여 공간 활용도와 수납 효율성을 높였다.


4 1980년대 거실 가구 ‘살로네’.


5 1980년대 BIF보루네오의 대표적인 의자 시리즈.

BIF보루네오 마니아가 추억하는 그 시절, 그 가구
1971년에 만든 오래된 BIF보루네오의 장롱과 서랍장은 부모님이 결혼할 때 장만한 가구였다. 서른넷, 내 나이보다도 오래된 가구들이다. 우리 다섯 식구의 옷을 빼곡이 수납해주었던 5단 서랍장은 오빠와 나에겐 더없이 좋은 놀이터였다. 부모님이 외출하고 안 계실 때면 서랍을 차례대로 꺼내놓고 5개 계단을 누가 더 빨리 올라갔다 내려오는지 우당탕거리며 놀았다. 가끔은 그 서랍장 위에서 잠을 자던 기억도 있다. 또 우리 삼남매가 돌아가며 사용하던 책상. 부모님은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각자에게 책상을 선물하셨지만 그전에는 BIF보루네오 책상 하나를 셋이 함께 사용했다. 하지만 몇십 년이 지난 지금 남아 있는 책상은 BIF보루네오 책상 하나뿐이며 지금은 예순의 어머니가 사용하고 있다. 20여 년 전에는 우리 삼남매와 늦은 밤을 같이 보냈던 책상이 이제는 어머니와, 또 10년 후에는 우리 조카와 함께할 것이다.


1 2009년 신제품 ‘아일린’.


2 2005년에 선보인 침실 가구 ‘소네트’.

‘현대’가 만든 가구에서 ‘생활 예술’ 가구로 리바트
1977년 금강목재공업으로 시작한 리바트 Livart는 1979년부터 리바트 브랜드로 가구 판매를 시작했다. 2000년대의 시작과 함께 부엌 가구 ‘리첸’을 론칭하고 사무용 가구, 선박용 가구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2005년 론칭한 온라인 가구 브랜드 ‘이즈마인’은 가상의 공간으로 쇼핑을 나온 듯한 느낌이 들도록 웹사이트를 디자인해 온라인 가구 쇼핑의 새로운 재미를 안겨주었다. 지난 30년 동안 리바트는 차근차근 영역을 넓히며 내실을 다져왔다.

미인의 기준이 바뀌듯, 해마다 다른 매력을 주는 가구 이름처럼 생활 속 예술을 지향하는 가구 브랜드 리바트는 시대에 따라 미인의 기준이 달라지듯이 가구의 아름다움도 지속적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긴 시대를 관통하는 제품보다는 고객에게 주거 문화의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는 가구, 시대의 특징을 잘 담아내는 가구를 만들고자 한다. 매년 트렌드를 연구해 발표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2000년대 뉴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개발한 ‘모던 라인’은 자기 표현 욕구가 점차 강해지고 있는 소비자들을 위해 만든 가구였다. 가구는 그들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2003년 출시된 ‘메이저 골드’는 전 사회적으로 번진 ‘웰빙’이란 화두에 영향을 받아 다시 동양의 내추럴 스타일을 반영해 디자인한 것이다. 밝은 톤의 나무로 만든 가구는 침실을 차분한 휴식 공간으로 만들어주었다.
‘동서양의 만남’이 디자인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2000년대 중반에 이르자 리바트에서는 ‘마샬’ 시리즈를 선보였다. 블랙 브라운 펄 유리 도어와 브론즈 그레이 손잡이 등을 이용해 동양과 서양의 감성이 혼합된 제품을 선보였다.
지난해에는 부드러운 화이트 컬러에 플라워 패턴을 실크 프린트하고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장식을 더해 수공예적인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 ‘레이나’ 시리즈를 출시했다.


3 동양적인 감성과 서양적인 감성을 조화시킨 침실 가구 ‘마샬’로 2007년에 출시되었다.


4 2003년에 소개된 침실 가구 ‘메이지 골드’.

2009~2010년의 화두, 여성적인 패턴으로 반짝이는 침실
리바트는 2009년과 2010년의 신제품을 ‘자연, 자유, 이국적인 감성, 반짝임’ 등을 키워드로 디자인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2009년 신제품으로 소개한 ‘아일린’이다.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면서도 쉽게 질리지 않는
제품을 찾는 고객들의 요구를 고려해 모던하고 깨끗한 바탕 위에 식물 모티프를 응용한 기하학적 패턴, 도트 패턴 등을 넣어 여성스러운 느낌을 강조했다.
그동안 플라워 패턴이나 식물 모티프에 싫증을 느끼고 밝고 화사한 침실을 원했던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5 1990년대 중반에 소개된 침실 가구 ‘제우스’.

