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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백가기행] 도공이 지은 축령산 한 칸 오두막집 생각이 커지는 작은 집
집은 사는 이의 인생 철학을 담는다. 한 도공이 스무 날 동안 혼자 지었다는 한 칸 오두막집이 있다. 공간이 작아 오히려 생각이 커지고 자신의 내면과 진지하게 마주하게 하는 집이다.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호숫가를 떠올리게 하는 이 오두막집은 물욕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비용 費用에는 ‘존재 비용’과 ‘사회적 비용’이 있다. 존재 비용은 존재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말하고, 사회적 비용은 사회활동을 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다. 존재 비용은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돈은 사회적 비용이다. 따지고 보면 사회적 비용이란 것이 체면 차리는 비용이고, 남에게 자기를 과시하는 비용에 해당한다. 우리가 그토록 열심히 돈을 벌려고 젊음을 바치고, 시간에 쫓기는 이유는 존재 비용 때문이 아니다. 사회적 비용, 즉 ‘가오’ 잡는 비용을 대기 위해서인 것이다. 왜 돈을 버는가? 폼 잡기 위해서 번다. 존재 비용은 무엇이겠는가? 의식주에 들어가는 비용이다. 의 衣와 식 食보다는 주 住가 문제이다. 집의 수준은 천층만층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존재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의 집은 어떤 형태인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사회적 집’이 아니라,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는 최소한도의 시설만 갖춘 ‘존재적 집’은 가능한 것인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찾아낸 집이 전남 장성군 축령산 산자락에 있는 희뫼 김형규 씨의 한 칸 오두막집이다.
이 오두막집을 짓는 데 소요된 건축 비용이 총 2만 8천 원이다. 2만 8천 원은 어떤 돈인가? 나무에 박는 데 필요한 못을 구입하는 데 들어간 돈이다. 집을 짓는 데 못 값만 들어갔다는 이야기이다. 아 참! 들어간 돈이 또 있다. 자그만 무쇠솥을 시장에 가서 장만하는 데 들어간 3만 5천 원이다. 그러니까 집 짓는 비용은 2만 8천 원이요, 가재도구 비용이 3만 5천 원이었다. 모든 건축자재는 자급자족했다. 대부분 현지에서 조달했다는 이야기이다. 들어간 건축자재는 지붕의 서까래에 해당하는 조그만 통나무들이다. 서까래용 나무는 인근의 허물어진 헌 집에서 구했다. 서까래라고 해봐야 열 개 정도밖에 안 된다. 방이 한 칸 크기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서까래가 필요 없다.

(위) 방안에서 내다보는 대나무 숲 풍경이 일품이다.



이 작은 오두막은 도공인 희뫼 김형규 씨가 20일 동안 혼자 지은 흙집이다. 모든 자재를 자급자족한 터라 건축 비용은 못 값 2만 8천 원이 전부였음에도 그는 자신의 솜씨가 부족해 못 값이 많이 들었다고 말한다.


오두막에 살림을 들이면서 집주인이 새로 마련한 가재도구는 무쇠솥 하나가 전부다. 솥은 각자 용도가 있는데 하나는 밥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차를 마시기 위한 물을 끓이는 것이다. 새로 산 무쇠솥이 3만 5천 원이니 집을 짓는 데 들인 총비용보다 큰 돈이다.

한 칸이라 하면 1평 반 정도 되는 넓이다. 한 사람이 다리 쭉 뻗고 두 팔 벌리고 누워 있기에 적당한 공간이다. 두 사람이 누워 있으면 방이 꽉 차게 된다. 두 사람이 누우면 각자 팔을 오므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서로 팔이 닿게 되는 공간이다. 벽은 흙으로 발랐다. 옛날 시골의 토담집처럼 흙으로 벽을 발랐으니까, 별도로 돈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흙도 멀리서 조달한 것이 아니다. 집 짓는 바로 그 자리에서 삽으로 퍼서 쌓아 올린 것이다. 집주인은 신토불이 身土不二뿐 아니라 심토불이 心土不二의 철학도 가지고 있다. 바로 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는 자리의 흙을 쓰면 집에 사는 사람의 마음과 그 토양이 서로 익숙해져서, 마음과 토양이 서로 자연스럽게 소통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옛날 어른들은 음식을 먹을 때에도 천 리 밖의 음식은 잘 먹지 않았다고 한다. 물류가 발달하지 않아서 그런 면도 있었겠지만, 자기가 태어난 고장에서 자란 채소, 곡식, 고기를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몸이 건강할 때는 외국에 나가서 아무거나 먹어도 상관없지만, 몸이 아플 때는 자신의 고향에 돌아가서 어렸을 때 어머니와 같이 먹던 음식을 먹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음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가 사는 집에 들어가는 재료도 현지의 것을 쓴다는 것은 미세한 형이상학 形而上學이다.

 
1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한다’는 속담이 있다. 방문 옆의 자그마한 창이 바로 그 봉창이다. 봉창은 문을 열지 않고도 밖에 손님이 왔는지를 살펴보기 위한 창문이었다.
2 희뫼 김형규 씨는 주로 조질 백자 작업을 하는 도예가다. 



