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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12공방, 모던디자인으로 되살아나다 통영12공방, 모던디자인으로 되살아나다

1, 2, 3 경대, 접시, 꽃병은 모두 나전장 송방웅 선생의 작품.
4 소반은 소목장 추용호 선생의 작품.
5 낮은 거실장은 나전장 김종량 선생의 작품으로 이번 2009 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출품작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명품들을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장인의 손길을 거쳐 완성됐다는 점이다. 제작 과정의 분담 없이 한 명의 장인이 가죽 선정부터 커팅, 마감까지 전담하는 가죽 브랜드 에르메스가 그러하며, 1백여 년 전 한 장인이 만든 문양이 브랜드의 상징이 된 루이비통이 그렇다. 기계화와 대량 생산의 시대에도 핸드 크래프트의 전통을 고집해온 세계적인 도자기 브랜드 로얄 코펜하겐과 마이센도 그중 하나다. 세상의 편리함이나 잇속과 좀처럼 타협하지 않고 어두컴컴한 공방에서 기술을 연마하며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온 이들. 우리에게도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장인들과 견주어볼 때 뒤지지 않는 전통성과 기술을 자랑하는 장인이 있다. 예부터 예술적 DNA를 키워온 통영의 12공방(칠기, 소반, 갓, 부채 등 18세기 후반에 형성된 12공방 체제는 1895년 통제영이 폐영될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그 맥이 오늘에 이어져 통영의 전승 공예로 계승되고 있다). 이번 ‘2009 서울리빙디자인페어 + 월드디자인마켓_서울 Spring’에서는 디자이너 김욱선 씨가 아트디렉팅을, 국내의 브랜드 네이밍 회사 크로스포인트 대표 손혜원 씨가 BI를 맡아 통영의 장인들과 함께 전통이 깃든 모던한 가구를 선보인다. 나전장의 손길을 거친 거실장과 테이블 세트, 소목장의 수납장 세트, 누비장의 테이블 러너 등이 바로 그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프로젝트가 더욱 반가운 것은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을 맞춰 전통 공예를 모던하게 풀어냈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인 아파트 공간에 가져다 놓아도 잘 어울리는 통영 12공방 장인들이 만든 전통 가구. 3월 25일, 통영 12공방은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다이닝’이라는 전시 주제로 첫선을 보인다.


1 다도해의 아름다운 섬을 형상화한 통영시의 로고.
2 내륙이되 섬과도 같은 통영의 그림같은 풍경.
3 통영의 소목장 김금철 씨의 정교한 전통 목가구.


진의장 통영시장
통영, 예술적 DNA를 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영을 이 도시로 옮기면서, 물에 둘러싸인 이 작은 고장은 ‘통영’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통제영 주변에 군수품을 만드는 장인들이 모였고, 그 공방들은 전쟁이 끝난 후 자연스럽게 일용품을 만드는 12공방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실용을 중시하는 풍토와 바다를 근간으로 한 넉넉한 살림살이 속에서 통영 사람들은 ‘누구나 그림을 그리면 화가요, 글을 쓰면 시인’이라는 예술적 DNA를 품고 자랐다. 통영 출신 예술가는 일일이 이름을 거론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윤이상, 박경리를 비롯해 김춘수, 김상옥, 유치진, 유치환, 전혁림, 심문섭, 김용익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2003년 당선된 진의장 통영시장은 여러 차례 개인전과 초대전을 치른 화가이자 문인협회 회원인 수필가이며 시인이기도 하다. 진의장 시장은 통영시장이 된 후 문화・예술적 행정을 표방해왔다. 이번 ‘통영 12공방’ 프로젝트가 그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그는 통영을 거쳐 간 예술인들의 기념관을 만들고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윤이상 음악당을 설립할 계획이다. 그런 그가 통영 전통 공예의 영광을 부활시키고자 ‘통영 12공방’ 프로젝트를 발의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전통이 현대적인 디자인의 옷을 입는다면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에겐 이미 탁월한 기술과 역사가 있으니까요. 저는 전통 공예 장인들이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시대가 요구하는 디자인이 무엇인지 인식할 수 있길 바랍니다. 이탈리아 오르비에토의 두오모는 고딕 시대 성당입니다만, 현대 조각가 에밀리오 그레코가 만든 청동문으로 인해 더욱 아름다워지지 않았습니까. 전통은 현대와 만날 때 더욱 빛날 수 있습니다.”

