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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집]필립 갈티에 씨의 아트 하우스 집은 예술을 담는 그릇이다
까르띠에 한국 지사장인 프랑스인 필립 갈티에 씨. 그의 집에는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미술 작품이 걸려 있다. 10대 때부터 컬렉션을 시작했을 정도로 미술에 대한 그의 취미는 오래된 것. 어쩌면 일상 속에서 예술을 음미할 줄 알기에 ‘보석’이라는 예술적 상품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는지 모른다.


배병우 씨의 소나무 사진 아래 놓인 푹신한 소파는 필립 갈티에 씨가 집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B&B 제품. 그의 거실에서 B&B, 카시나 Cassina 등 이탈리아 모던 가구가 예술 작품과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있다.

필립 갈티에 Philippe Galtie 씨 집을 방문하기로 했을 때 기대와 설렘이 어느 때보다도 컸다. 그가 한국 지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까르띠에가 어떤 브랜드인가. 예비 신부들이 꿈꾸는 최고의 예물이자,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대를 이어 물려주는 가보, ‘왕의 보석상’이라 불리며 수많은 세기의 명사들에게 특별 주문 디자인으로 로맨스의 순간을 빛나게 해준 일등공신. 까르띠에라는 명품 브랜드가 주는 달콤한 꿈이 그의 집에도 담겨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까르띠에’와 발음이 비슷한 그의 성 ‘갈티에’. 그가 혹 까르띠에 오너 패밀리는 아닐까 궁금해졌다. 이 같은 호기심이 익숙한 듯 그는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웃으며 아니라고 답한다. 필립 갈티에 씨는 파리고등상업학교(ESCP)와 인시아드 INSEAD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네슬레, 모엣 헤네시 등의 회사에서 경력을 쌓았다. 2000년 까르띠에로 이직한 그는 파리 본사 보석 마케팅 팀장, 일본 부지사장, 싱가포르 지사장을 지낸 후 2006년 9월 한국 지사장으로 부임해 3년째 한국 생활을 하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 발레리 갈티에 Valerie Galtie 씨와 열일곱 살 난 막내아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장성한 첫째와 둘째는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지낸다.

그림과 그림은 대화를 나눈다 서래마을 빌라촌에 있는 그의 새하얀 집은 마치 잘 정돈된 갤러리 같다. 시선을 돌리는 공간마다 고고한 기운이 전해지는 미술 작품이 걸려 있는데, 우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밝은 바다 빛을 연상시키는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색면화가 손님을 반긴다. 작은 그림들이 걸려 있는 복도를 지나 거실에 이르면 고요하지만 힘 있는 배병우 씨의 소나무 사진과, 자유롭고도 모던한 스타일로 우울한 현대인의 초상을 표현한 중국 화가 정더룽의 인물화가 서로 마주 보며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다이닝 룸에는 다소 투박한 선과 색감의 중국 화가의 작품이 걸려 있고, 그 맞은편에는 유럽의 어느 분위기 있는 거리를 묘사한 셰르네 Chernay의 작품이 장식되어 있다. 침실 앞 벽에는 프랑스 조각가 모로 코르다 Mauro Corda의 황금색 인체 조각이 화려한 빛을 내며 서 있다. “아내와 저는 예술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그 가치를 일상에서 누리고 싶어 합니다. 이 집을 고를 때도 우리가 갖고 있는 미술 작품을 놓기에 적합한지를 염두에 두었지요. 집 안에 그림을 걸 위치는 아내와 함께 의논해서 결정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공간에 그림을 매치하는 데도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우선 그림을 놓았을 때 공간이 편안하게 느껴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림과 그림, 그림과 공간의 색감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간에 함께 장식된 그림들은 그들끼리 대화를 합니다.

 
1 중국 화가 허젠의 그림과 아르네 야콥센의 개미의자가 재미있는 대조를 이루는 다이닝 룸.
2 정더룽의 모던한 인물화 아래 놓인 서랍장은 1950~60년대 무렵 재봉 공장에서 사용했던 빈티지 가구다.


