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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빈티지 컬렉터 사보의 오픈 하우스
소문난 빈티지 컬렉터 사보 Sabo가 드디어 창고 문을 열었다. 꼭꼭 숨겨둔 소중한 빈티지 컬렉션을 위해 1백여 평에 이르는 카페와 갤러리 공간을 새롭게 마련한 것이다. 그야말로 소문만 무성하던 그의 진귀한 물건들이 모습을 드러내던 날, 사보를 만났다.

상수동 극동방송 골목길의 작은 가게 ‘사보’는 4년 전 마련한 사보 임상봉 씨의 아지트다. 작은 공간이지만 그는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다양한 빈티지 소품을 전시하는 등 자신만의 세계를 꾸며왔다. 방배동 서래마을에 스페이스 사보와 카페 무터말 Muttermal을 새롭게 마련했으니 이 공간은 얼마 후 문을 닫을 예정이다.


1 사보 그림 앞에 놓인 가죽 소파는 1960년대 제작한 것으로 오피스 미팅룸에서 사용하던 것이다. 펜던트 조명등은 아이구치니 Iguzzini사의 다이닝 라이트로 1960년대에 제작한 것이다.
2 보쉬 냉장고 옆의 원형통은 지멘스 세탁기다. 모두 1950년대 제품으로 현재 스페이스 사보에서 사용하고 있다. 사보가 빈티지 제품을 모을 때 정한 제1원칙은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화장실로 통하는 입구의 주황색 의자는 아르네 야콥슨 Arne Jacobsen 디자인. 그림은 모두 사보 작품.


“도대체 사보가 누구야?”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동료들에게 물었다. 아티스트, 홍대 앞 작은 가게 사보의 주인장, 월간 <디자인>과 <조선일보>에 칼럼을 연재했던 일러스트레이터, 이름은 임상봉.
“<행복> 디자이너였어요. 우리랑 친해요.”
어느 지인이 꼭 한번 만나보라던 빈티지 컬렉터는 한때 <행복이 가득한 집> 편집 디자이너였단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빈티지 컬렉터’ 정도의 답변을 예상했건만 의외의 정보가 속속 날아들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그와 가까운 후배를 앞세워 사보를 만나러 갔다. 소리 소문 없이 갤러리를 준비하고 있던 터라 그는 예기치 못한 손님의 등장에 다소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지난 3개월 동안 일산 창고와 방배동을 오가며 혼자 힘으로 준비했다는 갤러리에 들어서는 순간, 사보를 꼭 만나봐야 한다던 지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차가운 맥주가 채워진 1950년대 보쉬 냉장고, 어쿠스틱 특유의 부드러운 음색이 전해지는 1960년대 뱅앤올룹슨 스피커, 기계식 다이얼 전화기, 할머니의 부엌을 추억케 하는 찬장, 1960년대 독일 상류층에 유행하던 캐스팅
크리스털 조명등, 오리지널 카이저 램프, 1950년대 지멘스 세탁기, 바우하우스 시대의 대표적 디자이너 바겐펠트의 유리 화병, 디터람스가 디자인한 1950년대 브라운사의 다양한 생활 가전….


1 카페 무터말의 주방 선반. 맨 위에는 다양한 디자인의 촛대를 놓았고, 그 아래 있는 금속 커버가 더해진 찻주전자는 보온 주전자다. 맨 오른쪽의 보온 주전자는 WMF사의 1930년대 제품.


2 1950년대 독일 가정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던 찬장. 1층 스페이스 사보 주방에서는 같은 연대의 빈티지 찬장과 조리대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3 빈티지 거울 속에 비친 플로어 스탠드 조명등은 보겐람페 Bogen Lampe, 테이블 스탠드는 1940년대 제작한 오리지널 카이저 램프, 전화기는 1970년대 도이치포스트의 기계식 전화기다.


디자이너 가구를 차치하고라도 셀 수 없이 많은 제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직 독일 창고에서 가져오지 못한 것들도 많아요. 여러 곳의 창고에 흩어져 있는 것을 모두 모으면 한 9천 점 정도 될 거예요. 돈이 많아서 물건을 사재기한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고, 가까이서 보면 부자가 아니란 걸 아니까 이렇게 컬렉션을
공개하기 전에는 제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가 무슨 돈이 있겠느냐며 그들의 의심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고 말한다.
“제가 유학한 독일 슈트트가르트 국립대학 미대 옆에 1920년대에 형성된 바우하우스 예술가들의 이주촌이 있어요. 지금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죠. 독일 사람들조차 관심을 갖지 않던 그곳에 주말만 되면 일본 사람들이 버글대는 거예요. 일본 친구들에 대한 경쟁심 반 호기심 반으로 그곳에 드나들며 바우하우스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어요.”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바우하우스 디자인에 눈을 뜨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빈티지 컬렉션을 시작했다. 좋은 디자인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했다. 주말이면 시립 도서관과 벼룩시장을 오가며 빈티지 연구에 심취했다.
“운이 좋았어요. 제가 수집에 나섰던 시절에는 빈티지에 관심 갖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1990년대만 해도 독일에는 ‘슈페어물탁’이라는 날이 있었어요. 평소에는 가구를 버리려면 수거비를 내야 하지만,
1년에 두 번, 무료로 가구를 버리는 날이에요.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물건을 내다 버리는데 제 눈에는 그게 다 보물인 거예요.


