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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 스타일] 인테리어 디자이너 조은숙, 조선숙 씨 디자인의 꽃은 사람이다
20여 년간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조은숙 부티크를 이끌었던 조은숙·조선숙 씨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돌아왔다. 카페 플라스틱을 운영하며 디자인계를 떠나 있던 그들의 지난 7년은 공백이 아닌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 이제 연습 게임을 접고 본게임을 시작하는 그들을 만났다.


1 카페 플라스틱 내부에서 보면 창문 밖으로 메타세쿼이어 정원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2 카페 플라스틱의 입구에 앉아 있는 조은숙 씨와 조선숙 씨. 왼쪽이 동생 조선숙 씨, 오른쪽은 언니 조은숙 씨. 


지나간 시절에 대한 추억은 사람으로 남기도 하고 사건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유행가 한 소절로 시간을 기억해내고 어떤 이는 장소를 통해 과거를 추억하기도 한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1997년을 사람들은 무엇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결혼을 했다거나 첫아이를 낳는 등 개인적인 이슈가 있었던 이들은 설레었던 그 마음을 떠올릴 것이고, IMF 한파를 비켜 가지 못했던 이들은 아픈 과거를 기억할 것이다. 20여 년을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조은숙 부티크’를 이끌었던 조은숙 씨에게 1997년은 카페 플라스틱 그 자체로 각인되어 있다.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주변 사람들의 우려도 많았지만 스스로를 ‘카페 걸’이라 부르는 그는 오랜 시간 마음먹었던 공간, 플라스틱의 주인이 되었다. 디자인을 맡았던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종환 씨마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플라스틱은 그 모든 우려를 씻어내고 오픈과 동시에 세간의 관심을 받으며 어느새 청담동 일대의 트렌드세터가 모여드는 명소가 되었다. “플라스틱에서 검은 옷을 입고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디자이너다” “플라스틱에 오면 디자인이 보인다”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 2층 높이로 탁 트인 미니멀한 실내 공간과 메타세쿼이아가 울창한 정원이 있는 플라스틱은 돌파구가 없어 보이던 그 우울한 시절(IMF를 기억하는가)에 사람들의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드는, 위로의 공간이 되어주었다.

하루가 다르게 새 옷으로 갈아입는 유행의 중심지에서 11년 전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전혀 뒤처짐 없이, 세월의 힘을 매력으로 발산하고 있는 플라스틱에서 조은숙 씨와 조선숙 씨 자매를 만났다. 1980~90년대 탄탄대로를 걷던 패션 디자이너에서 90년대 후반 청담동 일대 상업 공간의 기준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은 카페 주인으로, 다시 인테리어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본격적으로 첫발을 내디딘,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E&S 대표 조은숙·조선숙 씨.

공간이 아닌 사람이 주인공 “언니는 예전부터 카페 마니아였어요. 이화여대 앞에서 조은숙 부티크를 운영하던 1980년대 초반, 아침에 출근하면 어느새 사라지고 없는 거예요. 찾아보면 영락없이 길 건너 ‘난다랑’에서 커피를 마시며 앉아 있지요. 아예 보따리를 싸 들고 가서 그곳에서 일하는 날도 많았어요” 조선숙 씨는 언니 조은숙 씨의 카페 사랑에서 비롯된 일화들을 늘어놓는다. 패션쇼를 보기 위해 파리에 가서조차 쇼에 참가하는 날보다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더 많았다. 숱한 카페 탐방 이력에 플라스틱 운영의 구력이 더해지면서 조은숙 씨가 깨닫게 된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다. “패션 디자인은 사람보다 옷이 중심이 되지요. 사람들로 하여금 모델이 아닌 옷을 바라보게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패션 디자인과 인테리어 디자인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여기 있어요. 좋은 인테리어 디자인은 공간이 아닌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힘이 있어요.”


3 조은숙 씨의 침실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은 독일 작가 000000의 작품. 조은숙 씨는 공간에 어울리는 작품을 선택할 때 굳이 인테리어 스타일에 맞추려하기 보다 압도감 있는 작품을 고른다.