‘Live’와 ‘Art’가 만난 리바트 목재 공업사였다가 1979년 본격적으로 가구를 판매하기 시작한 리바트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생활 가구, 생활 예술’을 표방하기 시작했다. 그런 의도에서 붙인 이름이 ‘리바트 Livart’이다. 1983년에는 오크 나무를 사용한 보급형 식탁이 큰 호응을 얻었다. IMF 외환위기 이전까지 리바트는 ‘현대종합목재산업㈜’ ‘현대리바트㈜’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 그룹의 계열사였다. 그래서 대중에게는 ‘현대가 만드는, 다른 가구’라는 인식도 적잖이 작용했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와 리바트는 가구의 품격을 중시했다. 월넛 무늬목에 상감 장식을 넣는다든가 오크에 모자이크 패턴을 적용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했다. 1990년대 가구 시장이 포화되면서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리바트는 기술연구소를 새로 설립했다. IMF 외환위기를 겪은 후 1999년 ‘주식회사 리바트’를 설립, 2000년 디자인 연구소의 설립과 함께 신규 브랜드 론칭을 준비하고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하는 등 가구 시장에서의 입지를 넓혀나갔다. 지금 리바트는 친환경 제품 생산에 주력하며 폐가구 회수 서비스 및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는 장롱 문을 교체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1 내추럴 라인을 대표하는 ‘샌더슨’ 시리즈의 침실 가구. 원목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 우아한 분위기를 낸다.


2, 3 2001년 출시된 미첼 수납장과 침대.

여성의 꿈을 이뤄준 작은 공방 까사미아
1982년 작은 공방에서 시작한 까사미아 Casamia는 현재 종합 인테리어 회사로 성장했다. 소품에서 출발해 가구로, 그리고 리모델링 및 인테리어 컨설팅에 이르는 생활 공간 디자인의 모든 분야를 섭렵한 것이다. 까사미아의 등장은 많은 여성에게 희소식이었다. 여성이 꿈꾸는 동화적 감성을 충분히 살려 이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전혀 다른 형태의 로맨틱한 가구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아동용 가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까사미아는 여성이 좋아하는 가구, 여성이 원하는 공간을 만들어줄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4, 5 2009년 신제품인 ‘애프터눈’ 시리즈의 콘솔과 거실 가구.

원목, 컬러, 디테일로 승부를 건 27년 1980년대 후반, 원가 절감 경영에 성공한 까사미아는 이로 인한 수익을 디자인에 투자했다. 1994년 까사미아가 오버 샌딩한 화이트 컬러의 가구를 선보였을 때 여성 고객은 환호했다. 외국 잡지에서 본 듯한 풍경을 우리 집에서도 연출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대표적 가구가 ‘캘빈’과 아동용 가구 ‘꼬마’ 시리즈였다. 아동용 가구에 화이트 도장을 한 가구조차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1999년에는 ‘파랑’ 시리즈로 아동용 가구에 파란색 원색 도장을 해 대히트를 기록했다. 2000년 출시한 ‘에바’ 시리즈는 화이트 로맨틱 신혼 가구로, 까사미아 로맨틱 스타일의 대표 제품이다. 2001년 출시한 ‘미첼’ 시리즈는 사이프러스 원목의 자연스러운 결을 살린 내추럴 스타일 가구로, 화이트 일색이던 가구 시장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데 성공했다. 2005년 출시한 ‘프렌치 가든’ 시리즈는 핸드 브러시 기법으로 도장한 친환경 제품으로 프로방스풍 가구의 유행과 더불어 큰 인기를 누렸다. 이 외에도 부드러운 곡선에 몰딩 장식을 넣은 로맨틱 화이트 가구 ‘에스더’ 시리즈나 로맨틱 화이트 베이스에 원목 상판이나 라탄 소재를 결합한 ‘카라’ 시리즈 등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가구 판매에 그치지 않고 효율적인 배치와 집 안 전체 분위기를 컨설팅해주는 까사미아는 가구, 침구, 소품의 원스톱 쇼핑 공간의 기본 틀을 만들기도 했다. 현재 까사미아는 홈쇼핑 전문 브랜드를 론칭하고 온라인 전용 상품을 판매하는 등 유통 채널을 다각화해 소비자들이 좀 더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6 2005년 출시해 인기를 얻었던 ‘프렌치 가든’ 시리즈의 수납장.
7, 8 가구 시장에 혁신을 불러왔던 ‘캘빈’ 시리즈 .




