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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의 화장실에 의한 화장실을 위한 심재덕 씨의 뒷간 라이프
세계의 ‘뒷간 문화’를 고양시키기 위해 출범한 ‘세계화장실협회’의 존재를 아는가? 이 단체의 회장 심재덕 씨는 뒷간에서 태어난 ‘개똥이’이며 화장실 문화의 중흥에 투신한 인물이다. ‘미스터 토일렛’으로 불리는 그는 왜 ‘뒷간 라이프’에 몰두하게 된 것일까.

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화장실이다. 사람이 들어가면 자동으로 음악이 흘러나오고, 스위치를 켜면 투명한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이 화장실은 심재덕 씨가 세상에 전파하고 싶은 ‘화장실 문화’의 전형이다. 청결하고 문화가 있고 물이 절약되어 환경을 지속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화장실.

똥 이야기부터 꺼내기 민망하니 시인 김용택의 시 한 수 먼저 읊겠어요. “풀벌레 산 가득 울어 / 캄캄하게 귀 먹는 밤 / 저녁밥 먹고 똥 마려워 / 어슬렁 어슬렁 강변으로 똥 싸러 간다 / 물가 바위에 똥처럼 쭈그려 앉아 / 시원하게 똥을 싸며 / 어둔 강물이랑 / 강물에 뜬 별이랑 / 어둠 속에 박힌 하얀 풀꽃들이랑 / 캄캄한 앞산 뒷산이랑 둘러보다가 / 소쩍새 소리 간간이 들으며 / 턱 괴고 세상만사도 생각하며 / 끙끙 힘을 쓰는데 / 이상하다 이상하다 / 아까부터 뒤가 스멀스멀 근질간질 이상하다 / 어떤 잡놈이냐 / 점잖은 어른이 뒤보는데 / 어떤 놈이 훔쳐보느냐 / 밑 닦을 쑥 뜯다 엉거주춤 / 뒤돌아보니 / 엉! / 달이구나 / 저 산 삐죽이 얼굴 내미는 늦달과 반가운 물결이로구나.”(김용택 ‘뒤를 보며’)

역시! 시인들은 대체 신에게 어떤 봉사를 하여 똥 이야기로도 읽는 이의 마음을 개운하게 만드는 재주를 갖게 된 걸까요? 좋은 시도 읽으셨으니, 이제 나무라지 마시고 똥 이야기 들어봐 주세요. 똥은 한자로 ‘분糞’이라고 씁니다. ‘쌀 미米’ 아래 ‘다를 이異’가 붙지요. 그 뜻은 쌀과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쌀의 또다른 모습이라고 하네요. 풀이하면 똥은 또 다른 먹을거리인 밥으로 그 모양만 달라졌다는 뜻이랍니다. ‘쌀 미米’ 자를 부수로 가진 한자어 ‘가루 분粉’ ‘양식 량糧’ ‘사탕 당糖’(이들은 모두 먹을거리들이지요) 사이에서 ‘똥 분糞’ 자가 함께하고 있다는 건 바로 이런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똥은 밥이다! 이건 사람이 먹을거리의 자양분을 독식하지 말고 일부는 자연에게 남겨주라는 ‘생명 순환’의 원리가 담긴 거라고 하네요. 우리 옛어르신들은 얕은 항아리를 묻어놓고 그 냄새도 맡고 그 모양도 쳐다보며 볼일을 보셨고, 채마밭의 거름으로 똥을 퍼 나르며 자연에게 먹을거리를 나눠줬습니다. 그야말로 똥을 가까이 하는 문화였던 거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똥을 천하의 몹쓸 더러운 물질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똥을 생명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천금 같은 물에 흘려 하수구로 떠내려보내게 됐지요. 물론 똥 이야기를 꺼내는 이는 저속하고 저급한 수준으로 취급받게 됐구요.


1 곡선으로 흐르는 벽과 유선형의 창으로 공간에 리듬감을 만들어주었다.
2 변기 모양 집의 주인인 심재덕 씨와 선정선 씨 부부. 그들 뒤로 보이는 천장 라인은 변기 뚜껑을 표현한 것이다.
3 복층 구조의 거실과 1층 메인 화장실 천장 위로 좁은 통로가 연결돼 있다.