어느 날인가 그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플라스틱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물끄러미 허공을 바라보다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홀로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공간이 아닌 사람이 돋보이는, 삶이 묻어나는 공간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순간 머리를 스쳤던 생각 하나, ‘공간의 꽃은 사람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는 우리의 세 번째 명함은 주변 사람들이 만들어준 것인지도 몰라요. 공간 디자인을 하게 될 거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티크 운영에 전념하던 시절에도 집을 꾸미는 데 도와달라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어요. 그저 친구와 이웃의 청이었고, 나 또한 그런 청이 싫지 않아 여유가 닿는 범위에서 사람들을 도와주곤 했지요.”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조은숙 씨는 호탕하게 웃으며 결혼 한 달 만에 신혼살림 대부분이 사라졌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날 김금지 선생님이 오시더니 거저 달라 하지 않을 테니 소파를 달라 하여 자신이 직접 제작했던 신혼살림 소파를 내드렸다. 며칠 후에는 친구가 식탁을 보고 하도 탐을 내기에 내주고 말았다. 결혼한 지 겨우 한 달도 안 되어 날마다 살림살이가 하나씩 사라지니 남편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다 가져다 팔아도 좋으니 나만 팔지 말아라.”


1 거실에 앉아 조은숙 씨가 책을 읽고 있다. 한지로 마감한 격자 창을 통해 은은하게 퍼지는 빛이 공간을 한층 부드럽고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2 , 3, 4 조선숙 씨 집에서 발견한 그의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작은 풍경들.

옷을 만들던 시절엔 살아생전 옷을 만드는 일을 그만두리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조은숙 부티크와 플라스틱을 3년간 함께 운영하면서 지금껏 패션에 쏟아 부었던 그들의 관심은 어느덧 공간으로 이동해가고 있었다. 사무실이나 명함도 하나 없이 주변 사람들을 중심으로 알음알음 인테리어 디자인과 컨설팅을 해준 것이 어느덧 7년. 조은숙·조선숙 씨 자매는 이제 7년간의 연습 게임을 접고 본게임을 펼치기 위해 지난 6월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E&S(02-541-8404)를 오픈했다.


5 침실과 서재 사이의 벽을 채우고 있는 유화는 재불 작가 황호석 씨의 작품이다.


1 두 개의 반상을 포개고 그 사이에 자수가 놓인 알록달록한 목베개를 채워 사이드 테이블을 연출했다. 
2 원목 식탁, 검은색 빈티지 의자와 그림이 세련된 조화를 이룬다. 그림은 윤형근 씨 작품.


대한민국에 조은숙밖에 없다 E&S에서는 스튜디오 오픈 기념으로 재미 리빙 아티스트 김영연 씨의 전을 열고 있다. 김영연 씨는 조은숙 씨가 졸업 후 패션계에 첫발을 내디딜 당시의 스승이었다. 그 또한 패션 디자이너 출신으로 30년 넘게 작업하며 고이 간직해온 작품들을 조은숙 씨를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자식같이 아끼는 작품들이지요. 그저 내가 좋아서 만든 것들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사고 싶어 했지만, 단 한 점도 팔지 않았어요. E&S를 통해 작품들을 공개하게 된 것은 조은숙 씨를 믿기 때문입니다. 제가 항상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어요. ‘대한민국에 조은숙밖에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어야 빛을 발할 수 있는데,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조은숙 씨라면 제 작품이 있어야 할 곳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김영연 씨가 30여 년간 자식처럼 품고 산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용기를 준 것은 바로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마음’이었다. 오랜 세월 스승과 제자인 동시에 동료 아티스트로 서울과 미국을 오가며 주고받은 교류는 서로의 세상을 향한 시선과 예술을 바라보는 안목에 대한 신뢰를 만들어주었고, 그 결실의 하나가 바로 김영연 씨가 66세에 이르러 마침내 신인 작가로 등단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신인’이라는 단어에 열광하고 있었다. “오래된 장맛이 일품이듯, 사람도 오래 묵은 사람이 좋아요. 오래되고 익숙한 것의 매너리즘을 극복하고 이끌어내는 새로움이 진짜 새것이라 생각해요. 세월과 경험이 가져오는 묵직한 힘,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서 나오는 신선한 것과 세월과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새로움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신인이고 싶어요.”


