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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행동학 전문 수의자 조광민 [눈 맞춤] 반려견과 눈 맞출 때 솟는 사랑 호르몬
두 사람이 4분간 눈을 떼지 않고 서로 바라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지난겨울 <뉴욕타임스>의 칼럼이 심리학자 아서 에런Arthor Aron의 ‘4분간 눈 맞춤을 하면 관계가 더욱 깊 어진다’는 신기한 이론을 소개했습니다. 그 내용이 궁금하면 유튜브에서 동영상 ‘How To Connect With Anyone’을 찾아보세요. 낯선 남녀, 네 번 데이트한 연인, 1년간 사귄 커플, 아기를 낳은 커플, 중년 부부, 55년을 함께 산 노부부의 실험이 나옵니다. 참가자들은 처음엔 눈 맞추기를 쑥스러워하지만, 서로 바라보며 시간이 흐르자 활짝 웃고, “아내와 눈 맞추는 게 이렇게 멋진 일인지 이제야 알았다”며 무릎을 치고, 상대와 예전처럼 입 맞추고 싶어하지요. 4분이 지나자 자신도 모르게 상대를 껴안고 손을 어루만지고 함께 춤추는 멋진 장면으로 끝나는 이 동영상은 5백만여 명이 시청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사랑하고 싶고, 관계를 회복하고 싶고, 더욱 아껴주고 싶은 누군가가 있나요? 그 사람과 조용히 눈 맞춰보세요. 가족은 물론 반려견과 내가 사는 도시까지, 우리가 주변과 눈 맞춤을 해야 하는 속 깊은 이유를 소개합니다.


일본의 한 연구팀은 견주 30명이 각각 자신의 애견과 눈 맞춤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한 후, 견주와 개의 소변을 검사하는 실험을 했다. 그랬더니 양쪽 모두 ‘사랑 호르몬’이라고 부르는 옥시토신의 수치가 실험 전보다 크게 높아졌다. 서로 눈 맞춤을 하면 사람도 개도 동시에 행복감을 느낀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례다. 연구팀은 길들여진 늑대, 즉 개의 조상에게도 같은 실험을 했는데 옥시토신이 분비되지 않았다. 만약 낯선 사람이 개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면 개가 도전 신호로 느껴 공격할 수도 있다. 그러니 바라만 봐도 사랑 호르몬이 나온다는 사실은 얼마나 신비로운가! 더욱이 개와 보호자가 눈맞춤을 오래 할수록 더 많은 옥시토신이 분비된다니 이 얼마나 끈끈한 애정의 관계란 말인가. 이 흥미로운 연구 결과는 유명 과학 저널 <사이언스>의 온라인판이 발표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연구 논문은 실험에 참여한 개가 평소 주인과 어떻게 지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어요. 만약 평소에 주인에게 맞는 개였다면 옥시토신의 분비량이 많아졌을까요? 실험에 참가한 개들은 아마도 주인과 유대감이 좋은 행복한 개였을 겁니다.”

평범한 수의사로 살다가 좀 더 즐겁고 가치 있게 진료하고 싶어서 미국에서 동물행동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행동 치료와 훈련까지 포괄 진료하는 ‘그녀의 동물병원’을 연 조광민 원장. 그를 비롯한 동물행동학 전문가는 개의 몸짓언어를 보고 그 개의 삶이 행복한지 힘든지를 유추한다. “평소 주인과 소통을 잘하는 개는 혼자 있을 때 안정된 몸짓언어를 유지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물병원에서 어떤 개는 혼자 체중계가 있는 방에 들어가 몸무게를 재는 데 반해, 보호자와 떨어질까 봐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체중을 재기 힘든 개도 많죠. 전자의 경우는 평소 개가 진화론적으로 편안하게 느끼는 자기 방, 즉 크레이트crate에서 혼자 자도록 보호자가 교육하는 등 개가 삶에서 자신의 독립적 부분까지 잘 누릴 수 있도록 가르친 것이에요.”

혼자서도 안정적인 개는 레스토랑에서 테이블 아래 앉아 기다리고,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가고, 학교와 사무실 등 어디든 함께 다닐 수 있어 일평생 주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주인의 셔츠 냄새만 맡아도 행복감을 느낀다는 반려견에게 이보다 더 행복한 삶이 있을까. 개가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반려견 문화가 형성된 유럽과 북미에서는 대부분의 개가 이런 삶을 산다.

“반면, 주인을 잘못 만나서 개의 삶이 불행해지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리나라의 남성 보호자 중에는 ‘제대로 패면 얌전해지더라’는 왜곡된 훈육 논리를 가진 사람이 많아요. 아버지가 호통치는 가정의 아이는 또 맞을까 봐 집안에서 아무 행동도 안 합니다. 그 병리적 상태의 아이를 얌전하고 예의 바르다고 하나요? 그건 혼날까 봐 자유로운 행동을 포기한 무기력한 상태지요. 무기력한 개를 얌전하다고 해석하는 건 인간 위주의 착각입니다.”

그렇다면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개를 감싸주면 견생이 행복할까? 조광민 원장은 이것이 우리나라 반려견 문화의 최대 아이러니로, 얼핏 보면 복받은 개 같지만 사실 이런 주인을 만난 개의 삶은 행복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런 보호자일수록 개를 너무나 사랑한다고 말해요. ‘우리 개가 대소변을 못 가리지만 사랑으로 다 치운다, 자주 뛰어오르니 무릎 다칠까 봐 소파를 치웠다, 많이 짖지만 이웃도 이해해주고 나도 괜찮다’라며 개를 마냥 보듬기만 하니 개가 보호자와 떨어지면 잠시도 참지 못해요. 보호자는 회사에 가고 학교에도 가야 하는데 그러면 혼자 남는 개는 불안과 공포 때문에 불행합니다. 이럴 때 중요한 건 사랑스러운 눈 맞춤이나 호된 호통 둘 다 아닙니다. 개가 보호자의 관심을 끌려고 문제 행동을 할 때는 개와 눈 맞춤을 하지 말고 마치 투명 인간을 대하듯 냉정하게 외면하는 게 가장 좋은 교육법이지요.”

유럽이나 북미 지역에서는 개가 주인에게 복종하게 하는 사람 중심의 철학이 아니라, 개가 원하는 게 있을 때 차분히 그것을 얻을 기회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반려견 중심의 철학으로 냉정하게 교육한다. 우선 개의 몸짓언어를 이해한 후 심리학자 스키너의 강화 이론처럼 외면과 칭찬을 통해 반려견이 즐거움과 무관심 중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열어주는 교육이다. “미국의 반려견 행동 치료 전문 병원은 수의사의 행동 치료 방안을 빼곡히 적은 진료 기록표를 보호자에게 줍니다. 거기에 ‘NILIF(Nothing in life is free)’라는 슬로건이 쓰여 있어요. 이게 바로 서양 사회의 반려견 교육 철학이죠.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그러니 좋아하는 것을 얻고 행복해지려면 개도 더불어 사는 사회 규칙을 배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끼리도, 반려견에게도 애틋하고 다정한 눈 맞춤의 전제는 결국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다. 내 마음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가 더 행복해지도록 도와주는 것, 옥시토신이라는 사랑 호르몬은 현명함이라는 마음의 샘에서 솟아나는 게 아닐까. 

글 김민정 기자 |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