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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을 찾아서] "넉넉히 들어오는 환한 빛처럼 좋은 일만 가득하여라" 만경재
이제 막 제 모습을 갖춘 이 한옥은 장성한 대학생 아들, 딸부터 나이 지긋한 부모님까지 3대가 함께 살 집이다. 한옥에 살기 위해 3대가 같이 나설 정도로 가족애가 남다른 이들은 앞으로 그 따뜻한 마음을 이 고즈넉하고 여유로운 한옥과도 나누게 될 것이다. 환한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집, 만경재는 오롯이 새 주인의 입성을 기다리고 있다.


아담한 마당을 앞에 두고 다소곳하게 자리 잡은 만경재는 3대가 함께 살게 될 집이다.

지난 6월 완성된 가회동의 한옥 ‘만경재’는 3대가 함께 살 집이다. 이 집 주인인 강인실 씨 가족은 한옥을 의뢰하는 날부터 3대가 함께 건축가를 찾아갈 정도로 단단한 결속과 가족애를 자랑한다.
가족이 함께 좀 더 여유로운 삶을 누릴 집, 자연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집을 꿈꾸며 북촌의 문을 두드렸건만, 이들에게 그 과정은 간단치가 않았다. 한옥이 밀집해 있는 동네, 북촌에서도 제 맘에 드는 한옥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 좋은 한옥이 나오길 몇 년씩 기다린다는 사람들의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다. 이들이 처음에 공사를 시작한 한옥은 사실 3대가 살기에 조금 작다 싶은 집이었다. 하지만 입맛에 맞추어 집을 구하기가 어려우니 아쉬움을 안고 레노베이션 공사를 시작,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담당한 건축가는 아무래도 크기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가 없었던 것. 마침 이 집과 바로 옆의 한옥을 함께 의뢰받았던 건축가는, 이웃한 작은 두 한옥을 합쳐 3대가 함께 살 한 채의 한옥으로 만드는 것이 현명하다 싶었다. 재빨리 기지를 발휘, 이웃 한옥의 주인을 설득하기 시작했고, 결국 이웃 한옥과 합쳐 3대를 위한 큰 집으로 여유 있게 완성할 수 있었다.


사방으로 향한 문을 모두 활짝 열어놓으면 한옥은 바람이 들고 나는 시원한 바람길이 된다.

두 채의 작은 한옥을 합해 3대가 살 집으로 작은 한옥 두 채를 합쳤기에 이 집의 구조는 여느 한옥과 달리 독특하다. ㄷ자 형의 작은 한옥 두 채가 엇갈려 배열되어 마치 ㄹ자와 같은 형태인 것. ㄹ자를 따라 아들 방, 대청마루, 부모님 방, 주방, 소청마루, 다실, 안방, 딸 방, 그리고 도예를 전공하는 딸을 위해 마련한 작은 가마까지 차례로 이어진다. “3대 가족인 만큼 공간을 구성할 때 가족의 화합을 최우선으로 고려했습니다. 소통과 개방에 중심을 두고 가족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넉넉히 마련했지요. 널찍한 대청, 주방 옆에 있는 아담한 소청, 안채 정원을 차경할 수 있는 다실이 그것입니다. 동시에 가림과 단절도 무시하지 않았어요. 각 개인의 출입 동선이 자유롭도록 방을 배치하고, 장성한 아이들이 온전히 독립적인 공간을 갖도록 배려했습니다.” 한옥 레노베이션을 담당한 북촌HRC 김장권 대표의 설명이다.


1 구석구석 보물 같은 공간을 숨기고 있는 한옥 만경재는 북촌HRC(02-742-5042)에서 레노베이션을 담당했다.
2 아들 방 창 너머로 작지만 운치 있는 마당이 보인다. 마당 벽을 장식한 물고기는 밤에도 눈을 감지 않는다 하여 집을 지켜주는 존재로 여겨진다.


과연 이곳은 방만 나서면 공동의 공간과 마주치지만, ㄹ자로 굽이치는 한옥의 틀 안에서 개인의 공간들이 효과적으로 숨어 있다. 공동 공간도 조금씩 색깔이 달라서, 대청에서는 온 가족이 모여 시원스러운 바람과 왁자한 수다를 즐길 것 같고, 소청에선 식사 후 TV를 시청하며 여유를 부릴 듯하고, 다실에서는 차향과 마당의 초록을 감상하며 오붓하게 가족 간의 일을 상의할 것 같다.

3대의 교류가 더욱 풍성해지는 셈. 이 집의 이름 만경재滿景齋는 ‘볕이 가득 차는 집’이란 뜻으로, 김장권 대표가 작명해 선물한 것. 마당으로, 한지 창으로 들어오는 환한 햇빛처럼 좋은 일만 가득하라는 바람을 담았는데, 그 환한 빛을 배경으로 3대가 함께 누릴 풍성한 일상이 펼쳐질 것을 생각하니 절로 흐뭇하다.


3 부모님 방의 수납장에는 고운 비단 이불이 쌓여 있다. 주거 공간으로 손색없도록 수납공간 또한 넉넉히 마련했다.
4 주방 옆의 소청. 가족들이 식사 후 담소를 나누거나 TV를 시청하는 공간이다.


풍요로움을 위한 작은 변주 집 안의 마감재는 꼭 친환경적인 것으로 해달라는 가족의 부탁이 있어, 황토로 벽체와 바닥을 만들고, 벽지는 한지, 바닥재는 한지 장판으로 마감했다. 구석구석 둘러보다 보면 작지만 섬세한 배려가 시선을 끄는데, 다실의 미니 정원과 주방, 소청의 수묵화 프린트가 그것. 다실의 한쪽 창은 본래 이웃집 옥상으로 향해 있어 풍경이 다소 삭막했는데, 그 창 아래 미니 정원을 만드는 센스를 발휘했다. 앙증맞은 미니 정원은 시멘트 옥상이 바로 보이는 시선을 막아주고 다실에 따뜻한 정감을 더해주니 일석이조. 그리고 주방과 소청의 밋밋한 벽 한쪽에는 수묵화 프린트를 붙여 장식성을 더했다. 한옥의 백미는 여백이라지만, 집 안 한두 곳 정도는 이처럼 화려함을 살려 활기를 더한 것. 족자 그림보다는 과감하게, 그러나 한옥의 정서를 해치지 않도록 운치 있는 수묵화로 이색적이고도 멋스러운 공간을 완성했다.


5 다실부터 뒷마당까지 막힘없이 이어지는 시선.
6 주방의 아일랜드형 식탁은 나무 소재로 마감한 것으로 한옥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우리 건축물은 빈 공간이기를 기대한다. 햇살이 담기고 새가 날아 공간을 채우고 바람이 쓸고 갈 수 있는 빈 공간. 또한 과거의 역사적 실례가 아닌 현대에도 유효한 방법을 발견할 수 있는 전통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건축물이 진정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는 공간이라면, 시대와 문화에 따라 같이 변화할 수 있어야 마땅할 것이다. 변화를 주고 변화를 주지 말아야 하는 기준은 그곳에 사는 사람을 생각하면 된다.” 김장권 대표의 이 같은 철학에 따라 전통은 살리되, 3대의 일상을 위한 배려를 더한 한옥, 만경재. 이 집에서 펼쳐질 날들이 기대되는 이유다.


7 다실의 창 아래로 앙증맞은 미니 정원을 마련해 차 마시는 시간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