4 화가이며 시인, 수필가로도 활동 중인 진의장 통영시장.


1 조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여온 송방웅 선생.


2 도안을 옮겨 그리는 과정. 이 도안을 다시 자개에 옮겨 문양대로 오려내어 붙인다.
3 송방웅 선생이 담당한 통영 12공방 제품의 중심 모티프.


나전장 송방웅 씨
나전칠기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송방웅 선생. 나전칠기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그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통영 현지에서 송방웅 선생의 존재감은 더욱 크다. 한국 최고의 나전장으로 꼽히는 그가 이룬 완성도 높은 작품들은 ‘통영 자개’의 명성과 명맥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의 선친 송주안 선생은 통영에서 태어나 열일곱 살 때부터 나전칠기를 배운 장인이다. 통영에 자개를 만지는 사람이 수없이 많아도 그이만큼 끊음질(나전칠기 기법의 하나로, 자개를 가느다란 막대기 모양으로 썰어 만든 ‘상사’를 문양에 맞춰 잘라나가는 방법)을 능숙하게 하는 기술자는 당대에 드물었다고 한다. 송주안 선생은 평생 동안 작은 전시회에도 한 번 참가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자개쟁이’의 한길을 걸었다. 누구나 인정하는 실력의 소유자였음에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아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은 그의 나이 팔순이 다 되어서다. 부친의 나이 마흔에 얻은 귀한 아들이었던 송방웅 선생은 어려서부터 부친의 일을 거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더 이상 공부를 시키기가 어려우니 내 밑에서 자개 일을 배우라’는 엄명을 받았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책 읽기를 좋아하고 꿈 많은 청년에게 당시 그 엄명은 아무리 아버지의 간절한 뜻이 담긴 것이라 하더라도 거부하고 싶은 운명이었다. ‘나전칠기도 훌륭한 예술로 대접받을 날이 반드시 온다’는 부친의 독려로 시작한 자개 일. 시작만큼이나 그 과정은 어려웠다. 일을 배우다 실수라도 하면 자기보다 나이 어린 견습생들 앞에서 불호령이 떨어졌고, 이미 용돈 정도는 넉넉히 벌어 쓰던 또래 기술자들은 그를 놀림거리로 삼곤 했다. 아버지의 명성에 기댄다는 비아냥 역시 그가 견뎌야 하는 몫이었다. 송방웅 선생은 그럴 때마다 무조건 두문불출하고 기술을 익혔다. 10년간의 기술 연마가 끝나자 마침내 “이젠 스스로 네 작품을 만들어도 좋다”라는 부친의 허락이 떨어졌고, 그 후로 10년 동안 송방웅 선생은 전국의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나전칠기 유물을 연구했다. 그 결과 1980년대에 그는 전통 공예와 관련된 모든 상을 휩쓸며 나전칠기의 떠오르는 별로 자리 잡았고, 1990년에는 마침내 아버지를 뒤를 이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살아생전 부친이 그러했듯 그 역시 자기 자신에게 굉장히 엄격하다. 0.1mm의 오차도 용서하지 않는 그의 눈썰미 앞에서 허무하게 뜯겨 나간 자개 조각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나전칠기에 내 인생의 희로애락이 다 들어 있지요.” 자개를 업으로 삼는 것이 싫었고 아버지의 후광이 부담스러웠던 청년은, 이제 대한민국 최고의 자개쟁이가 되어 자개의 영롱한 빛을 다시 후대에 전하고 있다.

4 송방웅 선생이 제작한 나전칠기 목침.


1 김금철 선생이 만든 이층농 한 쌍. 자연의 목리와 색의 대비를 살려낸 기법이 정교하다.


2 소목장 김금철 선생.

