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조용헌의 백가기행]건축가 조병수 씨의 땅 집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집
건축가 조병수 씨는 땅을 파서 지하에다 집을 지었다. 지하 3.2m 깊이에 가로세로 7m 마당과 여섯 평 집이 있는, 지붕이 곧 지표가 되는 집이다. 땅 밑으로 내려간다는 것은 고요함을 찾아가는 것이다. 조병수 씨의 땅 집은 깊고 깊은 고요 속에서 내 안의 나를 만나는 곳이다.

건축가 조병수 씨는 지하로 땅을 파고 땅 속에 꽁꽁 숨은 집을 지었다. 모두 다 위만 쳐다보며 높이 올라갈 생각만 하는데 그는 아래로 내려갈 생각을 한 것이다. 발상이 다르다.

동정일여 動靜一如’라는 말이 있다. 동 動과 정 靜을 어떻게 하나로 묶을 것인가? 이것이 동양의 신비가 神秘家들이 평생 동안 추구한 목표였다. 움직이는 가운데에서도 어떻게 하면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왜 고요함이 중요하단 말인가? 고요함이 있어야만 긴장이 풀리고, 긴장이 풀려야만 내면세계로 깊이 침잠할 수 있고, 침잠을 해야만 신비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비 체험은 깊은 행복감을 동반한다. 그러므로 이 모든 체험의 기본은 정 靜이다. 고요함이 바탕이 되어야만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는데, 현대문명은 구조적으로 이 고요함을 얻기 어렵게 되어 있다. 휴대폰, 컴퓨터, 자동차와 같은 문명의 이기는 고요함을 파괴하는 무기다. 우리는 고대나 중세인에 비해 동 動만 있고, 정 靜이 부족한 삶을 살고 있다. 고요함이 움직임보다 더 기본이고 우선적인데, 이 고요함이 너무 결핍되어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일상에서 고요함을 획득할 것인가? 건축가 조병수 씨가 양평군 수곡리에 지은 ‘땅 집’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름부터 ‘땅 집’이다. 땅을 파고 지하에다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상식을 파괴했다. 이 땅 집의 구조는 언뜻 보아 벌집 같다. 방이 모두 6개다. 방 하나의 크기는 한 평이다. 한 평짜리 방이 앞에 3개, 뒤에 3개가 있다. 말하자면 3칸 겹집 구조다. 가운데 있는 앞뒤의 방 2개는 침실이다. 좌측에 있는 2개의 방은 보일러실과 화장실이다. 우측에 있는 방 2개는 서재와 부엌이다. 천장의 높이도 낮다. 키가 175cm인 사람이 방 안에 서면 높이가 맞지만 180이 넘는 사람은 머리가 천장에 닿을 수도 있겠다. 천장이 높으면 신성한 감을 주고, 천장이 낮으면 마치 압력밥솥과 같이 기운을 함축한다. 마당은 가로세로 7m다. 땅을 어느 정도 파고 들어갔는가 하고 주인에게 물어보니 3.2m를 팠다. 지상에서 3.2m 깊이에 마당도 있고, 방도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담장 높이가 3.2m인 셈이다. 땅 밑으로 내려간다는 것은 독특한 느낌을 준다. 모두 다 위로 올라갈 생각만 하는데, 이 집 주인은 밑으로 내려갈 생각을 했다. 모두 다 위만 쳐다보는데, 로켓을 위로 쏘지 않고, 발밑으로 쏜 것이라고나 할까. 발상이 다르다. 땅 밑으로 내려간다는 것은 표면 의식의 밑으로 내려간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무의식의 세계로 내려가는 것이다. “의식의 지하 3층에 내려가면 거기에서 조상의 음성을 듣는다”는 말이 있는데, 땅 집으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에서 이 말이 생각났다. ‘조상의 음성’은 침잠해야 들리는 소리이고, 고요함이 확보되어야만 들리는 소리다. 일단 땅 밑에 있는 땅 집은 입문자 入門者로, 평소에 가보지 못한 내면세계로 들어간다는 느낌을 준다. 공간의 변용이 의식의 변용을 유발한다.


땅 집 툇마루에 앉아 있는 건축가 조병수 씨와 조용헌 선생. 조병수 씨는 지난 6월 땅 집에서 몇몇 지인과 함께 시 낭송회를 열었다. 그는 앞으로 이곳에서 일년에 두번 씩 시 낭송회를 열 계획이다.