이국적인 감성으로 여심을 사로잡다 까사미아의 첫 번째 성공 비결은 여심을 사로잡은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이국적인 감성과 로맨틱한 감성으로. 2009년 신제품으로 출시한 ‘애프터눈’ 시리즈에는 그리스 산토리니 섬의 풍경을 담았다. 까사미아의 기존 화이트 로맨틱 가구에서 보이던 장식을 최소화하고 좀 더 내추럴한 느낌을 강화했다. 이는 특히 20~30대 신혼 고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까사미아의 가구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로맨틱한 파스텔 톤 가구와 내추럴 라인가구. 2006년 출시한 ‘샌더슨’ 시리즈와 2007년 출시한 ‘허드슨’ 시리즈는 내추럴 라인의 가구로 까사미아의 스테디셀러이기도 하다. 2008년 내추럴 라인의 가구가 하나 추가되었다. 북유럽의 감성이 느껴지는 ‘크리켓’ 시리즈이다. 1970년대풍의 레트로 스타일로 디자인해 심플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어떤 가구와도 조화를 이루도록 디자인했다.

1 심윤희 씨 집 거실에는 까사미아 패브릭 소파와 티테이블, ‘마사’ 시리즈의 암체어가 놓여 있다.

까사미아 마니아 심윤희 씨
큰딸과 함께 성장한 우리 집 소파
2009년 현재 아이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의 까사미아 마니아 고객은 43만여 명이다. 까사미아 고객의 재구매율은 60% 이상이며, 마니아 고객들은 커뮤니티를 통해 중고 가구와 신제품 정보를 공유한다. 까사미아 마니아 심윤희 씨 댁을 찾아가보았다.

“소파는 큰아이를 임신했을 때 샀어요. 벌써 7년이 넘었네요. 이것을 작년에 이사 오면서 패브릭만 바꿔 계속 사용하고 있죠. 하늘색이 별로인 것 같아 다른 색도 하나 맞췄는데 여름이 되면서 다시 하늘색으로 바꾸었어요. 그 앞의 테이블과 의자도 까사미아 제품이에요. 작은아이 방 침대와 서랍장도 까사미아 제품이고요.” 까사미아 가구에 대한 심윤희 씨의 애착은 대단하다. 어느 날 본 까사미아 식탁이 너무 예뻐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 이사를 오면서 그 식탁을 일단 샀고, 그런 다음 식탁에 맞춰 식당 구조도 바꾸고, 벽지와 조명등도 맞췄을 정도다. 동생 결혼 선물로도 까사미아 ‘에바’ 시리즈를 해주었고, 시간 날 때면 자주 가는 까사미아 매장 직원과 전화 통화를 하며 신제품이나 할인 정보를 얻기도 한다. 또 ‘레몬테라스’ 같은 블로그를 통해 다른 마니아들과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행복>에서 촬영을 온다고 하니 친구 몇 명이 자기네 의자며 식탁이며 가져가서 찍으라고 하더군요. 재미있죠. 까사미아 가구는 여자의 마음을 잘 읽는 것 같아요.” 그도 까사미아 가구가 처음 선보였을 때 꼭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파트 평수를 넓혀가면서 하나 둘 까사미아 가구의 숫자를 늘려갔고 그때마다 그는 행복감에 빠지곤 했다. 디자인도 좋지만 잔고장 없이 잘 만든 가구였다. “옷장은 문짝이 삐뚤어지고, 서랍은 레일이 고장 나고, 의자는 다리가 삐걱거리고, 가구마다 아킬레스건이 있잖아요. 그런데 까사미아는 그런 부분들을 특히 신경 써서 잘 만든 것 같아요. 아이들 키우다 보면 가구를 곱게 쓰기 힘든데 별 탈 없이 잘 쓰고 있어요.” 어느덧 소파 하나에만도 7년이 넘는 가족의 역사가 담겼다. 큰딸 임신 중에 구입해 그곳에서 아이를 키웠고, 걸음마 연습도 했으며, 뛰어놀기도 했고, 그 모든 성장 과정이 담겨 지금은 바꾸고 싶어도 쉽게 바꿀 수 없는 가구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점은 패브릭 소파라는 것이다. 지루해지면 천 갈이를 해서 색상을 바꿔주고, 세탁하기도 좋다. “까사미아 마니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단종이에요. ‘줄리엣’ ‘마사’ 같은 제품은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은데 단종되어 마니아들끼리 정보를 교환해 중고품 판매가 이뤄지고 있어요. 까사미아는 출시한 후에 반응이 빨리 오지 않는 제품은 바로 단종시키는 것 같아요. 어떤 블로그를 보면 그렇게 단종된 가구가 새 제품과 비슷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어요.” 심윤희 씨는 가구란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래 사용할 수 있게 디자인하고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안에는 자신의 취향과 질리지 않는 디자인이라는 주관적인 전제가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좋은 재료를 쓰고, 잘 만들면 고객은 당연히 그 가구를 함부로 버릴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2 ‘마사’ 식탁 세트에 인테리어를 맞춘 식당.
3 캐빈 침대와 밤비노 수납장을 함께 놓은 아들 방.


