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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디자이너 3인의 힐링 스페이스]한국실내건축가협회 회장 김개천 열린 공간은 생각과 생활을 이완시킨다
공간이란 마음이 느끼고 몸이 반응하는 대상입니다.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공간을 기억합니다. 디자인은 변할지라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공간의 모습은 영원합니다. 여기 세 명의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화려한 디자인보다는 담백한 공간에 더 어울리는 이들입니다. 그들이 완성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행복을 맛보고 휴식을 경험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 명의 디자이너는 어디서 휴식을 경험하고 위안을 받을까요? 그들의 몸과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힐링 공간을 소개합니다.
“사람은 가끔 무언가에 기대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장소일 때도 있고 사람일 때도 있지요. 집과 가족은 그렇게 제 인생을 기댈 수 있는 존재입니다.”
공간 디자이너 김개천 씨. 그는 하얗고 깨끗한 2층 집에 살고 있다. 벚꽃 피고 진달래꽃 필 때면 마당을 향해 테라스에 앉아 식사를 하기도 한다. 그는 집 안 곳곳에 서재를 만들었다. 서재라고 해서 권위적인 느낌의 의자와 책상, 책장이 한 쌍을 이루지는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책을 읽을 수 있고 스케치를 할 수 있으면 그만이니, 1층 거실과 2층 거실이 모두 그의 서재가 된다. 또한 현관 앞 작은방에는 책장과 탁자를 놓아 좌식 서재를 만들기도 했다.
사실 2층 거실은 아이들의 공간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두 아이가 한바탕 어지럽히고 놀다가 잠깐 빠져나온 듯한 풍경이 펼쳐진 공간. 그곳에 창가 쪽으로 긴 테이블과 의자 하나가 놓였는데 바로 여기가 김개천 씨의 자리이다. 이곳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며 책도 읽고 스케치도 한다. 아이들도 종종 아빠 곁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만들기도 한다. 아이들과 함께 장난치며 자유롭게 작업하는 순간이 곧 그에겐 휴식 시간이기도 하다. “집에는 뭔가 강요되는 것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집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유롭고 편안한 열린 공간이어야 해요”라며 집 안 여러 군데에 서재를 만들어놓은 것을 그 한 예로 들었다. 그는 대화 중에 열린 공간이란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그가 말하는 열린 공간은 확장과 개방의 측면에서 열린 공간이며 동시에 상황에 따라 유동적인 공간이어서 여지를 남겨주는 공간이란 의미이다.

(위) 김개천 씨는 집 안 곳곳에 서재를 만들었다. 아이들의 놀이터인 2층 거실 한쪽에도 그의 서재가 마련되어 있다. 그곳에 앉아 책도 보고 스케치도 한다. 때때로 아이들도 아빠와 함께 이곳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만들기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작품이 완성되면 창문을 갤러리 벽 삼아 전시해놓는다.


그의 집 안에는 별다른 데커레이션 요소가 없다. 비울수록 매력적인 공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단, 전통 고가구와 백자 항아리, 모래 위에 놓인 기이한 힘이 느껴지는 돌 장식품이 눈길을 끈다.

그의 집은 아침, 점심, 저녁의 빛에 따라 색이 바뀌고 분위기가 달라진다. 갤러리처럼 하얀 벽과 바닥에 비치는 정원의 푸른 나무와 반짝이는 햇살이 그려내는 그림은 세상이 만들어주는 풍경이다. 김개천 씨는 자극적으로 두드러지는 디자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드러남보다는 감추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반사와 투영으로 만들어지는 우연한 효과를 십분 활용했다. 겉보기로는 작은 공간에 불과하지만 공간에서 느껴지는 깊이와 넓이는 다르다. 이것이 김개천 씨가 강조하는 ‘포용력이 있는 공간’이다. 그가 주장하는 열린 공간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공간을 하늘에 빗대어 이야기했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하늘의 색을 어떤 색이라고 표현하겠어요? 그것을 한마디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나요? 공간을 하늘에 빗대어 생각할 수 있죠. 먼저 느끼는 것이죠. 그다음에 느낀 점을 색상에 빗대어 표현하듯이 공간도 먼저 느껴야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은 단정지을 수 없는 거예요. 같은 공간일지라도 사람에 따라 그 느낌이 분명 다르기 때문이죠.” 그는 집을 디자인할 때 원칙을 두지 않는다고 했다. 원칙은 곧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집주인의 생활을 통해 단련된 집이 가장 아름답다. 살면 살수록 감동을 안겨주는 집을 디자인하는 것이 그의 평생 화두이다.


