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제주의 문화공간 돌과 바람, 스토리가 있는 조안베어뮤지엄
숨은 듯, 숨긴 듯 큰길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소나무와 돌담으로 둘러 싸인 둥지를 향해 수국이 소담스레 핀 올레를 따라 걷는다. 언덕 위 아담한 건물, 여기는 테디베어 아티스트 조안 오의 작업실 겸 박물관이다.

1 멀리 일본에서까지 많은 관람객이 찾아오는 조안베어뮤지엄. 산화 처리한 동판으로 외벽을 세운 조안베어뮤지엄은 월가디자인의 박성칠 소장이 디자인했다.

인연 #1 조안 오와 테디베어 아티스트 아담한 둥지 같은 이 땅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조안 오(본명 오경애) 관장이 여행왔다가 이곳에 부지를 마련한 것이 25년 전이다. 당시 봉제완구를 수출하던 그는 이제 세계적인 테디베어 아티스트가 되었고, 2008년 9월 꿈에 그리던 작업실 겸 박물관을 완성했다.
“해외 지사장으로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5년간 홍콩에서 살았는데, 그때 제 취미가 앤티크 소품 구경이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한 상점에서 오래된 테디베어를 발견했는데, 어찌나 인상적이던지 가슴에 오래 남더군요. 1984년 서울로 돌아와 남편의 권유로 우연히 봉제완구 수출 사업을 하던 중 <마하트마 간디의 생애>라는 책에서 물레 옆에 앉아 있는 간디의 사진을 봤어요. 문득 홍콩에서 본 테디베어가 떠올랐고, 직접 직조한 원단으로 테디베어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러고는 곧바로 우리나라 텍스타일계를 이끄는 조선대학교 한선주 교수님이 운영하는 스튜디오에서 직조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 후 본격적인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코네티컷 주의 브룩필드 아트 센터 Brookfield Art Center에서 다시
1년간 직조 실력을 다졌다. ‘이제 테디베어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서울로 돌아왔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영국에서 천연 모헤어를 수입해 원단을 만들고 우리나라 전통 천연 염료인 쪽・황연・소목・홍화로 염색하는 데 성공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색상이 변하고 털이 빠지는 문제가 생겼다. 원인을 찾아내고 다시 작업하기를 수십 번, 직조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첫 테디베어의 마지막 바늘땀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2 입구에서 뒷마당 쪽으로 제주의 해풍이 한라산으로 흐르는 바람길을 냈다.
3 정겨운 ‘올레(큰 길에서 집까지 이르는 골목을 의미하는 제주의 방언)’길을 따라 수국이 환영하듯 줄지어 피어 있다.


“앤티크 테디베어는 다이아몬드하고 같아요. 그래서 전문 감정사가 감정을 하죠. 완성한 작품을 클리브랜드에 있는 유명한 테디베어 전문가에게 보냈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깜짝 놀라면서 ‘전생에 독일 여자였던 것 같다. 먼 옛날 직접 직조하고 염색해서 만들던 독일 전통 테디베어의 모습과 흡사하다’며 감정서를 써 보내주셨어요.”
뉴욕의 5번가에 있는 1백40년 전통의 장난감 백화점인 에프에이오 슈워츠 FAO Schwarz에서도 “1백 년 전 앤티크 테디베어 느낌을 충분히 재현했다”며 그의 실력을 인정했다. 오 관장의 작품은 1997년 베스트 아이템으로 선정되었고, 유명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4 테디베어 아티스트 조안 오 관장의 사무실엔 아프리카 박물관에서 구입한 테이블과 우리나라 전통 가구, 홍콩 앤티크 등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5 조안 오 관장의 상징인 블랙 로즈를 달고 있는 2m 크기의 대형 테디베어.


인연 #2 스타와 캐릭터 인형 조안베어뮤지엄을 쉽게 설명하려면 먼저 스타와의 인연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는 ‘욘사마’로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배우 배용준 씨의 공식 캐릭터 상품 1호인 ‘준베어’를 만들면서 스타의 캐릭터 상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다양한 미니 준베어, 스타일 준베어 등을 만들었고, 영화 <놈놈놈>의 세 주인공 이병헌・정우성・송강호 씨의 캐릭터 인형,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금잔디가 구준표에게 생일 선물로 준 고양이 인형도 조안 오 관장의 작품이다.
“에프에이오 슈워츠에 진열된 제 작품을 보고 배용준 씨의 소속사인 BOF에서 의뢰가 들어왔어요. 첫 준베어는 5천 개 한정 제작해 일본에서 온라인으로 판매했는데, 단 몇십 분 만에 매진되었고 그 후에 출시한 작품도 모두 인기리에 판매되었어요. 이곳엔 전시된 준베어를 보기 위해 멀리 일본에서부터 오는 관람객이 아주 많아요. 그분들은 준베어를 가족처럼 생각해요. 손상된 준베어를 치료해달라며 가지고 오는 분도 종종 있어요. 배용준 씨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죠.”
그는 본인의 작품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뮤지엄 한쪽에 ‘테디베어 클리닉 센터’를 운영한다. 그가 만든 테디베어가 손상되었을 경우 이곳에 가져가면 무료로 수선해준다.


1 <외출> <태왕사신기> <겨울 연가>에 출연했던 배용준 씨를 캐릭터로 만든 대형 준베어들.


2 영화 <놈놈놈>의 세 주인공 이병헌, 정우성, 송강호 씨의 캐릭터는 곰이 아닌 사자와 말, 두더지다.
3 해외 바이어를 위한 아트관에는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테디베어의 원산지인 독일을 콘셉트로 해 만든 테디베어들이 전시되어 있다.


