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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작가 이강소 씨의 일상 풍경 붓으로 그리는 힘찬 평화
가을이 오는가 싶게 하늘 높고 바람 맑은 날, 작가 이강소 씨의 작업실을 찾았다. 비닐하우스를 작업실 삼아 15년을 지내온 그가 ‘정리’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지난해.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그의 안성 작업실과 통영에서 함께했던, 일요일 오후의 평화.
어설프게 아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있을까. 그 어설픔이 사람을 향할 때라면 더욱이 말이다. 작가 이강소. 1970년대부터 한국 현대미술의 중심점에서 늘 새로운 시도를 보여온 작가, 70년대 설치 작업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실험기를 거쳐, 본격적인 회화로 돌아온 80년대 중반 이후 90년대로 이어지며 평면 작업뿐 아니라 세라믹 등 조형 작업과 작품 사진에 이르기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2008년 현재,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블루칩 작가. 치열했던 예술가의 인생을 단 몇 줄로 요약하며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막연한 긴장감과 기대감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그 긴장감과 기대감의 근원은 모두, 아예 모르는 것만도 못한 어설픔 때문이었다. 이를 들키고 싶지 않은 얄팍한 심정으로, 달리는 차 속에서 급하게 읽어 내려간 어느 미술 평론가의 심오한 듯 모호하고 관념적인 문장들은 되려 긴장감의 크기를 키워가고, 시커멓게 뒤엉킨 볼펜 자국처럼 어지러운 마음으로 그의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한여름 아스팔트만큼이나 뜨겁게 달궈진 긴장감을 식혀주려는 듯 그는 수박 한 접시를 내왔다. 그의 그림에서 보았던 붓놀림만큼이나 투박하고 힘차게 자른 수박을 한 입 베어 먹는 순간, 그 모양새만큼이나 시원한 맛이 흐른다. 수박 접시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전에는 며칠만 작업을 안 해도 마음이 불안했는데 요즘은 공사를 핑계 삼아 놀아요.” 듣다 보니 그 논다는 것이 하루 종일 서성거리고 사람들 일하는 거 물끄러미 바라보는 거란다. “골똘히 생각하는 것도 싫고 몇 달째 활자도 안 보고… 완전히 놀고 있어요.” 소년같이 수줍은 미소를 띠며 조용조용 나지막이, 흐릿하게 남아 있는 경상도 말투로 이야기하는 그를 바라보며, 언제 마음이 그리도 어지러웠는가 싶게, 그가 말하는 ‘아무것도 안 하는 놀기’, 예술가의 그 한가로운 한나절을 따라가보아도 좋을 듯싶었다.


1 이강소 씨가 안성 작업실 창고 앞에서 곰방이, 곰실이와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창고 속에는 1970년대 전시했던 작품에서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40년 작가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 From an Island-08019,(2008, 캔버스에 아크릴). 지난 5월 예화랑에서 열린 전시회에 소개된 이강소 씨의 회화 작품.


3 통영 작업실에서 찾은 작가의 붓에서 연륜이 느껴진다.