그래서 마주 보는 그림, 나란히 걸린 그림이 불편한 대화를 나누지 않도록 특히 조화에 신경을 쓰지요.” 어렸을 때부터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0대 때 벌써 첫 컬렉션을 구매했다. 어느 젊은 작가의 회화 작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그 후로 48세가 된 지금까지 매년 한두 점씩 꾸준히 작품을 구입하여 총 35점 정도의 미술품을 보유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서래마을 집에 걸려 있고 나머지는 프랑스에 있는 집에 보관 중이다. 최근에는 직업상 외국에서 몇 년씩 머물며 살다 보니 현지의 예술 작품을 구매하는 일이 많아졌다. 한국에 온 이후로는 사진가 배병우 씨의 작품은 물론, 신미애, 황경미 씨 같은 젊은 작가의 그림을 새 식구로 맞아들였다. 특히 거실 공간을 압도하며 걸려 있는 배병우 씨의 소나무 사진은 집 안에 걸린 작품 중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배병우 씨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작가죠. 그는 흑백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제가 구입한 것은 컬러 사진이었습니다. 제게는 그 작가의 어떤 작품이 높이 평가받는가보다, 나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작품이 무엇인가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지요.” 미술 작품을 선택하는 그의 기준은, 우선 당연하게도 구입 가능한 가격대의 작품인지,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작품인지 여부라고. 자연의 웅장한 위엄을 보여주듯 힘찬 가지를 뻗고 있는 소나무 사진은, 정원으로 나 있는 거실 전면 창과 함께 집 안에 자연의 기운을 불어넣는 두 개의 통로가 된다. 그리고 소나무 사진 위로 거실 창밖의 나무들이 비쳐서 이중으로 중첩되는 이미지는 생각지 못하게 얻은 신비로운 보너스 작품이다.

3 거실에서 발견한 조각은 현대적인 조형미를 보여준다.

예술은 나를 위한 긍정적 사치 필립 갈티에 씨는 집에도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며 집은 또 다른 그 자신이라 여긴다. 그래서 집 안에 자신을 기쁘게 만들어주는 작품과 가구를 장식해두고 항상 그것을 감상하고 즐기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한다.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개방적이어서 박찬욱과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한국 사람들을 멋있다고 생각한다. 예술과 문화를 자연스럽게 즐길 줄 아는 필립 갈티에 씨에게 예술과 사치의 경계에 대해 물었다. 사실 아직도 많은 한국 사람들은 미술 작품 구입을 부담스러워하고, 괜한 사치가 아닐까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트 이즈 럭셔리 Art is luxury’란 표현으로 그는 말문을 열었다. “프랑스 사람에게 ‘사치’라는 말은 전혀 나쁜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삶을 즐기는 수단 중 하나죠. 예술은 본래 사치스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위한 사치는 전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예술이 없다면 삶은 너무 지루하겠죠.” 그가 일하고 있는 까르띠에라는 브랜드 역시 그런 점에서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하나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가장 아름답고 럭셔리한 상품이자 우리의 영감을 자극하는 감각적인 예술이라는 것. 까르띠에는 1백60여 년의 역사성과 축적된 세공 기술, ‘왕의 보석상’이라는 별칭에 걸맞은 고집스러운 장인 정신, 그리고 1924년 시인 장 콕토를 위해 만든 그 유명한 트리니티 링부터 2008년 인도에서 영감을 받은 동양적이고 화려한 디자인,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혁신적인 스타일까지 손색없이 갖추고 있기에 이 말은 더욱 신뢰를 얻는다.

4 현관으로 들어서면 깊고 푸른 바다 빛을 닮은 그림이 시선을 압도한다. 신미애 씨 작품. 

 
1 알비라 Alvira의 경쾌한 그림 아래 론 아라드의 모던한 의자가 조각처럼 놓여 있다.
2 물속을 부유하는 듯 몽환적인 그림은 황경미 씨 작품.


까르띠에는 또한 가수 엘튼 존을 위해 나폴레옹의 조각상이 장식된 지팡이를 만들고, 영화배우 마리아 펠릭스 Maria Felix를 위해 새끼 악어 오브제를 만드는 등 명사들의 특별 주문을 통한 예술적인 작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영국의 윈저 공 부부, 모나코의 그레이스 공주 등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까르띠에의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사랑했다. 까르띠에는 예술에 대한 애정을 후원으로 연결시켜 1984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을 설립, 동시대 예술가들을 후원하며 세계적인 예술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9월 청담동에 까르띠에 메종을 오픈한 뒤로 필립 갈티에 씨는 더욱 바빠졌다. 한국 진출 10년 만에 선보인 까르띠에 메종은 5층 규모에 쇼룸, 살롱, 갤러리, 본사 사무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까르띠에만의 프라이빗한 공간이다. 이는 아시아 지역 최초의 까르띠에 메종이며 파리, 뉴욕, 런던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 “한국의 까르띠에 메종은 아시아 시장의 허브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는 분명 축하할 일이지만, 세계적인 경기 불황 속에서 까르띠에의 가치를 어떻게 계속 이어갈 것인가가 요즘 저의 가장 큰 고민이지요.” 보석과 미술 작품은 사치품이다. 의식주처럼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란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상상력이 깃든 아름답고 독창적인 예술이 없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이 지루하고 힘든 삶을 견딜까. 일상에서 예술을 음미할 줄 아는 필립 갈티에 씨라면 까르띠에의 전령사로서, 2009년에도 역시 그 힘차고 우아한 발걸음을 이어갈 것 같다.

3 필립 갈티에 씨 집에 우아하고 고고한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익살스러운 인물상, 만화 캐릭터 아톰처럼 웃음을 자아내는 오브제도 시선을 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