3 공간이 작으니 방 안에는 필요한 살림살이만 들여놓았다.

지붕은 어떻게 만들었는가? 볏짚과 억새, 그리고 띠가 혼합되어 있다. 원래는 띠로만 지붕을 얹고 싶었지만, 띠가 부족해서 일부만 들어갔다. 그 대신에 볏짚으로 지붕을 얹고 그 위에 산에서 베어 온 억새를 덮었다. 초가는 매년 새로 지붕을 얹어야 하지만, 억새는 몇 년을 간다. 억새보다 오래가는 것이 띠 지붕이라고 한다. 이렇게 지붕을 만들어놓으니까 멀리서 보면 그림 같은 산속의 오두막이 된다.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산속의 오두막집 같다고나 할까. 한국 사람의 심성 밑바닥에 자리 잡은 원초적인 집은 이러한 오두막집이 아닌가 싶다. 오두막이야말로 철기 문명이 도래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한국인의 원형 주택 原形住宅 아니던가! 3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집이 이러한 오두막집이다. 나는 아직 미국의 소로가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취직도 하지 않은 채 혼자 들어가서 오두막을 짓고 살았던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를 가보지 못했다. 법정 스님의 책을 보니 무소유를 강조한 스님은 월든 호숫가를 세 번이나 가보았다고 한다. 월든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소로의 오두막집도 축령산에 희뫼가 지은 이러한 집이 아니었겠나 싶다. 집이 소박하면 사람도 소박해진다. 소박해진다는 것은 ‘가오’ 잡으려는 마음이 사라진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다. 사회적 비용을 벌기 위해서 그처럼 바쁘고 부산하게 살면서 자기 인생을 낭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소로의 월든 오두막이나 희뫼의 축령산 오두막이나, 쓸데없는 데 시간 낭비 말고 ‘자기를 위해서 한가하게 사는 것이 결국 남는 장사’라는 이치를 말해주고 있다. 집 자체가 인생 철학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1 방 옆으로 작은 부엌이 딸려 있다. 한 사람만 들어서도 꽉 찰 만큼 작은 공간이다. 선반 위를 가지런히 장식하고 있는 그릇은 모두 도공인 집주인의 작품이다.
2 한 칸은 한 평 반 정도를 의미한다. 한 사람이 다리 쭉 뻗고 누워 있기 적당한 공간이다.


방 옆에 바로 붙어 있는 부엌에 들어가 보았다. 불을 때는 아궁이가 있다. 매일 한 번씩 아궁이에다 장작을 넣고 불을 때는 사람과 아파트 가스 보일러 방에서 자는 사람과는 인생관에 차이가 난다. 불을 때면 번뇌가 사라진다. 훨훨 타는 불을 보면 마음이 저절로 훤해진다. 왜 그럴까? 마음속에서 파리처럼 날아다니는 번뇌들을 잡아다가 불 속에 던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불을 보아야만 마음이 깨끗해진다. 사실 태운다는 것처럼 깨끗한 것이 없다. 그래서 사주팔자에 불이 많은 사람은 대개 뒤가 깨끗하다. 그 자리에서 확 질러버리지만 뒤는 없다. 우울증 치료에도 아궁이에 불 때는 행위가 도움 된다. 부인병에도 아궁이는 도움이 된다. 옛날 어머니들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다 보면 자연스럽게 몸이 데워지기 때문에 자궁암을 비롯한 부인병이 적었다고 한다. 자궁 쪽을 따뜻하게 하면 병이 없는 것이다. 자궁 子宮은 자식(子)의 집(宮)이다. 아궁이의 아궁 亞宮도 이와 비슷하다. 자식(子) 다음에 중요한 집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버금 아 亞를 써서 아궁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아궁이는 취사와 난방의 용도뿐 아니라 심신 건강에도 일조했던 장치였다. 전기 밥솥만 한 검은색의 무쇠 솥단지가 두 개 걸려 있다. 하나는 밥하는 용도이다. 다른 하나는 차를 마시기 위한 물을 끓이는 용도이다. 이 집 주인의 주요한 일과가 바로 다반사 茶飯事인 것이다. 밥과 차는 주인이 매일 일용하는 양식이다. 장작을 집어넣고 솥단지에서 끓여야 하는 귀물 貴物이다.


3, 4 집이 작은 만큼 살림살이도 단출하다.