3 5층 아파트의 장점을 살려 천장을 올리고 고재로 00를 올렸다. 소파 위 그림은 허달재 씨의 작품이고 소파 왼편으로 백남준 씨의 작품이 놓여 있다. 
4 다용도실로 향하는 문도 한지로 마감해 부엌 공간을 한층 아늑하게 연출했다. 매일 사용하는 찻상을 아일랜드 아래 뉘어 놓은 모습조차 아름답다.


다른 공간과 달리 주거 공간 디자인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디자이너의 연륜이라고 조선숙 씨는 말한다. 모든 분야가 그러하겠지만, 일상을 담아내야 하고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삶을 존중해야 하는 만큼 관록과 신중함이 꼭 필요한 분야라고.

마르지 않는 칭찬과 격려의 샘 “저희 둘 사이에 학교에서 강의하는 언니가 하나 있어요(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교수 조기숙 씨). 20~30년씩 묵은 대학 집기들로 채워진 교수 연구실을 상상해보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구를 모조리 바꾸지 않는 이상 변화가 불가능할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기숙 언니가 교수로 임용된 후 저희 두 자매가 출동을 했지요. 책장과 책상 등 기존 가구의 배치만 달리했는데도 전혀 다른 공간이 되었어요.” 사람들은 집 구조를 바꾸고 마감재를 새로 입히고 가구를 바꿔야 새로운 공간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실은 가구 배치를 바꾼 후 그림 한 점 걸거나 패브릭만 모두 바꾸어도 얼마든지 새로운 연출이 가능하다고 조선숙 씨는 강조한다.


조은숙 부티크 시절 수집했던 재봉틀 미니어처. 
6 반질반질 손때 묻은 앤티크 조각보와 컬러 글라스 화기의 컬러 매치가 돋보인다.


또 다른 언니 이야기가 나왔으니 내친김에 자매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조선숙 씨는 졸업 후 곧바로 조은숙 부티크에서 일을 시작했으니 언니 조은숙 씨와 함께한 것이 20년을 뛰어넘는 세월이다. 아무리 자매라지만 함께 일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 않느냐 물었다. “언니는 칭찬과 격려의 샘이 마르지 않는 사람이에요. 사실 언니의 그런 마음이 저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죠.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에서 종이 카드를 한 장 만들어 왔는데, 언니가 그걸 보더니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어요. 너는 그림에 재능이 있다며. 그 작은 순간이 제가 대학에서 섬유예술을 전공하고 디자이너가 된 계기예요.”

언니 조은숙 씨는 항상 좋은 것과 잘한 것을 먼저 인정해주는 사람이라고 조선숙 씨는 이야기한다. 어느 날인가 조선숙 씨의 오랜 친구 하나가 “너는 좋은 언니가 있어 좋겠다. 네가 너무 부럽다” 하고 말하는 것을 듣고 조은숙 씨는 “너도 동생들에게 좀 더 잘해줘보렴. 누군가 네 동생들을 부러워하지 않겠니?” 하며 먼저 베풀고 나누기를 조언해주었다. 얼마 후 그 친구는 정말 자신이 먼저 베풀고 나누니 동생들도 달라지고 자신도 달라지더란다. 그러면서 “은숙 언니가 왜 그리 항상 모든 일이 잘되는지 알겠다”라고 말했다고. 조은숙 씨는 “나는 칭찬과 격려의 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내가 남에게 한 칭찬과 격려를 상대방이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그 에너지가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 자신에게 되돌아 온다고 믿는, 즉 긍정의 힘을 믿는 그다.


