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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집 김동남, 양영심 씨 부부의 오포 전원 주택
산자락에 자리한 땅의 가파른 경사를 ‘해결해야 할’ 난제가 아닌 ‘흥미로운’ 매력으로 해석한, 는 그대로의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해법을 찾은 집. 건축가 김인철 씨가 설계한 ‘오르는 집’은 굽이 돌아가는 길처럼 산세와 자연스레 어우러지면서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그려낸다.


1 건축가 김인철 씨가 설계한 ‘오르는 집’은 원래 집터가 가진 가파른 지형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옆으로 돌아 오르는 산길의 방식을 택했다.

경기도 오포시의 한 전원주택 단지에 터를 마련한 김동남·양영심 씨 부부. 오랜 시간 그들이 상상해온 전원생활 풍경에는 언제나 뾰족 지붕 벽돌집이나 목조 주택이 있었다. 마침내 집을 짓기로 결심하고 경기도 일대를 샅샅이 뒤지며 전원주택을 구경 다닐 즈음, ‘집을 지을 생각이라면 한번쯤 가보라’는 지인의 권유에 헤이리를 방문했다. 지명조차 낯선 그곳에서 부부는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시멘트 블록 같은 상자를 툭툭 얹어놓은 듯한 건축물이 사람 사는 집이라니, 아기자기한 전원 마을을 상상하던 이들에게 파주 헤이리는 신기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낯설고 어리둥절한 심정으로 헤이리를 둘러보던 부부는 그 끝자락에 이르러 눈이 번쩍 뜨이는 집 한 채를 발견했다.

이들을 사로잡은 집은 산자락 경사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전망 하나에 마음을 사로잡혀 45도에 육박하는 가파른 경사지를 구입하고, 으레 집터는 평지여야 한다는 생각에 산을 깎아 토목공사를 진행하고 있던 이들에게 헤이리에서 발견한 이 집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경사진 땅을 그대로 살려 지은 집은 산기슭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자리를 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남편 김동남 씨는 다음 날 바로 이 집을 설계한 건축가 김인철 씨를 찾아갔다. “김인철 씨가 그렇게 유명한 건축가인 줄 몰랐죠. 알았다면 그렇게 쉽게, 다짜고짜 찾아가서 우리 집 좀 지어달라는 소리를 못했을 겁니다.” 만난 지 10분 만에 정식으로 설계를 의뢰했다는 김동남 씨. 자신이 짓고 싶은 대로 집을 지을 수 있게 하면 설계를 맡겠다는 그의 고집스러운 한마디에 ‘이 사람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후 처음으로 내 집을 짓는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나름대로 이것저것 알아보니 김인철 씨(아르키움 대표, 문의 02-2214-9851)는 김옥길 기념관, 웅진 파주 사옥, 일명 ‘땡땡이 빌딩’으로 회자되는 어반 하이브(지난 6월 완공된 빌딩으로 강남 교보빌딩 사거리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르고 있다) 등을 설계한 대한민국의 대표 건축가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건축가 김인철 씨가 택지를 방문했을 때는 이미 산을 깎아 평지를 만들고 축대를 세운 상태였다. 그는 고민 끝에 원래 산자락이 갖고 있던 경사를 그대로 살리는 방법을 택했다. 일단 토목공사를 중단하고 산을 복원했다. 45도에 이르는 가파른 경사면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고심하던 끝에 그는 옆으로 돌아드는 산길처럼 오르는 집을 짓기로 했다. 자연 환경을 있는 그대로 살리려 노력한 끝에 탄생한 집이 바로 김동남·양영심 씨 부부의 ‘오르는 집’이다. 이 집은 양쪽 끝을 잡아 당긴 듯 옆으로 벌어진 U자형 건물이 자연스럽게 산을 오르는 형상. 집은 산을 타고 반 층씩 위로 오르면서 독립된 공간을 하나씩 만들어낸다. 전체적으로는 단층집이지만 측면 도면을 보면 3층 집이다. 집이 산을 타고 오르니 모든 방이 땅과 맞닿고, 집 안 어느 곳에 있더라도 집 안의 다른 공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집은 U자형 건물 가운데에 정원을 두고 방과 복도의 창을 통해 사방으로 서로 바라보고 있다. 반 층씩 오르며 방이 하나씩 일렬로 연결되어 각각 독립된 공간을 확보하는 동시에 열린 공간을 형성하는 것이다.

