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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에게는 비즈니스 현장, 유러피언에게는 살림 장만의 기회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08 메종&오브제
1월과 9월 1년에 두 번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메종&오브제Maison&Objet는 전 세계 디자이너와 인테리어 업체들의 소위 S/S 컬렉션과 F/W 컬렉션을 선보이는 인테리어 박람회이다.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이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이너에 의한’ 이벤트, 쾰른 가구 박람회가 ‘전 세계 가구 산업’을 움직이는 거대한 프로젝트라면 유럽의 사통팔달 파리에서 열리는 메종&오브제는 이 둘을 절묘하게 혼합시켜놓은 것이라고나 할까. 인테리어 업계의 혹자는 ‘예전만’ 못하다며 최근의 메종&오브제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예전처럼 인테리어 트렌드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특별관도 줄었고 유명 디자이너의 기획 전시도 그리 활발하지 못하다. 실제로 이곳을 취재하는 인테리어 전문 기자들의 수가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 트렌드와 거물급 디자이너에 열광하는 미디어의 입맛에 맞는 ‘이슈’가 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재 열기로 그곳의 온도를 단정하는 것은 성급하다. 그곳은 전 세계 인테리어 업계, 유럽 가구 업체와 브랜드에 열광하는 아시아 인테리어 업계 사람들, 이번 기회에 정말 마음에 드는 살림살이를 장만하기 위해 국경마저 넘어온 유럽 각국의 인파가 넘쳐난다. 젊은 디자이너들의 재기발랄한 전시, 인테리어 업체들의 진지한 거래, 구경꾼들의 즐거운 눈호사, 이때만 기다려온 살림꾼들의 전략적인 쇼핑 등 6일간의 메종&오브제는 충분히 뜨겁다.

1, 2 눈으로도 만져질 듯한 제품으로 눈길을 끈 ‘블루네이처’ 소품들.
3 2008 미소니 홈 컬렉션. 
4 프랑스 브랜드 KOSE 제품.
5 로셰보부아 컬렉션.

이제, 메종&오브제에는 트렌드가 없다?
메종&오브제는 물론 인테리어 박람회를 찾는 이들의 강박 중 하나는 ‘트렌드’, 그러니까 최근의 경향과 유행을 읽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올해 메종&오브제는 이러한 트렌드로부터 자유로운 듯하다. ‘패브릭에 비즈 장식’이 현저하게 많았다는 것이 가장 눈에 띄는 점. 그렇다 해서 3천4백60여 개의 참여 업체 중 몇 개 패브릭 업체가 선보인 공통분모를 ‘대세’라 여기는 것은 경솔한 처사다. 인테리어 업계는 패션 업계에 비해서 고집스럽다. 각 브랜드는 물론 매 시즌마다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지만 ‘트렌드 제조’에 집착하지 않는다. 자신의 고유성과 정체성에 뿌리를 두고 신제품이라는 싱싱한 가지를 뻗어낸다. 생각해보자. 과연 ‘인테리어’라는 분야에서 내 집을 꾸미고 가꾸는 데에서 ‘유행’ 따위가 그리 대단한 것일까. 패션이란 몸에 걸치는 것이지만 인테리어란 몸을 기대는 것 아닌가. 이 계절에 히트하는 상품보다는 두고두고 내 몸 편히 쓸 수 있는 것이 최고인 것이다. 메종&오브제는 이러한 점에서 명석하다. 섣불리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행을 더 이상 좇지 않는다. 말 그대로 집maison에 필요한 물건objet을 충실히 모았다. 그렇기에 구경꾼과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루는 소문난 잔치보다는 ‘팔리는’ 제품을 찾아 모여든 인테리어 업계 사람들과 ‘내 집에 꼭 필요한’ 물건을 찾기 위에 먼 길을 찾아온 살림꾼들을 위한 진지한 마켓이 된다.


6 이탈리아 브랜드 LEMA. 화려한 컬러의 하이글로시 질감이 눈에 띈다.
7 화려한 패턴의 ISI 테이블웨어.
8 타일 브랜드 SICIS 신제품.

거대 ‘시장’인 이곳은 그러므로 유행이 아닌 ‘인기 상품’이 탄생한다. 2008 메종&오브제의 인기 상품 중 하나는 거친 듯 부드러운 듯 생생한 촉감이 느껴지는 제품. 미디어용 표현을 빌리자면 ‘자연주의를 표방’한 가구와 소품이라고나 할까. 프랑스 브랜드인 ‘블루&네이처’는 그 중에서도 단연 주목을 끌었다. 야생의 나무를 거친 상태 그대로 잘라서 철판으로 이어 붙이고 지지하여 가구라는 용도로 변신시킨 제품으로 눈과 마음, 그리고 몸이라는 3박자를 흡족하게 만들어주는 매력을 지녔다.


9 올해 메종&오브제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은 비즈 장식 패브릭. 이탈리아 패브릭 브랜드 CLAUDIA BARBARZ.
10 올해는 특히 일본의 선전이 두드러졌다. 일본 브랜드 야마가타 고보의 테이블. 정갈한 디자인으로 유럽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메종&오브제는 진지한 시장”
6일간의 메종&오브제를 관람하다 보면 매일같이 마주치는 얼굴들이 있다. 바로 자신이 디자인한 작업들을 선보이기 위해 이곳에 참가한 디자이너들. 프랑스 디자이너 파비엔은 10년 전 메종&오브제의 신인 디자이너 등용문 ‘Talented a la Carte’에서 데뷔, 그 후 한 해 걸러 한 번씩은 이곳에 참여한다. 경력 10년의 베테랑인 그는 최근의 메종&오브제를 두고 ‘진지하다’고 말한다. 10년 전만 해도 자신의 작업을 두고 ‘재밌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실질적인 거래 문의가 더 많아졌다는 것. 이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디자이너들에게도 한결같은 현상으로 메종&오브제는 디자이너들을 위한 무대에서 시작, 디자이너들을 위한 시장으로 자리 잡은 것을 실감할 수 있다고. 그는 구리 위에 디지털 컬러를 입힌 작업으로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1 SHACO의 시어 소재 패브릭. 신화 속 새의 패턴을 자수로 표현했다.
2, 3 영국 브랜드 De Gournay의 시누아즈리 컬렉션. 화조도와 조충도를 재현할 정도로 동양의 매력을 디자인 모티프로 삼고 있다.
 