왜 이렇게 서두에서부터 똥 이야기만 읊어대냐구요? 이 집, 해우재의 주인이 바로 ‘화장실 문화 전도사’랍니다. 수원시장 시절부터 수원을 ‘한국 화장실 혁명의 1번지’로 변화시켰고, ‘아름다운 화장실 만들기’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발화시킨 인물이지요. 음악이 흐르고 작은 그림이 걸려 있고 ‘좋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문구가 쓰인 공중 화장실은 바로 그를 통해 탄생한 셈입니다. 그는 1999년엔 한국화장실협회를, 작년에는 세계화장실협회를 창립했습니다. 그는 의정 사상 처음으로 화장실을 주제로 대정부 질의를 한 국회의원이기도 합니다. 작년 연말에는 수원시 이목동, 자신의 살림집터에 변기 모양의 집을 하나 지었지요. 포스터처럼 선명하게 들판 위에 이식된 ‘변기 모양 집’은 ‘Mr. Toilet’s House’라는 별칭까지 얻었습니다. 이 건물은 완공되기 전부터 포털 사이트, 해외 주요 언론 사이트에까지 투시도가 오르면서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습니다. ‘최대의 변기 모양 조형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는군요. 5만 달러(한국 돈으로 약 4500만 원)를 기부하면 이 집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다고 하여 ‘황금 두른 변기가 백 개쯤 들어 있는 집인가?’ 하고 호사꾼들의 쫄깃한 뒷담화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그 ‘5만 달러 숙박’ 이벤트는 화장실 문화를 공론화하기 위한 의도된 ‘이슈 메이킹’이었는데 그 노릇을 톡톡히 해냈지요.)

Mr. Toilet’s House라는 문패가 걸린 대문을 열면 뚜껑이 열린 변기 모양의 집이 나타납니다. 집 안으로 들어서면 집의 중심엔 화장실 하나가 애첩처럼 시치미를 떼고 들어앉아 있지요. 마치 영화 <가타카>를 연상시키는 아주 미래적인 화장실입니다. 유리로 되어 있어 볼일을 대체 어떻게 볼까 싶은데 스위치를 켜면 삽시간에 투명한 유리가 불투명하게 바뀝니다. ‘순간 조광 유리’라는 특수 유리로 만들어져 있다는군요. 2층 화장실 벽은 온통 반투명 유리로 만들어져 ‘볼일 보며’ 바깥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가 있답니다. 2층은 가운데가 비어 있는데, 변기 물이 내려가는 구멍처럼 이 집의 ‘블랙홀’ 같은 공간이라네요. 방 세 개의 집에 화장실 네 개가 들어찬, 그야말로 ‘화장실의, 화장실을 위한, 화장실에 의한 집’입니다. 세 개의 화장실에는 스피커가 설치돼 있어 사람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또 모든 화장실에는 보통 수세식 화장실의 물 사용량보다 70% 정도 물을 절약할 수 있는 물 절약 변기가 설치돼 있고 태양광 발전 시스템, 빗물 저장 탱크 같은 것도 설치돼 자연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다네요. “걸리버가 사용할 만한 거대 변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 변기 안에서 우리 가족이 살게 될 것이지만, 이 집은 살림집보다는 위생을 상징하는 선언물 같은 의미가 더 큰 집이길 바랐지요.

유엔 통계를 보면 위생적인 화장실에 접근하지 못하는 인구가 세계 인구의 40%인 26억 명에 가깝다고 합니다. 더 심각한 건 화장실 위생 문제로 생기는 수인성 전염병 때문에 매년 2백만 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는 겁니다. 이 집에 들르는 모든 이로부터 1달러씩 기부금을 받고 있는데, 이 기부금은 빈곤국의 화장실을 짓는 데 사용될 거랍니다. 1달러는 1000원도 안 되는 작은 돈이지만, 이게 모이고 모이면 커다란 인류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 테지요. 이 거대한 변기가 화장실 문화를 세상에 퍼뜨리는 메카가 되길 바랍니다. 나중에 내가 죽으면 이 집은 ‘화장실 박물관’으로 개조할 생각이에요.” 곡절이나 의도가 무엇이건 누구도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 화장실 문제를 공론화시킨 것은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 같습니다. ‘변기 안에서 살자는 이야기냐?’고 반발하던 그의 아내도 이젠 이 집을 내심 자랑스러워하게 됐고, 그가 세상에 내민 ‘뒷간’이라는 이슈는 그 효과를 슬슬 보여주고 있답니다. 그런데, 미스터 토일렛이 날리는 생뚱맞은 카운터펀치는 이상하게도 웃음이 실실 나오게 하는 재주를 지녔습니다. 통념의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아 얼얼하면서도 상쾌한걸요.


반반사 유리와 우레탄 도장 처리된 스틸 재료로 마감한 해우재.