2 반 층 위에 자리한 부엌에서 바라본 거실 풍경. 건축물 구조가 만들어 내는 변화와 간의 깊이감으로 별다른장식을 하지 않아도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다.


1 침대 머리맡 창으로 보이는 전망이 일품이다.


2 맨 위층 침실은 잔디 정원으로 꾸민 옥상으로 직접 통한다.
3 부엌에서 반층 오르면 자리한 서재 앞 데크에서 양영심·김동남 씨 부부.


“비뚤어진 땅, 어려운 땅, 자투리 땅일수록 창의적이고 새로운 건축,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개발업자가 만들어놓은 바둑판 같은 땅은 결국 평균율의 건축을 만들어낼 뿐입니다. 난해한 땅이 오히려 건축가에게는 도전과 흥미를 유발하는 매력적인 땅이지요.” 김인철 씨는 오르는 집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땅이 갖고 있는 결점을 개성으로 해석했기에 가능한 디자인이었다고 말한다.
건축 작품이 아니라 사람 사는 곳으로서의 집의 가치를 알고 싶다면 자고로 안주인을 만나봐야 하는 법. ‘나는 멋있는 집을 짓는 사람’이라 말하는 건축가와 ‘아름다운 집’을 원하는 주부가 만나 집을 짓는 1년 2개월의 과정이 어떠했을지 궁금했다. “인테리어에 관해서는 자신이 있었어요. 아파트에 살면서 수리도 여러 번 해보았고요. 그런데 집을 지으면서 타일 하나 마음대로 고르지 못하니 속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요.” 안주인 양영심 씨가 공사 현장에 나와 있는 감리와 실랑이 벌이기를 수차례. 때로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결국 한 번도 주장을 펼쳐보지 못하고 완성된 집에서 살게 되었지만 그는 시간이 갈수록 건축가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단다. “언젠가 김인철 씨가 ‘이 집은 다 지어지기 전까지는 그 모습을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하시더군요. 그 말이 맞았어요. 제가 주장했듯 현관에 대리석을 깔고, 화장실에 유럽풍 타일을 붙였다면 얼마나 큰 실패가 되었겠어요.” 일부 벽은 콘크리트를 노출하고 흰색 벽지와 온돌 마루로 마감했을 뿐이다.


4, 5, 6. 집 안 곳곳에서 느껴지는 공간의 깊이감은 비탈진 지형을 그대로 살린 이 집의 매력 중 하나.



볼 것이 있으면 벽을 열어 창을 내고, 볼 것이 없는 벽은 닫았다. 구조에서 오는 공간의 깊이와 그림 같은 풍경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는 창이 어우러져, 집 안은 그림 한 점 걸지 않아도 부족함이 없는 공간이 되었다. 남들은 계단이 많아 불편하지 않느냐 하지만, 정작 양영심 씨는 몸을 바쁘게 움직일 수 있어 더 좋다고. 집 안과 정원에서 즐기고 누릴 것이 너무 많아 외출 생각이 없어진다며, 혹 이러다 집에만 있어 세상에 뒤처지진 않을가 하는 게 걱정이라면 걱정.
유독 집은 건축가의 이상과 집주인의 일상이 부딪치며 갈등하는 공간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건축가에게 있어 집은 이상과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예술 작품이고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집은 실용과 편리가 요구되는 일상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더 바랄 것 없이 좋은 집을 갖게 되었다는 김동남·양영심 씨 부부, 오르는 집을 짓고서야 비로소 아내(패션 디자이너 최연옥 씨, 지난 10월 김인철·최연옥 씨 부부는 패션/아키텍처 전이라는 공동 전시를 열었다.<행복> 324쪽에 그 소식을 담았다.)로부터 ‘집 잘 지었다’는 제대로 된 칭찬을 듣게 되었다는 건축가 김인철 씨. 그렇게 예술을 이해하는 건축주와 생활을 이해하는 건축가가 만난 이곳이 바로 행복한 건축이 아닌가 싶다.

1 경사진 지형을 그대로 살려 집을 지었기에 모든 방이 마당과 바로 연결되는 데크를 갖게 되었다.


2 창밖으로 펼쳐지는 좋은 전망을 잡아내기 위해 욕조를 바닥 아래로 파넣는 방식을 택했다.


3 거실에서 반 층 위로 오른 자리에 다이닝룸이 있다.
4 사진에 담을 수 없었지만 딸이 사용하는 이방에서는 반대편으로 난 문과 창을 통해 집 안의 모든 공간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김성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