1 마치 갤러리처럼 벽, 바닥, 천장이 모두 하얗다. 하얀 공간에 바깥 풍경이 비치고 햇빛이 비쳐 아름다운 장면이 만들어진다. 마치 흰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흰 공간 안에 자연이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낸다. 거실 한쪽에는 또 하나의 서재가 있다.


2 거실과 마주 보고 있는 다이닝 룸.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공간을 더욱 따뜻하게 만든다.
3 현관을 바라보고 작은방이 있는데 바로 이곳이 좌식 서재이다. 어디에 앉아서든 자연을 감상하고 싶은 마음에 미닫이문에 넓은 초야의 풍경을 담았다.


선학 禪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아 동양 사상을 공간 디자인에 접목하는 김개천 씨는 특히 장자의 사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장자>를 보면 ‘천지지간’이란 표현이 있어요. 대인 大人은 양 어깨에 태양을 거느리고, 겨드랑이엔 우주를 끼고 있다는 의미로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공간, 그 한정할 수 없는 큰 공간을 말하죠.” 김개천 씨의 이야기대로라면 이 시대에 필요한 큰 사람을 위한 공간, 이상적인 공간은 열려 있어야 한다. 그의 대표 작품인 ‘백담사 만해 마을’과 ‘담양 정토사 무량수전’이 사람과 자연을 위해 여지를 남겨두는 것처럼.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대학원에는 ‘담담원 淡談園’이라는 온돌 강의실을 만들었다. 가변적인 문을 여닫으며 공간을 나누기도 하고 합치기도 한다. 학생들은 딱딱한 의자 대신 방석을 깔고 하얗게 빛나는 상에 둘러앉는다. 이 강의실은 여느 강의실과 비교하면 휑하니 비어 보일 수도 있지만 김개천 씨의 견해대로라면 ‘아무것도 없어 사실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는, 포용력 있는 공간’이다. 그는 바로 이런 모습으로 이 시대의 대인을 위한 공간의 상을 제시한다.


4 2층 서재에서 스케치하는 김개천 씨. 마치 수묵화를 그리듯 붓펜으로 힘있게 스케치를 하고 있다. 그가 몰두하고 있는 이 시대의 대인을 위한 열린 공간을 화두로 작업을 하고 있다. 종이 새와 우주선 모형은 아이들이 옆에 앉아 만든 것이다.
5 불상은 여행 중 구입한 것이며 백자 항아리와 그릇이 낮은 사방탁자에 놓여 있다.



김개천 씨가 소개하는 또 다른 치유의 공간
처음 ‘힐링 스페이스’라는 주제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단번에 종묘라고 답했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훌륭한 건축이라고 말한다. 그는 날씨가 좋을 때면 제자들을 데리고 종묘로 나와 수업을 하기도 한다. 또 건축 작업을 할 때 아이디어가 막히면 이곳에 와 전통 건축의 처마와 하늘이 이루는 강한 대비와 늘어선 열주들을 보며 감응을 얻는다. 사실 그는 위안이란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라고 말한다. 위안은 결국 뭔가에 의지하는 것인데 위안을 받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안을 통해 정서적인 안정을 찾을 수는 있기에, 그런 측면에서 종묘를 꼭 한번 가보길 권한다.


김명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