패브릭 소파 시장의 개척자, 까사미아
가죽 소파, 클래식 소파 일색이던 우리나라 소파 시장에 까사미아는 패브릭 소파를 도입했다. 모던하고 심플한 디자인의 몸체를 만들고 다양한 패턴의 패브릭을 씌워 고객이 원하는 맞춤형 소파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 판매 중인 패브릭 소파의 종류는 10여 종이다. 그리고 여기에 맞춤 가능한 원단 종류는 40여 종. 심윤희 씨의 예처럼 패브릭 소파는 일정 비용만 지불하면 커버를 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교체할 수 있다.


1 오랜 시간 인기를 얻고 있는 한샘의 대표 제품 ‘유플러스’ 서재 가구.


2 2008년 출시된 침실 가구 ‘두오모 3002 아르데코’.

공간과 문화로 해석한 가구 한샘
한샘 Hanssem은 1970년 주방 가구 회사로 시작해 1997년 ‘한샘바스’와 ‘한샘퍼니처’를 설립해 가정용 가구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한샘은 ‘거실을 서재로’ 같은 캠페인을 펼치며 그에 맞는 거실 가구를 개발하는 등 새로운 주거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동과 서를 뛰어넘는 디자인(DBEW:Design Beyond East &West)’을 주창하며 한국성을 바탕으로 세계화할 수 있는 디자인 요소를 개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는 곧 한샘의 비전이기도 하다.

부엌 가구의 노하우, 붙박이장이 이어받다 한샘인테리어의 가구를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 바로 붙박이장일 것이다. 주방 가구도 싱크대가 아닌 부엌의 장을 짜는 것에서 시작한 탓에 장을 제작하는 데에는 남다른 노하우가 있었다. 2000년 깔끔한 디자인의 흰색 붙박이장 ‘5005 화이트’를 시작으로 다양한 소재로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해왔다. 2007년에는 ‘라움 5009 시에나’ 붙박이장을 월평균 4백 세트 판매했고, 2009년 출시한 신제품 ‘페리스 5000’ 붙박이장은 월평균 8백70세트 판매되는 역대 최고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 제품은 세련된 패턴과 유리를 접목한 디자인으로 취향에 따라 도어를 연출할 수 있게 다양한 옵션을 갖추었다.


3 2009년 신제품이며 붙박이장 부문에서 월평균 판매량 기록을 세우고 있는 ‘페리스 5000’. 유리에 패턴을 접목시킨 제품이다.

한샘의 베스트 3 침실 가구 세트 2009년 신제품이자 베스트셀러인 침실 가구 ‘엘리시아 3000’은 세미 클래식 스타일로 디자인했다. 역대 한샘인테리어의 베스트셀러 침실 가구로는 2005년 ‘댄디 5001 노체’ 침실 세트(월평균 3백 세트 판매)와 2008년의 ‘두오모 3002 아르데코’ 침실 세트(월평균 3백20세트 판매)가 있다. 두 제품은 모두 가격 경쟁에서 우위에 있는 제품이었으며, 서로 다른 두 요소를 절충해 디자인했다. 이로써 편안하지만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댄디의 경우 나무와 가죽을 믹스 매치한 디자인으로 고급스러움을 강조했다. 두오모 3002 아르데코는 세미 클래식 디자인이다. 


4 2007년에 출시한 붙박이장 ‘라움 시에나 베이지’.


5 한샘의 초기 침실 가구였던 ‘인텔 화이트’. 깨끗함과 모던함을 중시한 디자인으로 인기를 얻었다.

