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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 박수진 씨와 탤런트 전광렬 씨의 집 부부의 서로 다른 '취향'이 조화를 이룬 집
집은 가족만의 비밀스러운 아지트다.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호흡하며 사유하는 까닭에 집은 다분히 그 안에 사는 사람들만의 사적인 모습을 띤다. 그런 의미에서 유명인의 집을 들여다보는 것은 남다른 재미를 준다. 집 안 어디엔가 사는 이의 본모습이 묻어나기 마련이고 그런 것을 통해 대중은 브라운관에서 접하는 유명인의 다듬어지고 걸러진 모습 외에 날것 그대로를 곁눈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영국에서의 유학 경험을 살려 <리얼 런던>이라는 책을 출판한 패션 스타일리스트 박수진과 탤런트 전광렬 씨 부부의 서로 다른 개성을 믹스&매치한 집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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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진가 권영호 씨가 찍어준 가족사진.
2 거실 오른쪽에 놓인 정체 불명의 통은 몽골에서 고기 구울 때 사용하는 것으로, 실질적인 용도와 상관없이 부부는 자질구레한 물건을 담아놓는 수납 도구로 사용한다.


부부, 레노베이션으로 서로를 다시 알다
현관에 들어서자 박수진 씨가 촬영 팀을 맞는다. 전광렬 씨는 올 7월부터 방영 예정인 드라마 촬영을 위해 자리를 비운 때였다. 박수진 씨는 3~4개월 전, 레노베이션을 마친 집을 처음 공개한다며 서먹한 미소를 지었다. 2년 전 방배동 빌라로 이사를 했고 얼마 전 대공사를 거쳐 부부는 몸에 꼭 맞게 재단한 듯한 집을 얻었다. “살면서 집을 고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뭘 모르고 시작했지요. 그 몇 주간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몰라요.” 일주일 안에 끝낼 요량으로 시작했던 공사가 한 달 이상으로 지연되면서 온 가족은 적잖은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그 많은 방을 놔두고 한방에서 온 가족이 먹고 자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한 달간의 공동 합숙 생활로 가족은 단합 대회 한번 제대로 한 셈이 됐다. 때마침 드라마 <왕과 나> 촬영을 마치고 비교적 시간 여유가 많았던 전광렬 씨는 주말이면 아내와 아들과 함께 강남과 이태원 일대의 숍을 다니며 가구와 마감재 고르는 일도 함께 했다. 30여 년간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온 두 남녀가 결혼이라는 고리를 통해 서로의 개성을 맞춰가듯, 부부는 레노베이션을 통해 다시 한 번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조율하는 방법을 배웠다. “


3 모던한 침대에 클래식한 샹들리에를 매치한 게스트 룸.
4 전광렬 씨의 서재. 저녁 무렵, 멜버른 도시 전경을 담은 권영호 작가의 사진이 왠지 모르게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남편과 저는 추구하는 스타일이 달라요. 저는 모던하고 심플한 것을 좋아하는 반면, 그이는 클래식하고 오래된 느낌을 좋아하죠. 취향이 이토록 극과 극이니 레노베이션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지 상상이 되시죠? 집을 고치면서 남편을 다시 알게 된 느낌이에요. 그이 역시 마찬가지겠죠.” 남편의 취향대로 클래식한 소파를 구입한 대신, 아내는 클래식한 스타일의 가라앉은 분위기를 덜기 위해 거실을 회벽으로 칠했다. 질석을 섞어 여러 차례 테스트해보며 회벽의 거친 정도를 결정할 정도로 거실 벽면에 심혈을 기울였다. 부부가 레노베이션을 하면서 가장 신경 쓴 것은 벽지와 조명이다. 집수리를 크게 하지 않을 때 가장 효과를 볼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흔히 가구를 바꾸면 집 안이 확 바뀐 것 같아 편안하지 않죠. 하지만 조명과 벽지를 바꾸면 튀지 않게 집에 변화를 줄 수 있어요.” 박수진 씨는 거기다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 모던한 간접 조명등을 몇 개 달아 ‘클래식과 모던’이라는 서로 다른 스타일을 믹스&매치한 거실을 완성했다.