이곳 안성과의 인연은 20여 년 전 심문섭·박서보 씨 등 몇 명의 동료 작가들과 함께 근방에 터를 마련하면서 시작되었다. 나이 들면 내려와서 그림이나 그리며 살자고 각자 터를 마련했던 것. 그러나 정작 이곳에 자리를 튼 것은 그뿐이다. 비닐하우스를 작업실 삼아 보낸 세월이 15년. 그동안 작업실은 작품들에 자리를 모두 내주어야 했고 이제 더 이상 작업할 공간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지난해 마침내 그는 공사를 시작했다. 이제 ‘정리를 시작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곳에 오래 있다 보니, 복잡한 서울이 싫어요. 일이 있을 때만 서울에 올라가지. 전시 때도 오프닝만 참석하고 다시 가보지도 않았어요.”
그는 등산 한번 하자며 작업실 안내에 나섰다. 어리둥절해서는 ‘어딘가 전망 좋은 곳을 가려나’ 하는 기대를 갖고 그를 따랐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창고 세 채가 눈에 들어온다. 공사와 정리가 진행 중인 창고는 그의 작품들로 꽉 들어차 있다. 1973년 명동화랑에서 전시장을 막걸리 집으로 꾸밀 때 썼던 나무 탁자와 의자, 73년 전시했던 대나무 묶음도 눈에 띈다. 하나하나 맞춤 박스 속에 보관되어 있는 조형 작품. 창고 하나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회화 작품. 보고 있자니 이게 바로 ‘보물상자’다. 40여 년 동안 40여 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2백 회가 넘는 단체전에 참가했다는 그의 이력이 떠올랐다. 길 안내라도 하려는 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리를 따라붙는 곰방이와 곰실이(그가 일 년 전부터 키우고 있는 삽살개 형제다)를 따라 발길을 옮기니 필로티 구조로 공중에 띄운 갤러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정리가 덜 된 너른 마당에는 그의 거대한 조형 작품이 놓여 있다. 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니 ㄱ자 모양의 얌전한 한옥이 눈에 들어온다. 경주 양주마을 심수정을 모델 삼아 한옥을 들였단다. 한옥과 마당을 공유하며 한옥과 양옥을 결합한 도미토리 구조의 멋스러운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외국에서 찾아오는 기자나 미술 관계자 등 이곳을 찾는 객들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공간이다.


1 농협 창고를 개조해서 얻은 통영 작업실에서 이강소 씨가 회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이른 아침 스스로 맑은 기운을 느낄 때 작업에 몰입하게 된다고 말한다.


2 농협 창고를 개조해 마련한 통영 작업실 2층에서 바라본 전경

신축 건물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그곳에는 작은 한옥 한 채가 고요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10여 년 전 목수와 함께 그가 직접 지은 집으로 방 하나에 비좁은 화장실과 벽장 하나가 전부다. 이불 한 채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들이지 않은 공간. 가로 3.4m, 세로 2.6m의 작은 집. 이곳에 오자 비로소 작가 이강소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부터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이 청빈한 공간에서 매일같이 하루를 시작하고 끝을 맺었을 그를 상상하며, 어쩌면 그에 대해서 더 이상 알아야 할 것이 없다는 어리석은 생각마저 들었다. “안성에 내려온 이후로 자연스럽게 시골 사람들의 생활 습관을 갖게 돼요. 아침에 일찍 눈 떠 맑고 깨끗한 정신일 때 작업하고 또 저녁이 되면 술 한잔 곁들여 저녁 먹고 잠을 청하고….” 그는 촌부 같은 담백하고 정직한 삶을 살고 있었다.
통영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공사 때문에 한동안 안성에서 작업할 수 없으니 지난해 통영에 작업실을 하나 더 마련했다. 농협 창고를 개조한 통영 작업실은 증층 공사를 통해 아래층은 작업실과 창고, 위층은 거실과 간이 부엌 등 주거 공간으로 쓰고 있다. “통영 시장 진의장 씨가 이곳을 소개해줬어요. 그 친구도 글씨 좋아하고 그림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지. 심문섭 교수의 후배이기도 하고 내 술친구이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작업실 구한다는 소릴 듣고 이곳을 소개해줬어요. 지내면 지낼수록 이곳이 좋아. 처음 보았을 때 철골 구조가 아주 마음에 들었는데 지내보니 바다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풍경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곳이 좋아. 채광도 좋고 편안함이 있어요.” 안성 작업실은 공사가 마무리되더라도 안정적으로 작업을 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어쩌면 모든 것이 다 정리된 후에도 통영에 와서 그림을 그릴지도 모른다며 이 객지에 대한 애정을 늘어놓는다.
이곳에서 비로소 화가의 진행형 작업실과 작품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의 키를 훌쩍 넘는 대형 캔버스가 열을 맞춰 뉘어져 있고 어설픈 눈썰미로는 미완인지 완성인지 알기 어려운 그의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작업실 뒤에 자리한 그림 창고. “이쪽은 다 지워버릴 것들, 이건 지울까 말까 고민 중, 그리고 이건 맘에 드는 거…. 연애편지와 꼭 같아. 되었다 싶은데 다음 날 다시 보면 봐줄 수가 없거든.”