2000년 동서양을 뛰어넘은 도전을 시작하다 1997년 방배동에 대형 쇼룸을 열어 원스톱 쇼핑 개념을 도입한 한샘은 2000년대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다가올 동북아 시대를 준비하며 동양의 언어로 서양에서 인정받는 디자인을 만들어보자는 것. 이런 취지로 2004년 원서동에 DBEW 디자인 센터를 세우고 디자인 국제 공모전을 개최하기 시작했다. 알레산드로 멘디니 같은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을 영입해 제품을 함께 개발하기도 하며, 서구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체질을 개선하고 체력 보강에 나섰다. 거실장, 소파, 커튼 같은 개별 제품이 아닌 거실, 침실, 자녀 방 같은 하나의 공간을 판매하는 개념으로 패키지 상품을 구성해온 한샘은 새로운 주거 문화 제안이 불가피했고, 21세기에 맞는 우리만의 고유한 주거 문화를 찾아 제안하는 다양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거실을 서재로’라는 캠페인과, 지난 4월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종환・마영범 씨와 함께 선보인 ‘디자이너 가구 시리즈’이다.


1 일룸을 대표하는 학생용 가구 ‘알투스’. 1998년 일룸이 시작된 해에 만들어 디자인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2 2009년 신제품 ‘팅클2’.

아이와 남편을 위한 기능성 가구 일룸
1998년 학생용 가구로 시작한 일룸 Iloom은 같은 해에 ‘알투스’ 시리즈로 우리나라 산업 디자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기능성 가구라는 인식을 심어주며 거실 가구, 아이 방 가구, 신혼 가구 등으로 라인을 확대하고 있다. 베스트셀러가 아닌 스테디셀러를 지향하며 집 안에서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가구를 만들고자 한다. 일룸은 가구란 매일 입는 옷과 매일 먹는 음식처럼 매일 생활을 즐겁게 해주는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룸의 10년 역사를 대표하는 ‘알투스’ 알투스는 책상 세트 구조가 ‘h’자 형태인 대표적 스타일이다. 이는 책장이 책상 정면 위쪽에 있지 않고 책상 옆면에 자리 잡은 형태인 것. 알투스는 시스템 가구를 표방하며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도록 디자인했다. 아이의 키에 맞추어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고, 학년이 높아질수록 책장 숫자를 늘려나가는 등 같은 소재와 색상으로 책상 시스템을 확장해나갈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책상의 디테일에서는 학습 동선을 고려해 책상 상판을 ‘L’자형 곡선으로 디자인해 면적을 확보했다. 책장 뒷면을 개방해 책 곰팡이나 벌레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고 벽면에 붙일 경우 콘센트 사용에 방해가 되지 않게 했다.
일룸의 공간 창작 ‘남편의 가슴속에 만든 서재’ 2003년 ‘창문 사이로 하늘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서재에서, 데스크에서, 남편의 이야기가 피어납니다’라는 광고 문구로 대한민국 아내의 마음에 남편의 서재를 떠올리게 한 일룸은 ‘이타카’를 출시하며 ‘내 남편의 서재’에 대한 꿈을 실현시켰다. 넓은 책상에 모니터 선반 기능을 추가했으며, 책장은 하드커버와 장정된 전문 서적의 수납을 용이하게 했다. 중후한 분위기의 이타카 가구는 특히 40~50대 고객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타카의 중후함은 2008년 출시한 ‘케플러’로 이어지면서 권위적인 느낌을 벗었다. 책상 형태와 크기로 이타카보다 무게감을 줄이고 좀 더 캐주얼한 디테일이 살아 있는 가구로 디자인했다.


3 ‘이타카’ 서재 가구. 2003년 출시된 이 제품은 아내가 남편을 위해 마음속에 그리던 서재의 모습을 실현시켜주었다. 알투스와 함께 현재 일룸을대표하는 제품이 되었다.


4 2008년 ‘케플러’ 서재 가구.

우리 집 꼬마에게 필요한 시스템 가구 일룸은 2006년 출시한 ‘팅클’ 시리즈의 두 번째 버전을 2009년 신제품으로 선보였다. 성장이 빠른 요즘 아이에게 맞는 유아용 가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개발한 제품으로, 알투스와 마찬가지로 아이의 성장에 맞춰 가구의 높낮이를 조절하고 책상 형태를 바꿀 수 있게 디자인했다. 또 컬러 테라피 효과를 고려해 가구 색상을 녹색 계열로 했다. 책상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에게 낮은 책상을 사용하게 하며, 점차 책상 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하는 등 유아에게 필요한 모든 가구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갖춰놓아 필요한 요소를 추가할 수 있게 했다. 일룸이 2004년 출시한 ‘링키’는 초등학교 저학년을 타깃으로 한 디자인으로 또래 아이의 신체 비율을 모듈화해 제안한 제품이었다. 파스텔 색상과 이동식 서랍, 익스텐션 등을 두어 아이가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5 1998년 알투스 낮은 책상.
6 2000년 게티스 책상.
7 2004년 링키 책상.
8 2005년 올리 책상.


김명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