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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디자인 예찬 가족의 역사가 빈티지를 낳는다
대물림한 가구와 혼수품, 한때 골동품 시장이 인기를 끌던 시절 사다 모은 살림 등 가족의 역사와 함께 세월을 지내온 것들에 남다른 애착을 갖는 이들이 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의 정명수 이사는 이런 것들이 서양의 앤티크나 빈티지와는 또 다른 가치를 지녔다고 말한다.

1987년 무렵에 ‘방배동 어르신’을 통해 구입한 이층장. 그 위로 신라・고려・백제 시대 토기가 놓였다. 느낌이 좋아 관심을 갖게 된 고가구와 그림이 모던한 거실과 조화를 이룬다.

한때 할머니가 쓰시던 삼층장과 문갑, 다듬잇돌부터 어머니의 혼수품인 색동 이불과 은수저… 이런 것들은 대물림되어 가족의 역사가 된다. 서양의 앤티크나 빈티지가 대유행하고 있는 지금, 우리에겐 어떤 앤티크와 빈티지가 있는가? 정명수 씨의 집을 찾던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의 집에서는 어머니가 쓰시던 가구부터 아내가 장만해온 신혼살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글로벌 기업의 한국 지사장을 지낸 정명수 씨는 은퇴 후 대학 강단에 서며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의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아내 전순희 씨는 전통 음악과 서양 음악의 크로스오버를 주제로 작곡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삼성동의 ‘오래된 60평대 빌라’를 재건축해 100평가량(약 330㎡)으로 지은 지금의 집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이사를 다녔다. “처음 결혼할 때 16평 아파트에서 시작해, 방배동 소라아파트, 잠실아파트, 신도시에서도 잠시 살았고, 20평, 30평, 40평, 차근차근 규모를 늘려서 여기까지 왔죠.” 전순희 씨 말이다. 이사 때마다 ‘새집에 새살림을 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오래된 살림들을 꼭 챙겼다. 그리하여 지금의 하얗고 모던한 빌라에 이른 가구들은 정명수 씨 가족의 모든 자취를 담고 있다.

1980년대 중・후반 골동품 수집이 유행한 적이 있다. 장한평과 황학동에 골동품 가게들이 밀집해 있던 시절이다. 집집마다 거실에는 사방탁자, 반닫이, 그릇장 등이, 안방에는 문갑이 놓였다. ‘이조가구’ ‘윤씨농방’ 같은 고가구 스타일의 ‘메이커’들도 더불어 인기를 누렸다. 정명수 씨의 집에는 이들 두 회사의 가구도 있다. 또 어머니가 물려준 일제강점기의 삼층장도 있고 신라와 백제 시대의 토기도 놓여 있다. 전순희 씨가 1980년대부터 인사동과 장한평을 발품 팔고 돌아다니고 ‘방배동 어르신’(전에는 ‘이조가구’란 이름으로 고가구 판매와 수리를 하던 어르신의 아들이 지금은 ‘리화랑’(02-532-9282)으로 바꾸어 운영하고 있다)을 통해서 장만한 고가구들도 있다. “동덕여대에 강의를 나간 적이 있어요. 잠실 고층 아파트에 살 때였는데, 학교와 집을 오가는 길에 장한평 고가구 시장을 종종 찾아가 골동품 구경을 했어요. 1985년쯤이었어요”라며 전순희 씨가 가구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5만 원에 구입한 책 반닫이, 거실과 현관을 이어주는 복도에 놓인 장 등이 모두 장한평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버리지 않고 마치 피붙이처럼 모시고 다녔던 가구들은 그동안 다리가 부러지기도 하고 이가 나가기도 했으며 경첩이 망가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가구 쪽이 떨어진 부분에 석고를 붙이고 물감을 칠하는 것처럼 대강 모양새만 갖춰놓곤 했는데, ‘방배동 어르신’을 안 뒤로는 제대로 수리해 사용하고 있다. 남이 버린 가구도 이 어르신의 손을 거치면 그럴듯하게 변했다. 식당에 놓인 어린애 키만 한 뒤주는 1999년 누군가가 버린 것을 주워와 40만 원에 수리를 맡기고 4일 밤낮을 햇볕에 말리고 소독해 사용하게 된 것이라 했다.

정명수 씨는 우리나라 전통 가구가 현대 주거 공간에서 어떤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지 살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뒤주, 사방탁자, 그릇장처럼 현대화된 생활에 맞춰 다른 장소에서 다른 기능으로 쓰고 있는 가구들을 정리해보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대물림 되는 과정이 아니겠냐고 한다. 또 한 가지 구상 중인 것이, ‘우리 집 유산 목록 만들기’다. 금액적 가치가 아닌 그 안에 담긴 가족의 역사를 정리해보는 작업이 될 것이다. “내가 아끼며 모은 것의 가치는 결국 나 자신만 알잖아요. 자식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만 알려줄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알려주어야 그 가치가 좀 더 커질 수 있을지 생각하다 우리 가족만의 유산 목록을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러한 이야기는 정명수 씨 부부가 아껴온 살림살이와 함께 대물림되면서 가족의 역사가 될 것이며, 수십 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빈티지가 되고 앤티크가 될 것이다.

1 정명수・전순희 씨 부부는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같은 기호를 가졌다’고 한다.
2 작은 반닫이 함 속에는 자녀들의 어린 시절 음성을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부터, 정명수 씨가 1980년대 맡았던 라디오 방송 코너 녹음 테이프 등이 들어 있다.
3 주방에 놓인 뒤주. 남이 버린 것을 고치고 햇볕에 소독한 뒤 사용하고 있다.
4 안방에 놓인 일제강점기의 농으로 어머니에게 물려받았다.
5 현관 앞에 놓인 이층장. 모서리의 쪽이 떨어진 것을 정명수 씨가 석고를 붙이고 포스터물감을 칠해서 고쳤다.
6 딸과 사위가 임시 거처로 쓰고 있는 방에 놓인 일제강점기의 장으로 마찬가지로 어머니에게 물려받았다.


김명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