“처음부터 미스터 토일렛은 아니었어요. 2002 월드컵 개최를 준비할 때였는데 UN 기관에서 근무하던 외국인이 ‘당신 나라 화장실은 어떻게 할 거요?’라고 묻는데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온몸에 소름이 쫙 돋데요.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로 전율이 느껴졌고.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중 화장실의 도시로 만들겠다’고 답했죠. 그때부터 ‘화장실 문화’ 전파가 시작됐어요. 그런데 내가 화장실에서 태어난 ‘개똥이’에요. 어머니가 내 위로 아이 둘을 잃고 나서 외할머니가 ‘다음에 애를 낳으면 뒷간에 가서 낳아라. 그래야 명이 길다’ 하셨대요. 어머니는 정말 할머니 댁 화장실에서 날 낳으셨어요. 화장실 문화를 위한 내 일은 숙명인 거죠.”


이 집은 나중에 박물관으로 개조될 예정이기 때문에 인테리어적인 요소는 최소화하고 공간을 최대한 비운 상태로 설계했다.

살림집이기도 한 이 집(1층은 중앙의 화장실과 거실, 게스트 룸 등으로 이뤄진 공적인 공간인 대신 2층은 부부만의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에서 심재덕 씨는 아내 손톱 발톱도 깎아주고 난초 물 주고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을 무심히 우러러보기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솜씨 매운 아내는 재봉질도 하고 찰흙으로 돼지, 코끼리 따위도 만들면서 늙어갈 것이고 남편은 “여보, 정선이!”를 외치며 정원 잔디를 손볼 겁니다. 하지만 이 느슨한 일상 한편에는 당연히 ‘미스터 토일렛’의 삶이 존재할 테지요. 이번 총선에서 불출마 선언을 하고 국회의원 신분도 떼어버리기로 했답니다. 그 이유의 9할은 화장실 문화 전파에 몰두하기 위함이라는군요. “왜 화장실 문화냐구요? 어떻게 ‘화장실’이라는 냄새 나고 더러운 곳에 ‘문화’라는 거룩한 단어를 붙일 수 있냐구요? 그 이름조차 WC라고 암호처럼 줄여 쓰며 입에 담기 괴로워하면서도 화장실은 인간이 만든 문화의 이정표로 받아들이잖아요. 인류학자들이 유적을 발굴할 때 수세식 화장실을 문명 발달 척도로 생각한다지요? 바로, 화장실은 ‘문화의 소산’이기도 하다는 말이죠.”


1 2층 화장실은 반투명 유리로 벽을 마감해 창밖 풍경을 내다보며 화장실 안에서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2 정원에는 원통형의 공중 화장실이 소나무 아래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다.
3 1층 거실의 중앙에 자리한 화장실. 유선형의 벽과 세면대, 수납장이 한 몸처럼 연결돼 있다.

인간은 인생의 1년 남짓한 시간을 화장실에서 보낸다고 합니다(남자는 291일, 여자는 376일). 결국은 그 안에 들어가 살아야 하는 화장실이라면, 우리 모두가 똥 생산자일 수밖에 없다면 똥이 밥이 되고 밥이 똥이 되는 생명의 순환 시스템을 어서 빨리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할 것 같네요. 똥을 자원으로 보는 그런 세상 말이지요. 심재덕 씨의 ‘뒷간 라이프’는 이 간단하고도 심오한 생각을 끌어낸 카운터펀치입니다.

기왕 시로 시작했으니, 시로 이야기를 끝낼까 합니다. 그래야 똥 이야기도 좀 고상해 보이겠지요? “풋고추 열무쌈 불땀나게 먹고 / 누런 똥 싼다 / 돌각담 틈새 비집고 들어온 바람 / 애호박 꽃망울 흔드는데 / 이쁘구나 누런 똥 힘주어 싸다 보면 / 해지는 섬진강 보인다 / 사는 일 바라거니 이만 같거라 / 땀 나고 꽃 피고 새 거름 되거라.”(곽재구 ‘누런 똥’) 정말로 이 시처럼, 땀 나고 꽃 피고 새 거름 되는 ‘똥만 같은’ 삶이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4 1층 거실 중앙의 화장실을 2층 계단에서 내려다봤다. 집 안에 또 하나의 집(화장실)이 있는 형상인데, 집 안의 핵과 같은 자리에 화장실이 자리 잡고 있다.
5 이 집의 방문객들이 기부한 1달러의 ‘화장실 펀드’는 빈곤 국가의 화장실 짓기 사업에 쓰여지게 된다.


걸리버가 사용한 거대 변기를 만들고 싶다는 꿈에서 출발한 집 ‘해우재’. 실제로 변기처럼 건물 중앙에 홈이 파인 건축물이 되었다. 심재덕 씨는 이 건물이 인구에 회자되어 화장실 문화를 전파하는 메카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독특한 형태의 이 건축물은 고기웅사무소(02-512-3929)의 고기웅 대표와 팀반건축사사무소(02-512-4446)의 허재혁 대표가 설계했다.


최혜경 디자인 이미화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