1 박수진 씨가 영국 유학 중에 만난 테렌스 콘란의 아들 재스퍼 콘란이 디자인한 웨지우드의 티 잔 세트. 초록색은 남편이, 하얀색은 아내가 동시에 집어 들어 이 부부에게 더욱 각별한 아이템이다.


2 평소 그림 그리기를 즐기는 아들을 위한 보드판. 익살스러운 그림부터 ‘공부 열심히 하자!’ 결의에 찬 각오까지,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나다.
3 평소 민화를 즐겨 그리는 아들의 제법 수준 높은 작품.


때론 남자도 집에 대한 바람이 있다
한국에서는 집을 꾸밀 때 아내의 결정권이 큰 편이다. 집은 부부 공동의 공간이지만 한국 남자들은 남자가 무슨 집 꾸미기냐며 특유의 과묵함을 발휘해 스스로 결정권을 포기하기도 한다. 혹은 반대의 경우로, 남편의 의견은 무시한 채 아내 홀로 모든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부부간에 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왜 의자는 불편하게 이렇게 높은 걸 샀냐’‘안 그래도 추위 타는데 베란다는 왜 확장해서 찬 바람 숭숭 들어오게 하냐’ 등 살면 살수록 남편의 불만 지수는 높아진다. 박수진 씨의 경우 레노베이션을 하기 전 남편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함께 쇼핑을 다니며 남편이 좋아하는 스타일을 파악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남편의 바람을 담아 집을 꾸미니 남편이 전보다 집에 대한 애착이 강해진 것 같아요. 이제는 외식하는 것보다 집에서 맛있는 음식 만들어 먹는 걸 더 즐거워해요. 와인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주방에 와인 냉장고를 큼지막하게 짜 넣고, ‘술맛 더 나라고’ 조명등은 은은한 것으로 설치하고 벽에 브라운 계열의 페인트를 칠했을 뿐인데 어디 가봐도 우리 집 주방만 한 데가 없대요.” 레노베이션 후 박수진 씨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공간은 남편의 서재다. 남편이 늘 대본 보고 책 보는 방이라 무엇보다 신경이 쓰였다. “남편은 한번 서재에 들어가면 몇 시간이 지나도 잘 나오지 않아요. 저도 그 시간만큼은 그이 혼자 즐기게 놔두는 편이에요. 그래서 더욱 그이의 몸과 마음에 꼭 맞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죠.” 서재 곳곳에서 남편의 클래식 취향이 잘 녹아나도록 심혈을 기울인 박수진 씨의 배려가 느껴진다. 서재에 놓을 가구로 전광렬 씨가 클래식한 테이블과 의자를 선택하면 박수진 씨는 그 주연을 빛내줄 조연들을 발 빠르게 찾아 함께 매치했다. 모던하면서도 어두운 느낌의 청록색 벽지와 현대적인 느낌이 강한 권영호 사진가의 작품이 그것이다. “과하면 부족한 것만 못한 법이죠. 아무리 클래식 스타일을 좋아한다 해도, 가구도 벽지도 소품도 모두 클래식하면 고대 박물관 같은 공간이 될 거예요. 클래식 가구를 살려주는 것은 오히려 모던한 벽지와 소품이지요.”

4 ‘요리하는 남자’ 전광렬 씨는 여행을 가면 다양한 요리 책을 비롯해 주방 용품을 빼놓지 않고 사 온다.


5 디자인을 전공한 이답게 패션은 물론 인테리어 감각까지 두루 갖춘 박수진 씨.
6 지난해, 말레이시아 가족 여행 중 처음 알게 된 호주 주얼리 브랜드 ‘나조 Najo’. 혼자만 알고 있기가 아까워 박수진 씨가 직접 수입, 판매에 나섰다. 올 7월 롯데면세점에서 판매가 시작된다고.