인연 #3 제주 아일랜드와 바람 준베어로 유명세를 타긴 했지만, 그것이 조안 오 관장과 조안베어뮤지엄의 전부는 아니다. 조안베어뮤지엄은 제주도를 사랑하는 오 관장의 열정, 그가 정성으로 만든 테디베어 작품들, 제주의 빼어난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이곳을 찾는 관람객에게 휴식과 명상, 사색의 시간을 제공한다.
“10여 년 전 애든버러에서 테디베어 아티스트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제가 ‘코리아에 아주 멋진 섬, 제주 아일랜드가 있다. 내가 그곳에 테디베어 박물관을 건립할 것이다’라고 발표했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중문에 있는 테디베어뮤지엄을 제가 오픈한 줄 알아요.(웃음) 그곳하고는 서로 협조하는 사이죠. 남산에 있는 테디베어뮤지엄에 제 준베어가 전시되어 있으니까요.”
제주 중문관광단지에서 자동차로 약 5분 거리, 제주도 작은 포구 대포마을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 잡은 조안베어뮤지엄은 1백50년 된 50여 그루의 소나무와 검은색 돌담이 건물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정면은 남쪽 바다를, 뒷마당은 한라산 줄기와 맞닿아 있어 제주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건물은 월가디자인의 박성칠 소장이 디자인했는데, 주어진 자연환경과 어우러지게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잘 드러나 있다. 현관에서 뒷마당까지 길을 뚫어 바다와 한라산이 소통하는 바람길을 만들었고, 외벽은 산화 처리한 동판으로, 바닥은 나무로 마감해 자연과 인공물의 조화를 이루었다. 건물 밖으로는 돌담을 따라 산책로가 펼쳐지고 내부에 들어서면 대구대학교 강해원 교수가 디자인한 공간에 자연주의를 모토로 한 테디베어 작품들, 테디베어 역사관, 카페 등이 들어서 있다.
오 관장은 이곳에서 테디베어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모여 염색하고, 작업할 꿈을 꾸고 있다. 앞마당에는 천연 염색에 쓰기 위해 쪽 밭을 가꾸고, 뒷마당에는 염색터를 만들어둔 것도 이 때문이다.


1, 3 ‘꿈꾸는 방’이라 이름 붙인 공간에는 한지에 손글씨로 쓴 조안베어뮤지엄의 역사, 테디베어 원단을 직조하기 위한 직조기와 그의 스승인 조선대학교 한선주 교수가 사용하던 물레 등이 전시되어 있다. 건물 내부 인테리어는 대구대학교 강해원 교수가 했다.
2 이 북극곰 캐릭터로 서태지컴퍼니와 함께 전국 캠페인을 시작했다.



4 계단 위쪽에 보이는 곳은 혼자 앉을 수 있는 넓이의 공간으로 설계된 기도실. 크리스천인 오 관장이 기도를 하는 곳이다.

인연 #4 북극곰과 서태지 조안베어뮤지엄을 오픈하기 전부터 그가 가장 많은 정성을 쏟은 것은 북극곰 캐릭터를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출장길에 비행기 안에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봤어요. 북극곰 가족이 먹이를 구하러 가는 모습, 그 애처로운 눈동자를 보면서 순간 ‘쿵’ 하는 거예요.‘테디베어 만든다는 사람이 그냥 있으면 안 되겠다. 환경운동에 동참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지요.”
오 관장이 디자인한 북극곰 캐릭터의 이름은 STPB(Save The Polar Bears). 가슴에는 초록색 하트를, 엉덩이에는 오 관장의 사인을 넣었다. 대중의 작은 동참을 이끌어낼 이 캠페인은 서태지컴퍼니와 손잡고 진행한다. 가수 서태지 씨는 지구 환경 문제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담은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는 온도의 차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지난 6월 13일부터 전국 투어 콘서트를 시작했다. 이 콘서트의 첫 희망 프로젝트로 오 관장의 STPB를 온・오프라인에서 판매하고, 이를 통한 수익금을 미국에 있는 북극곰 환경 단체인 PBI(Polar Bears International)에 기부한다. 온라인 뮤직숍 etpshop(www.etpshop.com)에서 판매하며, 조안베어뮤지엄과 서태지 씨의 전국 투어 공연장인 8개 지역에서도 만날 수 있다. 앞으로도 오 관장은 서태지컴퍼니와 함께 친환경 제품을 제작해 판매 금액의 일부를 환경 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다.


5 작업을 할 때마다 사용해 자연스럽게 세월의 무게를 입은 오 관장의 바늘꽂이.
6 건물 밖 돌담을 따라 수국이 풍성하게 핀 산책로가 아름답다.



7 석부작과 돌확에 띄운 수국이 건물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조안 오 관장이 만든 다양한 테디베어와 인기 스타들의 캐릭터 인형을 만날 수 있는 조안베어뮤지엄은 잠시 머물면서 제주 바람을 맞고, 사색에 잠길 수 있는 문화 공간이다.

“제가 시작한 작은 시도가 변화를 이끄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가만히 돌아보면 이 모든 게 인연 덕분인 것 같아요. 제가 테디베어를 만든 것, 제주에 온 것, 준베어나 북극곰 캐릭터를 만들게 된 것 등이 모두 인연의 끈이 맺어준 거죠. 저희 조안베어뮤지엄의 콘셉트도 ‘인연의 소중함’이에요. 제주도에서 잠시 쉬어가신다면 조안베어뮤지엄에서 인연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문의 064-739-1024, www.joannestudio.co.kr

 

이화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