소목장 김금철 씨
목가구에 40년 외길 인생을 걸다
김금철 선생은 말수가 적다. 그리고 말이 서툴다. 질문을 던져도 대답은 단답형으로 무뚝뚝하게 돌아온다. 그런 그가 갑자기 말수가 많아지는 건 통영의 전통 목가구를 설명하는 순간이다. “통영의 목가구는 여타 지방의 목가구와 완전히 다릅니다. 다른 지방의 목가구가 절제와 단순함을 추구할 때 통영은 섬세함과 장식성을 추구했습니다.” 바닷사람들의 실용적인 기질이 ‘야물지 못한’ 제품을 허용하지 않는 탓에 예부터 통영 목가구는 무엇보다 ‘튼튼한 내구성’을 기본으로 했다. 또한 공예의 본고장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통영의 장인들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굉장히 엄격하다. 어떤 공예 작품이건 귀와 귀가 딱 맞아떨어져야 하고 문양은 정확한 대칭을 이뤄야 한다. 고 박경리 선생이 자신의 예술적 근원으로 꼽으며 평생 소장해왔던 것이 바로 통영 소목장이 만든 장이었다고 하지 않던가. 제대로 잘 만든 통영 이층장은 사용된 나무 종류만 해도 서른 가지가 넘는다. 앞판만 해도 각 부분을 각기 다른 나무로 만들어 나무마다 다른 결과 색깔을 즐길 수 있고, 문이 달린 가장자리에 댄 나무와 문 안쪽에 댄 나무가 다 다르다. 통영 목가구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가장자리 장식이다. 모르는 사람은 무늬를 그려 넣었다고 보기 쉽지만, 사실은 목재를 얇게 켜 겹으로 붙이고 다시 단면이 드러나도록 잘라 만든 문양이다. 문양의 검은 부분은 먹감나무, 흰 부분은 주로 옻나무를 쓴다.

 
3 우리 전통 장인들은 작업에 필요한 공구를 손수 만들어 쓰곤 했다.
4 이번 페어에 출품하는 김금철 선생의 수납장 세트 제작 스케치.


‘백-흑-백’ 세 겹의 선으로 가장자리를 두른 삼회장 문양만 해도 엄청난 정성과 시간이 필요한 작업인데, 통영의 소목장들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아 亞’자 무늬를 새겨 넣은 성퇴뇌문이나 귀를 딱딱 맞춰내는 귀뇌문으로 솜씨를 한껏 뽐냈다. 더구나 장롱을 꼭 쌍으로 만들어 두 개의 장롱에 드러난 무늬가 다시 대칭을 이루도록 했으니, 이 정도면 왜 통영 소목장이 만든 목가구가 다른 지방의 것과 차별화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 장식이 많이 들어간 이층장입니다. 요즘은 경기도 안 좋고 전통 공예를 너무 등한시해 통영 사람조차도 소목장을 잘 안 찾습니다. 해보고 싶은 작품은 많은데 나무 값만 해도 수천만 원씩 하고 찾는 이도 없으니 시도하기가 어렵네요.” 그가 열여섯 살이던 당시 누나가 통영 지방 최고의 소목장이던 천상원 선생 댁으로 시집을 가서 그 인연으로 사돈댁에서 기술을 배운 김금철 씨. 소목장 경력 40년에 이른 오늘날에도 아침 여덟 시면 작업장에 나와 밤 열 시까지 나무에 묻혀 사는, 나무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1 김종량 선생이 만든 나전칠기 이층버선장. 민화의 십장생 무늬를 응용한 디자인이 화려하다.
2 탱화를 나전칠기로 재현하는 작업 중 도안을 옮기는 과정.



3 항상 나전칠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고민하는 김종량 선생.