여행지에서 산 물건을 인테리어에 활용하다
평소 가족 여행을 즐기는 부부는 여행 중 구입한 가구와 소품들을 집 안 곳곳에 배치해놓았다. 몽골에서 고기 구울 때 사용한다는 청동 소재의 커다란 통, 이집트에서 구입한 물 담배, 테렌스 콘란의 아들 재스퍼 콘란이 디자인한 웨지우드 티 잔 등 부부는 여행 중 마음에 드는 소품을 발견할 때면 운반의 번거로움을 잠시 망각하고 무조건 구입하는 편이다. 그러고는 자신들이 직접 이고 지어 집으로 가져온다. 비교적 운반이 쉬운 패브릭은 부부가 여행지에서 빼놓지 않고 구입해 오는 필수 아이템. 외국 원단을 많이 다뤄본 숍에 제작을 맡기면 실패할 확률도 적단다. 박수진 씨는 ‘리비나’(www.livinaa.com)를 단골 숍으로 살짝 귀띔한다. 낯선 여행지에서의 남모르는 둘만의 추억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는 탓일까. 여행지에서 구입한 기념품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해 공간 속에 매치하니 자연스레 대화 거리가 많아졌다. 결혼 연차가 높아질수록 부부간에 대화는 점점 줄어든다. 오죽하면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때 재잘재잘 대화가 끊이지 않는 남녀는 십중팔구 연인 사이고, 시종일관 그릇에 코 박고 밥만 먹는 남녀는 부부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을까. 세월이 흘러도 부부간에 대화가 끊이지 않게 하고 싶다면 부부가 소통하는 집을 꾸며라. 함께 여행 다니며 구입한 소품을 인테리어에 활용하라. 박수진 씨의 조언이다.


1 이번 레노베이션 공사의 일부분이었던 게스트 룸의 욕실. 특유의 향을 풍기는 히노키 욕조가 인상적이다.


2 1860년대 영국 수도원에서 사용하던 앤티크 식탁. 전광렬 씨가 가장 아끼는 가구로, 훗날 아들 동혁 군에게 대물림할 것이라고 한다. 워낙 오래된 의자라 부부는 10년 동안 사용하면서 두세 번 수리하기도 했는데, 그러면서 어느덧 가족같이 정이 들어버렸다.

박수진 씨가 이야기하는 실패율 줄이는 레노베이션 노하우
1 발품을 판 만큼 완성도 높은 집이 나온다.
인터넷으로 검색한 후 직접 숍에 가서 제품을 확인하라. 텍스처 등은 물건을 직접 봐야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저것 보다 보면 예상치 못했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2 컬러를 정하면 실패 확률이 줄어든다. 거실, 주방, 방 등 각 공간의 컬러를 동일하게 할 것인지 모두 다르게 할 것인지 결정하라. 컬러를 정하면 벽면에 칠을 할지, 도배를 할지, 소재는 돌을 쓸 것인지, 타일을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기 수월하다. 벽면만 잘 다듬어도 가구가 확 살아난다.
3 조명을 잘 이용하라. 간접 조명을 할 것인지, 직접 조명 하나만 할 것인지 판단하라. 조명등을 새로 설치할 경우 ‘디머’ 기능을 추가하면 언제든지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4 레노베이션 기간을 가능한 한 여유 있게 잡아라. 공사 기간을 한 달 정도 계획했다 하더라도 레노베이션 기간은 6개월 정도로 잡는 것이 좋다. 시장 조사하고 소품 고르는 시간을 여유롭게 확보해놓으면 실패할 확률이 훨씬 적다. 인테리어 업자에게 맡기기 전 4~5개월은 혼자서 준비하는 시간으로 이용하라.


황여정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