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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사람들이 사는 법] 디자인 회사 올토 코펜하겐 사장 토마스 부부의 오래되서 더 새로운 집
덴마크 사람들이 일상에서 가장 잘 쓰는 말 ‘휘게 hygge’. 입술을 오므려 ‘휘게’라고 발음하면 푸른 휘바람 소리가 난다. 이는 덴마크 사람들이 소망하는 안온한 정서를 요약하는 단어로, 주로 가족이나 친구들 사이의 소박한 행복을 말한다. 그러니까 ‘휘게’는 ‘행복이 가득한 집’의 덴마크 버전이다. 그리고 이 ‘휘게’야 말로 덴마크 디자인의 핵심이다. 보금자리를 자신의 감각대로 아늑하게 꾸미는 데서부터 디자인이 발달했다. 라이프스타일이 조금씩 다른 덴마크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코펜하겐 근교 아파트에 사는 젊은 부부의 집에서는 근교살이의 즐거움을, 수도에서 기차로 다섯 시간 떨어진 전원에 사는 괴짜 가구 디자이너로부터 시골살이의 재미를, 코펜하겐 시내에 인기 있는 카페를 낸 주인장에게서 모던한 전통이 풍겨나는 도시 이야기를 들어본다.



1 올토 코펜하겐 사무실 외관. 왼쪽부터 남편 토마스, 친구 야코브, 아내 카리나 씨.
2 카리나의 방은 사무실에서 가장 따뜻하고 환한 곳에 있다.
3 사무실 곳곳에 올토 코펜하겐에서 디자인한 제품의 사진을 작품처럼 걸어두었다


작고 단단한 디자인 회사 올토 코펜하겐을 이끄는 젊은 부부를 만나러 코펜하겐 근교로 향했다. 한국으로 치면 한적한 버전의 일산이나 분당 격으로,ㅍ공기가 좋고 코펜하겐과 멀지 않아 30~40대 부부가 많이 사는 지역이다. 일과 생활에 스며든 이들의 디자인 마인드와 덴마크의 중산층 젊은 부부가 사는 고풍스러운 아파트를 찾아 떠났다.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로 이룬 회사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의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파룸 역Farum Station이 나온다. 도심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한적한 근교 분위기가 난다. 수목이 말끔히 정리된 마을에 주택이 띄엄띄엄 들어섰다. 느긋하고 안전해 보여서 이방인도 경계심을 풀게 하는 마을이다. 주택가 사이를 슬슬 거닐다 보면 토마스Thomas&카리나Carina 부부와 디자이너 야코브Jacob 씨가 설립한 디자인 회사 올토 코펜하겐OLTO Copenhagen을 만나게 된다. 1층짜리 아담한 코발트 블루 건물인데, 현관에 크게 적힌 번지수를 예의주시하고 걷지 않았다면 살림집으로 여겼을 법하게 생겼다.
올토 코펜하겐은 영업과 마케팅을 맡은 토마스, 리서치 및 제품 기획을 담당하는 카리나, 디자인을 책임지는 야코브 씨 단 셋이 운영하는 작고 단단한 회사다. 작년 6월에 설립해 우선 혁신적인 주방 용품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회사의 첫 작품은 ‘스시 박스’다. 정사각형 도시락처럼 생겼는데, 뚜껑을 열면 그 안에 언제 어디서나 스시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도구가 들어 있다. “기름기가 적고 담백한 건강식인 스시가 몇 년 전부터 덴마크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북유럽 덴마크에서는 스시 가격이 아직 비싼 편이에요. 그래서 횟감과 쌀밥만 있으면 누구라도 집에서 스시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토마스 씨와 야코브 씨가 ‘스시 광팬’이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회사를 함께 한 것은 작년이지만, 인연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리나 씨와 야코브 씨의 부인 루이스 씨가 아이를 낳기 위해 같은 산부인과 병동에 입원하면서 이들은 처음 만났단다. 30분 차이로 각자 딸을 순산했고, 그 인연으로 두 가족은 꾸준히 교우했다. 야코브 씨는 7년간 노키아에서 핸드폰 디자이너로 일해오다가 좀 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싶던 차였고, 토마스와 카리나 씨 부부 역시 새 기획을 구상하고 있었기에 동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원래 주택이었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이 사무실은 주로 토마스 부부가 쓰고 있다. 야코브 씨는 현재 독일에 거주하며 회의가 있을 때만 이곳으로 온다. 토마스 씨가 사무실을 안내했다. “풍수 전문가의 조언으로 인테리어를 했습니다. 아내와 제 방의 위치, 방의 전체적인 색상과 책상의 방향 등을 상의했습니다.” 덴마크에서도 풍수 인테리어가 각광받고 있으며, 이들 역시 건강하게 일할 수 있고 사업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풍수 인테리어를 선택했다고.