유럽 디자이너들에게 중국 바람이 분다?
메종&오브제를 관람하는 이들을 크게 양분하자면 유러피언과 아시안이다. 이 중 유러피언들이 특히 관심을 갖는 것이 바로 시누아즈리Chinoiserie 컬렉션.‘중국풍’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이것은 동양적인 형태와 패턴을 그대로 응용, 디자인에 반영한 것을 이른다. 주로 패브릭과 벽지 등 평면 디자인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영국 브랜드 De Gouranay는 박람회 현장에서 동양의 화조도와 조충도 화첩을 선보이며 그것을 재현했음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고 있을 정도. 그 외에도 에릭 발레로Eric Valero, 익셀Iksel 등의 텍스타일 디자이너 역시도 부를 상징하는 ‘물고기’, 고귀함의 상징 ‘매화’ 등을 자신들의 작업에 직접적으로 응용하고 있다. 유러피언은 물론 동양인들에게도 주목을 받은 브랜드는 일본 브랜드‘교토 프리미엄Kyoto Premium’. 일본의 최고급 문화라 할 수 있는 기모노와 오비의 패브릭과 패턴을 리빙 디자인 제품에 응용, 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디자인 제품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4, 5, 6
도쿄 프리미엄이 선보인 오비 패브릭을 활용한 제품들.
7 크리스찬 피셔바우의 컬렉션. 벚꽃인 듯 매화인 듯 정체는 몰라도 ‘일본풍’이 느껴지는 패턴은 동양을 동경하는 유럽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기 마련이다.
8 매듭 장식을 모티프로 한 Nelogranoblu의 조명등.
9 텍스타일 디자이너 익셀의 새로운 컬렉션 .

“아름다움을 찾다 보니 시누아즈리 컬렉션을 만났다”
텍스타일 디자이너 익셀은 ‘아름다운 모든 것’을 패턴화시킨다. 특히 벽지 디자인에 집중하고 있는 그는 시누아즈리풍의 벽지를 선보였다. 최근 트렌드가 ‘중국풍’이냐는 질문에 요즘에는‘그것도’아름답다는 싱거운 답을 건넨다. ‘아티스트는 트렌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만드는 사람’‘중국풍은 잠시잠깐이 아니라 영원히 사랑받을 것이다’라는 말로 트렌드의 무상함과 동양의 신비로움에 대한 찬사를 동시에 보탰다. 디자인 작업의 영감을 얻는 곳은 ‘무엇이든 다 있는 도서관’이라는 익셀의 명쾌한 대답에서 메종&오브제에서 찾아야 할 것은 트렌드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또렷해졌다.


1 타일 브랜드 SICIS의 뉴 컬렉션.
2, 4 돌과 불 등 자연 소재를 활용한 가구가 눈길을 끈다. 
3 유리공예가 니콜라스 모건의 유쾌한 작업물, 자동차.
5 <웰페이퍼> 선정 2007년 최우수 책장인 QUODES 제품.

눈에 띄는 물건들
이제 명료해졌다. 메종&오브제에서 찾아야 할 것은 손에 잡히지 않는 유행이 아니라 내 마음에 쏙 들고 우리 집maison에 꼭 필요한 물건objet라는 사실. 국내에서는 아쉽게도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2008 메종&오브제 S/S 컬렉션에서 단연 눈에 띄었던 베스트 상품을 골라보았다. 2007년 <월페이퍼>가 선정한 ‘올해의 책장’에서부터 프랑스 유리공예가 니콜라스 모건의 유리공예 자동차까지 ‘살림용’으로 또는 ‘선물용’으로 갖고 싶은 물건들이다. 메종&오브제 현장에서는 업계 사람의 ‘거래’이든 일반 관람객의‘구매’이든 ‘현장 판매’는 일체 하지 않으며 현장에서 주문, 예약 판매하는 시스템을 확실하게 지키고 있다.


6 패션 브랜드 까스텔바작의 디자인을 모티프로 한 브랜드 Acrila.
7 야마가타 고보의 사이드 테이블.
8 편하면서도 감각적인 디자인이 눈에 띄는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LONDO의 1인용 체어.

“일본이라는 그릇에 영국을 그린다”
젊은 디자이너들의 재능이 각축을 벌이는 ‘Now!’관에서 만난 도예가 아즈사 히로세. 일본 태생으로 현재 영국 런던에서 유학 중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빚어낸 도자기는 ‘일본스러운’ 형태와 ‘영국적’인 패턴이 공존하고 있었다. 한 평 반 정도쯤 되는 작은 부스에 오로지 손으로 빚은 도자기 몇 점만을 내놓은 그 모습이 마치 소꿉장난하는 꼬마 숙녀 같다. 빛의 세기는 그것이 비록 작더라도 무한히 커질 수 있는 법. 마치 폭죽을 터트리듯 화려한 각국의 디자이너들 틈에서 조용하지만 명료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동양인은 물론 유럽인에게까지도.

이미화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