나전장 김종량 씨
전통 공예에 현대적 디자인을 덧입히다
김종량 선생은 나전칠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이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열네 살 어린 나이부터 자개 기술을 배웠다. 손재주와 눈썰미가 남달라 손수 도안을 그리는 능력이 있었고, 그 능력을 개발하고자 민화집이며 전통 공예 관련 도록을 뒤져가며 꾸준히 공부했다. “제가 나전칠기 만들기에 종사한 게 벌써 40년인데, 그사이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나전칠기의 전성기도 어느덧 지나가 버렸지요. 앞으로는 전통적인 공예에 새로운 것을 더해나가야 합니다.” 통영 나전칠기의 전성기는 1960~70년대였다. 김종량 선생이 자개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때도 그때다. 당시 혼인하는 새색시들은 대부분 자개농에 경대, 누비이불을 혼수로 꼭 챙겨 갔고, 열두 자 자개농에 문갑 세트를 들여놓는 집도 태반이었다. 김종량 선생은 이렇듯 자개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에도 옛것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다 남다른 문양을 새롭게 개발하는 데 노력했다. 자개의 전성기가 끝난 후에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다시 나전칠기를 찾을까’에 골몰했다. 달력에 인쇄된 산수화 위에 자개를 붙여 작품을 만들어보기도 했고, 자개 가루를 이용해 화려한 효과를 내는 방법도 고안했으며, 통영에 머물렀던 작가 이중섭의 그림을 나전칠기의 도안으로 삼는 등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렇다고 늘 새로운 것만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화려함과 섬세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던 고려시대의 나전칠기를 재현하는 노력 역시 병행한다. 생활 문화가 안방 중심에서 거실 중심으로, 또 한옥에서 아파트로 바뀌었으니 나전칠기 역시 그 변화에 맞춰 새로운 형태의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거실을 장식할 만한 심플한 자개 가구라면, 붙박이장에 붙일 수 있는 형태의 나전칠기라면 얼마든지 현대의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버려지는 조개껍질이지만 갈고 닦으면 하나의 나전칠기 작품에서 보석같이 빛나게 됩니다. 우리의 전통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시대가 흘러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을 알게 될 것입니다.” 

4 나전칠기는 보는 거리와 방향에 따라 다른 빛을 발한다.


1, 2 나전장 박재성 씨의 네스팅 테이블 세트 제작 스케치와 완성품.
3 나전장 송방웅 씨와 두석장 김극천 씨가 공동 작업한 콘솔 테이블. 홍장은 통영 공예의 자랑거리다.




4 전통을 현대적 디자인과 어떻게 절충할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아공디자인 김욱선 대표.

디자이너 김욱선 씨
장인과 디자이너가 만든 예술적인 다이닝
디자이너 김욱선 씨는 지난겨울부터 일주일에 반 이상을 통영에서 보내고 있다. 한참 손위 어른인 통영 장인들과 전통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품격이 전해지는 아름다움은 물론 ‘전통과 현대의 절묘한 조화’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가구를 만들기 위해서다. “통영산 전복 껍데기와 진주조개는 그 화려한 빛깔과 모양이 남다릅니다. 또한 과거 군수품을 만들었던 통영 12공방의 역사와 전통을 그대로 이어온 나전칠기 장인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이런 이유로 김욱선 씨는 통영 12공방의 메인 아이템을 거실장, 테이블 등 통영의 나전 기술을 보여줄 수 있는 가구로 선정했습니다.” 통영 장인들에게 가구를 만드는 일은 자식을 키우는 일과 같다. 원목을 건조시킨 후 백골(일반적으로 물건의 틀이 되는 모양)을 제작하는 데만 2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다. 소목장이 구조를 갖춘 가구를 넘기면 나전장이 그것을 받아 먼저 옻칠을 하고 나전을 붙인 뒤 옻칠을 한 번 더 해 옷을 입힌다. 그리고 장석(경첩이나 문고리 따위)을 다는 과정을 끝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나전장들은 모란, 학 등의 전통적인 문양 대신 통영의 바다를 상징하는 블루 컬러에 파도를 표현한 웨이브 패턴, 거기다 통영에 예부터 12공방이 있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숫자 ‘12’를 문장 정가운데 넣어 완성한 BI를 적극 활용했다. 제 15회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처음으로 공개하는 통영 12공방의 전시 주제는 ‘다이닝’이다. 김욱선 씨는 전시장 한쪽에 거대한 규모의 10인 만찬상을 놓고, 갓을 이용해 만든 조명등을 다는 등 장인들이 만든 가구와 소품을 일상의 생활 공간 속에 자연스럽게 배치할 예정이다.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은 나전장이 만든 테이블과 장 외에도 염장이 만든 대나무 발 그리고 누비장의 테이블 러너 등을 감상할 수 있다.

황여정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