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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생활의 필수품 리모컨 하나로 세상을 통째로 가져라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자 최악의 발명품이기도 한 리모컨. 그 많은 버튼들, 보기만 해도 골치 아프다. 또 청소할 때는 얼마나 ‘거치적’거리는가. 그런데 리모컨 없는 생활을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리모컨의 기본은 TV 리모컨이며 이것이 발전해 집을 통제하고 생활을 컨트롤하게 될 것이다. 홈 네트워크, 인텔리전트 홈으로 들어가기 위한 열쇠인 것이다.
세상을지금 우리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리모컨의 개수는 몇 개나 될까? TV·케이블 TV·DVD 플레이어 리모컨, 오디오 리모컨, 에어컨 리모컨은 기본이며 공기청정기, 로봇청소기에 벽면에 부착된 난방과 조명용 컨트롤러에 아이가 놓고 간 플레이스테이션 컨트롤러며 컴퓨터 리모컨, 장난감 자동차 리모컨, 남편 차와 내 차의 리모컨까지, 대충 어림잡아도 20개는 될 것이다. 그야말로 우리의 생활은 리모컨에 점령당했다. 처음 리모컨이 등장했을 때, 과연 지금의 생활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1981년 금성사에서 국내 최초로 리모컨이 달린 TV를 출시한 뒤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홈 오토메이션 아파트가 등장했는데, 이때 홈 오토메이션을 푸는 핵심도 리모컨이었으며 대표적인 예가 거실 벽면에 부착된 비디오폰이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조이스틱이란 것도 있었는데 버튼이 아닌 핸들을 잡고 돌리며 원격으로 조종할 수 있었다. 새로운 무선통신 기술이 개발되던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리모컨이 좀 더 적극적으로 우리 생활에 개입하게 되었다. 여러 개의 리모컨을 하나로 통합시킨 통합형 리모컨이 등장하고 블루투스 기술이 도입되면서 휴대폰, 노트북과 같은 이동형 소형 기기 사이를 짧은 거리에서 무선으로 연결하고 작동할 수 있게 됐다. 새천년의 시작과 함께 우리 주거 공간에도 크나큰 변화가 일어났는데 바로 홈 네트워크 기술의 도입이다. 홈 오토메이션 기능에 인터넷이 결합되면서 방과 거실이, PC와 TV가 하나로 엮이고, 냉장고와 주방 소형 가전제품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하나의 흐름이 생겼고 이들 사이를 리모컨으로 조종하게 된다. 마치 TV 채널을 바꾸듯 앉은 자리에서 리모컨 하나만 있으면 불도 켜고 커튼도 열고 음악도 듣고 TV도 보며 홈쇼핑까지 즐기는, ‘리모컨 세상’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규칙을 알면 리모컨이 재미있다 모든 리모컨의 기본은 TV 리모컨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그 TV 리모컨 사용조차도 어쩔 줄 몰라 하며 헤매고 있지 않은가? 사실 리모컨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이는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기술은 날로 발전하여 TV 안에는 별별 기능이 다 들어가는데 그 많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리모컨이 복잡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 중 하나가 ‘컬러 키’이다. 컬러로 버튼의 기능을 인식하게끔 TV 화면에서 버튼의 모양이나 위치, 이름이 아닌 컬러로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폰뱅킹을 할 때 전화 너머 음성이 “7번 밑의 별표나 9번 밑의 버튼을 누르세요” 하고 알려주듯 친절히 설명하기에는 버튼이 너무 많지 않은가? 복잡 다단한 TV 사용법을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습득할 수 있게 한 아이디어다. 모든 TV 리모컨의 색상 배열이 RGYB(레드, 그린, 옐로, 블루)의 순서로 되어 있으며, 이 색상은 기술협의회에서 정해놓은 것이다. 데이터 방송(디지털 TV가 PC와 연결되어 프로그램 시청 중 관련된 정보, 오디오, 영상, 쇼핑 등을 같이 즐길 수 있는 차세대 방송 서비스)이 활성화될수록 TV의 역할이 많아지고 자연스레 컬러 키의 활약도 두드러질 것이다.

