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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있는 공간] 향기로운 철학자, 국화
‘꽃도둑’ 백은하 씨가 국화에 바치는 ‘향기로운 철학자’라는 제목으로 향기로운 글을 지었습니다. 꽃을 똑똑 따는 습관 탓에 꽃도둑이란 별명이 붙었다는 그는 꽃으로 그림도 그리고 꽃에 관한 글을 쓰기도 합니다. 꽃과 함께하는 그의 일상을 홈페이지 ‘은하의 풀밭’www.fullbut.com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왼쪽) 창가에 놓은 석양 빛을 닮은 소국 화분. 음식 냄새 대신 진하고 그윽한 국화 향이 감도는 부엌이 되었다. 동그란 화형을 만들고 싶다면 겉 싹이 7~8cm 자랐을 때 순을 치고 같은 방법을 반복해주면 둥글게 자리를 잡는다. 소국 화분은 플로리스트 최주희 씨(jooheezmail@hanmail.net) 제작.
(오른쪽) 연두빛의 소국 화분으로 식탁 위에 작은 풀밭을 만들었다.센터피스로 활용한 국화 화분은 플로리스트 최주희 씨 제작. 10월 말부터 시작하는 고창국화축제(063-564-9779), 함평 대한민국국향대전(061-320-3364)에서 더욱 다채로운 소국을 만날 수 있다.

당신이 나를 향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나를 베개에 넣어 자고
나를 마시고
무엇보다 나를 보살필 때의 그 깊은 마음이
내 마음과 하나로 접힐 때

가을, 향기로운 철학 한 송이는
피어납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쉽지 않습니다.
기질상 자잘하게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나 내가 당신과 함께 지낸다는 생각,
당신이 나를 보살피고 있다는 우정이 필요합니다.

무서리가 내릴 즈음
아, 드디어 꽃망울이 터질 때
우리의 우정은 숨결처럼 피어납니다.

생각을 주는 향기,
철학 하는 꽃이 있다면 바로 나입니다.
튼튼한 마음, 깊은 사색을 주는
선비의 꽃.




오만하다고요?
‘무서리를 맞아도 죽지 않는 아름다움’이 나의 단 하나의 오만입니다.
만상이 시들할 때에 높은 자태를 당신에게 줄 것입니다.

복을 주는 꽃이라는 말이 기쁘시겠지요.
가족을 기쁘게 하고 미소 짓게 한다면 그게 복이겠지요.
인스턴트 공기 속에서도 그윽한 향기를 집 안 가득하게 한다면
그게 복이겠지요.

식물학상 가장 진화한 꽃이라는 말도 신기하겠지요.
보십시오, 나의 모양은 얼마나 오랜 세월 다듬어지고 튼튼해지고
아름다워졌는지 말입니다.
인내했기 때문입니다.
휘파람 불며 피다가 이내 죽는 송이가 아닙니다.
서리를 맞아도 움츠리지 않는 기상을 키워왔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오랫동안 진화한 내 자태도 향기도
당신의 우정이 없다면
발휘될 수가 없습니다.
당신에게 나의 보석을 줄 수가 없습니다.

잎과 꽃이 진다 해도 우리의 우정을 의심하지 않길 바랍니다.
땅속 동지묘를 만들어 월동하고 봄이면 다시 자라날 것입니다.
깊은 믿음이란 그런 겁니다.

천상병 시인이 나를 향해 말한 대로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
그게 철학하는 순간입니다.

그걸 함께 나눌 벗을 만나고 싶습니다.

글 백은하


1 국화는 식물학상 최고도로 진화한 꽃이다. 중앙을 촘촘하게 메우고 있는 통 모양의 ‘통상화筒狀花’와 흔히 꽃잎으로 알고 있는 길쭉한 ‘설상화舌牀花’가 모여 하나의 꽃을 이룬다. 크고 탐스러운 꽃을 감상하고 싶다면 하나의 줄기에 한 송이의 꽃을 피우는 대국을 선택할 것. 꽃의 지름이 18cm 이상인 대국 중 보행홍란, 칠보, 동광, 봉천 등의 품종은 실내에서 화분으로도 쉽게 키울 수 있다.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대국 화분은 그루플라워앤가든 제품. 
2 국화 향기 가득한 침실. 하나의 꽃자루에 여러 개의 꽃을 피우는 중형 국화를 도자기 화분에 심었다. 길가에 핀 들국화처럼 자연스러운 느낌을 살리기 위해 돌과 이끼를 함께 연출했다. 봉오리 상태일 때는 반드시 바람이 잘 통하는 외부에 내놓아야 꽃을 피운다. 부드러운 파스텔 계열의 사랑스러운 국화 화분은 플로리스트 최주희 씨 제작.  

성정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