1 30여 평 남짓한 1층 스페이스 사보에는 알록달록 원색의 가구와 플라스틱 소재의 주방용품 등 간단한 소품 위주로 전시되어 있다. 벽에 고정한 빨간 장식장은 독일 시골 마을의 오래된 부티크에서 진열대로 사용하던 것이다. 오른쪽 문 안으로 보이는 공간이 사보의 사무실이다. 사진 속 그림은 모두 사보 작품.
2 지난 4년간 사보의 아지트였던 작은 가게 ‘사보’가 자리한 상수동 홍대 거리를 그는 사랑한다. 느긋하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동네 한 바퀴 돌아보는 여유를 즐길 줄 아는 그는 언젠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겠다고 말한다.


판톤 체어, 임스 체어, 바르셀로나 체어…. 그냥 주워담았을 뿐이에요. 그림 판 돈으로 가구를 사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도 내가 옛날 가구나 물건 모으는 것을 아니까 창고 깊숙한 곳에 있는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이 쓰시던 물건을 내어주기도 하고, 그림과 맞바꾸기도 하고….” 벼룩시장도 많이 다녔고 시에서 발행하는 주간지
<아농스>에 실린 광고를 보고 물건을 찾기도 했다. 빈티지 컬렉션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그의 컬렉션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 계속되었다.
“나중에 이게 돈이 되겠다 하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 내 눈에는 다 보물로 보이니 모은 거죠.” 그의 말대로 그는 운이 좋았다. 이 정도면 나중에 박물관을 하나 세워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수집하고 나니,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빈티지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그는 독일에서 수집한 빈티지 컬렉션을 세상에 선보일 요량으로
지난 5월 방배동 서래마을에 ‘스페이스 사보’와 ‘카페 무터말’의 문을 열었다. 적당한 장소를 찾느라 서울 시내 곳곳을 다 뒤지고 다닌 것만 3년이다. 1층에 마련한 스페이스 사보는 알록달록한 원색 가구와 소품 위주로 꾸몄다. 지하에 마련한 70여 평 규모의 카페 무터말은 스칸디나비안 빈티지를 비롯한 디자이너 가구와 바우하우스 디자인 컬렉션 등으로 채웠다. 이곳을 채우는 수백 가지 아이템 중 단 하나로 공간을 설명할 수 없겠으나, 1층 갤러리와 지하 카페를 통틀어 단일 품목으로 가장 다양한 디자인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뽑으라면 단연 조명등이다.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빈티지 조명등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공간을 특징 지우며 눈길을 끄는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유쾌한 시선의 그림들이다. 사보는 빈티지 컬렉터이기 이전에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다. 곳곳을 장식한 경쾌한 그림들이 바로 그의 작품. 그의 일러스트레이션은 패션 브랜드 베이직하우스의 티셔츠 디자인에 활용되기도 했고,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3 스페이스 사보에 자리한 그의 사무실.
4 스탠드가 곡선을 이루는 플로어 조명등은 이탈리아 란치에 Lancier사에서 1960년대 제작한 보겐람페. 무지개 조명이라는 의미로 스탠드가 휘어진 모양이 무지개를 닮았다 해서 붙은 이름. 그는 이 램프를 손에 넣기 위해 차로 8시간을 달려갔건만 주인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이틀 후 다시 가야만 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리갓에 카페 무터말의 전경이 반사되어 있다. 푸근한 인상의 여인이 그려진 그림 제목은 ‘엄마’, 이세상의 모든 엄마다. 사보 작품.