요즘 TV 리모컨에는 35~40개 정도의 버튼이 있다. 원래 60개 정도였던 것을 이만큼 줄였다고.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UXD(User Experience Design) 그룹에서는 리모컨의 사용 실태를 알기 위해 40가구를 지정, 한 달 동안 그들이 리모컨 버튼을 사용하는 모습을 관찰한 결과 한 달 내내 단 한 번도 안 쓰는 버튼이 있었고, 그것들을 없애고 통합하는 과정에서 20여 개의 버튼을 정리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아예 ‘카인드kind 리모컨’(LG전자 내부적으로 쓰이는 용어)이라 하여 버튼의 개수를 20여 개까지 줄인 리모컨도 나오고 있다. 전원, 채널과 볼륨의 업·다운 버튼, 숫자 버튼과 같은 아주 기본적인 버튼만 있는 리모컨이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 뱅앤올룹슨에서는 95만 원짜리 리모컨을 출시해 화제가 되었다. 오디오도 TV도 아닌 리모컨 하나에 95만 원이라니…. 일단 생김새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마치 소형 TV를 손에 쥐고 있는 듯한 느낌인데, 이것 하나만 있으면 뱅앤올룹슨의 모든 제품을 한자리에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국내에서는 시도하지 못하고 있으나 집 안의 커튼과 조명기구, 에어컨, 난방 제품에 문의 개폐까지 하나로 다 조종할 수 있는 그야말로 상상 속 리모컨이 현실로 나타난 상징적인 제품이다. 뱅앤올룹슨이 80년간 연구해온 것이 이 하나에 응축되었다는 것이다.


1 뱅앤올룹슨의 리모컨 ‘베오 5’
2 애플 ‘iMac’ 리모컨

버튼 없는 리모컨 시대가 열린다 앞서 조이스틱의 등장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리모컨의 발전은 비단 버튼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의 리모컨에서 더욱 기대해볼 만한 것은 바로 터치 방식으로 조종하는 ‘터치 휠’ 방식이다. 쉽게 생각해 아이팟과 비교할 수 있다. 아이팟에서 앞으로 감기나 되감기를 할 때 물론 버튼을 눌러 한 곡씩 넘길 수도 있지만 버튼의 둥근 형태에 따라 손가락을 ‘스윽’ 오른쪽으로 돌리면 앞으로 감기가, 왼쪽으로 돌리면 뒤로 감기가 된다. 손이 움직이는 궤적에 따라 한 곡부터 여러 곡을 건너뛸 수 있다. 아이팟의 ‘터치’와 방식은 비슷한데 기술은 다른 것이 바로 요즘 나오는 터치 휠이다. 요즘 출시되는 TV에는 타임머신 기능이 있어 시청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한 시간 정도는 항상 녹화가 되어 놓친 장면을 다시 돌려 볼 수 있는데, 바로 이때 터치 휠 방식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방송국 편집실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PD가 기계 앞에 앉아 장면을 편집할 때 다이얼을 돌리듯 둥글게 돌출된 것을 능수능란하게 돌리며 화면을 편집하는 모습을 말이다. 바로 터치 휠 방식도 이와 비슷한 것이다. 조이스틱과 터치 휠 방식 사이에 잠깐 등장했다 사라진 것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조그 셔틀jog shuttle’ 방식이다. 1990년대 초반 조그 셔틀 비디오라는 것이 엄청나게 유행한 적이 있지 않던가. 그러나 이 조그 셔틀 방식은 일반 버튼식보다 내구성이 떨어져 가격은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수명은 짧아 유행처럼 지나갔다.

리모컨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언젠가는 리모컨이라는 기계가 필요 없을 때가 올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그 무한 가능성을 지닌 제품 리모컨. 우리는 이제 리모컨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특히 디지털 라이프를 즐기고픈 사람에게 어렵지만 극복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리모컨이다.

리모컨이 궁금하다
요즘 TV 업계의 마케팅, 기획 파트의 최대 고민은 리모컨이라고 한다. 홈 네트워크의 접근도 결국은 컨트롤러인 리모컨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이들은 리모컨 곳곳에 잘 팔리게 하기 위한 그들만의 약속과 규칙을 만들어놓는다.

리모컨은 친숙함과 사용성을 따른다
리모컨의 핵심은 사용성이다. 리모컨은 별도로 구매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본체에 따라오는 부속물이다. 하지만 쓰다가 생기는 불편함만큼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리모컨이 예쁘다고 TV를 사진 않지만 리모컨이 불편하면 TV를 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사용상의 불편함을 최소화시키는 것. 그래서 디자인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도 힘들다. 친숙한 것이 사용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1 프라임 존
사용자가 리모컨을 무의식적으로 잡았을 때 가운데 부분을 잡고 엄지손가락이 자연스레 놓이는 위치가 있는데 바로 그곳이 프라임 존이다. 엄지손가락 하나로 작동하는 리모컨이기에 이 프라임 존에 중요한 기능을 많이담는다고 한다.