방의 크기도 중요하다. 방이 크다고 장땡이 아니다. 잠을 자는 침실이 너무 크면 기가 빠진다. 기가 빠지면 장수에 지장이 있다. 집무실은 넓어도 상관없지만, 잠을 자는 공간은 좁아야 좋다. 동양의 고관대작들도 거주하는 집은 넓게 지었지만, 침실만큼은 반드시 좁게 만들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잠자는 공간은 두 평 내지는 세 평이다. 좁으니까 가구도 들여놓을 수 없었다. 이 땅 집의 방 크기도 겨우 1평이다. 이렇게 평수를 줄일 수 있다는 것도 건축가의 내공이다. 내공이 없으면 압축을 못한다. 압축을 하려면 필요 없는 부분은 다 털어내야 하는데, 터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방의 평수를 한 평까지 줄이는 데 얼마의 세월이 걸렸을까? 한 평은 혼자서 잠자고 머리맡으로 겨우 책이나 볼 수 있는 공간이다. 2명 이상이 방 안에 앉으려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한 평 방은 혼자 있고 싶다는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혼자 있어야 고요함에 들어간다. 여러 명이 모여 떠들어봐야 주식과 부동산 이야기나 하는 경우가 많다. ‘군거종일 언불급의 호행소혜 群居終日 言不及義 好行小彗’라고 하지 않던가! 여려 명이 종일 모여 앉아 떠들지만, 그 것을 뜯어보면 의로운 내용은 별로 없고, 자잘한 이해타산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는 선현의 말씀이다. 방이 넓어보아야 별거 없다는 말이다. 방이 작아야 자기 세계에 침잠할 수 있다. 집주인은 이걸 알고 지었는가! 충청도에 가면 천장암 天藏庵이라는 조그만 암자가 있다. 바위 절벽 위에 있는 암자인데, 이 암자의 한 귀퉁이에는 아주 조그만 방이 하나 있다. 바로 경허선사가 도를 통한 뒤에 보림을 하던 방이다. ‘보림’은 비유하자면 밥이 된 뒤에 뜸들이는 과정에 해당한다. 천장암 모퉁이 방은 사람이 하나 누우면 딱 맞는 크기의 방이다. 보림은 작은 방에서 하는 것임을 이곳에서 알았다. 땅 집의 방도 천장암에서 경허선사가 보림을 하던 방의 크기를 연상시킨다.


1 지하 3.2m 아래에 박혀 있는 땅 집은 콘크리트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2 땅 집 툇마루에 앉아 고개를 들면 네모난 하늘이 펼쳐진다. 이 집은 땅이 곧 하늘이고 하늘이 곧 땅이다.

방 안에 앉아서 마당 쪽을 내다보니까 빛이 환하다. 밖의 빛이 환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실내가 상대적으로 어두운 탓이다. 밖을 보았을 때 환하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일부러 실내를 어둡게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어둠과 밝음, 명 明과 암 暗의 교차에서 스파크가 튄다. 스파크는 무엇이겠는가? 성찰과 아이디어 아니겠는가! 밝은 데서 어두운 곳을 쳐다볼 때 오는 느낌과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을 바라볼 때 오는 느낌은 다르다. 전자가 마음을 가라앉힌다면, 후자는 마음을 밝게 만든다. 땅 집은 지하 공간이고 방도 작으며 실내도 어두운 편이다. 천장에 촉수 낮은 전구가 있는데 내 생각에는 이 전구도 없애고 벽에다 간접조명만 설치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더 어둡고 더 은은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다. 단군신화에 보면 곰과 호랑이가 마늘과 쑥을 먹고 인간으로 환골탈태하기를 기도한 공간도 다름 아닌 굴속이다. 굴속은 어두컴컴하다. 이 어두컴컴한 곳에서 밖의 빛을 바라볼 때 느낌이 온다. 그러나 각론에 들어가면 명과 암의 문제는 사람의 기질에 따라 약간 다르게 나타난다. 혼 魂이 강한 사람은 어두운 공간을 좋아한다. 반대로 백 魄이 강한 사람은 밝은 공간을 좋아한다. 혼이 논리와 이성이라면, 백은 감성과 직관이다. 남자는 상대적으로 혼이 강하고, 여자는 백이 강하다. 따라서 여자는 어두운 공간에 들어가면 두렵고 답답함을 느낀다. 그러나 현대인은 너무 논리에 길들여져 있다. 혼이 지나치게 개발되었다고나 할까. 이런 혼들은 약간 어두운 곳에 가야 휴식을 느낀다. 땅 집 실내의 어둠도 명암의 교차와 긴장의 이완이라는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집을 지은 조병수 씨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런 작은 방을 구상하게 되었는가?” “전라도의 어느 시골을 여행하다가 밥을 먹으러 음식점에 들어갔다. 마침 사람이 많아서 음식점의 골방 같은 누추한 곳에서 밥상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곳에 있다 보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편안하면서도 방 안에서 밖을 바라보니까 태양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다. 그 빛이 강하게 다가왔다. 유명한 건축물도 많이 보고 유럽도 많이 돌아다녀보았지만, 이처럼 편안하면서도 바깥 빛의 존재가 강렬하게 다가온 경험은 없었다. 전라도의 시골 음식점 방에서 전광석화처럼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 방의 크기와 천장 높이, 조도 照度를 유심히 보아두었다가, 땅 집을 지을 때 그 느낌을 옮겨놓았다.”
조병수 씨가 땅 집에서 구현하려고 한 것은 한마디로 고요함이다. 땅 밑으로 내려간 것도, 방을 한 평으로 제한한 것도, 실내 조도 처리도, 그리고 교도소 같은 폐쇄적인 느낌을 주는 마당 구조도 마찬가지다. 왜 이 사람은 이런 느낌에 천착하고, 이를 좋아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는 그 사람의 사주팔자를 한번 보는 것도 내가 터득한 방법이다. 태어난 해는 정유 丁酉, 달은 신해 辛亥, 날은 임자 壬子, 시는 기유 己酉다. 태어난 날이 강물인 임 壬이다. 태어난 계절도 물이 많은 11월이다. 이런 팔자는 물과 금이 많다. 전문 용어로 풀이하자면 금수쌍청 金水雙淸이다. ‘금과 수가 양쪽 모두 맑다’는 뜻이다. 성격이 깔끔하고 느끼하지 않다.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사주팔자다. 여자가 이런 팔자면 피부도 하얗고 꿈도 잘 맞고 다이어트도 필요 없다. 팔자도 침잠하는 팔자라서 집도 그렇게 지었단 말인가! 알고 보니 조병수 씨는 미국에서도 산수 좋기로 유명한 몬태나에서 대학을 다녔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무대가 몬태나다. 요즘 미국에서 돈깨나 있다는 사람들은 몬태나로 몰린다고 한다. 굳이 유럽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그만큼 몬태나는 원시 그대로의 자연 풍광을 간직한 곳이다. 그 몬태나에서 젊은 시절 조병수는 산수와 자연을 즐겨 본 경험이 있다. 자연을 제대로 즐기고 감상한다는 것은 수업료 없이는 성취하기 불가능하다. 자연 속에서 살아보아야 한다. 금수쌍청 팔자가 몬태나와 궁합이 맞았을 수밖에 없다.