“독일에서 학교를 졸업한 후 그래픽 디자이너로 직장 생활을 했죠. 물론 제 컬렉션 모두 그 시절에 모은 것이고요.” 그렇게 독일에서 10년을 살고 보니,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이 또다시 꿈틀거렸다. 샌프란시스코에 새로운 직장을 구한 그는 독일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새로운 도시에 짐을 푼 지 한 달 만에 회사가 문을 닫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친구들의 떠들썩한 환송을 받으며 떠나온 독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는 다시 가방을 챙겨 무작정 동부로 갔다. 워싱턴 D.C.에서 그래픽 디자이너 자리를 구한 그는 주말마다 뉴욕으로 향했다. 뉴욕 소재 유명 에이전시와 슈트트가르트 출신 선배를 찾아다니며 일러스트레이터로 뉴욕 진출을 꿈꿨다. “일러스트레이터계의 거장 스테판 자크마이스터와 게리 베이스먼이 내 그림을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들의 인정에 힘을 얻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5 1960년대 토넷 Thonet사에서 제작한 의자. 앞에 놓인 흰색 기계 박스는 1960년대 베르너 판톤이 디자인한 듀얼 Dual사의 이동식 오디오다. 뒤로 보이는 티크 소재의 포터블 테이블은 1950년대 덴마크 FH사에서 제작한 것이다.
6 벽에 부착한 장식장은 1960년대 덴마크에서 제작한 것으로 카도비우스 Cadovius사 제품. 왼쪽 상단의 붉은색 크리스털 촛대는 독일 WMF사 제품. 아래 선반의 유리그릇은 모두 예나 글라스의 1930~1940년대 제품. 선반 중앙의 유리 두상은 1950년대 부티크에서 가발과 모자 디스플레이용으로 사용하던 것이다. 흰색 펜던트 조명등은 야콥슨 Jakobson이 디자인한 것으로 1960년대에 제작했다.



7 바겐펠트가 디자인한 유리 재떨이와 은 촛대.

이후 그는 주중에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워싱턴 D.C.에서, 금・토・일요일에는 뉴욕으로 건너와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3년간 생활했다.
“<행복>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시절요? 오래 다니지는 못했지만 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휘젓고 다녔고 재미있었어요.”
그러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편집 디자이너 생활을 하면서는 도저히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다. 문득 독일에서 미술대학을 다니게 된 연유가 궁금해졌다.
“원래 성악도였어요. 한국에서 음대를 다니다가, 가곡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에 간 거예요. 독일 가곡이 제게 맞았거든요. 그런데 독일에 도착한 지 4개월 만에 덜컥 슈트트가르트 미술대학에 합격한 거죠.
원래 그림에도 관심이 많았거든요.” 독어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그의 그림을 보고 교수들은 “그림에 리듬감이 있다. 너만의 색이 느껴진다”며 미대 입학을 허락해주었다. 성악가를 꿈꾸며 떠난 독일에서 그는 아티스트이자 빈티지 컬렉터가 되어 서울로 돌아왔다.


1 자연광이 좋은 선큰 테라스 앞에 긴 테이블을 놓고 다양한 디자인의 의자를 배치했다. (왼쪽부터) 1950년대 제작한 토넷 의자, 1950년대의 에곤 아이만 Egon Eiermann 의자, 임스 암체어, 1940년대 제작한 미스 반데어로에 의자, 토넷 의자, 루케 Lübke사의 1970년대 의자. 테이블 위로 대칭되게 늘어뜨린 펜던트 조명등은 아르네 야콥슨 디자인으로 1960년대 제작한 것이다.



2 스페이스 사보와 카페 무터말에서 찾은 소품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 WMF의 보온 찻주전자, 디터람스가 디자인한 믹서와 탁상용 선풍기, 바겐펠트가 디자인한 예나 글라스 화병, 독일의 유명한 시계 회사 킨즐러 Kienzle의 탁상시계, WMF의 은 화병. 빈티지 컬렉터 사보의 다양한 컬렉션은 방배동 서래마을에 위치한 스페이스 사보(02-537-1448)와 카페 무터말(02-537-1447)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 창고를 구할 돈이 없었어요. 궁여지책으로 일가친척 집의 옥상, 지하, 빈방을 다 제 물건들로 채워 넣었지요. 집안 어른들은 공부하라고 독일 보내놨더니 웬 폐품만 모아왔다며 혀를 끌끌 차셨어요.” 그 많은 물건들을 간수하느라 벌어진 해프닝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스페이스 사보와 카페 무터말에 있는 빈티지로만 살림을 시작한다 해도 부족함이 없을 거예요. 저는 물건이 아닌 ‘생활’을 모았거든요.” 위대한 디자인의 기능성과 실용성을 알기 위해서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며 그가 말한다. 그는 디자인의 매력에 빠져 빈티지 컬렉션에 10여 년의 시간을 투자했다. 지금껏 꼭꼭 숨겨온 빈티지 컬렉션을 공개하는 그에게는 작은 바람이 있다. “물건을 사는 것과 디자인을 사는 것은 다른 일이지요. 유명 디자이너 작품이어서가 아니라 그 역사성과 디자인적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데 제 컬렉션이 도움이 되길 기대해요.”

 

김성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