토마스 씨의 심플한 사무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자기 키만큼 커다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조각상이다.

회의가 이루어지는 미팅 룸은 이 사무실의 ‘거실’ 격이다. 답답하게 밀폐된 방보다는 아이디어 회의 중 다른 방이나 부엌 등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이 좋았기 때문이다. 회의실 한쪽에는 견본 제품을 진열해둔 것 외에 장식이나 진열을 최소화했다. 대신 아릭 레비의 의자나 벽면에 걸어둔 큰 회화 작품 등 몇 가지 요소에서 주인의 취향을 읽을 수 있다.
공간은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이지만, 이곳에서 회의할 때 떠도는 기운은 때론 치열하고 때론 아주 차갑다. “우리 디자인의 핵심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입니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뜨겁게 회의하지요. 한편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상품성 없다고 판단되면 이에 대해 가차없이 말할 줄도 압니다. 셋이 서로에 대해 아주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야코브 씨의 말이다. 올토 코펜하겐의 상품은 ‘심플할 것, 청정할 것, 안전할 것’ 등의 가치를 염두에 두고 만든다. 스시 박스를 예로 들면 ‘횟감을 자르고, 밥으로 모양을 빚고, 접시에 진열해서, 전용 포크로 먹는다’는 기능을 만족시킬 도구들을 친환경적이고 견고한 플라스틱을 이용해 최대한 심플하게 제작했다.


미팅룸은 마치 거실처럼 사무실 한운데 자리한다. 불필요한 물건은 두지 않고 되도록 심플하고 깨끗하게 꾸몄다. 부부가 함께 고른 아릭 레비의 의자가 눈에 띈다.


214년 된 붉은 벽돌 아파트 자동차로 15분쯤 떨어진 곳에 있는 토마스*카리나 씨 부부의 아파트로 향했다. 가는 길에 유치원에서 오전 여덟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지낸다는 다섯 살 난 딸 에밀리아Emilia를 데리러 갔다. 평소 그날의 회사 스케줄을 보고 엄마나 아빠 중 한 명이 다섯 시쯤 아이를 데리러 간다. 다른 한 명은 먼저 집으로 가서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현대의 덴마크는 여성의 지위가 높아져 여자들만 애를 돌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성들의 사회생활이 적극 권장되지요.” 토마스 씨는 덴마크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대체로 1년은 부모가 키운다고 설명한다. 이 부부의 경우 토마스 씨가 신생아 육아를 담당했다. “에밀리아가 유치원에 들어간 뒤로는 아이를 픽업하러 유치원에 가는 시간을 정말 좋아합니다. 아이와 단둘이서 친밀해지는 시간이에요.” 토마스 씨는 유치원 문 앞에서 아이를 차에 태워 오기만 하는 게 아니다. 우선 들어가서 유치원 어디에선가 놀고 있는 에밀리아를 찾아, 아이가 제 손으로 자기 도시락이며 소지품을 챙길 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리며, 아이와 함께 친구들, 선생님과 인사하고, 겉옷을 입혀서 데리고 나온다. 모든 순간에 부녀간에 친밀한 대화가 이루어진다.

(왼쪽) 사무실 입구에 들어서면 붉은색 포인트 월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오른쪽) 사업 파트너이자 제품 디자인을 담당하는 야코브 씨는 현재 독일에 살며 회의가 있을 때마다 이곳에 들른다.