3, 4 어린아이 같은 맑은 웃음과 노 작가의 진중함이 함께 묻어나는 그의 다양한 표정이 매력적이다.

SG 워너비에서 바흐의 첼로 선율에 이르기까지, 안성에서도 통영에서도 그는 간간이 음악을 들려주었다. 어설픈 방문객의 긴장을 조금이라도 풀어주려는 듯 아니 어쩌면 자신의 어색함을 숨기기 위함일 지도 모르겠다. 족히 8미터는 넘을 듯한 높은 천장을 타고 흐르는 그 범상치 않은 선율에 이끌려 “음악 좋아하시나 봐요” 우문을 던지게 되었다. “적막하면 안 되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 자신은 평범한 사람이라 특별히 가리는 것은 없다며 뒤섞여 있는 CD를 뒤적이다 재즈 보컬 나윤선과 SG 워너비의 음반을 보여주며 이들을 아느냐고 묻는다. 통영 시내의 음반 가게에 들러 요즘 사람들 듣는 걸로 달라 했더니 권해주었다며, 노래 참 잘한다를 연발한다. 그러고 보니 그는 지난번 만남에도 몇 번이나 “나는 평범한 사람이라…”며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평범한 예술가. 이 세상에 자신을 평범하다 말하는 예술가가 그 말고 또 있을까? 특별하지 않으면 별 볼일 없다 취급하고 모두 다 자신은 특별하다고 아우성치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대가라 부르는 이 예술가는 자신을 평범하다 말하고 있었다.


1 작가 이강소 씨의 안성 작업실 2층 전경. 그는 고향인 대구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와 함께 직접 이 건물을 설계하고 디자인했다. 정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그가 글을 실었던 1970년대 서울대 미대 학보에서부터 최근의 전시 도록과 리플릿까지 그의 40여 년 작가 인생이 정리되어 있다.


2 안성 작업실의 외부 전경.

어제는 통영 멸치와 미역으로 직접 끓인 미역국과 갈치구이로 저녁을 먹었단다. “난 평생을 이렇게 살았어요. 경상대 교수로 있을 때도 학생들과 작업실에서 숙식을 해결했고, 뉴욕에 있을 때도 그랬고, 안성 작업실에서도 거의 혼자 지내니 밥은 잘합니다. 생각해보면 서글픈 인생이지. 허허. 우리 집사람은 할 일이 없어. 할 일 많다고 매일 ‘풍닥거리지만’ 빨래하고 옷 다리는 게 다인걸.” 통영에 왔으니 가자미찜을 먹으러 가자며 그가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한 귀퉁이 의자에 놓인 가방 안에서 그가 꺼내는 옷은 정갈하게 비닐 팩에 하나하나 담겨 있었다.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나타난 그의 단정한 매무새를 바라보며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은 남편을 위해 옷을 챙기는 아내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집사람은 도시 출신이라 시골 생활을 잘 몰라요. 이번에 집 짓는 것도 얼마나 반대했는지…. 내 일과가 새벽에 일어나 작업하고 저녁 먹으며 술 한잔 마시고 또 잠을 청하고…. 안성이고 통영이고 따라와봐야 할 일이 없지요.” 통영 시내의 한 식당. 음식을 권하는 그의 손에서 꽤나 오래되어 보이는 낡은 백금 반지가 반짝이고 있다. “같이 오래 살았다고, 작년이던가 딸내미가 반지를 해주더라구요. 우리 아내도 깜짝 놀라드만. 반지가 왜 이리 되었느냐고. 우리는 노동하는 사람이니까 아무래도 거칠어질 수밖에 없지.” “반지가 무슨 소용이고?” 한 마디 더 뱉어내면서도 혹시라도 반지가 손가락에서 빠져나갈까 머리라도 감을라치면 매우 조심스럽단다. 내색하지 않으려 해도 이내 드러나는 그의 속마음이다.