3 콘크리트 담장 곳곳에는 나무 기둥이 박혀 있다. 계절이 몇 번 바뀌고 나무 기둥이 햇빛과 비와 바람에 시달리며 썩어 들어가면 어디선가 홀씨가 날아와 나무 기둥은 이 척박한 콘크리트 대지 위에 이름 모를 수풀을 키워낼 것이다.


1 땅 집의 한 평 짜리 방 안에서 내다본 문밖 풍경. 땅 집은 흙집이다. 집터를 닦기 위해 파낸 흙을 단단하게 다져가며 바닥을 마감하고 벽을 세웠다.
2 춘향목으로 툇마루와 처마를 올린 모습이 위아래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3 한 평짜리 방 6개 중 2개는 침실, 1개는 서재, 1개는 부엌 , 1개는 보일러실, 1개는 욕실이다. 욕실에는 작은 히노키 욕조를 두었다.


조병수의 주특기는 침잠과 내면 그리고 고요함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땅 집보다 먼저 지은 ‘ㅁ’자 집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 ‘ㅁ’자 집도 집 내부에 네모난 형태의 중정 中庭에 네모난 연못이 있다. 이 연못에는 수련도 있고, 물풀도 있고, 바닥에 깔린 모래에는 미꾸라지도 산다. 방에 앉아서 이 광경을 볼 수 있는 구조다. 중정도 내면으로 향하게 하는 공간이다. 내성적인 사람은 중정을 좋아한다. 중정과 연못의 물 그리고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소리가 삼박자를 이룬다. 실내에서 빛이 환하게 내리쬐는 중정을 바라보노라면 굳이 바깥에 나가 부산하게 뛰어다닐 필요가 없다. 가내구원 家內救援이 가능하다. 집 안에서 구원을 받아야지 집 밖에 나가야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면 결국 가출을 해야 한다. 조병수 씨가 지하로 내려간 땅 집을 짓고, 연못을 실내에 들여놓은 중정을 지은 것도 결국 ‘가내구원’을 하자는 것으로 풀이된다. 가내구원을 인수분해하면 내면, 침잠, 고요함으로 요약된다. 현대인에게 결핍된 요소들이다. 이제 부산하게 살지 말자. 부산하게 산다고 해서 영양가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4 땅 집 옆으로 커다란 석조가 땅 집마냥 땅에 파묻혀 있다.
5 땅 집으로 들어가는 좁고 긴 계단. 겨우 한 사람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좁은 통로로 이루어져 있다.


청운 靑雲 조용헌 趙龍憲 선생 동양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조용헌 선생은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감지하는 혜안을 지닌 이 시대의 이야기꾼이다. 실전에 강한 강호동양학으로 유명한 그는 수식어를 찾아보기 힘든 직설법으로 얘기한다. <조선일보>에 ‘조용헌 살롱’을 인기리에 연재하고 있으며, 전라남도 장성의 편백나무 숲 속에 있는 휴휴산방 休休山房에 머물면서 동아시아의 도가 道家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5백 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의 고수 기행> <그림과 함께 보는 조용헌의 담화><조용헌의 명문가> 등의 저서가 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