한 평 반 되는 방에는 문이 하나 나 있고, 바로 옆에는 어른 손바닥 두 개 크기만 한 창문이 설치되어 있다. 집주인은 이를 ‘봉창’이라고 한다. 속담에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한다’는 말이 있다. 봉창은 문을 열지 않고도 밖에 손님이 왔는지를 살펴보기 위한 용도의 창문이었다. 오두막의 봉창은 창호지로 발라놓았기 때문에 열어볼 수는 없다. 그 대신 달빛을 감상하기에는 딱 좋다. 전기가 없는 이 오두막에는 달빛이 가장 밝은 음력 14, 15, 16일이 신기 神氣를 받는 날이다. 알 수 없는 감흥과 에너지가 솟는 날이 달이 훤하게 비추는 무렵이라고 한다. 달빛이 밝은 날에는 밖에서 책을 볼 수 있을 정도다. 밤이지만 가만히 방에 앉아 있을 수 없다. 밖에 나가 상추 밭에서 김이라도 매고 싶다. 방에 누워서 달빛을 감상하려면 이 조그만 봉창을 들여다보면 된다. 봉창의 창호지를 통해서 달빛이 투과된다. 봉창으로 투과되는 그 달빛은 훤하지도 않고, 음울하지도 않다. 오장육부를 비춰주고, 내면의 근심을 털어내 주는 ‘약빛’으로 전환된다. 봉창은 이 귀중한 약빛을 받기 위한 용도이다. 전깃불이 있으면 약빛이 안 되지만, 전깃불이 없으면 약빛이 된다. 주인에게 물었다. “이렇게 방이 작으면 불편함이 없는가?” “약간 불편할 때도 있지만 좋은 점이 더 많다. 우선 방이 작으니까 웬만한 물건은 방에 들여놓을 수가 없다. 좋은 탁자도 들여놓고 싶지만 방이 꽉 차버리니까 들여놓을 수 없다. 가구가 들어와 버리면 다리를 펴고 잠을 잘 수 없다. 먼저 사람이 편해야 한다. 살고 봐야 할 것 아닌가. 결국 물건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방이 작으면 물건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게 해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건에 대한 욕심이 확 줄어들었다. 쓸데없는 물건을 살 필요가 없는 셈이다. 따라서 돈도 많이 들어가지 않게 된다.” “방이 이렇게 좁으면 답답한 생각은 들지 않는가?” “오히려 생각이 더 넓어진다. 방이 작으면 우주를 생각하게 된다. 방이 크면 방에 사람이 눌린다. 방이 작으니까 밖의 하늘과 별과 달을 자주 쳐다보게 된다. 생각이 하늘로 향하는 것이다. 방문을 열면 앞의 대나무 숲과 그 너머의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방이 크면 방 안의 공간에 생각이 머무는데, 방이 작으니까 방 밖의 풍경에 눈이 가고 생각이 간다.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 방이 작으면 자기 내면에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촛불을 켜고 한 시간쯤 있으면 촛불과 내가 대화를 하게 된다. 촛불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출렁인다. 이 출렁이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에 마음도 같이 움직인다. 같이 움직이므로 대화를 할 수 있다. 아마 형광등 불빛이라면 혼자 있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촛불이니까 혼자 있을 수 있다. 촛불과의 대화이지만, 결국 자기 내면과의 대화인 셈이다.”


오두막이 있는 산속은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아 달빛을 감상하기 좋다. 음력 보름 즈음이면 책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달빛이 밝다고 한다. 집주인은 달빛이 밝은 밤에는 그 빛이 아까워 밖에 나가 밭을 매기도 한다.

방 안에는 무엇이 놓여 있는가. 조그만 벽장이 있어서 그 안에다가 집주인이 덮고 자는 이부자리를 들여놓는다. 방 안에는 역시 조그만 앉은뱅이책상이 있고, 책 몇 권이 있다. 그 옆에는 차를 달여 먹기 위한 찻주전자가 있다. 집주인이 도자기를 굽는 도공이므로 차호 茶壺도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로 만들었다. 회색빛이 도는 차호의 색깔도 가마의 연기가 들어간 색이라고 한다. 일부러 가마에 연기가 스며들게 하여 차호 색깔을 회색빛이 돌게 만들었다. 이 색깔이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사람도 단출하지만 방 안의 살림살이가 너무나 단출하다. 축령산의 이 단출한 오두막을 내려오면서 불현듯 임진왜란을 치르고 난 뒤 부휴선사 浮休禪師(1543~1615)가 지은 시가 생각난다.
독좌심산만사경 獨坐深山萬事輕(홀로 깊은 심산에 앉아 있으니 지나간 만사가 아무것도 아니구나.) / 엄관종일학무생 掩關終日學無生(암자 문을 닫고 종일 있으니 무엇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도 들질 않는구나.) / 생애묵검무여물 生涯默檢無餘物(지난 생애가 단출했으니 방 안에는 별 물건도 없는데, / 일완신차일권경 一椀新茶一卷經(차 사발 하나와 햇차 조금 그리고 경전 한 권이 있구나.)

청운 靑雲 조용헌 趙龍憲 선생 동양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조용헌 선생은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감지하는 혜안을 지닌 이 시대의 이야기꾼이다. 실전에 강한 강호동양학으로 유명한 그는 수식어를 찾아보기 힘든 직설법으로 얘기한다. <조선일보>에 ‘조용헌 살롱’을 인기리에 연재하고 있으며, 전라남도 장성의 편백나무 숲 속에 있는 휴휴산방 休休山房에 머물면서 동아시아의 도가 道家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저서로 <5백 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방외지사> <조용헌의 고수 기행> <그림과 함께 보는 조용헌의 담화> 등이 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