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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가 나를 치유한다]전통 목가구 장인 소병진 씨 세월에 길들여지는 것이 아날로그다
물리학 용어인 ‘아날로그’에서 우리는 책, 레코드판, 라디오, 자전거 같은 것을 떠올립니다. 아날로그라는 단어에는 디지털 시대와 대변되는 지난 시대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21세기에 만나는 아날로그는 감성의 언어로 어머니처럼 다정하고 황소처럼 느릿한 삶의 여유를 보여줍니다. 네 명의 아날로그 예찬론자를 만났습니다. 기본에 충실한 공간에 여백을 만들고 아날로그적인 정서를 불어넣는 건축가, 아날로그는 손을 통해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자개로 점을 찍듯 그림을 그리는 나전칠기 장인, 가구 하나를 만들기 위해 20년이란 세월을 들이는 소목장. 아날로그란 시대의 역행이 아닌 선행이라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바닥에 수북이 쌓인 톱밥과 벽면에 나란히 꽂힌 연장, 그 옆에 걸린 여러 장의 ‘본’. 이 방은 전통 목가구를 만드는 소병진 씨의 작업실이다. 어느덧 45년째 나무와 함께 지내며 한길을 걸어온 그는 스스로를 자연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한다. 1992년 대한민국 명장, 소목장 제1호가 된 그는 주로 전주장을 만든다. 나무 판재 한가득 쌓인 작업실에는 ‘나무에 예방주사 맞히는 방’이 있다. 연탄 난로 하나를 에워싸고 나무가 쌓여 있는 방이다.
그가 만드는 가구의 절반은 시간이 빚어내는 것. 장 하나 만드는 데 자그마치 20년이란 세월이 필요하다. 나무를 베어다 15년 동안 비바람 맞히고 추위, 더위 다 견딘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난로를 피워놓은 방에 3년간 보관한다. 그는 이 과정을 “나무에 예방주사 맞히는 거야. 요즘은 다들 아파트에 사는데 나무 입장에서 보면 아파트는 찜질방이나 다름없지. 공들여 만든 가구가 아파트에 살면서 틀어지고 그러잖아. 그래서 난로 피워놓고 내성을 키워주는 거야”라고 말한다. 이렇게 나무가 단련되며 뒤틀리지 말라고 공들이고, 온전한 형태를 갖도록 공들이고, 벌레 생기지 말라고 식물성 기름까지 발라주면 드디어 하나의 가구가 완성된다.

1 목수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의 하나가 바로 대패. 대패만 수십 개는 있을 텐데 그는 손가락만 한 작은 대패를 따로 모아놓았다.


2, 3 소병진 씨는 주로 전주장을 만드는데 전주장은 장식에 굴곡이 없이 평평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자연스러운 나뭇결이 목가구의 매력이듯 그의 전주 장에도 나뭇결이 마치 그림처럼 선명하게 드러나있다.

아무리 정성이 담겨도 재료가 좋아야 제 맛. 그래서 그는 오래된 한옥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집주인과 함께 세월을 보내며 단련된 나무만큼 좋은 재료가 없기 때문이다. 한옥이란 닦으면 닦을수록 가치를 발하는, 끊임없이 사람 손을 타야 하는 집이 아닌가. 단련하고 길들이기, 또 이 과정을 거치는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아날로그가 아닐까 싶다. 그는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가구 만드는 기술이 좋아져도 사람의 손과 시간이 단련시킨 가구만큼 정이 가는 것이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어깨너머로 목수 일을 배워 전주장도 만들고, 국새 國璽 인계함까지 만들었다. 아파트 생활이 보편화되면서 점점 장과 농이 필요 없어진다지만, 그는 계속 이 일을 할 것이다. 그의 아들도 아버지의 업을 이어가고 있다. 살아 있는 나무를 만지는 것만큼 사람에게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냐고 한다. 나무가 세월 속에 단련되듯 사람도 나이를 먹으며 연륜이 생기고 완숙미를 갖게 되는데 그는 나무를 통해 인생을 배우고 있었다. 소병진 씨는 ‘기계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세상에 바보’라 할지라도 사람과 세월이 빚는 아름다움은 포기할 수 없다 한다.


4 대패와 톱이 벽면을 가득 채웠다. 이곳에서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가구를 만든다.


5 나무 판재로 둘러싸인 작업실에 선 소병진 씨.
6 전통적인 방식의 도구를 직접 만들어 구멍을 뚫고 있다.



대패에 담긴 한국적 아날로그
소병진 씨는 말한다. “재미있는 것이 우리나라 대패는 ‘미는 것’이고 일본 대패는 ‘당기는 것’이라는 거 알아요? 일본 대패는 당겨야 하니까 앉아서 작업할 수가 없지. 다들 서서 순간의 힘으로 나무를 다듬는다고. 그런데 우리나라 대패는 미는 거니까 앉아서 해도 되잖아. 그래서 옛날에는 멍석 깔고 앉아 노랫가락 흥얼거리며 여유 있게 작업했지.” 소병진 씨는 우리 전통 목가구는 이렇게 흥을 아는 사람들의 정성으로 만든 것임을 일깨워주었다. 육체적으로는 고된 작업일지라도 그것을 즐길 줄 알았던, 제대로 된 교재 하나 없이 어깨너머로 배웠어도 자신에게 맞는 기술과 도구를 직접 개발해 사용했던 지혜로운 장인의 손이 이룬 것이다.

김명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