부부는 코펜하겐에 살다가 육아 환경을 고려해 6년 전 숲이 많아 공기가 맑은 이곳으로 이사 왔다. 그들이 ‘아파트’라고 부른 집은 우리나라처럼 건조한 콘크리트 고층 건물이 아니었다. 다세대 빌라 정도로 볼 수 있는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주택이었다. 1895년에 지었는데, 앞으로 시간이 더 흘러 오래될수록 더욱 멋스러워질 건물이다. “벽돌로 외관만 장식한 건물이 아니라,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고 벽돌로만 외벽을 쌓은 아름다운 아파트입니다. 덴마크 아파트는 대체로 벽돌집이에요. 1970년대 코펜하겐에도 한때 다른 나라처럼 콘크리트 아파트가 지어지기도 했습니다만, 곧 외면당했어요. 정서가 맞지 않았나 봅니다.”
실내로 들어가니 일단 높은 천장과 윗면이 둥근 창틀이 눈에 들어온다. 내추럴한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부부는 바닥을 아이보리빛 원목으로, 이와 어울리도록 벽면을 화이트에 가까운 미색으로 마감했다. 천장도 높은 데다가 채광이 풍부하고 집 안을 일관되게 밝은 톤으로 꾸며 내부가 훨씬 널찍해 보인다. 전체적으로는 장식을 배제한 꾸밈에 드문드문 화사한 쿠션이나 꽃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그러고 보면 덴마크 사람들은 특별한 일이 없어도 꽃을 자주 산다. 슈퍼마켓에서 오렌지 주스 사듯이 장을 보면서 꽃 한두 다발을 사는 식이다. 카리나 씨는 “꽃은 예쁜 데다가 집 안에 좋은 에너지를 준다”고 설명한다.

(왼쪽) 토마스&카리나 씨 부부의 1800년대 아파트는 특히 창문이 아름답다. 그래서 인테리어를 심플하고 내추럴하게 했다. 
(오른쪽) 다섯 살 난 딸 에밀리아의 방. 에밀리아는 자그마한 텐트에서 놀기를 좋아한다.


35년 동안 충성을 다하는 쓰레기통 거실에는 삼성의 평면 텔레비전과 뱅앤올룹슨의 홈시어터 스테레오가 있다. 삼성의 평면 텔레비전과 모니터는 가격이 합리적이고 기능이 우수해 이곳에서 인기가 많다. 한편 덴마크는 뱅앤올룹슨의 고향이니만큼 현지에서 이 명품 가전에 대한 자부심과 신뢰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다만 한국에서는 뱅앤올룹슨이라는 ‘명품’ 하면 디자인과 함께 가격이 먼저 떠오르지만, 이곳에서는 디자인과 함께 기능이 먼저 떠오르는 국민 가전인 셈이다. 가령 이 집에는 화장실에도 작은 뱅앤올룹슨 라디오를 두었다. 신성시하기보다는 가까이 두고 유용하게 쓰는 데서 의미를 찾는 것이다.
부엌에 놓인 레트로풍의 오래된 쓰레기통이 눈에 띄어 카리나 씨에게 물어보았다. “이 쓰레기통은 태어난 지 35년 되었어요. 제 아버지가 구입한 빕Vipp사 제품으로, 우리 집에서 여전히 훌륭하게 제 몫을 다하지요.” 빕사는 특유의 둥근 뚜껑이 달린 원통 쓰레기통 시리즈로 유명한 덴마크의 제품 회사다. 몇십 년 전에 생산된 제품이 촌스럽기보다는 레트로풍으로 디자인한 최신 제품처럼 세련되었다. 카리나 씨는 고장 나면 고쳐서 사용하는 게 당연하다는 투다. 하긴 디자인이 예쁘고 튼튼하니 버리고 싶은 마음이 없을 법도 하다. 옛것을 사랑하는 마음은 거실 한쪽에 둔 오래된 와인 배럴에서도 느껴진다. 카리나 씨가 예전에 와인 회사에서 일할 때 얻은 낡은 와인 배럴이다. 여기에 모던한 뱅앤올룹슨 오디오를 올려두었다. “옛것과 새것의 조화를 좋아해요. 옛것에서는 내추럴한 향기가 묻어나서 어떤 것과도 편안하게 매치되지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전형을 느낄 수 있는 다이닝룸. 친구들 초대하기를 즐겨 테이블은 큰 것으로 장만했다. 실내에 부분 조명을 많이 쓰는 것도 이곳 인테리어의 특징.