1, 2, 3, 4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E&S를 오픈하면서 조은숙·조선숙 씨는 재미 리빙 아티스트 김영연 씨의 전시회를 마련했다. 조은숙 씨의 패션계 입문 당시 은사이기도 한 김영연 씨를 위해 오픈 당시 오로지 그의 작품과 컬렉션으로 스튜디오를 꾸몄다. 사진 속의 가구와 오브제들은 모두 김영연 씨의 작품.



10년을 살아도 새집 같고, 새집이라도 10년을 산 듯 정말 피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엄마와 이모를 자랑스러워하며 디자이너를 꿈꾸는, 조선숙 씨의 아들 호진 군은 큰이모 조은숙 씨의 어릴 적 모습을 꼭 빼닮았다. “그 뻔한 고등학생 살림으로 사흘이 멀다 하고 제 방의 가구를 옮겨대요. 한창 공부해야 할 시간에 이리저리 가구를 옮기고 있으니 엄마 입장에서 보면 속이 터지지만, 디자이너의 눈으로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책상, 의자, 침대 등 몇 개 되지 않는 가구로 얼마나 다양하고 참신한 조합이 나오는지….” 옆에서 듣고 있던 조은숙 씨는 조카 호진이처럼 어머니 눈을 피해 매일같이 방을 둘러엎던 자신의 학창 시절이 떠올랐는지, ‘정말 나랑 똑같다’를 연발한다.

그들이 지향하는 집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물었다. 돌아온 답은 ‘10년을 살아도 새집 같고, 새집도 10년을 산 것처럼’. 그렇다면 그들이 살고 있는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박공지붕으로 시원스레 천장을 높인 조은숙 씨의 아파트. 곳곳에 족히 1백 호는 넘을 듯한 그림이 걸려 있고 단정한 디자인의 가구가 조용한 모습으로 놓여 있다. 처음 들른 낯선 공간임에도 왠지 모를 편안함. 오래된 집이 전해주는 편안함이라 속단하며 “이곳에서 오래 사셨나 봐요?” 하고 묻자 이사한 지 일 년 남짓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의 집은 말 그대로 10년을 산 것 같은 새집이다. 벽지 대신 사용한 고운 한지가 전해주는 아늑함과 손때 묻은 정갈한 가구, 오랜 세월 동안 하나 둘 수집한 미술 작품에서 전해지는 정서 때문이리라. “집은 우선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고 싫증 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해요. 집은 쇼룸이 아니지요. 최소한의 인간미는 남겨둘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거실에서 TV를 걷어내고 갤러리처럼 꾸미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요즘처럼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세상에서 TV 보는 시간만이라도 함께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면 모양새가 조금 덜 세련되더라도 남겨두는 것이 옳은 일이지요.”


김영연 씨가 제작한 금속 오브제와 철제 가구 뒤로 걸려 있는 사진은 모두 그의 아버지이자 원로 사진작가인 김재권 씨의 작품이다.

“한동안 집으로 손님 초대하는 것이 촌스럽고 불편한 일인 양 취급받았지만, 머지않아 사람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겁니다. 벌써 그 움직임이 제게는 감지되고 있어요. 최신 트렌드로 치장하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밥 먹고 차 마시는 것이 멋져 보이는 시대는 이제 저물어가고 있어요. 앞으로는 친구를 만나거나 모임이 있을 때 집으로 모이는 경우가 점차 많아질 겁니다. 이제 공간은 나를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겁니다.”

몸에 입히는 패션에서 사람을 담는 큰 그릇인 공간으로 그 영역을 넓혔을 뿐이다. 여전히 그들이 지향하는 디자인의 중심은 사람이라고 조은숙 씨와 조선숙 씨는 말한다. 세상에는 의외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만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그들에게서 공간의 화려함보다 사람의 향기가 먼저 전해지는 디자인을 기대해본다.


6 왼쪽부터 조선숙 씨, 김영연 씨. 조은숙 씨. 조은숙 씨의 스승이자 동료 아티스트인 김영연 씨는 30여 년간 활동을 하며 간직해 온, 자식과도 같은 작품들을 이번 전시를 통해 세상에 공개했다 .

김성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