2 컬러 키
버튼이 많아지고 기능이 복잡해지면서 쉽게 알아보고 사용할 수 있도록 버튼에 색상을 넣은 것이다. 한국에서는 레드, 그린, 옐로, 블루(RGYB) 순서로 컬러 키를 배치하고, 유럽에서는 레드, 그린, 블루, 옐로(RGBY) 순서로 배치한다.

버튼의 배치
3 전원 버튼

전원 버튼에 색상을 넣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전원 버튼에 빨간색을 사용하는 반면 LG전자는 녹색을 사용한다. 이것 역시도 브랜드 아이덴티티라고 한다.
4 숫자 버튼
5 채널 업&다운 버튼

리모컨 형태와 크기
리모컨의 모든 치수는 한국인의 인체 치수 자료에 근거를 두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립감, 즉 손에 쥐었을 때의 느낌이다. 리모컨을 단면으로 잘랐을 때, 단면이 직사각형인 것보다 아래가 좁은 사다리꼴이 훨씬 편하게 느껴져 대부분의 리모컨 단면이 밑으로 좁아지는 형태의 사다리꼴이다. 리모컨의 형태는 좁고 긴 것이 사용하기 편리하다. 한때 리모컨의 크기를 10인치, 7인치 크기의 전자 액자처럼 만든 적도 있으나 한두 해 사용자 관찰을 해보니 리모컨의 면적이 넓고 큰 것에 대한 사용자의 부담감이 커 다시 바 타입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또 IPTV 도입 초기에는 TV로 인터넷도 할 수 있어 TV를 사면 키보드도 함께 제공했지만 별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사람들은 리모컨만큼은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버튼의 크기
버튼의 크기는 엄지손가락 면적의 70~80% 정도가 닿을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 요즘 리모컨은 버튼의 크기가 점점 커지는데 성인이 한 손으로 편안하게 쥘 수 있을 만큼의 면적 안에서 가능한 한 크게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버튼과 버튼 사이의 간격. 간격이 조금만 좁아져도 버튼을 실수로 잘못 누를 확률이 커지기 때문이다.

디지털 제품을 접할 때면 습관적으로 나오는 단어가 있다. 바로 ‘인터페이스interface’와 ‘인터랙션interaction’이다. 이 둘을 쉽게 구분하기 위한 예가 있다. 어떤 공간에 예쁜 손잡이가 달린 문이 닫혀 있고 그 앞에 내가 서 있다고 생각해보자. 문 자체가 제품이라면 내가 그 문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그 예쁜 문 손잡이로 저절로 손이 가더니 문을 열어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문 손잡이가 인터페이스라면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는 행위는 인터랙션이다. 인터페이스란 나와 사물 사이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흐름이며, 그것의 작용으로 인간의 오감을 자극해 어떤 행위(인터랙션)를 유발하는 것이다. 만약 리모컨이 당신의 손에 쥐어졌다면 디자이너는 리모컨의 인터페이스(버튼)를 체계적으로 만들어놓아 사용자가 쉽게 알아보고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렇게 내가 리모컨 버튼을 눌러 버튼의 촉감을 느끼고 원하는 채널을 보기까지 리모컨과 나 사이에 일어나는 여러 단계의 상호 과정이 인터랙션인 것이다. 첨단 디지털 세상에서는 이 두 가지, 인터페이스와 인터랙션(인터랙티브) 디자인이 잘된 제품이 굿 디자인 제품이다. 그만큼 복잡한 제품을 사용하기 쉽게 만들어주는 요소이기 때문에.

미래에는 리모컨이 사라진다 버튼으로 꽉 채워진 긴 사각형의 리모컨은 이제 사라질 수도 있다. 리모컨이 사람의 음성이나 제스처를 읽어 들이거나 터치 스크린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에서 출시한 휴대폰 ‘아이폰’이 이미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이보다 더 앞을 내다본다면 리모컨이라는 기계 덩어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사용자가 전자 제품을 직접 컨트롤하는 것이 아닌 ‘가족 심부름꾼family butler’이라 불리는 사이버상의 비서가 집 안 디지털 제품을 대신 컨트롤해주거나 또는 로봇이 그 역할을 해주는 모습도 연상해볼 수 있다. 미국에 있는 부모님과 통화할 때 컴퓨터와 웹캠을 켜놓는 모습이 아닌 로봇을 불러 간단히 “부모님과 연결해줘”라는 말 한마디로 화상통화를 할 수 있고 “새로 나온 스파이더맨 10”만 외치면 TV에서 그 영화가 시작되는 모습도 떠올릴 수 있다. 이는 생각보다 멀지 않은 미래가 될 것이다. - 김정훈 책임연구원(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 CNB그룹)
김명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