단순하게 꾸민 거실에서 눈에 띈 것은 와인 배럴 위의 뱅앤올룹슨 오디오였다.


토마스&카리나 씨의 사랑도 옛 정과 새로운 변화가 갈마들며 더욱 깊어졌다. 젊을 적 여러 친구들과 함께 한 파티에서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에 골인한 이들은 그 폭발적인 열정이 이제 깊은 신뢰로 옮아 갔다. 젊은 시절의 관심은 온통 서로에게만 뜨겁게 편중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새로운 사업과, 표정이 늘 생동감 있게 변하는 딸에게로 그 시야가 넓어졌다.
토마스 씨가 생각하는 ‘행복이 가득한 집(휘게)’이란 이런 순간이다. “저녁 여덟 시에 딸에게 ‘그만 자자’고 하면 ‘햇님도 아직 놀고 있는데 왜 나만 자야 하냐’고 귀엽게 항의합니다. 참고로 덴마크에서는 요즘 밤 10시 무렵에 해가 지지요.” 가족 모두 웃음이 ‘파’ 하고 터지는 이 순간, 그지없이 따뜻하고 안온하다. 혹은 친한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맥주 한잔 하는 시간, 팝콘처럼 고소한 웃음이 퐁퐁 터질 때마다 부부는 행복하다.

올토 코펜하겐 제품을 구입하려면
아직 한국에 수입되지 않는다. 스시 박스의 경우 이미 일본 등에도 제품이 진출한 상태로, 토마스 씨는 한국의 파트너를 찾고 있다. 사업 제휴 및 제품 구입은 웹사이트를 통해 문의하면 개별적으로 안내해준다. ‘올토 스시 박스’에 이어 ‘올토 멀티 디시OLTO Multi Dish’가 출시를 앞두고 있다. 냉장고와 오븐에서 두루 쓸 수 있는 심플하고 내구성 좋은 그릇 세트다. 세라믹으로 만든 부엌용 칼도 야심 차게 기획 중이며 조만간 출시될 예정이다. 쇳가루가 나올 위험이 전혀 없는 제품으로 쇠보다 10배가량 날카로워서 슬라이스할 때 팔에 무리가 없다. 칼 전체가 화이트, 핫핑크, 옐로 등 독특한 색으로 처리되어 하나쯤 갖고 싶은 제품이다. 문의 +45-2148-8146, www.olto-copenhagen.com, thomas@olto-copenhagen.com

안과 밖의 시간 차이, 최소 1백 년?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 씨는 덴마크 국립 디자인 스쿨에서 가구 디자인을 공부했다. 유학 시절 그에게는 외관이 낡은 건물이 대부분인 덴마크 거리 풍경이 낯설었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허름해 보이는 건물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말끔히 정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외관을 장식하기보다는 생활 공간을 꾸미는 일에 훨씬 공력을 들이는 덴마크 사람들의 실용적인 기질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덴마크에서는 건물을 밖에서 바라보다가 안으로 들어가면 타임머신 타고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곤 한다. 사진에서 보듯 토마스&카리나 씨 부부의 아파트도 1895년에 지은 건물이다. 이들이 이곳으로 이사올 무렵 이 아파트는 전체적으로 실내 레노베이션을 하고 있었다. “이곳은 입주자가 직접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대로 바닥재며 벽면 등 인테리어 시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붉은 벽돌로 지은 외관은 변형할 수 없었지요.” 덴마크 사람들은 건축물에 대해 이와 같은 원칙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건물이 1백 년 넘었다고 해서 허무는 일이 없고, 다만 현대인들이 살기 좋게 내부를 조금씩 보수해가는 정도다. 토마스 씨의 설명에 우리도 옛 건물을 부수고 짓는 일에 좀더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닐지 생각해보았다.



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