1 이강소 씨가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수첩에는 메모가 빼곡하다. 책을 읽거나 좋은 글귀를 발견했을 때 메모하는 습관의 흔적이다.
2 뒷짐 지고 서 있는 모습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한국현대미술의 역사’와 다르지 않은 그의 손이다.



3 세 채의 창고가 포함된 작업실을 짓고 보니 늘어난 열쇠만도 한움큼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학생을 가르치던 시절이 가장 알찬 시간이었어요. 경상대 교수로 재직하던 11년 중 10년은 학생들과 함께 작업실에서 먹고 자고 생활했지요. 올해는 한국미술사, 내년에는 동양미술사, 학기마다 과목을 조절해 가르칠 수 있었으니까 나도 공부를 열심히 했지. 내 작품 활동의 근간이 되는 논리적 바탕도 축적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요. 교수를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너무 자주, 오래 외국에 나가게 되니까(그는 경상대 재직 시절 2년간 뉴욕주립대 객원 교수 및 객원 예술가로 초청을 받았고 1991~92년은 P.S.1(뉴욕 현대미술연구소, 모마와 함께 현대 실험미술의 산실로 여겨지는 곳이다) 국제 스튜디오 아티스트 프로그램에 초청받아 뉴욕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수업에도 문제가 생기고 미안해서였어요. 뉴욕에 계속 머무를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기에 지방에 근거지를 두면 현실적인 제약도 있었고…. 멀쩡한 직장을 그만둔다니 마누라는 울고 난리가 났었지. 그때는 그림이 팔리던 시절도 아니고.”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과 인연이 깊다고 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문인화와 서예를 접했던 성장 환경. 그의 조부는 평생을 두고 서예와 그림을 즐기셨다. 아버지와 삼촌도 서예를 하셨다. 현재 대구에 살고 계시는 아버지는 아흔이 넘은 지금도 붓을 놓지 않으셨다며 안성에 지은 한옥 현판도 부탁 드려 놓았단다. 그리고는 어릴 적 이웃, 간판 가게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대문을 열고 나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간판 가게의 그림들. 미술 교사 출신인 화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하도 재미나서 언제나 저녁이면 그 옆을 떠나지 못했다고. “그때 간판 그림이 자연스레 눈에 익은 거지.”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그답게,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격으로 사관 학교에 갈 생각도 있었다며 이런저런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어놓는다. 그러고 보니 웃는 그의 눈매는 어느새 개구진 열일곱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감칠맛이 그만인 가자미찜과 매실주를 앞에 두고 그의 어릴 적 이야기,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서울로 향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너무 놀았다며, 내려왔으니 오랜만에 그림 좀 그려야겠다며 며칠 더 통영에 머무른다는 그를 뒤로하고 차에 몸을 실었다. 어찌 두 번의 만남으로 누군가를 ‘진정으로’ 알 수 있겠는가. 그저 이해의 깊이가 조금 더해졌을 뿐이다. 남들이 끄적거려 놓은 글귀가 아닌 내 마음에 닿은 그대로의 이해. 그를 처음 만나러 가던 날, 한여름 뙤약볕 처럼 편치 않았던 마음은 돌아오는 길 위로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평온을 찾는다. 그러고 보니 그는 가을 바람을 닮았다. 한여름 열기가 온기로 남아 있는 초가을의 청아하고 맑은 바람.


(위) 작가 이강소 씨가 10여 년 전 목수와 함께 지은 방 한 칸짜리 한옥. 이불 한 채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들이지 않은 소박하고 청빈한 공간이 바로 그의 내면 풍경 같다.




김성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